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공(통일왕조)

 


'''진(秦)나라 2대 국군
양공
襄公
'''
''''''
영(嬴)
''''''
조(趙)
''''''
개(開)
'''아버지'''
진장공(秦莊公) 영기(嬴其)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76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787년 ~ 기원전 766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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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제2대 군주. 진장공의 아들. 진문공의 아버지. 휘는 개(開).
진장공이 견융 땅에서 죽자, 그 뒤를 이어 형인 세보(世父)와 함께 견융과 전투를 벌였다.

2. 생애


진양공 원년(기원전 787년), 그는 풍왕(豐王)에게 여동생 목영(繆瀛)을 시집보냈다.
진양공 2년(기원전 786년), 견구로 천도했는데, 서융족이 견구를 포위하니 세보가 그것을 막다가 서융의 포로가 되었다.
진양공 3년(기원전 785년), 세보가 다시 돌아왔다.
진양공 7년(기원전 771년), 신후는 견융족에게 호경을 치게해[1] 유왕정환공은 여산에서 전사했다. 진양공은 병사를 거느리고 주나라를 구하러 왔다. 평왕이 낙읍[2]으로 동천하자 진양공이 그를 호위했다. 그 덕택에 진나라의 백작이 되었다. 평왕이 호경 주위를 내리니 진나라는 강성해졌다.
진양공 12년(기원전 766년), 진양공이 서융을 토벌하다가 죽고 서수 땅에 묻혔다. 그리고 그 아들이 진나라 군주가 되니 그가 바로 진문공이다.

[1] 그 이유는 자신의 딸과 외손자를 괄시한 것에 앙심을 품어서이다.[2] 지금의 낙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