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칸지
浄閑寺
1. 소개
일본의 절로 에도 시대때 건설되어 현재까지도 존재해 도쿄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 2−1−12가에 있다.'''태어나서는 고계, 죽어서는 죠칸지'''
生まれては苦界、死しては浄閑寺
- ''죠칸지의 공식 소개문''
한국식으로 읽으면 '''정한사'''가 되며 죠칸지는 한 때 에도 시대 최대 규모의 유곽촌이였던 요시와라 유곽 근처(정확히는 메이레키 대화재로 인해 터를 옮긴 신 요시와라)에 있었기에 '''유녀들의 나게코미데라(投げ込み寺, 投込寺)'''[1] 로 유명한 절이다. 지금도 이 죽어간 유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신 요시와라 총영탑(新吉原總靈塔)이라는 사적이 세워져 있다.
미노와의 죠칸지(三ノ輪の浄閑寺)라는 이명도 있으나 유녀들의 나게코미데라로 유명하기에 해당 별명은 잘 안알려져있다.
2. 역사
설립 년도는 1655년으로 신 요시와라 유곽이 개설된 년도(1657년)보다 2년 빠르다. 이렇게 요시와라 근처의 평범한 절이였던 죠칸지가 유녀들의 나게코미데라로 유명해진 것은 안세이 에도 지진(1855년)으로 유녀들 대다수가 사망하자 장례는 커녕 이 유녀들의 시신들 전부 죠칸지 앞에다가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요시와라 내부에 유녀가 죽으면 죠칸지 앞에다가 내다 버리고 죠칸지의 승려들이 이 유녀들의 시체를 화장해주고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관습이 되었고 요시와라가 몰락하고 사라진 근세때도 죠칸지는 관동 대지진과 태평양 전쟁때 일어난 도쿄 공습으로 죽은 매춘부들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현재 죠칸지 안에 있는 유녀들의 유골함은 2000개가 넘어간다.
3. 여담
- 요시와라 유곽은 에도 시대와 메이지, 다이쇼 시대 등 중근세의 에도(현 도쿄)를 배경으로 삼은 미디어 매체에서 질리도록 나오지만 죠칸지는 언급이 잘 안된다.
- 죠칸지를 소개하는 문구인 "태어나서는 고계, 죽어서는 죠칸지" 라는 문구는 당시 신 요시와라 탑과 花又花酔句壁라는 사적을 세울 때 읆은 시로 고계(苦界)는 불교 용어로 "괴로운 인간 세계"를 뜻하기도 하지만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매춘하게 된 "괴로운 유녀들의 처지"를 가리키는 말로 유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