조조(위나라 장수)

 


曹肇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장사(長思). 조휴의 아들.
조휴가 주방의 거짓 항복에 속아 석정에서 패한 일로 인해 화가 나 등창으로 사망하자 후사를 계승했는데, 조조는 당대에 뛰어난 재사로 산기상시와 둔기 교위를 역임했다. 조예#s-4가 병으로 죽기 직전에 조우, 하후헌, 진랑 등과 함께 조예의 부름을 받아 뒷일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진랑 등과 사이가 좋지 않아 진랑 등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워한 유방손자가 조우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몰래 일을 꾸며 조예의 마음을 갑자기 변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조예는 사마의조상에게 뒷일을 맡기고 조조는 조칙을 받아 영지로 내려가도록 명령받았다.
정시 연간에 사망했고 사후에는 위장군으로 추증되었으며 아들 조흥이 후사를 계승했다. 인지도가 위왕 조조에 밀려 지극히 떨어진다.
사실 삼국지에 정통한 사람이라도 잘 모를 인물인데, 그럴 법한 게 일반적으로 알려전 정사의 기록에는 그가 조휴의 아들, 조우, 하후헌, 진랑 등과 함께 조방의 보좌로 지목되었으나 유방, 손자에 의해 밀려났다는 이야기 정도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중국 본토에서는 이 조조가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퀴어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출처는 송대에 편찬된 태평어람에서 인용된 조터조조전(조터는 조조의 후손인 문인)/조조별전에 따르면 조조는 '조예의 총애를 받아 그와 함께 잠을 자는 일이 많았다'고 하며, 언젠가 조예와 조조가 옷을 걸고 내기놀이를 했을 때 결국 조예가 이기고 조조가 졌지만, 오히려 조조는 막무가내로 황제의 방으로 쳐들어가 자기 멋대로 그의 옷을 걸쳐입고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별 문제 없이 넘어갔으니, 조예의 총애가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예 입장에서 조조는 사촌뻘이기에 때로는 귀여운 사촌동생이랑 유치하게 놀거나 같이 잠들기도 하고 뭐 그럴 수도 있을 법한데, 어쨌든 후대 사람들은 그렇게 간단히 넘어가지 않았는지, 이후 명/청대 저작 중에는 이 이야기를 훌륭한 퀴어 에피소드로 수록하고 있는 책들이 종종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풍몽룡의 정사(情史)가 있다.
여하튼, 조예가 저토록 조조를 아꼈더라면 조예 사망 직전의 조방 보좌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위서와 세어, 한진춘추 등은 조예가 조우와 그 일파를 내친 것이 순전히 유방과 손자의 농간 때문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 조우 일파에 조예가 개인적으로 가장 총애한 친척이 두 사람(진랑, 조조)이나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조예는 정말로 이간질에 넘어간 게 아니라 가장 아끼는 친척들을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정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 조치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 상태에서는 조예가 먼저 그들을 내치지 않았더라면, 유방과 손자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르는 판이었다.
분명 원 출처인 조조별전에서는 그가 힘이 장사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명/청대로 가면 그 부분 언급은 사라지고 그를 '미색이 빼어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