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희선

 

성명
차희선(車熙善)
본관
연안 차씨
생몰
1890년 4월 7일 ~ 1972년 12월 7일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수청면 가물남리[1]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희선은 1890년 4월 7일 평안북도 선천군 수청면 가물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4월 신민회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지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 회원 800여 명을 체포할 때, 그 또한 1911년 9월에 체포되었고,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1913년 7월 15일 공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고 그 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1914년에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인디애나주에 거주했고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했다. 8.15 해방 후 국내로 귀환하여 서울에 거주했고 1972년 12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차희선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연안 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차경신·차성훈·차원몽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