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삼국지)

 



1. 개요
2. 정사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2. 부정적 평가
4. 연의
5. 미디어 믹스


1. 개요


曹爽
(? ~ 249년)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대신으로 는 소백(昭伯)이다. 대장군 조진의 아들로 조희#s-2, 조훈, 조언#s-2의 형이다.

2. 정사


조신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황궁을 출입해서 황궁의 예절에 정통했고 무엇보다 조예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근했다. 조진의 아들이라는 점도 있어 황족 대우를 받았으며 조예 사후 조예의 측근이었던 유방손자의 농간 덕에 사마의와 함께 탁고대신으로 병권을 장악했다. 얼떨결에 대국 위나라의 국정 전반을 담당하게 된 조상이지만, 실상 그의 역량이 그가 맡은 지위에 합당한지 어떤지는 미지수였다. 되려 불안의 시선을 보내야 마땅할 인선이었다. 당장 유방과 손자가 다른 조씨와 하후씨들을 조정에서 쫓아내려 음모를 꾸몄을 때도 유독 조상만은 위협으로 보지 않았기에 위략 등에도 황제의 야심이 있었다고까지 표현되는 조우를 대신할 사람으로 밀어붙였다는 견해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본디 조상은 나이로도 사마의의 아들 뻘이었고, 공적도 거의 전무한 낙하산에 가까웠기에 조예의 탁고를 받아 섭정을 맡기에는 중량감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실 조상이 탁고를 받은 것도 황실의 종친이라는 신분과 중서를 장악하고 있던 유방, 손자의 추천, 다른 고명대신인 사마의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치적 안배에 가까웠고 조상도 이런 처지를 알고 있었는지 초기에는 사마의를 아버지처럼 모셨고 모든 국사를 사마의와 의논하며 독단으로 처리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상이 보정대신이 되면서 하안을 필두로 조비, 조예 시절에 소외되던 인사들이 대거 기용됐는데, 이들은 사마의와 조상의 대립구도를 부추겼고, 이에 조상은 사마의를 태부로 임명하도록 상주한다. 이 상주는 받아들여져 사마의는 태부로 승진했는데, 표면상으론 승진이었지만 명예직에 가까웠던 태부의 특성상 사마의는 태부로 밀려나면서 사실상 정치에서 실각한 것이다. 또 이 때를 기점으로 정서장군에 하후현, 정동장군에 왕릉, 정남장군에 하후유를 배치하며 황권을 보좌할 세력을 정립했다. 거기에 조상 개인의 능력은 몰라도 그가 좌우에 심복으로 두고 부릴 수 있었던 당대 최고의 석학들, 하안하후현의 존재는 조상의 정치를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기적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상은 어린 놈이라고 얕보던 백전노장 사마의를 역으로 일시에 관광태우고 정권을 장악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상 본인 자체는 사마의와 달리 별다른 공적이 없는 낙하산 인사였기에 한계가 뚜렷했고, 이에 조상은 244년 하후현과 함께 촉나라를 공격해 낙곡대전을 일으키지만 왕평, 유민의 반격으로 참패하고 만다.
참패하고 돌아온 조상은 일족들로 도성의 군사를 장악하게 하고 더욱 위세를 부리며 사치와 향락에 빠진다. 동생 조희#s-2가 간언했지만 소용없었다. 조상의 부하 이승#s-2이 사마의를 방문했는데 사마의는 병이 위중한 척하여 자신의 쇠약한 형상을 보여주었다. 이승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사실이라 여겼다. 이승이 이에 대해 조상에게 말하자 조상은 사마의를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
249년 정월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사마의가 조상을 회유하기 위하여 장제#s-2는 조상에게 편지를 보내며 단지 파면에 그칠 뿐 사마의가 절대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한다. 조상이 사마의의 회유에 병권을 넘기고 은퇴하려고 하자 환범은 외병을 불러 맞서자고 했고 사마 노지, 주부 양종도 이를 말렸지만 조상은 결국 병권을 반납한다.
하지만 얼마 뒤 사마의에게 역모죄로 다시 트집을 잡혀 추포된 이후 그의 심복이었던 하안, 환범, 이승#s-2, 정밀#s-2, 필궤, 등양을 포함한 삼족이 모두 멸족되었다. 장제#s-2는 조진의 제사를 끊기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상만은 살려주자고 진언했지만 사마의가 들어줄 리가 없었고, 결국 이 일로 마음의 병을 얻은 장제 또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게 된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낙곡대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상 정권은 그다지 위축되지 않았고, 고평릉 사변 직전까지도 이렇다 할 사건이나 사고 없이 건재해 보였다. 게다가 정사의 기록상으로도 주로 조상 일파의 사치나 권력의 남용 등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비난하는 경향이 강한데, 당나라 대의 기록인 진서의 기록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기사도 보이기 때문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마씨가 세운 서진#s-1 왕조의 치하에서 조상의 실정이 과장되었으며, 실상은 조상과 그 일파가 기존 기득권을 가진 주류 호족들의 이해를 침해하는 개혁을 실시하였거나 그런 시도를 하여 반발을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된다.[1]
조상이 사마의에게 순순히 정권을 넘기고 출두한 것에 대해서도 환범이 울면서 조진은 훌륭했지만 그 자식들은 개나 소와 다를 바가 없어서 내 일족까지 망쳤다라고 한탄하는 등 대놓고 유약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당시 도성을 장악한 사마의는 태후를 협박해 조상을 역적으로 선포한 상태였다. 보정 체제는 어린 황제 대신 보정대신과 태후가 정사를 보는 것인데, 환범 등의 계책은 어린 황제를 끼고 있던 보정대신 조상도 사마의를 역적으로 선포하며 맞대응하고 지방의 군대를 소집해 맞서자는 것이다.
중앙에 기반을 가진 조상이 지지기반인 중앙군을 사마의에게 홀라당 뺏긴 상황에서 황제 하나를 믿고 지방 장군들의 힘을 빌어 사마의를 치자는 것인데, 조상이 그렇게 발악한다면 사마의 또한 대응을 안할 리 없기에 태후를 협박해 새로 황제를 옹립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낙하산 출신에 낙곡대전에서 참패하며 체면을 구기고 중앙군까지 잃은 조상 vs 중앙군을 장악한데다 이전부터 각지에서 무공을 떨치고 태후의 명을 빌어 조상의 실정을 탄핵하는 역전의 노장 사마의 구도가 되지만, 당시 사마의는 겨우 낙양 주변에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조상의 직위가 대장군인 만큼 대장군부가 있는 허창으로 가서 황명을 앞세우고 비상명령을 발동했다면 판세가 뒤집어졌을 가능성도 컸다. 환범은 조상에게 황제를 끼고 있는 장점을 이용해 허창으로 가서 외병을 불러들이고 허창에 가면 무기가 있고 군량은 자신의 직임인 대사농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기에 세력 자체는 조상이 앞서는 형태라 어떻게든 반 사마의 세력을 모아서 최대한 발악한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위나라 자체가 완전히 두 동강 나는 내전이 되는 것이고 국적인 촉한동오가 그 기회를 노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조상의 투항은 나름대로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3.2. 부정적 평가


장제의 편지를 보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조조가 세운 나라를 사마의에게 넘겨버린 인물이 어떻게 구국의 결단을 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상은 흘러가는 상황을 오판 한 채 그저 자신이 면직되는 것에 그칠 뿐이라고 예측하는 등 안이한 자세를 보였고, 결국 자신은 물론 관련된 인물들의 삼족이 모두 처형당하고, 조위 황실까지 사마씨에게 먹혀버렸다. 실제 긍정적 평가에서도 나오지만 고평릉 당시 조상이 항전의지를 가졌다면 꽤나 승산이 있었다. 그저 처음부터 조상이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었던 것뿐. 조예가 이를 염두에 두고 죽기 전에 손례를 보좌역에 임명했던 거지만 부족한 처사였다.
비슷하게 황족의 권한 증가를 요구한 조경의 상소도 그냥 무시했다.
거기에 조상 자신이 그나마 세운 황실 보위 세력은 조상이 항복함으로서 모두 와해되었다. 조상은 정권을 잡으며 정서장군에 하후현, 정남장군에 하후유 등을 세워 조예 이후 시들했던 황실 친족 위주의 군권을 다시 세우려 했지만 막상 조상 자신이 항복함으로서 조씨가 가지고 있던 모든 군권을 내려놓은 꼴이 되었다. 이는 고평릉 사변 이후 정서장군이 곽회, 정남장군이 왕창으로 바뀌면서 현실화된다.
조상 정권을 재평가하는 측에서도 하안, 하후현 등을 필두로 한 조상파의 핵심 인사들을 조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조상 본인은 그리 평가가 좋은 편이 아니다. 무난한 성격으로 인망도 없지 않았으나 자체적으로 국정을 주도할 만한 역량이나 배짱은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진수 등의 기록에서도 조상 자체는 평범한 인물이라 감히 사마의에게 거역할 생각조차 못했으나 하안 등 주위 측근들의 부추김에 넘어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유장과 비슷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끝내주게 무능하다는 점과 삼국지의 주요 인물인 유비사마의를 띄워주기 위해 은근히 평가가 깎인 면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나 당장 정사 삼국지만 그의 이런 점을 지적한 게 아니라 한진춘추, 세어, 위씨춘추, 간보진기, 위말전, 위략 등의 주석을 봐도 그리 평가가 썩 좋지 않으니 한나라의 정권을 통솔하고 주변인들을 잘 제어하고 규합한 인물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교대상인 유장처럼 말이다.
실제로 고유, 왕관, 장제, 손례, 노육, 손자[2]와 같은 구신들은 물론 양호, 신창, 진태 등 여러 인물들이 조상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3] 이들이 야심을 품고 사마의에게 동조했다고 하기에는 그럴 만한 사람들도 아닌데다 진태 같은 경우는 오히려 훗날 사마씨와 대립했다. 이 점에서 구신들이 사마의에게 동조한 것은 조상 일파에게 무언가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리고 동기야 어찌되었든, 조상이 당시 조정의 중신들에게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도 큰 실책을 범한 것이 된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239년에 조예가 죽을 때 사마의와 함께 자신의 아들이자 다음 황제#s-2인 조방을 보좌하도록 부탁받았다. 하지만 심복 하안의 진언으로 사마의로부터 실권을 빼앗아 권력을 휘둘렀고 사마의의 노쇠를 가장한 연기에 속아 안심하고 번번이 사냥을 개최했다.
그러나 249년에 황제 조방과 함께 사냥을 나와 있던 와중에 고평릉 사변의 사마의의 쿠데타로 병권을 빼앗겼고 부하 환범이 조방을 끼고 사마의를 토벌하도록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했고 결국 사마의에게 일파 모두 붙잡혀 삼족이 처형당했다.
다만 희대의 실책인 낙곡대전은 생략된데다, 조진이 워낙 안습하게 나왔기에 독자들은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5. 미디어 믹스



5.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image]
시리즈 마지막 60권에 등장하여 잠시나마 권력의 맛에 취한 애송이로 묘사되었다.

5.2. 삼국지 시리즈


[image]
100만인의 삼국지
[image]
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정치만 약간 높을 뿐 대대로 효율이 낮은 능력치다. 삼국지 2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5/무력 28/지력 31/정치력 72. 혼란과 매도를 가지고 있지만 지력도 낮고 병법 숙련도도 0. 은근히 정치는 높으니까 내정에 굴리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7/무력 34/지력 30/정치력 69/매력 48로 변변찮은 능력치에 특이하게 주호 특기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상업, 주호. 총 2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9/무력 33/지력 30/정치력 66/매력 51이며 대장군 친목질 전력을 반영해 친애무장은 상당히 많지만 자기는 물론 다른 친애무장들 대부분도 전투에 쓸데없는 문관형들이 많아 한마디로 빛좋은 개살구다.
삼국지 11 콘솔판 추가 시나리오인 영웅난무에서는 진양에서 군주로 등장한다. 부하는 조희, 조훈, 장집, 이승, 이풍, 하안, 하후현, 환범으로 전투용 무장이 1명도 없는데다가 옆 도시 업에 등애, 계에 장비가 있어서 심각하게 막장스러운 난이도를 자랑한다. 다행히 진양은 방어하기 나쁘지 않은 도시라 미발견 무장으로 있는 장연왕창을 최대한 빨리 등용하고, 능력 연구로 기략 특기인 하안의 지력을 95까지 올리면 좀 숨통이 트인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PS3판, PK에서 추가되었다. 하지만 능력치는 정치만 제외한다면 백하팔인 정도에 전법이 쓰레기인 방어강화라서 그냥 시장의 건전지로 쓰자. 일러스트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상태로 팔짱을 끼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39/무력 33/지력 30/정치 66으로 등장한다. 병과적성은 C/B/C. 특기는 상업 1 단 하나다. 저 능력치에 무관으로 설정되어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써먹기가 힘들다. 중신특성은 당연히 없고 전수특기도 당연히 상업으로 전법은 기병속공진이다. 하지만 능력치가 쓰레기라고 생포했을 때 죽이려고 한다면 이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42, 무력 35, 지력 30, 정치 66, 매력 55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 무력이 2 상승했다. 개성은 징세, 낭비, 우유, 오만, 탐욕으로 패널티 개성만 넷. 주의는 아도, 정책은 삼령오신 Lv 3, 진형은 어린, 봉시, 전법은 화시, 혼란, 매성, 친애무장은 문흠, 이승, 필궤, 하안, 하후현, 혐오무장은 노육, 사마의다.

5.3. 영걸전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공명전에서만 등장한다. 제갈량오장원 이후 생존하는 가상 시나리오에서는 사마의가 몰락하는 사이에 총사령관으로 나온다. 동생들은 보병계인 근위병으로 등장해서 4형제의 필두로 병종빨을 받아 꽤나 강력하지만 당연히 아버지만은 못하다. 그리고 역사대로 고평릉 사변으로 죽는다.
공명전에서 공명이 죽지 않은 해에 공명이 바로 장안으로 진격했고, 촉한과 오의 전쟁이 10여 년을 끌지 않는 한 조상은 무조건 일찍 죽는 셈이 된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게 '''군주'''계 병과로 등장한다. 능력치나 고유 효과가 매우 부실해서 유저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5.4.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6편부터 주역 클론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본래 시대상 나오기 힘든 인물이었으나 진나라 시나리오가 추가됨에 따라 덩달아 비중이 급상승. 물론 역사 내용을 따라서 낙곡대전에서 크게 털리고 정시의 변에서 끔살당하고 바로 퇴장한다. 캐릭터가 좀 자만에 가득찬 인물로 나온다.
7편에도 등장. 낙곡대전에서 설치더니 정시의 변에서 결국 도망치지만 끔살. 여담으로 사마 일가가 장춘화를 두려워하는데 조상도 마찬가지다. 낙곡대전 진지 대화에서 사마사, 사마소, 가충에게는 하대인데, 장춘화에게는 안부 인사부터 시작한다.
8편 역시 초반부의 주요 클론 NPC로 등장한다. 이번작에선 조상이 어떠한 연유로 폭주하는지 설명되는데 장춘화가 설명하길 이전엔 고분고분한 타입의 인물이었으나 정권을 잡은 뒤 하안의 부추김을 받고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철롱산 전투의 삽질 뒤 정시의 변에서 처형 컷신과 함께 사망하며 이후 스토리 퇴장한다.

[image]
진삼국무쌍 BLAST에서 위나라로 일러스트 참전했다. 스토리상의 인물상과 똑같이 나왔다. 자만심 가득한 총사령관 느낌이 팍팍 든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조우, 조조(조휴의 장남), 하후헌, 진랑 등과 함께 세트로 플레이모빌 인형[4]으로 출연했다. 이유는 선대와 달리 전부 시덥지 않은 인물상들이라서... 오히려 단순하게 생긴 얼굴이라 귀엽다는 평이 있다.
삼국에서도 북벌 시기에 등장한다. 한국 더빙판 성우는 김상백. 무능하고 겁이 많은 조진에 비해 제법 영리하고 재기있는 아들로 나온다. 사마의도 조진보다 뛰어나다고 할 정도. 비록 사마의 부자보다는 떨어지지만 제갈량의 진창 철퇴의 속내를 나중에 알아차린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포상받았다고 좋아라 하는 조진에 비해 낫긴 낫다. 게다가 용기도 있어 촉군 공격에도 항상 자청하여 나선다. 의도적으로 조진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마의에게 악감정을 품게 된다. 이후엔 역사대로 고평릉 사변으로 사마의에게 숙청당한다.

[1] 조상 일파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식이었는지 알려주는 기록는 없지만, 적어도 하후현의 경우 관리선발의 투명성과 분권을 중심으로 하는 내정개혁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시행되지는 못하였던 듯하며 이후 사마의에게도 권유하나 거절당한다.[2] 유방과 더불어 조상 일파가 정권을 차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도 말년에는 조상의 정치를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유방과 함께 사임하고, 고평릉 사변 이후에는 유방과 함께 관직에 복귀한다.[3] 장제의 경우 조상이 항복하기만 하면 살 것이라고 잘못 생각해 조상을 설득했으나 이후 사마의가 조상을 죽여버리자 죄책감을 갖고 얼마 후 사망한다. 그렇지만 딱히 조상 일파의 행동에 찬동하는 면은 없었다.[4] 독일제 소꿉놀이 인형 장난감(?)인데 인형의 도안은 레고 비슷하지만 레고 인형보다 큼지막한 게 특징. 한국에도 한때 영실업을 통해 '영플레이모빌'이란 이름으로 정식 수입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