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승

 

宗承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세림(世林). 종자(宗資)의 아들.
남양 안중 사람으로 젊어서 덕행을 수양해 품행이 바랐고 의연히 세속에 휩쓸리지 않아 조정의 초빙에도 나아가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조상의 무덤에 안장해 스스로 흙을 짊어지고 무덤을 만들어 하인의 손을 빌리지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흙의높이는 다섯 자가 되고, 소나무나 대나무에 거기에 났다고 한다.
그의 덕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조조가 20살쯤 되어 여러 번 그를 찾아갔지만 손님이 너무 많아 말을 나눌 수 없었으며, 조조가 종승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가서 손을 잡고 교제를 청했지만 종승은 거절했다.
하옹이 원술에 대해 꾸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자 원술이 이에 원망을 품었는데, 원술이 하옹이 흉악한 인간이라 자신이 죽일 것이라 하자 종승이 하옹은 영민하고 준수한 선비라 잘 대우한다면 천하에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해서 원술이 하옹을 원망하는 것을 그만두게 했다.
조조가 나중에 사공이 되어 한나라 조정을 보좌하면서 찾아와 지난날에 상대를 하지 안해줬지만 지금은 교제할 수 있냐고 묻자 소나무 같은 지조는 여전히 지녔다고 했으며, 조조가 불쾌했지만 현명한 사람이라 그를 존경하고 예우했다. 조조가 조비에게 명해 자제의 예를 갖추게 하면서 집으로 찾아가 종승을 한중태수로 임명하게 했으며, 조조가 기주를 평정하고 업에 이를 때 진군 등이 조조를 배알했다.
조조는 옛날의 감정이 마음에 걸려 종승의 지위를 낮게 하면서도 예우는 남과 달리 했고 종승의 집으로 찾아가 국정을 자문하고 빈객 가운데 상석에 앉게 했으며, 조비가 그를 간의대부로 삼았다. 왕창이 상표를 하면서 종승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왕창이 종승과 함께 동궁의 속관으로 젊어서는 명성을 얻어 주리에서 그를 경모했지만, 늙어서는 보신에 급급해 파면당할 생각만 했기에 당시 사람들이 비웃는다면서 조조와의 교우를 거절하면서도 조비에게 굴복한 것을 비판하고 있다.
조예가 그를 초징해 승상으로 삼고자 했지만 노령을 이유로 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