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왈라

 


[image][1]
생몰년 : 659~689
재위 : 685~688
Cædwalla[2]
1. 개요
2. 생애


1. 개요


캐드왈라는 7세기 후반 웨식스의 왕으로서, 웨식스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남부 잉글랜드의 패권을 장악한 정복군주였다.

2. 생애


그의 출신이나 어렸을 때의 일은 기록된 것이 없다. 그의 생애는 대부분을 '앵글로색슨 연대기'와 '성 윌프리드의 삶'에 의존하는데, 재위기간이 3년뿐이었던 탓에 많은 기록이 남아있진 않다.
캐드왈라의 아버지는 첸버트(Cenberht)인데, 그도 웨식스의 왕이었지만 유일한 왕은 아니었다. 당시의 웨식스는 웨식스의 왕을 제외하고도 여러 명의 하위왕(Underkings)들이 다스리던 형태였고, 캐드왈라의 치세에 모두 정리되고 유일한 왕위가 탄생하게 된다.
캐드왈라는 어렸을 적 어느새인가 웨식스에서 추방당했으나 오히려 그 기간 동안 추종자들과 함께 군대를 모아 서식스를 공격해 서식스 왕 에델웨알흐(Aethelwealh)를 죽였다. 그러나 서식스의 영주(Ealdorman) 베르둔(Berthun)과 안둔(Andun)의 반격을 맞고 내쫓겨 서식스를 정복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리고 685년 또는 686년 그는 웨식스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
686년 서식스의 공동왕 베르둔과 안둔이 켄트를 침략해 자신들의 사촌 에아드리치(Eadric)를 왕위에 앉혔다. 그러자 캐드왈라가 다시 켄트를 침략해 에아드리치를 축출하고 자신의 동생 물(Mul)을 왕위에 앉히고, 이어서 서식스를 침략해 베르둔과 안둔을 죽여 이번엔 서식스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서 그는 게르만 이교를 믿던 왕국 와이트 섬을 침략해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 웨식스인들의 식민지를 세웠다. 와이트 섬의 마지막 군주였던 아르왈드는 살해되었고 그의 두 형제는 도주했으나 이내 발견되어 캐드왈라는 그들 역시 살해했다. 하지만 성직자들의 설득으로 그들은 죽기 전 세례를 받았다. 이 전쟁에서 웨식스가 승리했지만 왕 캐드왈라 역시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승승장구를 달리던 캐드왈라는 688년 돌연 퇴위하고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왕위는 이네(Ine)가 이었고, 캐드왈라는 689년 여행 중 와이트 섬 정복에서 생긴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캐드왈라는 개인적인 신앙으로 가톨릭을 믿었지만 그가 세례를 받은 적은 없었다. 7세기면 아직 기독교가 완전히 잉글랜드에 뿌리박기 이전이었으니 그냥 유행에 따라 대충 믿었을 수도 있고, 딱히 독실하지도 않았을 수 있다.
아무튼 그는 로마에서 세례를 받고자 했지만 어쨌든 로마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었고 결국 그는 세례를 받지 못했다.

[1] 16세기의 잉글랜드 화가 램버트 버나드(Lambert Bernard)가 그린 상상화.[2] '캐드왈라'라는 이름은 영어가 아니라 웨일스어 인명인 커드월론(Cadwallon)이 원형으로, 고전 브리튼어 Katuwellaunos에서 유래했다. 더 과거로 가면 고전 켈트어 Katu-welnā-mnos라는 형태였는데, '전투에서(katu-) 이끄는 (welnā-) 1인(-mnos)'이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