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
曹休
(? ~ 228)
1. 개요
중국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다. 위나라의 황족이자 장수로 자는 문열(文烈)이다.[1]
조조(曹操)의 족자(친족 조카)[2] 이다. 방계 황족인 덕분에 직계황족을 견제하던 조비의 총애를 받아 진군, 사마의, 조진과 함께 조예 대의 고명대신이 된 인물이다. 『삼국지』의 본인 열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왕침의 『위서』에 의하면 조휴의 조부는 이름은 미상이나 오군태수를 역임했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조휴는 전란으로 인해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어떤 사람과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모친을 모시고 고향을 떠나 할아버지가 태수를 역임한 오군으로 이주했다.
조조가 거병하자 조휴는 이름을 바꾸고 형주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 조조를 만났으며 조조는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다.'[3] 라 말하고 조비와 함께 살게 하고 아들과 같이 대우했다.[4]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동작대에서 연회를 베풀고 활쏘기 대회를 할 때 맨 처음으로 과녁을 명중시키는 소년 장수로 처음 등장하는데 이 때 조조가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다.'라고 말한다.
2.2. 한중 공방전
조휴는 늘 정벌에 수행하여 호표기를 이끌었고 숙위(宿衛)했다고 한다. 주로 본거지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는 뜻이다.
218년, 조조와 유비가 한중을 두고 다툴 때 하변에 주둔한 오란을 공격하는 조홍의 군대에 기도위로 종군하여 조홍의 군무를 맡았다. 장비와 마초가 오란을 지원하여 조홍 군의 배후를 끊으려 하자 많은 이들이 이 의도를 의심했고 조휴가 말하길
그리곤 조휴는 오란을 급히 공격하여 격파하여 장비와 마초를 달아나게 했다."적이 실제로 길을 끊고자 하면 응당 복병으로 몰래 행군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먼저 성세(聲勢)를 과장하니 이는 실제로는 그들이 이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적군이 아직 집결하지 못했을 때 급히 오란을 공격해야 할 것이고 오란이 격파되면 장비는 달아날 것입니다."
조조가 한중에서 철수한 후 조휴는 오란을 격파시킨 공으로 중령군에 임명되었다.
2.3. 조비의 총애
220년, 조조가 죽고 뒤를 이어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영군장군에 임명되었고 동양정후에 봉해졌다. 하후돈이 죽자 진남장군, 가절, 도독제군사가 되었다. 임금의 행차를 내어 전송하여 조비가 수레에서 내려 조휴의 손을 잡고 헤어졌다.
손권이 장수를 보내 역양에 주둔케 했는데 조휴가 도착해 이를 격파했다. 또 따로 군사를 보내 강을 건너 무호에 있는 적의 둔영 수천 가(家)를 불태웠다. 이 공으로 정동장군·영양주자사로 승진하고 안양향후에 봉해졌다.
이 무렵 조휴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집[5] 으로 가서 장사를 치르고 왔다. 조비는 조휴를 총애하여서 친히 그를 위로했다.
2.4. 조비의 남정
222년 가을 9월, 정동대장군, 가황월에 임명되어 장료, 장패와 함께 동구로 나아가 오나라를 쳤다. 조인은 유수를 치고 조진, 하후상, 장합, 서황은 남군을 공격했다. 이에 손권은 주환에게 조인을, 여범에게 전종, 서성 등을 지휘하게 하여 조휴, 장료, 장패를, 제갈근, 반장, 양찬에게 조진, 하후상, 장합, 서황을 막게 했다.
겨울 11월, 큰 바람이 불어 여범 등의 병사 수천 명이 익사했고 조휴 등은 폭풍을 맞은 오나라 군대를 쳐서 격파했다. 남은 오나라 군대는 장강 남쪽으로 건너와 아직 강을 건너지 않은 하제의 군대에 의지했다. 하제의 군대는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장하고 있었으며 조휴 등은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러났다.
조휴는 오나라 군대와 대치하며 장패에게 서릉을 습격하게 하여 수천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으나, 서성의 군대를 공격하여 이기지 못했고 전종을 공격하게 한 윤로는 패사했다. 이 원정은 223년, 조인의 패배로 중단되었다.
226년 5월 16일, 조비가 위독하여 조진, 사마의와 함께 유조를 받아 조예를 보좌했다.
2.5. 석정 전투
조비가 죽고 조예가 즉위하자 장평후에 봉해졌고 오나라 장수 심덕을 격파하여 그 목을 베었으며 한종, 적단의 항복을 받았다. 이 공으로 식읍이 4백 호 늘었고 대사마로 승진했다.
228년, 조예는 두 길로 오나라를 쳐 사마의에게 한수, 조휴에게 보병과 기병 10만 명을 이끌고 심양으로 진격하게 했다. 조휴는 주방의 거짓 투항을 믿고 윤허를 얻어 적진 깊숙이 환현까지 들어갔다가 참패하는 석정 전투가 일어난다. 이때 버린 군수 물자가 매우 많았으며 군사 1만 명이 죽거나 포로로 사로잡혔고 가규가 군량과 병사를 주어 군세를 다시 떨칠 수 있었다.
가규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략에 따르면 조휴는 구원해준 가규에게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버리고 온 무기를 주워오게 했고 가규는 이에 반박했다.
조휴는 가규가 늦게 온 것을 꾸짖고 조정에 상주하여 가규를 모함했으며, 가규도 돌아온 뒤 상주했다. 조정에서는 비록 가규가 옳지만, 조휴가 종실로 중임을 맡고 있었으므로, 아무에게도 잘못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조휴는 석정 전투의 패배에 대해 글을 올려 사죄했는데 조예는 조휴를 위로하고 예우와 포상을 더욱 늘렸다. 하지만 패배와 조예의 자비로움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분함에 결국 등에 등창(악성 종기)가 생겨 죽었다. 이에 조예는 조휴의 시호를 장후라 하고 아들 조조(曹肇)가 뒤를 이었다.
3. 기타
2010년, 중국 뤄양(낙양)에서 조휴의 묘가 발굴되었다. 시신은 남녀 한 쌍이 있었고, 조휴 본인과 그의 부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재 뤄양의 박물관에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3.1. 방계 황족
조비가 자신의 형제는 견제하였지만, 같이 살았고, 방계황족인 조휴를 매우 총애했다. 만약 조휴나 조진이 더 오래 살았다면 위나라가 더 오래갔을 가능성이 높다. 조휴와 조진[6] 의 사망 이후 홀로 장수한 사마의가 병권을 장악했고, 일시적으로 조상에게 빼앗기기도 했지만 결국 249년 고평릉 사변을 일으켜 1인 독재 권력을 손에 넣음으로써 결국 위나라의 멸망을 부르게 된다.
4. 미디어 믹스
4.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image]
왕필로부터 반란에 대한 보고를 듣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4.2.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조홍보다 낮게 나온다.
1세대 조조의 혈연 무장들 중에서 조순과 함께 암울함으론 탑을 달린다. 조순은 존재감 자체가 없어서 언급 자체가 잘 안되는 것을 감안하면 지명도는 높은데 그 모양이니....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관직에 있었던 조진은 연의에서 엄청 까였어도 초기작에서는 능력치가 아들보다 낮았지만 7편부터 능력치가 좋은 편인데 조휴는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고 더 낮아지거나, 지력과 정치력만 조금 상향될 뿐. 대사마까지 오르고 어느 정도 군공도 있었던 장수인데 워낙 연의에서 듣보잡이고 주방의 거짓 항복에 속아서 대패한 것이 마이너스로 감수되었나보다. 얼굴은 손견, 손책, 주유, 육손, 조운, 여포등의 쩔어주는 미남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멋있는 편에 속하게 나오는 반면 능력치는 얼굴값을 전혀 못하게 최소한만 나오고 있다.
삼국지 3에서의 능력치는 육군지휘 72/수군지휘 70/무력 72/지력 65/정치력 58/매력 78에 야망 8, 운 8, 냉정 8, 용맹 8이다. 그냥 그럭저럭 장군 수준일 뿐이다. 일러스트는 뭔가 있어보이지만 능력치는 허당이다.
삼국지 6의 일기토 작전에서 선제공격, 거짓퇴각이 있다. 연의에서의 동작대 활쏘기 대회 일화 때문으로 보인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73/지력 43/정치력 42으로 별 볼일 없는 능력치다. 주사와 연사를 가지고 있어 공성전에는 강력하다. 그러나 보병계나 기병계 병법이 없어서 야전에서는 좀 부족한 능력치다. 궁기병 병법이 있고 궁합이 25이기 때문에 하후연, 조앙, 조순와 함께 궁기병 부대를 구성하면 50% 연쇄보너스로 공성전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75/지력 63/정치력 59/매력 69로 별 임팩트 없는 능력치지만 특기가 8개나 있다[7] . 통솔력이 76, 무력이 75인데 특기 8개가 모두 통솔(치안, 훈련, 화시,일제, 기습),무력(저지, 기합, 반격)에 의존하는지라 특기 배분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이사항으로 초기 시나리오에서 조순과 함께 진류에 호표기를 거느린 재야로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75/지력 58/정치력 56/매력 67. 전작보다 더 내려갔다. 특기는 사수지만. 부장용으로 쓰이는 게 더 낫다. 그나마 노병 적성이 S이지만 능력치로나 특기로나 주장보다는 부장에 어울리는 장수다.
삼국지 12에서 지력은 62로 다시 상승되었지만 나머지 능력치는 삼국지 11 때와 같다. 병종은 궁병이고 전법은 궁군병격이다. 원맹사를 가진 하후연보다 밀리지만 이 밀리다는 표현은 단독으로 쓰일 때만 통용된 것이지 나머지 궁병들한테 더 쓸 만하다. 특히 조조군은 특이하게 궁병이 많고, 궁군강사를 가진 무장들에는 곽회, 우금, 조비, 진태, 문빙이라는 스타급 무장들이 있고, 이들은 병격공격이 없으니 궁군병격으로 병격을 아무나 쓰일 수가 있다. 특히 창병이 많은 촉한테 강하다. 이번 작에서는 그나마 쓸 구석이 있는 편. 일러스트는 말을 탄 채 화살을 쏘려 하고 있다. 연의에서 조조가 주최한 궁술 시합 때를 묘사한 걸로 보인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75/지력 62/정치력 56이다. 전수특기는 신속이고 중신특성은 없다. 보유전법은 채배치 소모 5의 특공지휘. 오리지널에서는 아군의 공격력 40에 사기를 30 올려주고 사기유지 효과가 있었지만 아군의 병력을 10% 깎아버리니 그렇게 좋은 전법이라는 소리는 못 듣는 편. PK와서는 병력소모도 줄고, 사기 유지가 중요해진 PK에서는 사기를 20 올려주는 데다가 사기유지까지 붙어있는 특공지휘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병과적성은 창B, 기/궁A. 보유특기는 훈련 4, 순찰 2, 신속 5로 시리즈마다 항상 그렇듯 주장으로 쓰기는 애매하지만 부장으로써는 상당히 유능한 인재. 신속이 없는 하후돈, 허저 같은 맹장들의 부장으로 붙여주자.
삼국지 14에서는 일러스트가 말을 탄 상태에서 활을 쏘고 있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는데 여기에 검을 찬 상태까지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통솔 77, 무력 74, 지력 62, 정치 56, 매력 69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 상승한 대신 무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원시, 앙양, 격분, 오만, 주의는 패도, 정책은 안행강화 Lv 4, 진형은 봉시, 안행, 추행, 전법은 제사, 화시, 교란, 구축, 친애무장은 조비, 조진, 혐오무장은 가규다.
4.3. 영걸전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왜인지 뼛속까지 문관인 마량#s-2의 포트레이트를 리터칭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능력치는 72/65/72다.
삼국지 영걸전에선 전차대로 4장에서만 등장한다. 별동대를 보낼 경우 장안, 보내지 않을 경우 낙양전투에서 등장하며 이후 업1전투에도 등장하나 능력치도 별로라 별 임팩트는 없다. 특이점이라면 조홍 옆에 항상 붙어다닌다.
삼국지 공명전에선 등장은 하지만 직접 전투로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지 조조전에선 조진과 함께 짤렸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선 제법 쓸 만했던 능력치를 가졌다. 능력치는 무력 82/지력 62/통솔 81/민첩 77/행운 62. 효과는 정신력 하강 공격, 혼란공격 (15%), 연속 책략 면역, 돌파공격. 초중기 현자들의 방능전을 어떻게든 뚫기 위해 당시에는 드문 정신력 하강 공격을 가진 장수들 중 어떻게든 써먹어보려던 노병 중 돌파공격도 가능하고 연속 책략도 막아주는 조휴의 수요는 조금이나마 있었다. 정신력 하강 공격이 아쉽지 않은 이후에는 노병을 굳이 쓴다면 책략모방이 가능한 모개, 회심딜러로 이전, 상태이상 전문 장임, 혹은 일격필살 효과를 가진 보연사가 쓰인다.
조조전 원작과 달리 조조전 온라인의 조조전에서 조순과 함께 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원작에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사는 없지만.
4.4.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BLAST에 선행 참전하더니만 진삼국무쌍 8에 뜬금없이 정식으로 등장했다. 자세한 건 여기 참조.
4.5. 삼국전투기
젝스 마키스로 패러디되었다. 사망 직전 장면은 거인의 별의 혼자 뿐인 생일파티를 패러디.
4.6.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 한중 전투에 등장한다. 조조의 아들들과 같이 자랐다고 설명되는데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 조조가 입었던 갑주를 입고 나온다. 조홍이 공명심에 막나가지 않도록 자제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뇌동과 싸우며 '참으로 강하고, 빠르며, 영악하다'는 평가를 받으나 오란의 기습을 눈치채지 못하여 조홍에게 감점 2를 받으며 상대에 대한 평가가 부족하다는 질책을 받는다. 장비의 기습을 받은 조홍이 자신에게 1만만을 남기고 나머지 병력을 모두 조휴가 이끌도록 지시, 조휴는 양평관을 점령하려는 유비 뒤에 나타나 쫓지만 유비의 진은 무너지지 않고 법정은 조휴의 전술을 '아직 어리다'고 평한다.
4.7. 삼국
아무능력이 없으며 나가는 전투는 모두 진다.
[1] 소설가 이문열과 한자가 똑같다.[2] 글자 자체로의 의미는 같은 종족의 아들이며, 유복친(有服親 - 이 사람이 죽으면 내가 상복을 입는 친족)이 아닌 조카뻘 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가장 먼 유복친인 8촌 형제를 족형제라고도 하기 때문에, 족자란 말은 9촌 조카로 볼 수 있고, 유복친이 아닌 조카뻘 되는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촌수가 바로 9촌이기도 하다.[3] 조씨 일족의 병권 장악을 중요시하던 조조에게 족자인 조휴는 좋은 카드로 보였던 것 같다. [4] 정확한 합류 시점은 불명. 꼭 조조 거병 직후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조가 천자를 봉대할 때 형주에 있던 인재들(순유, 두습, 조엄 등)이 유입된 것을 보면 조휴도 이 때 합류했을 가능성도 있다.[5] 조씨의 본적인 초현[6] 단 조진은 양자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7] 유비보다도 2개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