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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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宗權
? ~ 889년 2월
1. 개요
당나라 말기의 절도사 , 도적.
2. 생애
허주에서 태어나 군의 아장으로 복무했다. 허주는 충무군절도사 소속이었는데 반란이 일어나 병사들이 절수인 설능을 죽였다.[1] 이때 진종권이 채주에 있었는데 조정이 임명한 허주자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병사들을 이끌고 난을 진압해 그 공으로 전군사라는 꽤 높은 지위에 올랐다.
능력이 꽤나 있었던지 나중에 그가 당나라를 배반하고 황소에게 붙을 때에는 이미 봉국군절도사의 지위까지 올라 있던 상황이었다.
장안을 점령했던 황소가 계속되는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남전관을 나와 도망가다 죽었는데 진종권이 이 잔여 세력을 흡수해 세력을 키웠다. 황소가 죽고 나서도 진종권은 점차 판도를 넓혀 갔다. 남쪽으로는 회남과 강남을 공격하고 서쪽으로는 장안까지 맞닿았는데 중원에 인적이 끊기고 물고기와 새들마저 문드러지고 흩어질 정도라고 하였으니, 당시 이들의 기세가 얼마나 흉폭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결국 885년, 황제를 참칭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국호나 연호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아무튼 이런 대형 어그로를 끈 탓에 안 그래도 오늘 내일의 일도 알 수 없는 난세에 사방의 적을 만들고 말았다. 특히나 변주절도사인 주전충의 경험치 셔틀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주전충 외에도 서주의 시부, 연주의 주선, 운주의 주근 등의 연합 세력의 계속된 압박에 점차 세력이 깎여 나갔다.
잡히는 과정이 복잡하다. 먼저 총애했던 부하 신총(申叢)의 배신으로 결국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확실히 잡아 놓으려 작정을 한 건지 다리를 꺾어서 도망도 못 가게 만들었다. 게다가 진종권이 잡혔단 소식을 들은 주전충이 부하 위진(韋震)을 보냈는데 이마저 복병을 숨겨 죽이려 들었다. 눈치 빠른 위진이 먼저 몸을 빼내 돌아와서는 주전충에게 용렬한 이들의 조정을 받고 있으니 결국 끝이 좋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과연 신총은 자기 부하인 별장 곽번(郭璠)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다행히 곽번은 별로 욕심이 없었는지 순순히 진종권을 주전충에게 헌납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변주에 끌려 간 진종권을 주전충은 예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싸우면서 정이 든 듯. 그런 주전충에게 진종권 역시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장안으로 압송되어 사형당했다. 그런데 죽기 직전까지도 개그를 했다(...). 지켜보던 백성들이 크게 웃었다는 말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이나 그 때나 사람들 개그 코드는 비슷한 듯하다.주전충: 하관과 함께 근왕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겠습니까?
진종권: 노복이 죽지 않으면 공이 어찌 흥하겠습니까.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의 패업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1] 신당서 희종본기에 따르면 설능을 죽이고 주급을 유후로 세웠다. 주급은 나중에 왕탁의 황소 토벌군에 참여한 여섯 절도사 중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