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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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연방 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BRD[3] )''' 또는 독일(獨逸)은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이자 서유럽[4] 에 또한 포함되는 국가이다.
시계 방향으로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 폴란드, 체코, 남동쪽에 오스트리아, 남서쪽에 스위스, 프랑스, 서쪽, 북서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다. 그야말로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수도는 베를린이다.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으로,[5]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연합 체제를 주도하는 국가[6][7] 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어권 지역의 중추이다.
경제적으로는 GDP(명목) 4위[8][9] , GDP(PPP) 5위, 특별인출권 유로화, 1인당 GDP 18위, 국제통화기금 투표권 4위[10] , 금 보유고 2위[11] , 무역량 총합 3위 #, AIIB 지분율 4위이다.[12] 국방 분야에서는 국방비 세계 8위, 군사무기 수출은 세계 5위를 하고 있다.
2. 상징
2.1. 국호
독일의 독일어 국호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이다.
풀어서 쓰면 '''도이치의 땅'''(Das Deutsche Land)이 된다. 도이치라는 말도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다. 더치(Dutch)와도 어원이 비슷하다. 과거에는 Diutschlant, Tiutschlant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했다.
다른 언어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 고대 게르만어 디우티스크(Diutisc)에서 유래
- 라틴어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유래
-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Germania
- 알바니아어: Gjermania
- 영어: Germany
- 마인어: Jerman
- 아일랜드어: An Ghearmáin
- 그리스어: Γερμανία(Germania)
- 러시아어, 불가리아어: Германия(Germaniya)
- 태국어: เยอรมนี(Yerramani)
- 히브리어: גרמניה(Germaniyah)
- 힌디어: जर्मनी(Jarmanī)
- 조지아어: გერმანია(Germania)
- 게르만족의 갈래인 알레만니(Alemanni)에서 유래
- 프랑스어: Allemagne (알마뉴)
- 카탈루냐어: Alemanya
- 스페인어: Alemania
- 포르투갈어: Alemanha
- 아랍어: ألمانيا('Almāniyā)
- 터키어: Almanya
- 카자흐어: Алмания(Almanïya)
- 페르시아어: آلمان('Ālmān)
-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
- 폴란드어: Niemcy
- 체코어: Německo
- 슬로바키아어: Nemecko
- 헝가리어: Németország
- 세르비아어: Немачка(Nemačka)
- 크로아티아어: Njemačka
- 슬로베니아어: Nemčija
- 우크라이나어: Німеччина(Nimeččyna)
- 벨라루스어: Нямеччына(Njameččyna)
- 번외: 러시아어 Немецкий(Nemetskii) - 독일의
- 게르만족의 갈래인 작센(Sachsen)에서 유래
- 핀란드어: Saksa
- 에스토니아어: Saksamaa
- 기타
- 라트비아어: Vācija
- 리투아니아어: Vokietija
개화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덕국(德國/德国)[14] 이라는 표현도 쓰였으나 지금 이 표현은 독일을 일컫는 속어로만 쓰인다. 또 다른 중국식 음역으로 알레마니아에서 따온 일이만(日耳曼)이 있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어로 원어 명칭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영국, 미국, 호주 등과 함께 어지간해선 원어 명칭으로 불리지 않는 국가에 속한다. 1980년대 교과서에서 원어 발음을 따른 도이칠란트를 쓰기도 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도이칠란트 표기를 고집하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명칭이 독일로 쓰이고 있다. 원어 명칭을 한국어 발음으로 바꾸었을 때 5음절이나 되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원어로는 도이치-란트[ˈdɔʏtʃ.lant]로 2음절에 불과하지만 한국어에는 없는 이중 모음인 ㅗ이[ɔʏ], 음절 끝의 치[tʃ], ㄴ트[nt] 때문에 음절 수가 늘어나서 독일이 더 선호된다.
2.2. 국기
색상 가이드라인(신버전), 색상 가이드라인(구버전), 독일 연방 기본법 22조
[주의]
국기는 검정, 빨강, 금색의 3색으로 구성된 연방기(Bundesflag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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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인 독수리가 붙어 있는 연방국가 직무기(Dienstflagge der Bundesbehörden) 혹은 연방직무기(Bundesdienstflagge)도 있는데, 연방 정부의 부서에서만 사용되고 민간이나 주 정부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가끔 현재의 독일과 서독을 구분하기 위해 연방직무기를 서독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로로 다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민간에서는 세로로 달기도 한다.
검정은 억압과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1813년 해방 전쟁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한 뤼트초프 의용군의 군복색에서 이 3색이 왔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이센 왕국의 소장(Generalmajor) 아돌프 폰 뤼트초프 아래로 모인 독일 전역의 의용병들은 저마다 다른 군복이나 사복을 들고왔기 때문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옷을 검정으로 물들였고 놋쇠 단추를 금색으로 달았고 소매를 빨강으로 썼다. 당시에 이 3색은 예속의 어둠에서 피의 살육을 지나 자유의 금빛으로 향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이 흑적금 국기는 1848년의 3월 혁명으로 인해 탄생한 프랑크푸르트 의회에 의해 처음으로 통일된 독일 국기로 지정되었으나 이로 인해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탓에 혁명 실패 이후 폐지되었다. 그리고는 검정, 하양, 빨강으로 구성된 삼색기로 바뀌어서 이것이 독일 제국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1918년 제정이 폐지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되었을 때도 1919년까지 잠깐 독일 제국의 검정, 하양, 빨강의 삼색기가 사용되었다. 1919년 검정, 빨강, 금색의 국기가 국기로 재지정되었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대독일국 체제가 세워지면서 폐지되고 다시 독일 제국의 국기가 잠시 쓰였다가 1935년 하켄크로이츠로 바뀌었다.
1945년에 독일이 패전하여 하켄크로이츠는 국기의 지위를 잃었고, 흑적금 국기가 1949년 다시 서독, 동독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동독은 1959년 이 국기에 호밀, 망치, 컴퍼스가 그려진 국장을 추가하여 서독과 구분되게 하였다.[15]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가입하면서 동독의 국기는 서독의 국기가 대체하고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동독이 서독에 포함될 당시 이것을 환영하던 동독 국민들은 동독 국기에서 문장이 있는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 내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문장에 X자를 쳐서 서독 국기처럼 만들고 서독 국민들과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16]
독일에서 국기의 금색을 금색(Gold)이 아니라 노랑(Gelb)이라고 하는 건 국기 모독으로 간주한다.[17] 1959년 6월 독일 연방재판소(Bundesgerichtshof)의 판결에 따르면 독일의 국기를 노랑으로 부르는 것은 나치 시기 민주주의 비방 중 하나며 나치 옹호와 동급으로 여긴다. 과거 나치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검정, 빨강, 금색의 국기의 금색을 노랑, 겨자색, 똥색 등으로 부르며 비하했었기 때문.
현재 나치 독일의 국기였던 하켄크로이츠는 다른 나치의 상징들과 마찬가지로 달거나 쓰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독일 제국의 검정, 하양, 빨강의 국기는 금지되지는 않았으나 독일 제국의 군국주의에 부정적인 독일인들은 독일 제국의 국기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18] 3색 국기에 국장이 들어간 동독의 국기는 금지되어 있지는 않으나[19] , 초기에 서독 정부는 하켄크로이츠와 동독 국기를 거의 동급으로 취급하며 동독 국기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1969년에 금지에서 해제한 후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동독 국기의 사용을 허락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북유럽식 십자가 국기를 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가담했던 요제프 비르머(Josef Wirmer)가 암살에 성공했을 경우 하켄크로이츠를 없애버리고 대신 쓰려고 만든 것도 있었다.
독일 현지에서는 정부기관에 걸려있는 것을 제외하면 야외에서 국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대신 지역별 주기가 걸려있는 게 많이 보인다. 물론 길거리에서 독일 국기를 들고 다녀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3. 국가
국가는 Deutschlandlied다. 1절은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독일인들도 어지간하면 부르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20] [21] 시인 호프만 폰 팔러슬레 벤이 쓴 가사에 하이든이 지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위한 '황제 찬가'라는 곡을 붙여 만든 것이다. 서독, 동독 분단 당시에는 동독은 쓰지 않고 서독에서만 단독으로 불렸던 국가였으나[22] 서독, 동독이 통일되면서 통일 국가로 지정되었다.
3. 역사
3.1. 과거사 청산 문제
독일 재통일 이후에 강력한 국가를 형성해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규모가 컸던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켰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4. 자연환경
4.1. 지리
독일의 면적은 35만 7,022㎢로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6배 정도이며 일본(37만 7,975㎢)보다 약간 작다. 세계 면적 순위를 보면 일본 바로 밑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다. 국토가 유럽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접경 국가가 매우 많다. 북쪽은 덴마크와 접경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접경하고 남쪽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경하며 동쪽으로 폴란드, 체코까지 총 9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독일의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북부 독일은 북독일 평원이라 불리는 넓고 평탄한 평야지대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그 유명한 알프스 산맥 때문이다. 다만 독일 영토 지역의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에 속한 곳보다는 그나마 고도가 낮은 편이라 표고도 최고 3000m가 못 된다. 독일의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은 높이가 2,963m이다.
4.2. 기후
독일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남부 지방이 북부 지방보다 겨울이 더 춥다!''' 그 이유는 북부 독일은 해안가와 인접해 있기에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띠지만 남부 독일은 알프스 산맥과 가까워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위도 상으로는 더 남쪽에 있어서 따뜻할 것 같은 남부 독일 지역이 위도 상 더 북쪽인 북부 독일 지역보다 오히려 겨울이 더 춥고 연교차도 크다.
실제로 북부 독일의 함부르크는 북위 53° 33′ 55″에 위치해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영상 1°C로 위도 상으로 한참 남쪽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북위 35° 52′ 17″)의 1월 평균기온(0.6°C)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도 베를린 역시 북위 52° 31′ 07″로 상당히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베를린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0.6°C로 역시 위도 상 한참 남쪽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의 1월 평균기온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남부 독일의 대표 도시인 뮌헨의 경우는 위도 상으로 북위 48° 08′으로 더 남쪽에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2.2°C로 오히려 함부르크나 베를린보다 더 춥다. 뉘른베르크 역시 위도는 북위 49° 27′으로 함부르크나 베를린보다 더 남쪽에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0.1°C로 더 춥다.
서안 해양성 기후 치고는 추운 편이며 서유럽 주요 국가들 중에서는 겨울이 혹독하기로 알려져있다. 습도도 높고 일조량이 적어 우울한 느낌이 들고 춥게 느껴지는데다, 서울 등에 비해 평균적으로 따뜻하지만 위도가 높아 한번 한파가 몰아닥치면 -15도 아래로도 내려갈 정도다. 2017-2018년에 북극 한파가 닥쳤을 때도 일부 지역은 -30도 아래 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물론 이건 극히 드문 경우지만.
다만 여름은 남부나 북부 모두 서늘한 편이며 연중 강수량이 고르다는 것도 똑같다. 그리고 독일이 암만 춥다고 해도 대한민국이나 북한보다는 겨울이 더 따뜻한 편이다. 열섬현상이 비교적 덜해서 가끔 서울 등 대도시보다 낮은 극값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인 뮌헨 역시 독일에서나 제일 추운 곳이지 한국의 서울특별시 기온과 비슷한 수준이고 대부분의 지역은 대체로 한국의 중남부 지역 겨울철 기온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비가 자주 오는 곳이라 습도가 높은 편이기에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뼈가 시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5. 인문환경
5.1. 인구
독일은 통일되고 나서부터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였다.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이 된 것에도 인구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권이고 고령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1972년부터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세계 주요국 중 최초이다. 독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억지로 출산을 해서 부작용을 겪는 것[23] 보다 이질적인 사람이라도 능력 있는 인구가 많은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많은 이민 인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민 인구가 늘어서 출산율도 다시 반등했다는 분석도 있다.
5.2. 민족
5.3. 언어
공용어로는 독일어를 쓴다. 독일어는 국가, 지역마다 방언이 나누어져 있지만, 전반적으로 표준 독일어가 많이 사용된다. 독일어는 유럽연합의 공용어 중 하나이자 영향력이 매우 큰 언어다. 독일어 참조.
전반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있는 편이라서 영어가 잘 통하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대답만 겨우 해 주거나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다만 평균적으로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보기도 한다. 학업에 따른 영어 구사 능력 차이가 큰 편이다.[24] 게다가 상대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많이 있는 편이다.[25]
독일은 학교에서 라틴어는 물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나라이다.[26] 과거에는 프랑스어가 인기 있었으나 요즘엔 스페인어의 인기에 밀리는 추세이다. 독일에서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는 건 한국으로 치면 학교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해서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학교에서 러시아어나 터키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통일 이전에 구동독 지역은 러시아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통일 이후의 지금은 제1외국어는 무조건 영어다. 프랑스어도 많이 가르치고 있으며 북부에는 덴마크어, 프리지아어 사용자가 일부 존재한다. 동부에서는 소르브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도 거주하고 있다.[27] 구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일계 후손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8]
독일에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터키어만 써도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다. 일단 웬만한 깡촌이 아닌 이상 관공서부터 터키어를 사용하는 터키계 독일인 공무원이 있고, 터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한국의 김밥천국 수준로 널려 있으며[29] 터키 물건을 판매하는 슈퍼마켓과 카페트 가게도 있으며, 심지어 터키에선 관광지에서나 파는 물담배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스크도 곳곳에 있고. 심지어 베를린은 터키 제3의 도시라고 할 정도고 출산율 차이로 인해 한 도시 내에서 독일인의 비율보다 터키인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고 이미 추월한 도시도 존재한다. 이쯤 되면 독일이 아니라 그냥 터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항상 독일 내에서는 독일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어 화자가 줄어들고 있어서 독일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30]
5.4. 종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해당 문서 참조.
2017년 기준으로 종교별 인구 비율은 가톨릭 28.2%, 개신교 26%, 이슬람교 5%, 무종교 37%이다.[31] 20세기 중반 ~ 21세기 초반에 들어서 이슬람교도와 무종교인들은 증가하고 있고,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의 비율은 대부분 점점 감소하는 추세이다. 무슬림들은 대부분 터키나 구 유고 출신 이민자나 난민 및 그 후손 출신이다. 난민 유입으로 무슬림 인구가 증가 추세이다. 특히 무종교인들은 20세기 후반 ~ 21세기에 매우 빠르게 증가했으며, 개신교와 가톨릭 인구 모두 2010년대 초중반에 30% 미만으로 감소했다.
독일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정교분리가 이루어져 국교는 없다. 다만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여 국가는 교회의 재산권과 신자에 대한 종교세 부과를 인정하며 교회활동의 유지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루터교회는 독일 인구의 26.1%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북부 지역에서 강세다. 가톨릭은 28.2%를 차지하고 있고, 남부·서부에서 강세다.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루터교회가 우월하고 농촌 지역에서는 가톨릭이 우세한 점이 특징이었는데, 2차대전 이후 가톨릭 우위 지역인 바이에른의 빠른 산업화로 더 이상 이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상공업이 발달하였던 신교 지역이 2차대전 후 대부분 동독 지역에 편입되어 공산주의 치하에서 종교가 쇠퇴했던 점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었던 가톨릭 지역은 자본주의 서독 지역에 대부분 남아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상대적으로 종교전통이 보존된 점도 한몫한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 구교 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독일 교회의 특징이다. 그 외에 소수 교파로서 장로회· 침례회나 독립 루터회[32] 등 자유교회(Freikirche)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구 동독 지역에선 전통적으로 개신교가 우위였지만 이웃한 체코와 마찬가지로 공산정권 40년의 영향으로 무종교인 비중이 높다.[33] 그래서 과거에는 개신교:가톨릭 비중이 2:1이었는데 지금은 1:1로 바뀌었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교회세와 각종 지원을 통해 바티칸 재정의 20%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톨릭계 안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사제 및 사제의 결혼, 이혼 및 재혼, 동성애 문제 등에 있어서 급진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특히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기간 중에는 교회 안에 270개 낙태 상담소를 설치한 뒤 여성들에게 확인서를 발부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청과 3년 동안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로 발전될 조짐까지 보였으나 마침내 독일 주교회의가 교황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여 낙태확인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3년 동안 지속되던 교황청과 독일 천주교회 간 다툼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런 풍모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독일의 한 대교구의 종교개혁 기념 미사 중에 보수파 청년들이 항의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루터회 교인이자 동성애자인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의 합동(가톨릭[34] 과 루터교회[35] 공동 주최) 장례예식이 가톨릭 성당에서 치뤄지기도 했다. 이런 측면 때문인지 전통 가톨릭 성향의 신자들 중 일부는 '독일은 이상한 신학의 발원지다', '게르만은 영적으로 이상한 것이 나오는 동네다', '게르만(독일) 애들은 영성이 이상하다'며 경계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독일 가톨릭교회가 막나가는 곳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워낙 철학적 기반이 탄탄한 국가이다 보니,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사실상 대장님 소임을 맡고 있다.[36] 게다가 철학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모두 발달해서 우수한 신학자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리하여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카를 라너, 교황이자 초 네임드 신학자인 베네딕토 16세,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등 다른 나라 가톨릭교회가 부러워 죽는 수퍼스타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리고 상기한 비판 중 '기념'은 그 대상이 긍정적일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37]
독일 개신교는 2차대전 이후 EKD라는 교회협의회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11개의 지역 연합교단, 7개의 루터교단, 2개의 개혁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소속된 신자들은 7%정도를 종교세로 납부해야 한다. 2011년 조사 기준으로 개신교 신자가 많은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55.7%)과 니더작센(51.5%)으로 나왔다. 다만 실제 출석률은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한 자릿수대에 불과하다. 한국 개신교와 정반대로 독일에는 국민선동금지법이 있어서 근본주의적인 설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015년에는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비판한 브레멘의 한 목사가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38] 독일 정부는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 정체성을 바꾸기 위한 치료를 금지하기로 하고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39]
개신교 신학에서도 독일의 위상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40] 일찍이 마르틴 루터가 탄생하기도 했고,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디트리히 본회퍼, 루돌프 불트만 등의 신학자 라인업을 자랑한다.
독일에서도 기독교외에도 소수의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 독일내의 이슬람교는 알바니아,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터키, 이란, 이라크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주로 믿고 일부 독일인들중에도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비율도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로 독일에 정착했던 터키인들이 이슬람 신자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는 유럽 난민 사태로 무슬림비율이 높아지자 독일은 교회세를 본따서 모스크세를 걷고 터키, 이란, 사우디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독일정부는 외국인 성직자에 대한 입국요건으로 독일어 구사 능력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유대교도 있었지만, 나치 독일의 탄압, 학살 등으로 유대인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불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적지만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슬람은 이슬람주의[41] 가 확산하면서 특히 논란이 많다. 그 이전에는 서독에 60년대부터 들어온 터키계 독일인들이 90년대 초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주민들과 마찰을 빚은 것이 사회 문제가 되긴 했었으나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독일 내 이슬람 이미지에 결정타를 날린 계기는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및 이를 두고 이슬람주의 선교사들이 강간범을 옹호[42] 한 일이었다. 이후 터키의 강경 이슬람 성향 대통령 에르도안과 독일 사이의 외교적 갈등과 메수트 외질 논란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이슬람 이미지가 바닥을 쳤다.[43]
2020년 2월 17일에 독일에서 모스크를 표적으로 동시다발적 대규모 테러 공격을 모의한 극우 단체 회원 12명이 체포됐다.#
2021년 1월 3일에 니더작센주의 오스나브뤼크대학이 4월부터 이맘을 육성하는 과정을 신설할것이라고 밝혔다.#
5.5. 교통
6. 행정 구역
7. 정치
7.1.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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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제
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는 미국과 함께 세계 수출 1위를 다툰 적도 있었다. 현재도 경상수지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서비스 산업 부분에서는 거의 막장을 달리고 있어서 미장원이나 식당에 가도 대부분 셀프 서비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서비스업의 무덤, '서비스의 사막 독일' 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해줄 건 다해주는 츤데레 성향을 보여주는 의외의 면도 있다. 또한 매춘이 합법화된 얼마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배된걸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DHL, 루프트한자 같은 글로벌 물류업체가 있는 등 선진국답게 고루고루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1. 최저임금
독일엔 모든 직업군에 적용되는 통일된 최저임금이 없었다. 기존에는 직종별 노사간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이 존재해서, 고용주가 어디냐에 따라 법정 최저임금이 달랐다. 그래서 노조가 사실상 전무한 소규모 서비스업종들에선 보호받기가 힘들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독일 통일과 그에 따른 독일병으로 전체 노동자의 25%가 이웃 프랑스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임금 침체를 겪었었다.[44] '''21세기를 10년 이상 넘겨서야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었다.'''
전체 일자리의 1/5이 450유로 월급이 안 되는 미니잡(mini-job)이다. 미니잡은 소득세 면제 및 의료 보험에 들 필요가 없어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며, 고용주도 각종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900유로 월급에 한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미니잡으로 2명을 고용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저소득층의 소득세는 겨우 14%이기 때문에,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월급의 1/4에 달하는 의료보험료. 또한 미니잡은 의료보험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직업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45] 이런 이들은 배우자나 부모를 통해 해결한다. 한국에서 학생이나 백수들이 돈 못 번다고 의료보험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수는 전체 국민의 0.2%에 불과하다.
저축된 돈도 없는 최하층으로 진입한 빈민을 위해 기초수당인 Hartz IV가 존재한다. 2014년 기준 1인 가구 382유로, 2인 가구 706유로로 한국보다 낮은 상황이다.[46] 다만 3인 이후 가구부터는 자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성년자 자녀 기준으로 3인 가구 967유로, 4인 가구 1228유로를 받게 되어서 한국보다 한화 5만원 가량 높은 수준이 된다. 이 외에 추가로 임대주택와 난방비 보조금액 소액이 나오나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는 수준의 금액이며 당연히 대도시에 거주시 주택 수당으로 주택비 납부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무의미해진다. 사실 Hartz IV를 수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한번이라도 정부에 손을 벌렸다면 은행신용도는 최하로 내려가서 제1 금융권과는 영영 이별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창업을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경력 단절로 인해 정규직 입사도 힘드니 당연히 미니잡으로 직행이며, 독일의 빈민층의 고착화는 유럽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독일 전국에서 140만 명이 시간당 5유로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47] 거기에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유럽의 외국인 노동자[48] 를 데려와 독일인들이 도저히 오지 않을 시급에 부려먹으며 세금을 아끼려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사업장이 속속 발각되고 있으며, 그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통계는 더 암울한 수준까지 내려가리라 독일 정부에서 예측중. 월 400유로 이하를 받는 근로자가 170만에 달할 정도로 미니잡을 늘리면서도 정재계에서 성공이라면서 자화자찬을 하고[49] , 최저임금법 제정 이전에는 시급 0.26유로로 부려먹은 일까지 발생했었다. 물론 이런 일자리는 대개 실습을 겸하기에 많은 돈은 안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다 쳐도 생각 외로 착취가 심해도 너무 심해서 독일 내에서도 문제가 된다.
동독 지방정부에서 '''시간당 55센트(약 800원)'''직업을 강제한 일이 지난 몇 년 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을 정도다. 하기 싫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당이 끊기니 어쩔 수 없이 저런 곳에 가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오는 수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독일 정론지 벨트지의 취재 결과, 시급 400원에 알바생을 고용하던 호텔까지 발견되었을 정도
독일 정치인들은 옆 나라 프랑스의 낮은 고용률을 들먹이며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것이 최저임금을 하고서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의 고용률은 프랑스보다 10%나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있는 영국의 고용률은 71.7%로 독일과 동급이다. 사실 독일의 고용률이 영국의 고용률을 추월한 것은 2010년에서나 이루어진 최근의 일이다. 독일은 제조업 중심이라 일자리가 많았다는 주장을 단번에 논파하는 자료다. 1990년 통일 직전 서독의 고용률은 당시 이탈리아에 국내총생산을 추월당했던 영국보다도 10% 가량이나 낮았던게 현실. 현재 독일의 고용률은 미니잡에 힘입어 2005년 이후 폭등한 결과로 내실이 별로 좋지 않다.
2013년 총선 이후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 연정 협약서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전국 시간 당 8.5유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이 도입 결정된 이후 오히려 그동안 많이 주었다며 주던 시급을 2017년부터 적용 예정인 최저임금 수준으로 내리는 만행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독일 내에서 지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8.2. 자산
자산격차의 문제가 알고보면 심각한데 독일의 서민이 가진 재산은 유럽에서도 적은 편이다. 장기간 바캉스를 즐기며 주택 구입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독일인의 특징이 그 이유로 꼽힌다. 특히 휴가를 비슷하게 가며 자가주택비율만 독일보다 10%가량 높은 영국 서민의 재산이 독일의 2.25배, 더 긴 바캉스를 즐기면서 자가주택비율은 독일과 비슷한 프랑스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3배나 되는 상황이다.크레디트 스위스 Global Wealth Report
서민 재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하면 일자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들은 결국 다시 1달 450유로가 안 되는 미니잡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자산 평균값/중간값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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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자산 상위 20%/하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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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자산 빈부격차는 독일이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진짜 부자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돈과 자산이 많은 사람이며 자산 격차는 한국보다도 많이 나쁜 수준이다.
독일은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과 같이 소득지니계수가 낮으며 복지제도가 우수한 국가이지만, 그에 반해 자산지니계수는 높은 국가에 속한다.12
2014년 독일 최대 경제연구소인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져 유로존 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ECB의 조사 결과에서도 독일은 주요 유럽 국가 중에 압도적으로 자산이 낮았다. #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독일에서도 구 동독 지역의 주민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전후 호황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 서독 주민에 비해 압도적으로 자산 축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난한 구 공산권 국가와 부유한 서방 선진국이 한 국가로 통합된 국가는 오직 독일뿐이기에 지역 격차도 동서를 중심으로 심하다.[50] 지역별 불평등은 유럽에서 영국 다음 가는 수준으로 최근에는 고질적인 동서 격차에 이어 남북 격차[51] 까지 강해지는 추세이다. 또 상속 부자들이 매우 많은데 독일 전체 부의 50%가 상속 재산으로 프랑스나 영국보단 낮지만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른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율이 20%대를 유지했다.
8.3. 연금제도
연금제도도 유럽 내에서는 최하위로 전체 연금 수령인의 50% 이상이 1달 700유로(100만원)가 안되는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1인당 GDP가 비슷하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경우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620유로의 '''기초노령연금을 보장'''[52] 중인 것과 심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복지 선진국들은 가정주부에게도 어느 정도 금액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나 북미의 캐나다등에서는 매달 실수령 100만원 근처가 나온다.
남유럽의 이탈리아도 유로화 사태 이후 삭감되었지만 2014년 기준 기초연금이 1달 540유로#이다. 근데 기초연금과 전체 수령액 자체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인의 41%가 매달 1,0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스페인은 15년간 세금을 낸 연금 수령인들에게 550유로를, 독일과 함께 최하위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는 영국조차 30년간 납세한 연금 수령인들에게 매달 500파운드를 보장해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연간 실수령 기준 연간 2,400만원 가량이며[53] 2위인 호주는 2,100만원이 나오고 있다.
독일 하위계층의 노년문제는 상당히 심각한데, 정말 최악의 케이스를 가정해 비정규직인 미니잡으로 취업해 45년간 연금을 부으면 월 140유로 수령(...).# 물론 마음만 먹으면 맥도날드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채용이 되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만큼 비현실적이지만 독일의 황당한 연금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예다. 이웃나라인 프랑스는 납세를 한 적이 없어도 620유로를 보장해주는 판에... 괜히 독일에서 30년 이상 연금을 부은 수령액의 결과가 700유로(100만원)도 안되는게 아니다.
그래도 현재 기초노령연금 지급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SPD의 연방의회 선거 공약으로 Union과 대연정을 시작하면서 주요 의제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우선 초안은 2021년부터 최소 월 775유로를 지급하며, 이를 위해 호텔 숙박 세금을 올려 예산을 충당할 계획임을 밝히면서 정치권 내부에서도 CDU 및 호텔 업계가 SPD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그리고 연금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최소한 기초생활 수급액 이상의 연금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기본연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9. 사회
동포사회 커뮤니티로 베를린리포트(독일에 오면 방문하지 않게 되는 곳)가 있다. 이전 독일 전체가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져서 애국이라더니 결국 나라를 망쳤기 때문에 현대 독일은 교육 과정에서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국을 '우리' 민족, 조국 등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꺼리도록 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나라는 전범국이니깐 국까가 되셈"하는 게 아니고 "평화로운 독일인으로서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어울리는 것"을 가르친다.# '''즉 결론적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까진 좋지만 그것보다 평화와 민족평등을 강조한다.'''
이걸 폴란드볼에서 풍자했다. 독일이 애국심의 강조를 다른 국가 수준으로만 평범하게 해도 득달같이 나치 드립까지 꺼내며 경계하니까 '내가 그런 거 신경쓰게 생겼냐!'라며 폭주하고, 2주 뒤 진짜로 나치가 부활해서 프랑스가 벙찌는 이야기.[54]
9.1. 치안
독일 연방경찰청 항목도 참조.
독일의 치안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유럽에서 판을 치는 소매치기도 적은 편이고 강도 같은 흉악 범죄도 적다. 특히 독일인들 특유의 신고정신이 투철한 경우가 많아 범죄를 목격하면 즉각 신고하고 증인이 되주는 경우가 많다.
다만 사창가나 슬럼가 주변의 위생 상태나 치안은 그다지 좋지 않고 이민자가 많은 동네의 치안도 썩 좋지는 않다. 이민자들이 갱단을 조직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어 이런 이민 문제 때문에 독일인들의 반감이 늘어나 네오나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엔 훌리건의 난동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9.2. 이민
타 유럽 국가와 달리 대규모 인종학살을 저질렀던 흑역사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이 많이 없으며 2차 대전 이후 동유럽, 중유럽 각지에서 추방된 독일인들이 오늘날 독일 각지에 정착하며 고생했던 역사 때문에 이민에 우호적인 편이다.[55] 냉전 이후에는 동유럽과 남유럽 각지에서 이민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이탈리아에서도 실업난이 심해지자 고학력자 상당수가 독일로 이주했다. 냉전 이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독일계 러시아인 상당수가 독일로 이민 와 재정착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동유럽계 마피아의 성매매 인신매매 문제가 있었으며[56] 오늘날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민자들에 의한 공공 서비스 무임승차가 급증한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최근 2016년부터 터키와 독일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져 터키계 독일인들을 극히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민자의 증가와 구 동서독 간에 미묘한 감정 대립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터키계 독일인 때문에 실업자가 됐다고 화내는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네오 나치가 생겨났다. 나치는 관심 끌기 위한 떡밥으로 이름만 빌려 쓴 단순한 양아치 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당연한게 대부분 이민반대파 동독인들 역시 막상 보면 단순히 이민 반대고 독일내 들어온 무슬림을 싫어하는 거지, 나치 즉 국가사회주의의 필수적인 주요요소 '''전체주의, 게르만 최고주의 , 국가팽창주의, 유태인을 비롯한 각각인종 하등론 즉 인종차별'''을 주장하지 않으며 나치당 그 자체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이 '''네오나치가 경찰 보호없으면 시민들한테 집단 린치당해서 죽는 나라'''인것을 생각하면 당연한것. 그래도 독일 내부에서는 이런 이민반대파와 인종차별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국가사회주의를 찬양하든 말든 통째로 묶어서 '''이민반대파=네오나치'''라고 칭하다가 최근에야 워낙 이민자들에 대한 정서가 악화됨에 따라 단순히 이민 반대파라고 이들은 네오나치라고 박아버리진 않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백인 우월 인종차별주의는 여전히 엄청난 네오나치로 취급받는다. 그정도로 독일의 일반 시민들에게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혐오가 심하다는 것. 그러나 이슬람주의 성향 이민자들로 인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이로 인해 점차 겉으로는 나치로 몰릴까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반이민정서가 높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난민을 주권국가인 독일이 무조건 받아야할 이유도 없으며[57] 다만 인도적 차원일 뿐이지 그것을 마치 권리인양 남용하고 오용하며 깽판부리고 행패를 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면 결국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하여 전체주의 세력의 증대를 야기시킬 수 있다.
세계 곳곳의 옛 식민지 국가들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인종, 민족의 이주민들로 대도시 인종 구성이 급변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과는 달리, 독일의 경우 거의 터키계 독일인들이 400만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이는 독일 전체 인구의 5% 이상에 달하는데,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이 식민지가 많은 영국, 프랑스와 대항하기 위한 동맹자로서 터키(당시 오스만 제국)와 손잡은 이래 우호관계가 지속되어 터키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의 외교 정책의 근간이었던 3B 정책, 베를린 - 비잔티움 - 바그다드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것. 지금도 독일은 터키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서, 유명한 터키 여행지에 나온 설명문이 자국어 다음에 먼저 독일어로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영어로 되어 있다. 터키어 알파벳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터키인들의 유입은 오늘날에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축구선수들의 경우 2002년 당시 독일로 유입된 터키의 축구선수인 일한 만시즈나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인 하미트, 하릴 알튼톱 형제, 메흐메트 에키지는 터키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하칸 찰하노글루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택해서 터키 국적으로 뛰고 있는 반면 똑같이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58] 이나 메흐메트 숄, 엠레 찬등은 아예 독일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외에도 전반적인 분야에서 터키인들의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아예 터키 쉬페르 리그 갈라타사라이 SK가 한때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분데스리가로 갈려다가 좌절된 적이 있을 정도다.
터키계 독일인들은 상당수가 본토의 동포들보다 더 종교적이다. 독일 거주 터키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72%가 이슬람만이 참 종교라고 하였으며, 90%가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대답했다. 터키인의 독일 이민은 터키에서 군사 정권에 의해 세속주의가 정점에 달하던 시절에 많이 이루어졌는데, 단순히 돈벌러 동부 시골에서 독일로 간 경우도 많지만, 터키 본국의 강압적 세속주의 정책에 반발해 독일로 이주한 이들도 있었다.[59] 주로 종교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터키인은 외국에서도 터키인이다."라며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를 중심으로 터키 이주자들을 결합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일반 터키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이슬람주의[60] 에 경도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재 독일 내의 터키 이민자들은 개인적으로는 독일 문화와 가까울지는 몰라도 집단으로 뭉치면 상당히 보수적이며, 그 반발로 일부는 무신론자이지만 터키인 정체성만 가지고 있는 경우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게 되었다. 독일계 터키인 공동체의 종교적 보수성은 터키계만의 문제도 아니라,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모스크들에도 해당된다. 온건 성향 모스크보다는 근본주의 성향 모스크가 지원을 훨씬 많이 받는 이유로 유럽 난민 사태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조차 아랍어 사용 모스크가 와하비즘-살라피즘 물이 들어 너무 수구성이 짙다고 평가한다. 자이쉬 알 이슬람(시리아의 이슬람원리주의 반군)이 생각난다는 평이 압권. #[61] 그러다보니 독일 내에서 근본주의 성향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심하며 이들로인해 독일에서도 우파적 성향의 국민들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지금은 가리지 않고 상당히 많이 받은 상태라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 흑인들도 50만명 정도 살고 있고[62] 쿠르드인들도 80만명이 살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이 생긴 이후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폴란드 태생이나 독일로 이민가 독일 대표팀으로 뛰었던 축구선수 루카스 포돌스키가 그 예이다. 물론 동유럽권 이민자들은 같은 유럽 가톨릭 문화권이고 인종도 백인이기 때문에 타 이민자들에 비해 비교적 독일 사회에 동화가 쉬운 편이다. 심지어 무슬림 알바니아인이나 보슈냐크인들도 공산주의 시절에 세속화 교육의 영향으로 아랍계 혹은 이란계 무슬림들에 비해 사회 적응 속도가 빠르다. 사실 이란인들과 아랍인들, 쿠르드인들도 인종적으로 볼 때는 백인이긴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 우민화 교육의 여파로 인간 개발 지수나 부패 인식 지수가 독일인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다. 터키계 독일인들의 경우 적어도 문맹은 거의 없지만 기존의 게르만계 독일인과는 문화적 측면에서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 당장 아무 터키인을 데려다가 서양식 정장을 입히고 독일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세팅하면 터키인임을 알아보기 어렵겠지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수염을 기르고 페스를 쓰고 있다면 그가 실제로 게르만계 독일인이라 해도 터키인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발생한 중동 난민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도 인도주의적 명분뿐만 아니라 저출산 극복 목적도 크다. 2015년 한 해만 100만 명 이상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그 뒤에도 대규모로 받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들 중 상당수가 인간 개발 지수나 부패인식지수가 낮으며 정치적 올바름 문제로 경계선 지능[63] 장애인들을 구분하지 않은 이유로,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등의 범죄를 저질러 독일 내에서 인식이 나쁘며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계속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인 출산율 때문이다. 물론 독일도 나름 중산층 대상 출산 장려에 힘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식 문제라 해결이 안된다는 걸 동서독 분단 시절부터 뼈저리게 체험하고 이후부터는 이민 수용과 빈민층 출산 장려로 전환했다. 물론 이민자가 많이 들어오면 국내 서민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는지라 구 동독 지역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있다. 구 동독 지역의 소득수준이 비교적 낮은 만큼 더욱 그렇다.
그래도 독일은 서유럽에서는 이민자들의 평균 교육 수준이 높은 이유[64] 로 다문화사회가 잘 정착한 국가 중 하나다. 고위층에서도 이민계 독일인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들 또한 대부분 독일 사회에 잘 녹아들어 생활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 등의 대도시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보다 더 인종차별이나 서로 간의 인종적 거리감이 적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독일 교민들이 얘기하는 게, 인종차별은 별로 없지만 언어차별은 있다는 점.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이라고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는데, 독일어를 못하거나 한국어로 뭐라고 얘기하면 "쟤 외국인인가?" 하고 이상하게 쳐다볼 수는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2018년 4월 12일에 독일 통계청은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약 1,060만명을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고 이중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출신 등의 신규 EU 회원국 출신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독일측은 4월 19일에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2018년 8월부터는 독일에 정착한 난민 가족을 월 1천명씩 받아들이기로 확정했다.#
2019년 조사에서 독일 인구의 1/4이 이민자나 그 후손, 외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65] 즉, 전체 인구 중 3/4만 토착민이라는 뜻. 2019년 약 32만 7000여명의 외국인이 독일로 이주했으며(이민이나 유학, 노동, 망명 등을 목적으로)같은 해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총 1122만 8000여명인 것으로 전체 인구의 13.5%인 것으로 나타났다.[66] 이 중 631만명이 유럽 출신으로 전체 외국인의 56.3%를 차지했으며 eu 출신이 488만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43.5%를 차지했고 비 eu 출신 유럽인이 117만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10.5%를 차지했다. 터키인은 총 147만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13.1%를 자치했다. 아프리카 출신이 60만, 아메리카 출신이 29만이고 이 중 미국인이 12만명이며 아시아 출신도 240만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21.4%나 차지했는데 이 중 이라크, 시리아, 아프간 출신이 다 합쳐서 130만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11.6%를 차지했다. 중국인은 15만명 정도였다.
요약하자면 타 유럽 출신이[67] 1083만, 터키계가 국적 상관없이 276만, 아프리카 출신이 북아프리카까지 포함 93만, 아메리카 출신도 54만[68] , 중동 출신이 315만, 동남아 출신도 104만명이나 되며 동아시아 출신도 27만이다. 독일은 워낙 외국인이 많다보니 유색인종도 의외로 많다.
9.2.1. 저출산 고령화
전세계 선진국들 대부분이 이렇지만 독일도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데, 중위연령이 47.1세로 일본(47.3세)에 이어 세계 2위이다. # 일본과 비슷하게 심각한 상황이다 #
9.3. 욕설 제재
독일은 욕설에 매우 엄격한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일반적인 욕설은 250유로, 경찰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례하게 굴면 600유로, 늙은 돼지[69] 라고 하면 2,500유로를 내야 한다. 행동으로 하는 욕설은 혀를 내밀면 150~300유로, 머리를 손가락으로 치면(멍청이라는 뜻) 750유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면 '''600~4,000유로'''[70] 까지 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나치를 매우 혐오하기 때문에 나치와 관련된 행위를 하거나, 나치나 히틀러를 찬양하는 내용을 말하거나, 관련 물품을 가지고 다니면 독일 법에 의해 처벌된다. 또한 나치라는 단어를 사람한테 쓰는 것은 '''중지를 드는 것보다 수십 배는 심한 욕이다.'''
9.4. 사회 문제
9.4.1. 임금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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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대졸이상/고졸이하의 임금 격차
이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황과 반대로 대졸자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며,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이웃의 프랑스보다 최소 만 유로가량 높다. 대졸자와 비대졸자간의 소득격차가 아일랜드에 이어 서유럽에서 2위이다. 근데 서유럽에서 2위라는 건 조금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 안 그래도 가뜩이나 청년고용률이 시망 중의 시망인 그리스, 포르투갈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마저 독일보다 높다는 건 참 뭐라고 해야할지(...)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에서는 한국, 독일 등 각 나라의 교육 지표들을 연구해서 내놓고 있다. [71]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고졸은 독일 대졸보다 실업률이 훨씬 높고 임금도 훨씬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014년 현재 BMW의 뮌헨 본사 공장에서는 막 성인이 된 고졸들을 생산직 견습을 시켜준다며 4년간 1,000유로를 주고 있다 세후 770유로니 한화 110만원이 월급이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다면 전문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고졸이라도 마이스터 자격을 얻으면 생계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마이스터 자격을 얻는 것이 대학 졸업보다 쉽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류에 따라서는 더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기도 하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으며, 대학에 입학 후에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기 때문에, 대졸자의 경우 취업과 전혀 상관없는 과가 아닌 한, 취업하지 못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대학 졸업자 이상의 고학력자는 독일에서 꽤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분야는 박사학위 없이는 취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 실업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서는 청년층 전체 실업률을 이야기하는데, 서독 지역에서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분석한 실업률은 대졸자는 3~4% 수준, 전문대졸자는 7~8% 수준, 고졸은 20% 이상으로 최근 통계에서 집계되었다. 그러나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된 동독지역의 경우는 대졸자/전문대졸자/고졸로 나눠서 비교하면 상관관계 자체는 서독과 비슷하지만, 비율 자체가 크게 상승하여 대졸자 10% 수준, 전문대졸자 20% 수준, 고졸 50% 수준에 육박한다. 이는 사실 한국과 산업 구조 상 차이가 약간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사 수준의 지식으로도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으며, 석사의 경우 취업 못해서 석사갔다는 소리까지 나돌지만, 독일의 경우 취업 시 고학력자가 요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학력자들에게는 기회가 비교적 적다.
대학교 학위가 없는 계급을 독일에서는 Arbeiterkinder 즉 노동자로 칭하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 중 단 9%만이 대학교 진학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학력도 대물림이 되는 경향이 유럽 내에서도 제일 높은 나라가 바로 독일인데, 이는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진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인문계열(대학 진학)과 실업학교가 갈린다. 한국이 성적이 우수하든 아니듯 적어도 고3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까지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교육을 받는 것과 상당히 대조된다. 독일 여자의 32%는 최종 학력이 중학교(하웁트슐레) 졸업 이하다.[72] 이쯤 되면 대학교 학비가 무료인 것이 나라의 부의 재분배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졸자와 기술 숙련자의 연봉 차이가 독일 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미용사의 평균 연봉은 15,787유로, 트럭 운전기사의 평균 연봉은 28,534유로로, 겨우 22세 먹은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평균 초봉이 40,000유로대라는 걸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게 낮은 금액이다. 참고로 저 40,000유로는 본봉 기준이며 수당이나 보너스는 포함하지 않은 통계다.기사참고 민간기업들은 물론이고 공무원조차 학벌에 따른 차등연봉을 지급하는데 대졸 공무원은 고졸 공무원에 비해 2배 더 높은 연봉으로 시작한다. 한국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트럭운전사 평균 연봉은 2,850만원, 대학교 학부 졸업생 '''초봉'''은 4,000만원이라는 이야기. 이는 부분적으로 독일의 대졸자 비율이 한국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13,000유로부터 53,000유로까지는 같은 24%의 소득세를 내기에 생활 수준 격차가 좁혀지기가 절대 쉽지 않다. 북유럽보다는 덜하지만 어느정도 서민증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53,000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게는 53,000유로 이상의 소득분에 대해 40%를 가져가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촘촘하게 모여있다. 덕분에 퍼진 정도가 낮아 소득격차는 한국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로는 0.297.# 실제 서민들끼리의 차이는 당연히 크다. 연봉 1,300만원 받는 사람과 5,300만원 받는 사람의 세율이 같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무튼 일을 시작해 10~15년 경력을 쌓아도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초봉을 못 따라잡는 나라는 서유럽에서도 독일이 사실상 유일.
청년실업 문제와 구직시장에서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미스 매치 현상이 이슈가 되면서 독일의 직업교육을 본받자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는데 확실히 독일의 청년고용률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나 그렇게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며, 안 좋은 면을 보면 빠른 진로의 결정이 사회계층화를 강요하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자세한 통계는 OECD/교육지표 문서 참조.
9.4.1.1. 반론
우선 독일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저렴하다. 물론 난방/전기/수도 요금은 상당히 비싸지만, 공산품과 식료품[73] 의 경우는 인근 프랑스나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보다 확실히 저렴하며, 경제 사정이 안좋다는 이탈리아 등[74] 에 비해서도 물가가 낮고 안정되어 있다. 또한 공교육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도 나쁘다고는 하지만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실업급여제도도 이전 세후 소득의 60~67% 수준에서 최장 960일까지 지급될 정도로 잘 보장되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낮다. 따라서 큰 돈 들 일이 없으니 저축이나 투자에 대한 욕구가 적은 편.
독일 국민 특성상 사치를 싫어하고, 높은 소득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치를 싫어하더라도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열악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생활수준 차이는 다른 서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통계로도 명확히 크게 나타난다.
김나지움을 가지 못한다 하여 반드시 취업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직은 김나지움이 아닌 레알슐레를 나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미니잡 역시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한 나쁜 제도가 아니라, 소득세율이 높은 독일에서 소득세를 피하면서 부가수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일은 가구당 소득세를 부부 합계로 납부한다. 1인 기준 53,000유로 이상 소득을 납부해야 2번째 세율구간에 진입하지만, 부부의 경우는 그 2배에 달하는 10만유로까지 연봉을 받아도 24% 세금만 낸다. 단, 배우자가 전문의라서 10만유로를 넘는 연봉을 받는다면, 월 400유로 미만의 임시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파트타임이나 임시직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주부나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 활용된다. 보통 주당 10~16시간 미만 선에서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미니잡 시급이 결정되므로, 이것을 풀타임 급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편. 단 이는 독일 남부의 부자지역의 기준이 그렇고, 베를린만 가도 400유로를 주면서 40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물론 위에서 예시든 것처럼 45년 동안 미니잡으로 사는 경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일단 그 기간동안 미니잡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예시라 하겠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보장제도 역시 정상적인 노동을 일정기간 충족하는 경우를 전제로만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위의 미니잡 관련 외부링크 기사 역시 말미에 수치가 과장되어 해석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여성이 받는 평균 연금액은 533유로이나, 이는 연금액만 가지고 계산된 것이며, 실제로 미혼인 노령여성의 평균 수익은 1,188유로이며, 부부의 경우 평균 2,248유로를 벌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연금액 자체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출산율이 2.0명(서독, 동독 모두)을 밑돌기 시작하고 이게 2010년대까지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65세 이상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나가자 재정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독일 정부에서 연금제도를 개편해 많이 내고 덜받는 식의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바로 '''통일'''이다. 서독과 동독이 합쳐지고 이제 겨우 30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면서 독일 경제를 시궁창에 몰아넣은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로 근로자들의 능력과 생산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통화를 무조건 단일화하면서[75] 동독 지역의 임금이 폭증[76] '''실업률은 50%까지''' 폭증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것은 당연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할 경제 통합 과정 역시 날림으로 진행되었다.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만만치 않게 남아있는 셈이다.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의 경제 격차는 여전히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1991년에서 2003년까지 통일 비용이 대략 1조 7,000억 유로(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2,300조'''. 물론 화폐가치를 고려해야 한다)인데 이 중에서 '''50%''' 가까이가 사회보장(연금, 노동시장, 의료보험)에 소요되었다.[77] 이러한 복지 지출의 급증에 이어 통일 직후 독일은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가고 재정지출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국가 파탄을 방치할 생각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개혁은 필수적이었다. 실업급여를 필두로 사회보장을 빡세게 깎고 대규모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을 펼친 것도 대충 이 시기이다. 재밌게도 이러한 정책을 이끈 것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16년 만에 정권을 잡은 독일 사회민주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메르켈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이러한 기조는 이어가고 있다. 물론 실업자의 상대적 빈곤율이라든지 비정규직의 급증 등 부작용으로 인해 반발과 비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며 상술했듯이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선회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 이후 사실상 독일이 유럽을 이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시경제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옆나라 프랑스에 비교하면 국민 삶의 질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사실 프랑스가 대단히 관대한 사회보장정책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인 것도 있다.
10.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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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부모가 있는 앞에서 어린 아이에게 혈액형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된다. 독일에서 혈액형을 묻는 것은 일종의 부모와의 혈연 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를 가능성이 높고, 아이의 혈액형을 병원에서 안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마저도 자식의 혈액형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독일에서는 흔한 일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10.1. 관광
10.2. 교육
10.3. 학문
전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국가가 독일이다. 물론 무작정 노벨상 수상자와 과학기술력이 정비례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치당이 독일에 집권했을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위시한[78] 고급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소련으로 빠져나갔고[79] 패전으로 몰락해버렸음에도 다시 일어났음을 생각해 본다면 기본적인 기술 기반은 탄탄하다. 물론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의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있다. 또한 현대에는 일부 분야에서 특출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성기 시기처럼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독일의 시대'''이다. 1991년 미국의 역사학자 노먼 캔터는 "20세기는 가히 독일의 세기가 될 수도 있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그만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 참석한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도 이 세 사람이 모두 1878~1879년에 태어난 것에 주목하며 독일계 미국 역사학자 프리츠 스턴에게 캔터와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캔터와 아롱의 말에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라는 재앙이 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시기에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랐던 독일의 사상가, 예술가, 작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서 갓 통일된 조국을 전에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숨겨져있다. 이 1848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에 활약한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계 인물들의 명단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 물리학: 헤르만 폰 헬름홀츠,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에른스트 마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하인리히 헤르츠, 빌헬름 뢴트겐, 막스 플랑크, 필리프 레나르트, 빌헬름 빈, 요하네스 슈타르크, 구스타프 헤르츠, 리제 마이트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80] , 막스 폰 라우에, 제임스 프랑크, 발터 마이스너, 에르빈 슈뢰딩거[81]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 수학: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페터 구스타프 르죈 다리클레, 에른스트 쿠머, 레오폴트 크로네커,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헤르만 슈바르츠, 베른하르트 리만, 리하르트 데데킨트, 게오르크 칸토어, 펠릭스 클라인, 펠릭스 하우스도르프,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 다비트 힐베르트, 헤르만 민코프스키, 아르놀트 조머펠트, 이사이 슈어, 한스 한, 에미 뇌터, 리하르트 쿠란트, 헤르만 바일, 쿠르트 괴델, 게르하르트 겐첸
- 정신분석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아들러, 카를 융, 오토 랑크, 빌헬름 분트, 헤르만 로르샤흐, 에밀 크레펠린, 빌헬름 라이히, 카렌 호니, 멜라니 클라인, 에른스트 크레치머, 게자 로하임, 야코프 브로이어,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 철학: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프리드리히 랑에, 빌헬름 딜타이, 프란츠 브렌타노,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 프리드리히 니체, 루돌프 오이켄, 헤르만 코엔, 빌헬름 빈델반트, 고트로프 프레게, 알렉시우스 마이농, 파울 나토르프, 한스 파이힝어, 에드문트 후설, 하인리히 리케르트, 막스 쉘러, 에른스트 카시러, 오스발트 슈펭글러, 카를 야스퍼스, 루카치 죄르지[83] , 에른스트 블로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돌프 카르나프, 한스 라이헨바흐, 모리츠 슐리크, 마르틴 하이데거, 헬무트 플레스너, 발터 벤야민, 막스 호르크하이머, 카를 뢰비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레오 스트라우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칼 포퍼, 테오도어 아도르노, 아르놀트 겔렌, 칼 구스타프 헴펠, 한나 아렌트
- 역사학: 레오폴트 폰 랑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게오르크 바이츠, 빌헬름 폰 기제브레히트, 하인리히 폰 지벨, 테오도어 몸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 한스 델브뤼크, 루트비히 폰 파스토어, 율리우스 벨로흐, 에두아르트 마이어, 카를 람프레히트, 오토 힌체,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게르하르트 리터, 프란츠 슈나벨,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오토 브루너
- 법학 및 정치학: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로렌츠 폰 슈타인, 베른하르트 빈트샤이트, 루돌프 폰 예링, 파울 라반트, 오토 폰 기르케, 게오르크 옐리네크, 구스타프 라트브루흐, 한스 켈젠, 카를 슈미트, 헤르만 헬러, 카를 뢰벤슈타인, 에른스트 프랭켈, 오토 키르히하이머
- 경제학: 브루노 힐데브란트, 빌헬름 로셔, 카를 크니스, 구스타프 폰 슈몰러, 카를 멩어, 루요 브렌타노, 카를 뷔허,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조지프 슘페터, 발터 오이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문학: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고트프리트 켈러, 테오도어 슈톰, 테오도어 폰타네, 파울 하이제, 카를 슈피텔러, 아르투어 슈니츨러,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프랑크 베데킨트, 슈테판 게오르게, 하인리히 만, 토마스 만, 카를 크라우스, 후고 폰 호프만스탈, 라이너 마리아 릴케, 헤르만 헤세, 게오르크 카이저, 알프레트 되블린, 로베르트 발저, 한스 카로사, 로베르트 무질, 슈테판 츠바이크, 프란츠 카프카, 고트프리트 벤, 아르놀트 츠바이크, 발터 하젠클레버, 프란츠 베르펠, 넬리 작스, 요제프 로트, 에른스트 윙어, 한스 팔라다, 카를 추크마이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에리히 캐스트너
- 음악: 로베르트 슈만, 리하르트 바그너, 안톤 브루크너,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브루노 발터, 프리츠 크라이슬러, 아르투르 호네거, 파울 힌데미트, 쿠르트 바일, 프란츠 레하르,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 회화: 막스 리버만, 파울 클레, 막스 페히슈타인, 막스 클링거, 구스타프 클림트, 프란츠 마르크, 로비스 코린트, 한스 아르프, 게오르크 그로스, 오토 딕스, 막스 슐레포크트, 막스 에른스트, 레온 파이닝거, 막스 베크만, 알렉스 야블렌스키, 바실리 칸딘스키[84]
11. 군사
간단히 정리하면 정말 약체이다. 과거 프로이센시절, 독일2제국 시절, 그리고 소련과 전쟁을 벌이던 2차대전의 국방군의 명성이 무색하게 약체이다
독일은 2011년 7월 1일 징병제를 폐지했다.[85] 공식 명칭은 징집 유예지만 유럽인들의 성향이나 징병제의 비효율성 등 여러모로 봤을 때 독일이 다시 징병제 국가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자신들도 고통받은 이후 나치의 나자와 국가사회주의의 국자, 그리고 팽창주의라든가 과거 영토 회복같은 것만 들어도 당장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인 독일인들로서는 나치 독일과 연관성이 깊은 징병제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시행하고 싶지 않은 제도가 되는 셈. 모병제로 전환해서 군대에 남은 병력도 평화유지군에 도움을 주는 임무 위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현역 군인으로 징집된 인원들은 늘 징병제 폐지 과정이 그렇듯 지원자에 한해서 직업군인으로 전환되며, 전역을 원하는 인원은 순차적으로 전역을 한다. 또한 대체복무로 해왔던 사회봉사요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모집공고를 실시했다.
냉전 이후의 군축을 통해 독일이 바란 독일군은 고도로 훈련된 소수 정예의 군을 가지는 걸 원했겠지만 현실은 예비 총열도 못 사서 해외 훈련에 기관총 총열 대신 빗자루대를 꽂아놓고 훈련에 참가할 정도다. 거기다 유로파이터, NH-90 같은 각종 악재들이 겹치면서 국방력 강화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이를 통해 대체하려고 했던 F-4F 팬텀이나 도르니어 205 등 노후화된 장비들을 몇 년 더 연장해서 사용하게 되면서 예산이 더 빠져나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레오파르트2의 허상이 드러나고 H&K G36의 과열로 인해서 총몸이 녹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는데 예산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여 전력 강화는 커녕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알던 독일정부는 2025년까지 공업 인프라 재가동과 모든 장비 재보급 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국방비도 1.5%까지 올린다 했으니 예전보단 나을 전망이다.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유럽에 신냉전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독일군의 정규군 전력은 냉전 시기와 비교하기 초라할 정도인 3개 사단으로 축소되었고 상당수의 병력이 아프간, 소말리아, 동유럽 등으로 파병나간 상태다. 이마저도 아프간 등 파병지에서 근무 실태들이 드러남에 따라 실전 능력을 고려하기 전에 '''군인으로서의 기초가 안 되어있다.'''[86]
어느 정도 실상을 알고 있는 밀덕판에선 2차 대전, 냉전기의 강한 독일군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현재는 퇴물, 이빨 빠진 호랑이, 속빈 강정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똥군기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병영부조리/해외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가혹행위는 현대 독일군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다.
12. 인물
12.1. 유명인
12.1.1. 물리학자
- 헤르만 폰 헬름홀츠 - 물리학자
-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 물리학자
- 에른스트 마흐 - 물리학자
-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 물리학자
- 하인리히 헤르츠 - 물리학자
- 빌헬름 뢴트겐 - 물리학자
- 막스 플랑크 - 물리학자
- 필리프 레나르트 - 물리학자
- 빌헬름 빈 - 물리학자
- 요하네스 슈타르크 - 물리학자
- 구스타프 헤르츠 - 물리학자
- 리제 마이트너 - 물리학자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물리학자
- 막스 폰 라우에 - 물리학자
- 제임스 프랑크 - 물리학자
- 발터 마이스너 - 물리학자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물리학자
- 볼프강 파울리 - 물리학자
-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 물리학자
12.1.2. 화학자
- 아돌프 폰 배이어 - 화학자
- 프리츠 하버 - 화학자
- 에밀 피셔 - 화학자
- 오토 한 - 화학자
- 카를 보슈 - 화학자
12.1.3. 수학자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수학자
-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 수학자
-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 수학자
- 페터 구스타프 르죈 다리클레 - 수학자
- 에른스트 쿠머 - 수학자
- 레오폴트 크로네커 - 수학자
-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 수학자
- 헤르만 슈바르츠 - 수학자
- 베른하르트 리만 - 수학자
- 리하르트 데데킨트 - 수학자
- 게오르크 칸토어 - 수학자
- 펠릭스 클라인 - 수학자
-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 - 수학자
- 다비트 힐베르트 - 수학자
- 헤르만 민코프스키 - 수학자
- 아르놀트 조머펠트 - 수학자
- 이사이 슈어 - 수학자
- 한스 한 - 수학자
- 에미 뇌터 - 수학자
- 리하르트 쿠란트 - 수학자
- 헤르만 바일 - 수학자
- 쿠르트 괴델 - 수학자
- 게르하르트 겐첸 - 수학자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수학자
12.1.4. 공학자
- 베르너 폰 지멘스 - 공학자
-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 공학자
- 고트리프 다임러 - 공학자
- 카를 벤츠 - 공학자
- 카를 폰 린데 - 공학자
- 오토 릴리엔탈 - 공학자
- 루돌프 디젤 - 공학자
- 로베르트 보슈 - 공학자
- 페르디난트 포르쉐 - 공학자
12.1.5. 생물학자
- 그레고어 멘델 - 생물학자
- 로베르트 코흐 - 생물학자
- 파울 에를리히 - 생물학자
-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 - 생물학자
- 아우구스트 폰 바서만 - 생물학자
- 에리히 폰 체르마크 - 생물학자
-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 - 생물학자
12.1.6. 지구과학자
12.1.7. 법학자
-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 법학자
- 로렌츠 폰 슈타인 - 법학자
- 베른하르트 빈트샤이트 - 법학자
- 루돌프 폰 예링 - 법학자
- 파울 라반트 - 법학자
- 오토 폰 기르케 - 법학자
- 게오르크 옐리네크 - 법학자
- 구스타프 라트브루흐 - 법학자
- 한스 켈젠 - 법학자
- 카를 슈미트 - 법학자
- 헤르만 헬러 - 법학자
- 카를 뢰벤슈타인 - 법학자
- 에른스트 프랭켈 - 법학자
- 오토 키르히하이머 - 법학자
12.1.8. 경제학자
- 브루노 힐데브란트 - 경제학자
- 빌헬름 로셔 - 경제학자
- 카를 크니스 - 경제학자
- 구스타프 폰 슈몰러 - 경제학자
- 카를 멩어 - 경제학자
- 루요 브렌타노 - 경제학자
- 카를 뷔허 - 경제학자
-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 경제학자
- 루트비히 폰 미제스 - 경제학자
- 조지프 슘페터 - 경제학자
- 발터 오이켄 - 경제학자
- 프리드리히 리스트 - 경제학자
12.1.9. 사회학자
- 막스 베버 - 사회학자
- 페르디난트 퇴니스 - 사회학자
- 게오르크 지멜 - 사회학자
- 베르너 좀바르트 - 사회학자
- 알프레트 베버 - 사회학자
- 로베르트 미헬스 - 사회학자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 사회학자
- 카를 만하임 - 사회학자
- 알프레트 쉬츠 - 사회학자
12.1.10. 심리학자
- 알프레트 아들러 - 심리학자
- 카를 융 - 심리학자
- 오토 랑크 - 심리학자
- 빌헬름 분트 - 심리학자
- 헤르만 로르샤흐 - 심리학자
- 에밀 크레펠린 - 심리학자
- 빌헬름 라이히 - 심리학자
- 카렌 호니 - 심리학자
- 멜라니 클라인 - 심리학자
- 에른스트 크레치머 - 심리학자
- 게자 로하임 - 심리학자
- 야코프 브로이어 - 심리학자
-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 에빙 - 심리학자
12.1.11. 철학자
- 카를 마르크스 - 철학자
- 프리드리히 엥겔스 - 철학자
- 프리드리히 랑에 - 철학자
- 빌헬름 딜타이 - 철학자
- 프란츠 브렌타노 - 철학자
-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 - 철학자
- 프리드리히 니체 - 철학자
- 루돌프 오이켄 - 철학자
- 헤르만 코엔 - 철학자
- 빌헬름 빈델반트 - 철학자
- 고트로프 프레게 - 철학자
- 알렉시우스 마이농 - 철학자
- 파울 나토르프 - 철학자
- 한스 파이힝어 - 철학자
- 에드문트 후설 - 철학자
- 하인리히 리케르트 - 철학자
- 막스 쉘러 - 철학자
- 에른스트 카시러 - 철학자
- 오스발트 슈펭글러 - 철학자
- 카를 야스퍼스 - 철학자
- 루카치 죄르지 - 철학자
- 에른스트 블로흐 - 철학자
- 루돌프 카르나프 - 철학자
- 한스 라이헨바흐 - 철학자
- 모리츠 슐리크 - 철학자
- 마르틴 하이데거 - 철학자
- 헬무트 플레스너 - 철학자
- 발터 벤야민 - 철학자
- 막스 호르크하이머 - 철학자
- 카를 뢰비트 - 철학자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 철학자
- 레오 스트라우스 - 철학자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 철학자
- 칼 포퍼 - 철학자
- 테오도어 아도르노 - 철학자
- 아르놀트 겔렌 - 철학자
- 칼 구스타프 헴펠 - 철학자
- 한나 아렌트 - 철학자
12.1.12. 신학자
- 하르트만 그리자르 - 신학자
- 아돌프 폰 하르나크 - 신학자
- 에른스트 트뢸치 - 신학자
- 요제프 라칭거 - 신학자, 교황
- 루돌프 불트만 - 신학자
-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 신학자
- 카를 바르트 - 신학자
- 카를 라너 - 신학자
- 디트리히 본회퍼 - 신학자
12.1.13. 고고학자
- 하인리히 슐리만 - 고고학자
- 에른스트 쿠르티우스 - 고고학자
- 페터 호르흐하머 - 고고학자
- 게오르크 그로테펜트 - 고고학자
- 카를 리하르트 레프시우스 - 고고학자
- 브루노 마이스너 - 고고학자
12.1.14. 역사학자
- 레오폴트 폰 랑케 - 역사학자
-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 역사학자
- 게오르크 바이츠 - 역사학자
- 빌헬름 폰 기제브레히트 - 역사학자
- 하인리히 폰 지벨 - 역사학자
- 테오도어 몸젠 - 역사학자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 역사학자
-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 - 역사학자
- 한스 델브뤼크 - 역사학자
- 루트비히 폰 파스토어 - 역사학자
- 율리우스 벨로흐 - 역사학자
- 에두아르트 마이어 - 역사학자
- 카를 람프레히트 - 역사학자
- 오토 힌체 - 역사학자
-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 역사학자
- 게르하르트 리터 - 역사학자
- 프란츠 슈나벨 - 역사학자
-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 역사학자
- 오토 브루너 - 역사학자
12.1.15. 미술사학자
- 빌헬름 폰 보데 - 미술사학자
- 하인리히 뵐플린 - 미술사학자
- 아비 바르부르크 - 미술사학자
- 에르빈 파노프스키 - 미술사학자
12.1.16. 화가
- 막스 리버만 - 화가
- 파울 클레 - 화가
- 막스 페히슈타인 - 화가
- 막스 클링거 - 화가
- 프란츠 마르크 - 화가
- 로비스 코린트 - 화가
- 한스 아르프 - 화가
- 게오르크 그로스 - 화가
- 오토 딕스 - 화가
- 막스 슐레포크트 - 화가
- 막스 에른스트 - 화가
- 레온 파이닝거 - 화가
- 막스 베크만 - 화가
- 알렉스 야블렌스키 - 화가
- 바실리 칸딘스키 - 현대 예술에서 중요한 추상화를 그린 화가
12.1.17. 음악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음악가
- 요한 파헬벨 - 음악가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음악가 (영국)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음악가
- 레오폴트 모차르트 - 음악가
- 로베르트 슈만 - 음악가
- 리하르트 바그너 - 음악가
- 안톤 브루크너 - 음악가 (오스트리아 출신)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음악가 (오스트리아 출신)
- 요하네스 브람스 - 음악가
- 구스타프 말러 - 음악가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음악가
- 아르놀트 쇤베르크 - 음악가 (오스트리아 출신)
- 알반 베르크 - 음악가
- 안톤 베베른 - 음악가
-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 음악가
- 브루노 발터 - 음악가
- 프리츠 크라이슬러 - 음악가
- 아르투르 호네거 - 음악가
- 파울 힌데미트 - 음악가
- 쿠르트 바일 - 음악가
- 프란츠 레하르 - 음악가
12.1.18. 작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작가
-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 작가
- 고트프리트 켈러 - 작가
- 테오도어 슈톰 - 작가
- 테오도어 폰타네 - 작가
- 파울 하이제 - 작가
- 카를 슈피텔러 - 작가
- 아르투어 슈니츨러 - 작가
-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 작가
- 프랑크 베데킨트 - 작가
- 슈테판 게오르게 - 작가
- 하인리히 만 - 작가
- 토마스 만 - 작가
- 카를 크라우스 - 작가
- 후고 폰 호프만스탈 - 작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작가
- 헤르만 헤세 - 작가
- 게오르크 카이저 - 작가
- 알프레트 되블린 - 작가
- 로베르트 발저 - 작가
- 한스 카로사 - 작가
- 로베르트 무질 - 작가
- 슈테판 츠바이크 - 작가
- 프란츠 카프카 - 작가
- 고트프리트 벤 - 작가
- 아르놀트 츠바이크 - 작가
- 발터 하젠클레버 - 작가
- 프란츠 베르펠 - 작가
- 넬리 작스 - 작가
- 요제프 로트 - 작가
- 에른스트 윙어 - 작가
- 한스 팔라다 - 작가
- 카를 추크마이어 - 작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작가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작가
- 에리히 캐스트너 - 작가
- 안네 프랑크 - 안네의 일기의 저자
12.1.19. 기타
12.2. 캐릭터
[1] 현재는 3절만 취급한다.[2] 프로이센 왕국의 국화는 수레국화였다.[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3] 분데스레푸블릭 도이칠란트, 독일어로 연방을 의미하는 분데스(Bundes)와 공화국을 의미하는 레푸블릭(Republik), 독일을 의미하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가 합쳐저서 부르는 말이다. 뜻은 독일 연방 공화국. 앞글자를 따서 BRD라고 부르기도 한다.[4] 라인강 서쪽의 독일(라인란트) 지역[5] 과거 독일과 여러번 경쟁하던 프랑스, 영국, 러시아같은 유럽의 강대국들도 결국 현재는 독일만큼의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 양차 대전의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국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유사한 점이 꽤나 많다.[6] 경제력으로는 영국도 있었지만, 영국은 2020년 1월 31일 공식적으로 브렉시트, 즉 EU를 탈퇴했다.[7] 독일어가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세계적으로 국어나 공용어로 많이 쓰이는 언어가 아님에도 EU 3대 공용어로 되어있는데, 이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처럼 유럽 내 독일과 인접한 국가들이 독일어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남미나 아프리카에 사용 인구가 많은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도 EU공용어에 안 들어가 있다.[8] 영어 위키백과[9] 다음 GDP IMF 순위[10]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11]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12] 연합뉴스[13] 해당 한자는 일본식 음독을 그대로 쓰면 도쿠이츠가 된다.[14] 도이치의 음차 덕의지(德意志)에서 따온 것이다. 독일 제국이 칭다오에 건설한 식민지인 키아우초우에서 사용한 화폐를 대덕국보(大德國寶/大德国宝)라고 부른다.[혼합색상] 노랑: 765g, 빨강032: 26g, 검정: 11g, 투명 흰색: 198g[주의] 위에 나와있는 색상을 각각 헥스코드로 변환하면 미묘하게 다른 결과가 나온다.[15] 올림픽 등에서 서독, 동독 단일 팀을 구성하거나 단일 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다. 동독의 국기가 서독과 달라진 이후에는 서독, 동독 공동으로 쓸 때 서독, 동독의 국기에 모두 있는 검정, 빨강, 금색의 3색 국기 위에 작게 흰 오륜 마크를 추가한 것을 썼다.[16] 동유럽에서 공산 정권에 반대하여 투쟁할 때도 비슷하게 국기의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리거나 검은 테이프 등으로 X자를 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을 떼어내기도 했다. 과거 동유럽권 공산 국가들의 국기들은 전통적으로 썼던 과거 국기 위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국장을 덧붙인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17] BGH, Urteil vom 16. November 1959, Az. 3 StR 45/49.[18] 다만 완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이 독일 제국의 프로이센의 국기의 검정, 하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19]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과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등의 관광지에 가면 미국, 소련, 서독, 동독의 국기를 들고 해당 국가의 군복을 입은 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돈을 내면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다.[20] 1절은 '독일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세계 최고의 나라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21] 2절 첫가사가 Deutsche Frauen가 있는데 뜻은 독일 여자이다. 이걸로 인해 남성중심적으로 쓰여졌다는 인식 때문에..[22] 올림픽 등에서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국가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참고로 환희의 송가는 현재 유럽연합에서 쓰이고 있고, 프랑코포니에서도 쓴다.[23] 출산을 많이 하는 서유럽 국가의 경우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분석도 있다.[24] 독일은 EF EPI 2019에서 10위로 우수 등급 중 중하위에 속한다. 영어를 잘하는 국가끼리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못하는 편이지만 독일은 인구도 많고 영어를 자주 쓰는 환경에 노출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잘하는 축에 속한다.[25] #[26]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대학교에서 라틴어 학습자와 비학습자를 따로 구분했다.[27] 소르브어는 슬라브어계 언어이고 소르브인들은 독일 정부에서 인정한 슬라브계 소수 민족이다.[28] 1990년대에 구소련의 독일계 후손들이 독일로 많이 이주했지만, 대부분이 독일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29] 하지만 보통 되너집이고 진짜 정통 터키요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널려있진 않다.[30] 옌스 슈판 외무 장관도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31] #[32] 교회협의회(EKD) 소속이 아닌 루터교회를 말한다.[33] 다만 폴란드와의 접경지대는 폴란드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34] 몬시뇰[35] 루터회 목사[36]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 가톨릭교회는 최강의 집사를 보유한 셈이다.[37] 무엇보다, 한 국가의 신학을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 일반화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그런 경향성이라는게 있을 수는 있지만, 독어권 역시도 영어권처럼 아주 보수적인 신학자와 아주 진보적인 신학자가 공존하는 동네다. "독일 신학은 급진적이다/수구적이다"라는 프레임화보다는, 신학자 개개인의 성격을 조사하는게 훨씬 유익하다.[38] 독일에서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할 경우 증오발언 내지는 혐오선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다. 독일은 기독교(가톨릭+개신교+기타 소수종파) 인구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성소수자들에게 호의적인 국가이다.[39] #[40] 한국의 개신교 고학력 목사 중 유학파는 영미권 아니면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41] 이슬람 근본주의와 현대 정치 사상을 접목하여, 민주주의의 관용을 약점잡아 이슬람 근본주의를 전파하려는 정치 사상 체계[42]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은 한겨울 1월 1일에 일어났는데도, 근본주의 선교사들은 와하비즘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의 선교 자금을 바라는 목적에서, 독일 여성들이 음란한 복장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덕분에 독일 내 모스크들에 대한 와하비즘 선교 재정 지원은 증가했으나 그 결과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온건 성향 무슬림보다 와하비즘 국가가 선교 자금을 더 후하게 주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양심을 팔아먹었다 보면 된다.[43] 결정적으로 외질이 2019년 결혼식 때 독일과 원수지간에 가까운 에르도안을 초청하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44] 기사 참고[45] Minijobs sind sozialversicherungsfrei, d.h., sie begründen keinen eigenen Sozialversicherungsschutz[46] http://www.gegen-hartz.de/hartzivregelleistung.html 참고로 대한민국의 기초생활수급 수당과 비교시 1인가구 60만원, 2인가구 102만원, 3인가구 133만원, 4인 가구 163만원. 국민소득이 2배는 높은 독일이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듯.[47] 참고로 각종 보험과 세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시간당 7.5유로를 받아야, 현재 주휴수당을 포함한 한국의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 된다.[48] 유럽연합 시민권을 가진 루미니아 국적자라던지. 유럽연합 회원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근거하여 EU 회원국 어디서든 상관없이 따로 비자를 받지 않아도 일하고 눌러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49] #[50] 다만 유럽에서 지역 격차 문제는 이탈리아가 더 심한데 쭉 같은 나라였던 이탈리아 남북 격차보다 독일 동서 격차가 덜하다(...)[51] 루르 지역이나 브레멘 같은 독일 북서부 도시들이 공업 쇠퇴로 경제가 침체된 데 반해, 뮌헨이나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같은 남부 도시들은 첨단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물론 북독일이라도 함부르크나 뒤셀도르프 같이 잘 나가는 지역은 있다.)[52] 기초노령연금이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 이상의 나이가 들면 다 주는 연금을 말한다. 당연히 연금이 발달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초노령연금 외에도 공적연금으로 세대간 부양의무를 지우는 국민연금, 그 외에 사적연금으로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으로 다양한 노후보장체계를 마련하여 노후의 빈곤을 막는다. 즉 '''연금 수령액 전체를 통털어서''' 700유로인 것과 기초노령연금'''만''' 500~800유로인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이탈리아 같은 경우 노인들 빡세게 보장해 주면서 세금 부담 때문에 나라가 망해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둥 꼭 좋게 볼 수만은 없다.[53]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이사를 가면 괜찮을 것 같지만, 해외 거주 시 그 나라 물가 대비해서 연금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스페인에 거주한다고 치고 세금 전부 다 떼면 1달 600유로 실수령(...). 스페인에 집이 있다면 모를까 노르웨이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다만 '''기초'''노령연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자. 대다수의 노르웨이인들은 이것보다 당연히 많이 받는다.[54] 오류가 있는데, Vive Le France가 아니라 Vive La France다. 프랑스어에서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e로 끝나는 국가는 전부 여성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Vamos España 이다.[55] 이 가운데에는 쾨니히스베르크 주변 지역의 리투아니아 마이너 주민들도 꽤 있었다.[56] 다만 오늘날에도 인권침해의 경중에 차이가 있다 뿐이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다.[57] 2015년 100만명 이상을 받을 때도 인구절벽을 해소하기 위한 노동력으로 써먹으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자국의 관리 여력을 과대평가해서 사고가 터지기는 했으나, 언제까지나 오판이지 자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려고 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58] 외질이나 알튼톱 형제 모두 똑같이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이 고향이다.[59] 1980년대 케난 에브렌 정권 시절에도 알라의 알 자만 입에 담아도 재수없으면 '인민의 집(Halk Evi)'으로 끌려가 케밥을 코로 흡입할 수 있었다.[60] 민주주의의 관용과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여 숙주로 삼아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 국가를 건설하려는 현대 정치 사상. 이슬람 근본주의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연고주의가 강하고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행실보다는 노선에 따른 편가르기에 집착하는 편이기 때문에, 무슬림 국가 내에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61] 이런 이민자 사회의 보수성은 사실 만국 공통, 민족 공통이다. 뉴욕 맨하탄 한가운데 거주하는 중국계 미국인 중 아직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은 것은 물론 한국계 미국인, 재미동포들도 터키계 독일인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들보다 훨씬 보수적인, 거의 70~80년대 한국의 사고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민 와서 자기들끼리 뭉쳐서 권리를 지키려면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해주는 게 바로 민족 의식과 종교이다. 재미 한인들도 대다수가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한인 교회는 그 극성맞음으로 악명높다.[62] 종종 남아공 출신 백인 난민들도 여기에 같이 집계되는 경우도 있다.[63] 일부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술 취한 여자를 강간하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든지, 몰래 수영장 여성 탈의실에 정액을 뿌리다 걸린 등신들도 있었다... 뉴데일리 같은 극우 매체들은 이를 두고 무슬림들이 전부 다 변태 강간마인냥 묘사하지만 정작 장애인 보호 격리가 잘 되어 있던 터키계 독일인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극히 드물었다.[64] 과거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 방대한 식민지에서 우민화 교육을 적극 시행했던 여파로 새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평균 수준도 낮은 편이다. 적어도 독일에 들어오는 이민자 중 아예 문맹은 드물었다. 또한 오늘날 영국은 영어가 쓰여서 독일어, 프랑스어를 안배우고 대충 엉터리 영어로 먹고 사는게 가능하다는 정보가 퍼지며 세계 각지에서 부적응한 난민들이 몰리는 상황이다.[65] 다만 여기에는 외국에서 이민 온 게르만족도 포함한 것이다. 독일 전체 인구중 게르만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78%정도이다.[66] 독일로 귀화하지 않고 외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독일에 사는 사람들[67] 터키 제외. eu가입국이나 비eu가입국 모두 포함.[68] 북미 출신 20만, 남미 출신 26만. 중앙 아메리카 출신도 9만명이 넘는다.[69] 독일어로는 Altes Schwein. 사람에게 늙은 돼지라고 하는 건 독일에서 아주 심한 욕이다.[70] 1유로는 대략 1369원이므로 4000유로는 한화로 무려 '''547만원'''이다![71] 실업률, 임금은 만 25세에서 만 64세 사이[72] 한국도 노년층까지 포함하면 평균학력이 저정도 수치로 나올 것이다.[73] 마트에서 파는 식자재 말하는 것. 외식 가격은 누가 유럽 아니랄까봐 더럽게 비싸다. [74] 이쪽은 관광객 프리미엄이 붙어서 프랑스급으로 비싸다. [75] 헌데 당시 상황으로는 통화교환을 1:1로 안하기에도 그랬던게 당시 동독의 임금수준이 명목상으로는 서독의 1/3 정도수준에 머물렀었고 (대신 그 만큼 물가는 싸긴 했지만) 동독 마르크의 가치는 잘쳐도 서독 마르크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이 아닌 동 3: 서 1으로 통화를 교환했을 경우에는 동서독의 임금 격차가 무려 '''1:9'''까지 벌어지고 거기에다가 서독의 물가수준은 동독의 물가수준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동 3: 서 1로 교환한다면 통일후엔 그 만큼 빈부격차, 생활격차가 커진다는 얘기이니 셈이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6] 물론 그래도 임금수준이 서독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었고(대신 생산성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물가(바나나나 향수 가격같은 건 크게 싸졌고 여타 물품도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그 대신 주택임대료나 전기료, 수도요금, 식사료는 폭증했다.)는 그보다 더 올라서 동독인들이 많이 불평했었다.[77] 통일연구원, 독일통일 20년 조망 :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주는 시사점 - 통일 주변환경 조성 중심 기사도 참고.[78]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독일국적을 버리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스위스에서 대학을 나와서 스위스에서 특허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그 뒤에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한지로 애매하다.[79]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독일에 남아 과학부 장관 자리에 올라서 독일 핵개발을 지휘했던 사람도 있다.[80] 1896년에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1901년에 국적까지 얻었다. 1914년에 다시 독일 국적을 얻고 1933년에 다시 국적을 포기하고 1940년에 미국 국적을 얻어서 1955년에 사망할때까지 스위스와 미국 국적을 유지한다. [81]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오스트리아 사람이다.[82] 기상학보다는 대륙이동설로 더 유명하다.[83] 기본적으로 헝가리인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출생했고 독일에서 공부한데다 학술 활동도 독일어로 했기에 독일 철학의 범주에 포함된다.[84] 정확히 말하면 칸딘스키는 러시아 태생이지만 뮌헨에서 활동하면서 현대 예술의 중요한 돌파구인 추상화에 이르렀다.[85] #[86] 아프간에서 독일군과 같이 근무했던 캐나다 군인 수기에선 경계근무 도중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독일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가는 근무지 이탈이 있었다고 언급되었고 소말리아에 해적 퇴치를 위해 파견된 독일군 장병들이 지급된 장비를 들고 소말리아에서 용병 활동도 겸업했다는 사실은 한때 독일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