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환(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승환'''
'''崔承煥'''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생년 미상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토봉동
(현재 경기도 구리시)
<color=#fff> '''사망'''
1968년 4월 30일
서울특별시
<color=#fff>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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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승환은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토봉동(현재 경기도 구리시)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경성으로 이주하여 지내던 중 1919년 11월 남만주에 본부를 두고 있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서울지부를 설치하기 위해 김기한·이섬(李暹)·홍영준(洪永俊)·정순영·송내호·이주호(李周浩)·정무순·안흥기 등과 협력했다.
그들은 격고문(擊告文), 사형선고장(死刑宣告狀), 영수증(領收證) 등을 인쇄·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동지들은 모두 실형을 받았으나, 그는 도피하여 궐석재판에서 징역 4년형을 받았다.
이후 숨어지내던 그는 1921년 4월 함흥에서 김유성(金有聲)·이범대(李範大) 등과 해동(海東)불교청년회를 조직하고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여 만주 관전현 왕보석(王寶石)에 있는 대한독립단에 제공할 목적으로 그는 '독립군 환영단장'의 직책을 맡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서 농사를 짓다가 1928년에 공소시효가 소멸된 것으로 알고 다시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8년 3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4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승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