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주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성주는 1878년 2월 9일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한학자 이숙근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철산 출신 기독교인 유상도가 정주에 와서 전도할 때 예수를 영접했고, 1899년 김시항, 최현보 등과 함께 정주읍교회를 설립했다. 1906년 정주읍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고 그 때부터 조사(助事)로도 시무하면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10년 신학교 졸업) 이후 독노회에서 안수를 받은 최성주는 정주읍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 해 8월에는 정주읍교회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1910년 10월 24일 신민회 회원으로서 기부금을 모금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정주구역재판소에서 소위 기부금품취체규칙 위반으로 벌금 10원형을 받았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년간 미결수 신분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심각한 고문을 받았다.
그후 1914년 정주, 박천, 구성 연합여전도회의 파송으로 남만주 전도목사로 임명되어 만주 통화현으로 이주한 그는 목회 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1920년 2월 11일부터 4일간에 걸쳐 중국 봉천성 해룡현 등 8곳에서 100여명이 모여 개최된 한족회(韓族會) 국민대회(國民大會)에서 군비(軍費)를 부담하였으며 독립선전기관을 더욱 확충, 강화하기로 하는 등 6개항을 결의하고 선전주임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만주에서 목회 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1939년 봉천 노회장을 역임했고, 8.15 광복 후인 1946년에 귀국하여 1948년 전남 승주군 낙성교회에 부임하여 시무하였고, 1952년 부산 동래 온천장 양로원에서 전도 및 예배인도를 하며 봉사하다가 1953년 소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최성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