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호스킨슨
1. 개요
전 비트코인 Education Project 디렉터, 전 이더리움 '''최고경영자''', 현 '''IOHK(InputOutputHK) 최고경영자.'''
암호화폐인 카르다노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개발자이다. 사실상 카르다노의 수장. 카르다노 재단(Cardano Foundation)과의 계약을 통해 2020년까지 카르다노의 플랫폼을 설계하고 구축 및 유지 관리를 약속했다.
2. 역사
미국 콜로라도 주 태생인 걸로 확인되며, 2001년 14살의 나이에 콜로라도의 Flatirons Habitat for Humanity라는 비영리 단체인 자원 봉사단체에서 Thrift Stores(자선 가게)에서 판매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일을 했다. 틴에이저 시절을 그렇게 보낸 찰스는 2008년,덴버의 메트로폴리탄 주립 대학으로 진학해 정수론과 수학, 암호학을 연구하고 2010년에 졸업한다.
2011년 암호화폐에 관심을 들였던 그는 잘 없었던 비트코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소통하며 정모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으나 실제로 참여를 작성한 사람은 3명이었고, 심지어 정모 장소에는 찰스 혼자만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오프라인에서 지역 사회의 암호화폐 관련 모임을 찾던 그는 RSVP를 통해 콜로라도 덴버의 비트코인 모임에 가입하며 활동한다.
블록체인에 매료된 찰스는 2013년 본격적으로 회사를 구축하여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몸답고 있던 컨설팅 업무를 중단하고 그 해 5월달에 비트코인 Education Project를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암호화폐를 설파하는데, 부모님은 그 모습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후에 찰스가 말하길 자신의 결정이 결국 옳았다고 회고했다. 그 온라인 강의를 하는 와중에 서로 뜻이 맞는 다니엘 라리머와 '''비탈릭 부테린''' 등 현재에 있어서 쟁쟁한 이름들을 만난다. 그 해 11월, 비탈릭이 작성한 이더리움 백서에 매료되어 비탈릭과 함께 이더리움 프로젝트에 동참해 이더리움 구조와 암호화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아 그 해 12월 비탈릭과 함께 최고경영자로 올라선다. 하지만 찰스는 이더리움을 벤처 캐피탈의 투자를 받는 영리 단체로 만드려고 했지만 비탈릭은 오픈소스 기반의 비영리 단체로 남길 원했다. 서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2014년 5월에 이더리움을 나온다.
그리고 2015년, 마운트곡스의 해킹 사건 이전에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은 자금으로 같은 이더리움 공동 개발자였던 제레미 우드(Jeremy Wood)를 데리고 그 해 3월, 수십만 달러를 투자해 암호화 및 분산 시스템 분야의 연구 개발 회사인 IOHK를 설립한다. 이후 카르다노 재단과 계약 관계로 만나면서 암호화폐를 설계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에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1] 정확한 틀도 짜여지지 않은 상태로 2015년 10월부터 ICO를 먼저 시작한다. 초기에는 단순히 카지노 게임에 사용되는 코인으로 출발하였으나 찰스가 바라는 이상과 지향점이 녹아 이후 개발 방향이 크게 바뀐다.
2016년 8월부터도 한국에서 ICO를 진행하였으나 크게 홍보가 되지는 않았다. [2] 그 해 12월에 서강대학교에서 '블록체인과 금융' 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원래는 2016년 12월에 메인넷을 런칭하고 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이었으나 무려 이후 '''4번(!)'''이나 연기하는 기염을 토했다.[3] 그렇게 거진 1년이 연기된 에이다는 2017년 9월 29일 메인넷을 런칭하고 2일 뒤인 10월 1일에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트렉스에 상장한다.
상장 이후 5개의 로드맵 단계(Byron, Shelley, Goguen, Basho, Voltaire)에 대한 구현 및 유지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3. 여담
- 이더리움 클래식을 만들면서, "Code is law"라는 가치관을 갖고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에이다 빠들은 스티브 잡스만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재능과 더불어 사업 능력, 추진력도 뛰어나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서는, 암호화폐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와이즈 레이팅스의 평가에 대해서는, 비트코인은 그 파급력과 성장세를 반영한다면 당연히 A를 받아야한다고 디스했다.
- 먹방으로 유명하다(...) 트위터에 식사하는 사진을 간간히 올리기 때문.
- 스톰코인의 고문단으로 참가했다.
[1] 지금은 코인 설계→코인 소개→백서 발간→ICO의 형태를 따르는 게 보통이다.[2] 그당시 암호화폐의 인식은 처참했으니 어쩌면 당연지사.. 당시 한국에서 진행한 ICO의 최소 참여 금액은 10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최소 참여 금액으로 구매한다면 '''400,000개'''의 에이다를 얻을 수 있었다.[3] 16년 12월, 17년 4월, 6월,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