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집

 

아랍어 بيت الحكمة‎ [1]
영어 House of Wisdom
1. 개요
2. 설립
3. 연구 성과
4. 몰락
5. 관련 문서


1. 개요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이 마디나트 알 살람, 즉 현재의 바그다드에 건립한 연구소. 부왕인 하룬 알 라시드의 사설 도서관을 개조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당대 유럽 - 중동권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 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조선 후기의 규장각과 비슷한 시설이며, 중세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이자 이슬람 황금기의 원동력이었다.

2. 설립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마문은 제국의 수도를 세계에서 가장 학문적으로 진보된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바그다드는 그의 즉위 과정에서 동생 알 아민과의 내전에서 벌어진 공성전으로 곳곳이 파괴된 터였다. 알 마문은 바그다드 재건의 일환으로 페르시아, 이집트, 이라크 등지의 학자들을 종교에 상관없이[2] 불러들여 합동 연구소를 설립하고자 하였다. 알 마문은 지혜의 집을 지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근처에 종이 공장이 있고 이미 책이 수천 권 비치된 선왕의 사설 도서관이기도 한 하룬의 도서관을 낙점하고 확장공사를 하여, 816년에 지혜의 집 완성을 선포하였다.
알 마문과 그의 후계자들은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학자들을 모집하였고 전국적인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그 결과 지혜의 집은 수많은 인재들이 편안한 조건에서 실험과 토론을 하는 집단 연구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3. 연구 성과


제국 각지에서 몰려든 학자들은 지혜의 집에서 수많은 고대 그리스 서적들 아랍어로 번역[3]하였고, 연금술을 연구하여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 외에도 지혜의 집은 의학, 철학, 건축학, 생물학, 신학 등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며 축적된 지식을 집대성한 학문의 장이었다. 4세기 이후 오리엔트 지방의 학문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던 니시비스에데사의 학교[4]를 계승, 발전하여 학문연구를 이어나갔는데, 당시 세계 (9 ~ 10세기)의 거의 모든 지식을 총 망라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의학 수업 과정

4. 몰락


하지만 아바스 왕조가 10세기에 부와이흐 왕조와 파티마 왕조의 발흥으로 실권을 잃으며 학자들에 대한 후원이 점차 적어졌고, 결정적으로는 1258년에 몽골 군대가 바그다드를 함락한 후 대대적인 파괴를 자행하여 인류의 보배였던 수많은 장서들이 불타 없어졌다.

5. 관련 문서



[1] Bayt al-Hikma[2] 유대교도, 기독교도, 조로아스터교도, 마니교도 등 각지에서 모여들었다.[3] 이는 이후 유럽에, 세계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랜 중세 시기동안 유럽에서는 잊혀졌던 그리스 저작들과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아랍 세계로 전해졌다가 12~13세기 중세 후기에 유럽으로 재수입되었고 이후 르네상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4]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까지의 동로마 제국과 사산 제국간의 전쟁으로 쇠퇴하였으나 이슬람 정복 이후 부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