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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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주유만은 1908년 5월 9일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용당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용제동마을)에서 아버지 주진해(朱鎭楷)와 어머니 울진 장씨 장무겸(張武謙)의 딸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이후 큰아버지 주진영(朱鎭楹)에 입양되었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그는 1931년 윤두현(尹斗鉉)·이우정(李愚貞) 등이 울진공작당(蔚珍工作黨)을 조직하자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1931년 9월 울진공작당 비밀총회를 개최하고 운동방침을 협의한 결과 단체명을 극동공산주의자동맹(極東共産主義者同盟)으로 개칭하는 한편, 기존의 울진노동조합 내에 세포조직을 결성하여 조합을 혁명적으로 지도·개조할 것을 결정하였는데 주유만이 그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이에 그는 그해 9월 울진면 호월리에 세포조직을 결성하고 운동자금의 수합방안 등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12월 조직 내에서 지도방침 등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여 극동공산주의자동맹은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1933년 3월 그를 비롯한 이우정, 진기열(陳基烈) 등은 공산주의 운동조직의 재건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함께 하고 그 방안을 협의하였다. 이어 같은 해 4월 울진군 서면(현 금강송면) 하원리 소재 사찰인 불영사에서 가졌던 모임에서는 울진노동조합에 대해 혁명적 개조작업을 착수하기로 하고 조합의 기금정리를 위한 교섭위원 및 실행위원을 선임하였는데 주유만은 실행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조합의 개조를 위해 조합장 진상철과 교섭하는 등 활동하다가 1934년 8월경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35년 7월 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그는 일본 경찰의 가혹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얻었으며, 출옥 후 고향 마을 안팎을 떠돌다 1942년 겨울 객사했다.
3. 기타
200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