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공(통일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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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나라의 제21대 군주. 진회공의 손자. 진소자의 아들. 진헌공(秦獻公)의 아버지. 진간공의 조카.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시호가 진숙령공(秦肅靈公)[1] 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재위 기간
진 영공 원년(기원전 424년), 진헌공을 낳았다.[2]
진 영공 3년(기원전 422년), 오양에 머물러 상치를 만들어 황제에게 제사 지내고, 하치를 만들어 염제에게 제사지냈다.
진 영공 6년(기원전 419년), 위(魏)나라는 소량에 머물러 성을 세우자 진나라가 군대를 몰아치니 2년 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진 영공 8년(기원전 417년), 위나라 군은 진나라 군을 물리치고 소량에 다시 성을 쌓았다. 진나라 군은 위의 방어 기지 공사를 막지 못했다. 같은 해 하백에게 여자를 바쳤다. [3]
진 영공 10년(기원전 415년), 번방성을 보수했고, 적고에 성을 쌓았다. 같은 해 진 영공이 죽어 구리의 진 도공의 무덤의 서쪽에 묻혔다. 그런데 아들 진 헌공이 잇지 못하고, 진소자의 아우 진 간공이 즉위했다. 이에 진 헌공은 위나라로 망명했다.
[1] 사기지의(史記志疑)의 저자 양옥승(梁玉繩)은 숙(肅)자가 잘못 기록한 글자라고 한다.[2] 그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는데, 그 파란만장한 일생은 진헌공 문서 참조.[3] 여담이지만 이 당시는 위문후 때로 위 문후는 서문표를 업현의 현령으로 봉했는데, 하백에 죄없는 여자를 바쳐 제사 지내는 사기꾼 무당과 그 공모자들을 처형함으로써 풍속을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