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허버트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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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Herbert Mead 1863-1931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1863-1931)는 미국의 사회학자이며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창시자격인 인물이다.
보통 3대 고전 사회학자로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을 꼽는데, 여기에 게오르그 짐멜과 미드를 끼워서 5대 고전 사회학자로 부르기도 한다.
철학과 사회심리학을 주로 배우다가 사망하기 이전까지 시카고 대학의 철학과에서 강의하였는데 그가 연구하던 철학적 사회심리학과, 사회학적 사회심리학이 상호적으로 결합하며 상징적 상호작용론 학파가 탄생하게 된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시초가 그의 자아 이론에서 출발하였으며, 인간은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데 타자의 역할을 취해봄에 따라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보기 시작하면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미드는 1863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목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학문적 성향이 있었으며 [1] 부친이 오벌린 대학에서 출강하기 위해 1870년 오하이오로 이주한다. 그러나 겨우 10년 뒤 그가 겨우 고등학생일 무렵 부친이 사망하여 가족들은 집을 팔고 셋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1883년 오벌린 대학을 졸업했으나 곧바로 학자의 길을 걷지 않는다. 오히려 졸업 이후 6개월간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며 약 4년간은 철도 측량사나 가정교사로 일했다.
졸업 후 4년이나 지난 1887년 하버드 대학원에 등록하여 공부를 시작한다. 이 때의 전공은 철학. 대학원 생활 중 지적 관심을 철학에서 사회심리학 쪽으로 옮기게 되며, 대학원 두 번째 해에 독일 라이프치히로 건너가 분트의 실험실연구를 접하며 그 다음 해엔 베를린에서 게오르그 짐멜의 강연을 듣는다. 베를린에선 심리학 뿐만 아니라 각종 독일 철학을 접하며 그의 사회심리학 사상에 철학을 접목시킨다.
1891년 미시건 대학의 철학 및 심리학 강사로 초빙되어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이 때 미드의 지적 이론의 주요 개념을 제공한 존 듀이와 만난다. 존 듀이는 미드와 함께 프래그머티즘 철학 조류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듀이와 함께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 철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1931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그는 유기체와 그 환경세계에 대한 이론을 사회학의 영역에 적용시켰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 자아에는 'I'와 'Me'가 있다고 한다. 'I'는 주체적 자아로서, 주체적 행동을 유발하는 개인적 측면의 자아이며 'Me'는 객체적 자아로서, 사회의 규범과 가치 및 기대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 사회적 측면의 자아이다. 'Me'는 일반화된 타자들(Generalized Others)의 기대를 내면화한 자아이면서 동시에 'I'가 유발하는 주체적인 행동을 사회적 욕구에 맞게 조절한다. 인간의 자아는 이렇게 두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양자가 한 인간 안에서 서로를 견제한다. 자아 속에 'I'와 'Me'는 상호 균형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데, 'Me'가 없을 경우 남들과의 체계적인 상호작용을 이룰 수가 없고 'I'가 없으면 타자와의 상호작용은 기계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는 이런 식으로 상호연관적이며 역사 또한 거기서 형성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악셀 호네트에게 상호인정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두명이라고 평가받는다.[2] 미드는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을 3가지로 나누었는데 사랑, 권리인정, 가치인정 등이다. '''사랑'''은 주변인에게서 소중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으로 이것이 부족하여 주변인들에게 소외당하면 '심리적 죽음' 상태에 처하고, '''권리인정'''은 사회에게서 개인이 가지는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는 것으로 이것이 부족하여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사회적 죽음'상태에 처하며, '''가치인정'''은 타인에게서 명예를 부여받거나 아니면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이것이 침해당하는 상태를 '모욕'이라 한다.[3]
George Herbert Mead 1863-1931
1. 개요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1863-1931)는 미국의 사회학자이며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창시자격인 인물이다.
보통 3대 고전 사회학자로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을 꼽는데, 여기에 게오르그 짐멜과 미드를 끼워서 5대 고전 사회학자로 부르기도 한다.
철학과 사회심리학을 주로 배우다가 사망하기 이전까지 시카고 대학의 철학과에서 강의하였는데 그가 연구하던 철학적 사회심리학과, 사회학적 사회심리학이 상호적으로 결합하며 상징적 상호작용론 학파가 탄생하게 된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시초가 그의 자아 이론에서 출발하였으며, 인간은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데 타자의 역할을 취해봄에 따라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보기 시작하면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2. 생애
미드는 1863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목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학문적 성향이 있었으며 [1] 부친이 오벌린 대학에서 출강하기 위해 1870년 오하이오로 이주한다. 그러나 겨우 10년 뒤 그가 겨우 고등학생일 무렵 부친이 사망하여 가족들은 집을 팔고 셋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1883년 오벌린 대학을 졸업했으나 곧바로 학자의 길을 걷지 않는다. 오히려 졸업 이후 6개월간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며 약 4년간은 철도 측량사나 가정교사로 일했다.
졸업 후 4년이나 지난 1887년 하버드 대학원에 등록하여 공부를 시작한다. 이 때의 전공은 철학. 대학원 생활 중 지적 관심을 철학에서 사회심리학 쪽으로 옮기게 되며, 대학원 두 번째 해에 독일 라이프치히로 건너가 분트의 실험실연구를 접하며 그 다음 해엔 베를린에서 게오르그 짐멜의 강연을 듣는다. 베를린에선 심리학 뿐만 아니라 각종 독일 철학을 접하며 그의 사회심리학 사상에 철학을 접목시킨다.
1891년 미시건 대학의 철학 및 심리학 강사로 초빙되어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이 때 미드의 지적 이론의 주요 개념을 제공한 존 듀이와 만난다. 존 듀이는 미드와 함께 프래그머티즘 철학 조류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듀이와 함께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 철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1931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3. 사상
그는 유기체와 그 환경세계에 대한 이론을 사회학의 영역에 적용시켰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 자아에는 'I'와 'Me'가 있다고 한다. 'I'는 주체적 자아로서, 주체적 행동을 유발하는 개인적 측면의 자아이며 'Me'는 객체적 자아로서, 사회의 규범과 가치 및 기대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 사회적 측면의 자아이다. 'Me'는 일반화된 타자들(Generalized Others)의 기대를 내면화한 자아이면서 동시에 'I'가 유발하는 주체적인 행동을 사회적 욕구에 맞게 조절한다. 인간의 자아는 이렇게 두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양자가 한 인간 안에서 서로를 견제한다. 자아 속에 'I'와 'Me'는 상호 균형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데, 'Me'가 없을 경우 남들과의 체계적인 상호작용을 이룰 수가 없고 'I'가 없으면 타자와의 상호작용은 기계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는 이런 식으로 상호연관적이며 역사 또한 거기서 형성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악셀 호네트에게 상호인정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두명이라고 평가받는다.[2] 미드는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을 3가지로 나누었는데 사랑, 권리인정, 가치인정 등이다. '''사랑'''은 주변인에게서 소중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으로 이것이 부족하여 주변인들에게 소외당하면 '심리적 죽음' 상태에 처하고, '''권리인정'''은 사회에게서 개인이 가지는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는 것으로 이것이 부족하여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사회적 죽음'상태에 처하며, '''가치인정'''은 타인에게서 명예를 부여받거나 아니면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이것이 침해당하는 상태를 '모욕'이라 한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