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당나라)

 

'''대제의 황제'''
건국

'''초대 황소'''

멸망
'''당나라의 반란자'''
'''대제 초대 황제
黃巢 | 황소
'''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존호'''
승천응운계성예문선무황제
(承天應運啓聖睿文宣武皇帝)
'''연호'''
금통(金統, 881년)
''''''
황(黃)
''''''
소(巢)
'''생몰기간'''
835년 ~ 884년
'''재위기간'''
881년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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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 말기의 반역자. 황소의 난을 일으켜 당나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 동음이의어의 동물 때문에 가끔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2. 생애


원래 과거를 노리던 유학자였으나 수차례 시도해도 과거에 낙방되면서 단순히 실력만이 아닌 재력과 인맥이 필요할 정도로 당나라 내부가 썩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당 왕조에 대해 비판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의미에서 국화라는 이름의 시편을 3개 지었다. 국화시는 3수가 있지만 여기서는 2수만 소개한다.
菊花1
颯颯西風滿院裁
가을 바람은 스산하게 부는데, 정원 가득히 심어져있는 국화
蕊寒香冷蝶難來
꽃도 향기도 모두 차가워 나비도 가까이 날아들지 않네.
他年我若爲靑帝
언젠가 내가 꽃을 다스리는 청제가 된다면
報與桃花一處開
복숭아꽃과 같이 좋은 계절에 같은 곳에서 피도록 해주련만.
菊花2
待到秋來九月八
어디, 가을이 오고 중양절만 가까워 와 봐라.
我花開後百花殺
내 꽃 피면 모든 꽃은 죽어간다.
沖天香陣透長安
온 하늘에 가득한 국화향기는 진을 이루어 장안을 쳐들어갈 거고
滿城盡帶黃金甲
온 성은 어디가나 황금갑옷 입는다네.
이후 황소는 소금 밀매를 시작한다. 애초에 고대시대의 소금자체가 필수품이면서 초고가인 상품 중 하나였으며 안사의 난이후 재정이 부실해진 중앙정부의 몇없는 중요 수입원 중 하나였기에 당연히 국가가 독점하는 상품이었다. 다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보니 필요함에도 못 사는 백성들이 많았고 이들을 상대로 직접 몰래 조제한 소금을 비교적 싼 가격에 밀매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황소도 여기에 끼어든 것. 사실 품목만 다르지 하는 짓을 보면 '''마약상'''이나 다름없는 짓이었기에 이 당시엔 좋게 말해서 '협객' 까고 말하면 '조폭'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연이은 쇠퇴에 안사의 난으로 밑천까지 바닥난 당나라의 통제력은 극도로 약화된 상태였으며 거기에 기근까지 들자 친구였던 왕선지[1]의 제의에 동의해 함께 이 둘이 각각 반란군을 일으켰으며 왕선지가 결국 패사한 뒤, 황소는 왕선지의 잔당들까지 흡수한 뒤 게릴라 전략을 바탕으로 당나라의 세력을 갉아먹는 동시에 본인의 세력을 확장시킨다. 이후 동관을 점령한 걸 계기로 승승장구하던 황소는 수도였던 장안까지 함락시키는 데 성공, 그 당시 황제인 희종은 함락시키기 직전 부랴부랴 뛰쳐나와 촉 땅으로 피난갔다.
장안에 도착한 황소는 제(齊)나라를 창건하여 황제로 즉위한 뒤 항복한 관리와 군인들을 적극 기용하며 제국을 굳히고자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황소 정권에겐 경제적 기반이 전무했고, 실질적인 지배 지역도 장안 근교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촉 땅으로 피신한 당나라 대신들은 중원 각지의 병사들을 징발해 황소를 공격했고, 황소의 부장이자 나중에 후량을 세우는 주전충[2]마저 배신하는 바람에 결국 고립되자 장안을 잃고 퇴각해야 했다. 결국 황소는 추격하는 각지의 절도사들의 공격을 받아 결국 패퇴하였고, 끝내 야산에서 자살하였다.
본인이 일으킨 황소의 난 자체는 크게 보면 큰 성과를 맺지 못하고 끝났지만 이 난은 안사의 난 이후로 밑천이 바닥난 중앙정부의 실태를 사방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안 그래도 사실상 군주로 군림하던 절도사들은 황소의 난을 정리하면서 '생각보다 중앙도 별거 아니네?'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결국 사실상 자치나 다름없던 입장에서 아예 당나라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세력을 구축한 뒤 내전까지 벌이게 되었도 당나라 중앙정부는 이걸 제대로 억제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황소의 난 종결 이후 30년도 안 된 시점에서 그 난의 1등 공신 중 하나인 주전충에 의해 멸망한다. 황소 본인은 큰 역할을 못 했지만 그게 도화선이 되어 얼마 안 가 당나라를 멸망시켰으니 그 뜻은 이룬 셈이다.

3. 여담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신라 학자 최치원이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란 글을 썼는데 이 글을 본 황소가 놀라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편찬된 역사서인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등에 전한다. 동국통감 헌강왕 11년.[3][4][5]
뒷날 씌여질 수호전에서도 언급, 송강이 쓴 한시에 이름이 들먹여지며 농락이나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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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의 역대 황제'''
건국

'''1대 황소'''

멸망
[1] 황소와 마찬가지로 소금밀매상이었던 인물. 한창 승승장구하다가 당나라의 뇌물공세에 넘어가 일시적으로 항복했다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척살되었다.[2] 당시 이름은 주온. 전충이란 이름은 당에 투항하고 나서 받은 이름이다.[3]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삼국사기에 해당 기록이 있다고 적고 있는데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는 고변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지은 글이 전한다는 정도의 내용밖에 없고 링크에서도 삼국사절요의 내용을 주석으로 달아놨다.[4] 만일 중국 쪽에 전해졌다면, 애초에 저 토황소격문 공식 발표자 이름은 최치원이 아니라 토벌군 사령관 고변이었으니 고변의 글을 읽은 황소가 라는 식으로 전해졌을 것이다.[5] 최치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고전소설인 최고운전에 나온다는 설이 있는데 최고운전은 아예 '''황소가 격문을 보고 항복했다'''는 내용이다. 진위와 상관 없이 해당 소설에서 유래한 내용이라 보기는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