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티베트 전쟁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3차 전쟁
4. 결말


1. 개요


중화민국 북양정부국민정부 시기, 3차례에 걸친 티베트와 중화민국 간의 국경분쟁을 말한다. 캄 지역이라 불리는 동티베트의 주권 문제를 놓고 벌어진 전쟁이며 캄 전쟁이라고도 한다.

2. 배경


1911년 청나라가 망한 이래로 티베트는 사실상의 독립국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기존의 중국측과의 국경문제는 손질이 되지않아 티베트의 제13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시캉성과 칭하이성을 침공하였다.

3. 전개



3.1. 3차 전쟁


사천성 군벌 류원후이는 1927년 이래로 시캉성의 13개 현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중국-티베트 국경분쟁에 대한 조정자를 자처하였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 13세는 류원후이의 조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난징에 전보를 보내 장제스가 직접 일을 중재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앙정부는 이를 지방의 사소한 충돌로 인식했으나 이 기회에 변방 국경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1931년 4월 몽장위원회 위원 당가삼을 파견하여 조정을 시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만주사변이 발생하면서 티베트 문제에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되었다. 국민정부는 국난이 일어났으니 일을 빨리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몽장위원회는 1931년 11월 티베트의 영토 확장을 승인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으려 했는데 류원후이 등 사천군벌들과 시캉의 중국인들이 반발하였다. 이에 몽장위원회는 협정 서명을 잠시 보류하였고 티베트 역시 달라이 라마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협의는 무산되었다. 1932년 2월 28일 국민정부는 조정원을 파견하여 8개월 만에 류원후이에게 일을 처리할 것을 지시하면서 중앙의 조정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던 중 1932년 2월 파안에서 티베트인들이 봉기하여 서강성방군과 서강인민자치위원회를 수립하고 중앙정부가 직접 일을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화북과 만주에서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던 국민정부는 류원후이에게 서강의 군사정치를 맡기기로 결정하고 이를 처리하게 했다.
1932년 달라이 라마 13세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서강을 침공했고 중앙정부는 류원후이에게 무력 사용을 허가했다. 류원후이는 1932년 2월 1개 여단을 증파하였고 덕격, 백옥, 등가, 석거 등 4개현을 점령했다. 류원후이는 창도 공격 계획을 수립했다가 사천성 내부의 자신의 경쟁자인 류샹과의 이류지전이 발발한 가운데 영국이 티베트의 편을 들 것을 우려하여 이를 번복하고 티베트에게 적극적인 화해를 요청하였다. 달라이 라마 13세가 이에 응하면서 1932년 10월 8일, 금사강 상하류의 동안과 서안을 티베트와 사천군의 경계로 삼는다는 협정이 체결되었다.

4. 결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티베트는 사천군이 이류지전에 휘말린 틈을 타서 계속 서강으로 진출하여 류원후이 병력을 밀어냈다. 류원후이는 이류지전에서 패배하여 몰락하였지만 류샹을 견제하기 위한 장제스의 의도에 따라 서강성장으로 임명되어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류원후이는 건성운동을 진행하여 1938년 11월 28일 행정원이 서강성 건립을 비준, 1939년 1월 1일 서강성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