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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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톨릭'''(Catholic) 또는 '''천주교'''(天主敎)[2] 는 바티칸의 원수(元首)[3] 이자 로마 주교[4] 인 교황(敎皇)을 수장으로 하며 정교회와 함께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 중 하나이다.
보다 정확한 명칭은 '가톨릭 교회'이다. 이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큰 중심은 로마 교구이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라 불리기도 한다 (명칭과 표기 참조). '교회(church)'라는 것은 본래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를 뜻하는 것이나 개신교의 예배 장소와 구분하기 위해 '천주교 ○○성당'이라는 명칭을 쓴다[5] .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교회'는 오직 가톨릭만을 의미하기에 가톨릭 교회를 그냥 '교회'라고 부른다.
기원은 서기 1세기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초기 교회에서 연유하고 있으며,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인, 391년 테오도시우스 칙령으로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가 된 이후 유럽 각지에 널리 전파되었고, 초기 교부들을 통한 기독교 교리의 보급은 근대 이전 서양의 정신 세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6] . 그러나 제국 분열 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교구 간의 오랜 갈등은 1054년 동서 교회의 분리를 가져왔으며,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어 상호 파문을 선언하는 등 대립하였다[7] . 근대에는 지속적인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해 교회 간의 화해가 이루어졌으며, 오늘날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를 보편교회의 정통으로 인정하게 되었다[8] . 이는 분열의 종결과 재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교회의 화해 자체는 정치・사회 · 종교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9] .
대한민국의 가톨릭은 조선 시대 후기 중국을 통해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정약용 등 남인 계열의 실학자들 사이에 전래되었으나, 조정으로부터의 강력한 박해를 받고 교세가 약화되었다. 가톨릭은 1886년 조선이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수교하면서 합법화되었으며, 이후 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종교적 구심점의 하나로 기능하였다[10] . 1969년 김수환이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1984년에는 103위의 순교자가 시성되었다. (가톨릭/대한민국 문서 참조.)
2. 명칭과 표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보편)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
―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35 - 107?)
'''Catholic'''의 사전적 의미는 옛날에는 '공번(共繙)'이란 한자로, 현대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된다.[11] 즉 Catholic Church는 '''세계 보편 교회'''라는 뜻이다. 영어 발음은 캐썰릭.830. '가톨릭'이라는 말에는 '전체성' 또는 '온전성', '보편성'이라는 뜻이 있다. 교회는 다음 2가지 뜻에서 보편적(가톨릭)이다.
교회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보편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 교회 안에는 머리와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하게 존재한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을"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방법들은 올바르고 완전한 신앙 고백, 온전한 성사 생활 그리고 사도적 계승을 통하여 서품된 직무 등이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성령 강림 날부터 보편된 것(가톨릭)이었으며,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항상 보편될 것이다.
831 교회가 보편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전 인류에게 파견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유일한 이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처음에 인간 본성을 하나로 만드시고 흩어진 당신 자녀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 뜻의 계획을 성취해야 한다.하느님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 가톨릭 교리서 830~831항
가톨릭의 어원인 그리스어 catholic 의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해석은 위와 같다. 형용사로서 해석해 보면 "폭 넓은 다양한 것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이라는 뜻이다. 의역을 하면 '''"보편적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기독교의 용어로 쓰이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가톨릭(Catholic)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또는 공교회)로 하나의 신앙 조직체, 보편적 기독교 신앙의 구성요소, 신학과 교리, 전례와 윤리, 사상적, 실천적인 특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용어이다.[12]
어떤 교회가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보편교회, 즉 가톨릭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다. 여러 종파와 정교회는 각자 자신들이 보편교회임을 주장하고 있다. 개신교(특히 성공회)도 가톨릭주의를 주창하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종파는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말 대신 다른 대체 용어(universal 등)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가톨릭의 어원이 그리스어 καθολικός라고 추정한다. # 제일 앞 음절을 '카'로 쓸지 '가'로 쓸 지 갑론을박이 많은데, 한국어의 ㄱ/ㅋ은 어두에 올 때 어차피 양쪽 다 큰 틀에서는 무성 연구개 파열음 /k/로 소리나며, 차이는 무성 무(약)기음 /k/냐 무성 유기음 /kʰ/냐에 있다. 하지만 유럽 제어에서의 k는 대개 유기음보다는 무기음에 가깝다.[13] 아래에 적힌 ㅂ/ㅍ나, ㄷ/ㅌ도 마찬가지. 자세한 것은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를 참조 바람.
물론 /ㄱ/가 어두가 아니라 유성음 사이에 놓일 때만큼은 유성음 [ɡ]로 실현되고, 이로 인해 외래어 표기에서 'ㄱ'은 본래 /ɡ/를 표기할 때에 쓰게 되어 있으니 /k/에 대한 표기로는 /ɡ/를 연상시키는 'ㄱ'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지만, 1995년 제8차 정부언론외래어 심의공동위원회에서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관용을 존중하여, 가톨릭이 표준어로 확정이 되었다. #1 #2 한국에서 '(로마)카톨릭'이라고 세게 발음하는 건 개신교에서 비하하는 뉘앙스가 연상된다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전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기 때문에 국어사전에는 카톨릭으로 되어있었으나, 교회 측에서 사용하는 고유명사가 가톨릭인만큼 1995년 제8차 정부언론외래어 심의공동위원회에서 '가톨릭'이 표준어로 확정되면서 '''국어사전에서도 '카톨릭'이 아닌 '가톨릭'만이 올라가 있다.'''
천주교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스스로를 그냥 '''교회'''라고만 부르며,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구분하고 싶을때는 '''가톨릭 교회'''라고 부른다. 사실 대부분의 기독교 공동체가 '보편적인(Catholic)' 교회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14]
로마를 중심으로 하기에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 Church, Ecclesia Catholica Romana)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라는 말은 가톨릭 교회 전체를 뜻할 때도 있지만, 동방 가톨릭을 제외한 로마 예법의 교회를 일컫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이러한 뉘앙스 차이를 유의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 전체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안되지만, 자칫 동방 가톨릭 신자들에게 소외감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가톨릭 신자 스스로가 조심할 필요는 있다. 가톨릭교회는 로마 예법 외의 동방 예법을 보존하는 23개 동방 가톨릭 교회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1.5%의 동방 가톨릭교회를 포함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가톨릭교회'라고 부르는게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일각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로마교(Romanism),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으므로, 뉘앙스에 따라서는 '로마'에 대한 강조가 보편성과 대립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한편 정교회는 Orthodox란 명칭도 쓰지만 Ecumenical Church(세계적 교회)란 명칭도 자주 쓰며, 뜻은 가톨릭교회(보편적 교회)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에큐메니컬(세계적)이라는 용어와 가톨릭(보편적)이라는 용어 모두 굉장히 풍부한 뜻을 가진 어휘이지만, 둘 다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모든 지역이 믿을 수 있는 보편적(세계적) 교회'라는 엄청난 자부심이 묻어나는 간판이다. 둘 다 내부에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호칭할 때는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교회'''라고만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예를 들어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말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교회는 이것을 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등등.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여타 잡다한 수식어 없이 '''교회'''라고만 칭해도 자신들을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15]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혹은 간단히 로마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는 로마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전세계 교회를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조금씩 달리해 왔다.
먼저 로마 교회라는 말은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교회라는 의미를 가진다. 로마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57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57~58년경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로마에는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바울로 이전에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전도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들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이다.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문서는 <글레멘스의 제1서한>인데, 이 서한은 주교명단의 첫머리에 베드로의 이름을 적고 있다. 이때의 로마 교회란 ‘베드로에 의해 창설된 교회’ 혹은 ‘로마의 교회’라는 한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라는 말은 또 ‘동방교회에 대립되는 서방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마에 뿌리박은 그리스도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관용령 이후 급격한 발전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단들이 속출하는 현상도 빚게 된다. 이때부터 로마 교회는 로마지방의 교회라는 의미와 함께 이단에 대한 정통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동 · 서로마제국의 분열 후 격화된 교의논쟁으로 그리스도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되는데, 이때의 로마 교회라는 말은 동방교회에 대립된 교회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라는 말은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 교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즉 로마 교회는 ① 그리스도, 교황,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가시적 제도(可視的制度)로서의 교회다. ② 칠성사의 집행으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교회다. ③ 미사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교회다. ④ 성서와 성전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교회다. ⑤ 성지 순례와 수도생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일각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이를 로마교황청 중심의 작은 교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로마 교회를 로마교(Romanism)라고 경시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s)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다.
보편적 교회로서 로마 교회는 교황청 아래 세계의 여러 교구를 둔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로마 교회라는 말은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가톨릭 대사전, '로마교회' 문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천주교''', '''천주교회'''라고도 불린다. 천주(天主)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적은 것으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 유래되었다. 조금 더 고풍스러운 표현으로는 '성교회'라는 표현도 있다. 대한민국의 가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천주교' 명칭을 병용하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천주교 ○○교구'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편의상 ○○동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각 본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XX교구 XX 교회'식이다.
또한 가톨릭교회 내에서도 '''천주교'''와 '''가톨릭'''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병용한다. 이는 이 단어가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들어와 정착되었기 때문인데, 조선 후기 사람들이 catholic을 '가톨릭'으로 인식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천주교 선교사(신부)들이 라틴어를 공부하고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16] 이들은 처음 외래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당연히 자신들의 언어를 기준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카톨릭'이라는 말도 쓰였지만 한국 천주교의 공식적인 표기는 '가톨릭'이다.
한편 세계사 교육의 영향으로 개신교에 대응하여 '구교(舊敎)'라고도 불리나, 구(舊)의 어감과 신교를 승인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권장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교회를 지향하는 종교이다.
3.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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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수는 2018년 교황청 연감 기준 약 13억여 명으로 전체 기독교 인구의 절반을 초과하며, 이는 세계 인구의 17.8%로 약 1/7이 넘는 규모이다. #
여타 종교, 종파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리 문제 등으로 갈라져 나간 경우에는 명칭부터 가톨릭이 아니게 된다.[17] 이러한 시스템과 축적된 역사적 연륜 때문에, 덩치가 커도 여전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 공동체가 상당히 잘 뭉쳐 있다.[18] 따라서 가톨릭은 바티칸부터 명동성당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 사막까지 모든 교리가 예외 없이 모두 같다.[19]
그러나 어디까지나 '교리'가 같다는 이야기이지, 그 교리를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모든 신자들이 똑같은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개신교 출신 개종자의 개신교 세례 인정 문제에서도 영미권 가톨릭과 한국 가톨릭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20] 이를테면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서 심지어는 같은 교구나 수도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워낙 신자 수가 많고 역사가 매우 오래되다 보니,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크다. 실제로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럽의[21] 종교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은 가톨릭과 관련된 내용이다. 근현대에 들어선 개신교 등등의 가시적인 라이벌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은 종교로서가 아닌 정치단체로서도 발휘되곤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가장 비근한 예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는 '''정신적 일체감을 가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 인구로 보면 이슬람보다는 적지만, 이슬람도 따지고 보면 기독교 못지 않게 종파가 갈라져 복잡하기 때문에 단일한 조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체계가 잘 갖춰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으로는 UN이 있지 않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UN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가입하는 조직이고[22] , 허구헌날 으르렁거리는 회원국 사이에 정신적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4. 동방 가톨릭 교회
가톨릭 교회에는 라틴 예법이 아닌 고유의 예법(동방 예법, Eastern Rite)을 따르고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존재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들은 지역별 전례와 교회법, 그리고 전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교리는 가톨릭의 교리를 따르며, 교황의 수위권 역시 인정하고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톨릭 소속 동방 교회는,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콥트와 에티오피아 교회로부터 유래), 시리아,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유래한 가톨릭 교회들까지 있다. 그 기원은 상당히 다양한데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일부가 가톨릭으로 귀일[24] 하여 생성된 교회가 많고, 심지어 이단인 네스토리우스파에서 나와 교황 수위권과 가톨릭 교리를 온전히 받아들인 칼데아 가톨릭 교회도 있다. 반면, 오래 전부터 교황 수위권을 받아들인 뒤 로마와의 일치가 끊어진 적 없이 독자적인 전통을 인정받았던 마론파와 같은 교회도 있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종종 가톨릭 십자가와 정교회 십자가가 합쳐진 형태의 십자가를 가톨릭에서 볼 수 있다. 가톨릭은 물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개신교 신자들 모두가 쉽게 놓치는 부분인데, 이 십자가는 동서 교회의 하나됨을 의미하기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라틴 예법 가톨릭 교회 소속 평신도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규범을 존중하는 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아무 제한 없이 참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다. 예법이 다를 뿐 같은 가톨릭 교회이고 다른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의 가톨릭 신자가 동방 가톨릭 교회에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고 거기서도 7성사는 다 받을 수 있다.
5. 특징
5.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일치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인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교황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교황은 프란치스코. 초기 교회 시대의 교부들은 로마에 근거한 베드로좌와의 친교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온 정통교회인지 이단인지를 구분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해설과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가톨릭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온 "베드로좌(교황청)와의 친교(일치) 포기는 정통신앙 이탈" 원칙을 지금까지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25] 다만 세부적인 정의나 적용은 조금 달라졌는데, 우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처럼 7성사와 사도전승 전통, 신품성사를 통한 변함없는 사도로부터 이어진 성직 체계(주교-사제-부제)를 유지는 하는데, 가톨릭 교황청과의 친교, 일치는 끊어진 유형을 '''이교(Schism)'''라고 한다.[26] 반면 대다수 개신교 종파나 16세기에 사도전승 신품성사 예식이 끊어진 성공회는 이단(Heresy)으로 규정한다.
이교와 이단의 차이점은 이교는 가톨릭은 아니나 초대교회의 직계이며, 가톨릭과의 기본 믿을 교리(7성사 교리 포함) 역시 동일하되 교회의 최고 권위(교황)에 불복하는 상태이고, 이단은 가톨릭에서 필수적으로 여기는 믿을 교리를(하나라도) 고의적으로 부정하여 교회 자체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교회 밖의 신자 공동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개신교는 성체성사나 7성사 교리, 성모마리아에 대한 교리 등을 부정하므로 이단의 정의에 확실히 맞는다. 이교 종파나 이단 종파나 모두 '''고의적으로''' 이런 상태를 선택하거나 교리지식이 충분해져 가톨릭의 진리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해당 타 교파에 남아있다면 고의로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원칙적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본다. 이 원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현재까지 동일하다.
일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불가항력적으로(자기의 탓 없이 비고의적으로, 무지 등에 의해서) 가톨릭을 모르는 사람이 선하게 살 경우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가톨릭 교리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이를 공의회에서 직접 선언하여 교도권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데다, 타종파를 대하는 태도나 사목 방침도 온건해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 '너희는 이단 종파이니 구원받을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천주교인은 많지 않다. 정교회의 경우에는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기 힘들 때 한정으로 서로 성체성사까지 교류하고 있는 상황에, 같은 초대교회의 직계로 인정하는 종파라서 대외적으로 개신교보다도 더 온건한 편. 다만 성체성사의 유효성을 공유(비상상황에서의 상호 성사교류)한다는 사실이 교리적으로 해당 비가톨릭 교파의 교인이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2차 바티칸 공의회 훨씬 이전에도 오리엔트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처럼 성체성사나 7성사의 유효성을 공유하는 교파들은 많았고 그때도 지금도 가톨릭은 해당 교파들의 성체와 성사가 유효하게 축성됨을 인정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해당 교파의 성체 축성의 (교회법상) '합법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가톨릭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고의로 거부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20세기 중반부터 가속화된 교회 일치 운동의 영향때문에 "엥? 가톨릭이 정교회나 개신교 다 인정한거 아니었어?" 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같은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 종파로서 인정하는 것, 그리고 종교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들의 이교적/이단적 상태를 (원론적인 측면에서) 철회하려는 건 아니다.
일단 현재 가톨릭은 정교회에 과거 행해진 파문을 철회하였고(그러나 파문 철회가 정교회의 이교 상태를 해제하는 건 아니다) 오리엔트 정교회 및 개신교와도 공격적인 단죄를 그만두고 끊임없는 화해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단, 교황공석주의나 교황청을 무시한 불법적 주교서품처럼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로마성좌와의 화해나 친교를 거부하는 집단은 여전히 파문으로 단죄한다. 다만 이점에서 논란이 상당한 성 비오 10세회와 중국 천주교 애국회는 2018~2019년 기준으로는 파문당한 공동체까지는 아니고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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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독교 계열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연맹왕국인 정교회나 군웅할거인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은 철저하게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에서 특정 교구나 성당이 비대해지거나 몰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전체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은 일부 트리엔트 전례를 따르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교구에서 똑같은 교리와 똑같은 방식의 미사, 성사, 전례를 진행한다. 대부분의 성당이 동일한 전례를 가지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가도 되지만 성당 내의 인간관계 등 때문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성당에 오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괜히 억지로 다른 성당으로 보내 버리면 냉담자가 되어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점점 터치를 안 하는 분위기가 있긴 하다.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헌금을 걷으면 이걸 1 이란 리알[27] 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교황청으로 올려보낸 다음 교황의 승인 하에 교황청 재정담당자들이 각 성당에서 필요한 예산을 계산해서 정해주는 대로 다시 내려보내준다. 그렇기 때문에 흑자가 나는 성당은 계속 교황청에 돈을 보내는 꼴이며 반대로 적자가 나는 성당은 계속 가톨릭 전체 예산을 빨아먹는 셈이다. 헌금을 걷으면 절대로 자기 교회 밖으로 1 이란 리알도 유출되지 않는 개신교와의 차이점이다.
가톨릭교회 개별본당의 재정원천은 매주의 봉헌헌금(개신교의 연보돈)과 교무금(대개 1달의 1일치, 삼심일조<三什一租>를 권유한다)이다. 교회방침은 각 본당의 예산중 일정비율(7~10% 정도)을 본당의 이웃돕기, 사회복지에 사용토록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교구 운영을 위해 본당 총재원의 일정비율을 교구납입금으로 보낸다. 신자가 많은 성당에서는 교구에 납입할 수 있지만 적은 경우 도리어 자기의 교구청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교황청의 활동, 자선사업에 사용할 경비를 위해 매년 교황주일(성베드로 대축일 6/29에 가까운 주일)에 2차헌금(베드로헌금, Peter’s pence)을 하고, 이를 교황청에 보낸다.
성직자는 '''주교품 > 사제품 > 부제품''' 순으로 품계가 나뉘어져 있다.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에 서품된 성직자를 각각 주교,신부, 부제라고 부른다. 교황이나 추기경, 대주교등은 품계는 주교이되, 부여받은 직책[28] 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예를들어 회사의 경우 부장, 차장, 과장등은 직급이지만 노조위원장, 체육부장, 민방위대장등은 직책인것과 마찬가지다. 교황이라는 직책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은 모두 '''주교품'''에 해당하며, 앞서 설명했듯이 주교품에 해당하는 성직자는 모두 '''주교'''라고 부를수 있으므로, 교황과 추기경도 '''주교'''라고 부를수 있다. 실제로 교황의 다른 명칭으로 ''' "로마의 주교 (Episcopus Romanus)" '''와'''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 (Archiepiscopus et metropolitanus provinciae ecclesiasticae Romanae)" '''등이 있다. 사제 안에서도 각 본당의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들(교구사제), 수도회의 수도사제[29] 들이 있다.[30] 또한 성직자들과는 완전히 별개로[31] 수도자들 역시도 계급이 있다. 수도자는 각 수도회의 장상에게 순명할 의무가 있다. 또한 평신도들은 성직자의 교도권에 대해 무조건 절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32]
게다가 가톨릭은 여타의 종교에 비해 보고 체계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으며, 그래서 사건이 발생하면 일반 신부에서부터 교황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보고가 들어간다. 그러면 사소한 사항은 주교 선에서 해결하고, 중대한 사항은 교황이 판단한다.
심지어 교구 신부들의 경우, 흡사 군대에서 장교들을 뺑뺑이 돌리듯 한쪽 성당에 눌러앉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다른 성당에 발령난다. 왜냐하면 한 성당에서 신부가 오래 눌러 앉으면, 해당 본당의 평신도들과 결탁해서 횡령 등의 영 좋지 못한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은 사제를 출신 연고지 본당으로 발령보내지 않는 암묵의 룰이 있다. 그래서 서품을 받은 뒤에 첫 미사만 출신 연고지 본당에서 집전하고 다른 동네를 떠돌게 된다.[33]
성경 스터디도 교구나 본당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교구나 본당의 인준, 관리를 받지 않은 개인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가톨릭 교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것을 모르는 일부 신자들이 모 사이비 종교의 성경 스터디에 가입해서 해당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정상적인 개신교에서 개설한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성경 번역본에 대해서는 전례용은 반드시 교회가 전례용으로 승인한 것만을 사용하며, 신자 개개인의 통독용 성경도 가톨릭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imprimatur) 번역본만 보는 것이 권장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개신교 성경을 개인 차원에서 보는 것을 막지는 않으나[34] 주위에서는 가톨릭용 내지는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 공동번역(에큐메니컬) 번역본을 보라고 적극 권면할 것이다.
교회법을 봐도 가톨릭의 중앙집권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주교제 교파인 정교회와 성공회만 해도 각 지역 관구별(총대주교구)로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 개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한성공회 교회법은 영국 성공회 교회법과 별개로 존재한다.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교회법의 제정, 개정 권한은 오로지 교황청(바티칸)에만 있다. 각 지역 가톨릭 관구들은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지역에 맞는 지침이나 세칙만 만들 수 있다. 단, 교회법에 대한 지역 보충 규정은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이는 전례 개정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가톨릭에서는 한국어 미사통상문 표현 하나 수정하는 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미사경문, 그날의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지만, 강론(설교)는 집전 사제에 따라 다 다르다.
교회 차원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교리서도 교황청 차원에서 직접 편찬한 표준 교리서가 있다. 개신교 같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교파가 갈리는 개신교[35] 에 비해 시간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수직구조와 질서, 종횡의 짜임이 매우 치밀하다. 그만큼 덩치가 커지는 바람에 보수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평도 있지만, 단일 조직으로서는 매우 철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계서제를 통해서 하부 조직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보이지만 이것도 완벽하진 못한 듯,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집단 파문사태까지 이를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물론 모든 종교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단점과 추태가 나타나기 마련인 법이며, '''수십~수백 개 교파/교단의 통제가 아예 안 되는''' 개신교에 비해 아주 잘 관리된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도 성공회와 같이 일부 체계가 잘 잡혀있는 교파/교단은 제외되지만 그것도 '교파/교단 내'에서의 통제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이러한 중앙집권제는 교회 조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목사의 성향에 따라 예배가 크게 달라지는 개신교와는 큰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은 전 세계 모든 미사의 말씀 전례에서 선포되는 성경의 구절이 같다. 몇월 며칠 미사에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는다면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식민지 출신 국가든, 교황청이든, 미국 보스턴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중심의 성당이든, 남부 독일 바이에른이든, 멕시코, 브라질 같은 중남미든, 서울특별시이든 대구광역시이든 전부 같은 내용을 다룬다. 목사의 성향에 따라 예배형식과 성경본문, 설교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개신교와는 큰 차이점이다.
게다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앙집권제는 적용되는데 헌금은 단돈 1몽고(0.0043원)조차 누락시키지 않고 모조리 교황청으로 송금된 이후 교황청에서 해당 성당에게 필요한 만큼 예산을 내려준다. 이로인한 장점이 있다면 헌금이 많이 걷히는 성당의 헌금으로 다 쓰러져가는 성당을 구제해주기 때문에 망하는 성당은 일절 없다는 점이다. 교회가 헌금을 걷으면 자기네 교회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미자립교회가 금방 망하는 것과 대조된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전례력 통일은 로마 또는 라틴 예법을 사용하는 교회 한정이므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전례 양식이 다르다. 또한 주일이나 주요 축일, 사순/대림시기를 제외한 날에는 주례 사제에게 미사의 목적에 맞는 일부 기도문과 독서 목록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나 지역, 수도회마다 특별히 고유하게 기념하는 기념일이나 축일 등이 있기 때문에 그 날의 전례가 달라질 수 있다. 어쨌든 같은 예법을 사용하는 교회라면 통일된 전례 양태를 보인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중세 시절 정해진 미사 양식에 따른 것으로, 초기 카타콤에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시절에도 신부들끼리 해당 일의 성경 구절을 짜맞추어 날짜에 맞게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이게 경신성사성에서 생각보다 잘 짜놨기 때문에 주일 미사에 3년 동안, 그리고 평일 미사에 2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 주요 성경 구절을 모두 통독할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이 독서 목록(라틴어: Ordo Lectionum Missae)이 나오자 개신교에서 참고하여 성서정과라고 부르는 비슷한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성무일도까지 1년 동안 하면 거의 완벽하다. 이렇게 1970년 이후로 가톨릭은 공식적인 전례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읽는 종파라고 할 수 있다.
5.2. 라틴 예법의 독신 성직자 제도
라틴 예법에서 독신 성직자 제도를 택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36] 원래 유대교에 기반을 둔 만큼 기혼 성직자가 옛날에는 허용되어 있었고 당장 사도 베드로만 하더라도 기혼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독신 사제는 라틴 가톨릭 교회의 '예법'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아니다.
공의회 문헌이 말하듯, 영구적 금욕은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톨릭은 인식한다. 즉 라틴 가톨릭 교회 내부의 예법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사제생활교령] 16. 하늘 나라를 위하여 지키는 완전하고 영구적인 금욕은 주 그리스도께서 권고하셨다. 시대를 거쳐 오며 또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훌륭하게 지키고 있으며, 교회는 언제나 사제 생활의 특수 형태로 이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그것은 목자다운 사랑의 표지인 동시에 자극이며, 또한 세상에서 영적 풍요의 특별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실천과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것은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모든 주교와 함께 은총의 선물로 독신을 지키겠다고 선택하는 사제들도 있지만 그 밖에 대단히 훌륭한 기혼 사제들도 있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권고하지만 동방 교회에서 정당하게 시행하고 있는 다른 규율을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으며, 혼인 안에서 사제직을 받아들인 모든 이가 성소를 끝까지 지키며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위하여 그 생애를 온전히 아낌없이 바쳐 나가도록 커다란 사랑으로 격려한다.
이런 예법이 만들어진 원인은 나중에 교세가 퍼지고 나서 성직의 부자 세습 등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어 일부러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성경에서 예수가 하늘나라를 위해 '''불구'''가 된 사람에 관한 칭찬(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37] ), 그리고 바오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독신이었던 것을 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성직자가 결혼하여 그 자식이 성직에 종사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재산이 외부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
라틴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직자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부제의 경우 기혼자도 부제품으로 서품 되어 부제가 될 수 있으나 이 경우 종신부제가 되어 사제품으로 서품되지 못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의 사제 이하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전통이 인정되어 기혼 사제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성직에 있을 때 배우자와 사별하면 재혼할 수 없다. 주교는 기혼자 중에서 서임될 수 없으며, 수도회 소속의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 한편 정교회는 기혼자도 사제가 될 수 있지만 사제가 된 이후 결혼이나 재혼은 불가능하며, 주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 임명된다. 성공회는 주교를 포함한 모든 사제의 결혼이 허락된다. 하지만 가톨릭의 경우에도 다른 종파(특히 성공회와 정교회)의 성직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부가 되었을 경우, 그 이전에 결혼한 것은 인정하여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교리로 삼으므로 이혼도 원칙적으로 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의 예를 보면, 성공회 등 다른 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처자식이 있는 신부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주교 등의 고위 성직자가 될 수는 없고 평신부에 머물러야 한다.
6. 가톨릭의 4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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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4가지 교리를 '''교회의 4대 교리'''라고 하며[38] , 이 교리는 환자의 경우 대세를 주기 위해서 가르쳐야 할 핵심교리이다. 평신도도 위급한 경우에 한해 4대 교리만을 가르치고, 대세(代洗), 즉 정식 세례를 받기에는 위급한 병자에게 베풀 수 있는 약식 세례성사를 베풀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위급한 경우라고 해도 4대 교리는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주는 세례성사에서도 4대 교리는 반드시 주지시킨다. [39]
4대 교리는 4자로 된 한자(漢字)성어 형태로 말하는데, 다음의 4가지이다. 이는 가톨릭이 처음 전파될 당시 가톨릭 교리문답을 크게 4가지로 정리해서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1. 천주존재 (天主存在) :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시다.
1. 삼위일체 (三位一體) : 하느님은 다만 한 분이 계시지만 위(位)로서는 세 위를 포함하여 계시니,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1. 강생구속 (降生救贖) :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모든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제2위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사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써 구속사업을 완성했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 구속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됨.
1. 상선벌악 (賞善罰惡) : 하느님은 죽은 후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
7. 성모4대교의
가톨릭은 이 외에도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성모4대교의'''라고 하며, 이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의 의미이지 4대 교리처럼 흠숭의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예비신자 교리 때 보통 이걸 배우게 되며, 교황무류성을 통해 선포된 내용이므로 가톨릭 신자라면 반드시 믿어야 한다.
1. 테오토코스(천주의 모친):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2위인 성자 하느님이시므로 그 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2. 평생 동정: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출산하기 전과 이후 모두 어떠한 아이도 낳지 않고 동정으로 사셨다.
성모 마리아는 원죄가 없으므로 공심판까지 부활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8.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
가톨릭은 신자가 되는 것도 꽤 번거롭고, 신자가 되어도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종교다. 가톨릭 신자의 의무가 몇 가지 정해져 있는데 다음과 같다. 그러나 가톨릭은 이슬람교처럼 근본적이고 독실한 신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모두 지키는 신자는 많지 않다.
- 1. 주일과 의무축일 미사에 빠지면 안 된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의무축일을 4번으로 정해놓았는데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주님 부활 대축일(춘분이 지나고 첫 맞이하는 만월(滿月)이 지난 주일(일요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4번이다.
- 2. 금육과 단식을 지켜야 한다. 금육은 매주 금요일이고, 단식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금육은 날개 달린 동물 또는 4발 달린 동물의 고기나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고, 단식은 하루 1끼는 먹고, 1끼는 간단히 요기만 하고, 1끼는 완전히 굶는 것이다. 그리고 금육과 단식의 목적은 신자들을 괴롭히려는게 아니라.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으로 수난당하고 죽음당하신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자는 의미, 그리고 육고기나 식사를 절제함으로 인해 아낀 돈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선하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 2-1) 다만 금육은 만 14세 이상부터 죽을 때까지, 단식은 만 18세부터 만 61세까지가 그 대상이며, 그 외에 환자, 허약체질, 육체노동자, 여행자, 수험생 등은 사전 관면을 받으면 걸러도 된다.[41] 하지만 사순절이나 성 금요일을 제외한 금요일의 금육의 경우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의무적인 것이 아닌, 신자들이 육고기음식을 금하는 전통적 금육이나 혹은 가족기도, 선행, 자선, 금연, 금주 등 다양한 희생으로 대체해서 지킬 수 있도록 완화했다.[42] 또한 금요일이 교회가 지정한 대축일과 겹치면 그날 금육 의무는 자동으로 면제된다. 대표적으로, 부활절 직후의 8일간인 부활 팔일 축제 동안에는 금요일이더라도 금육이 자동 면제되며, 이외에도 연중 시기에도 간혹 금요일이 대축일과 겹쳐 금육 의무가 없는 날이 있다. 인터넷에서 가톨릭 전례력을 검색하거나 성당 달력 등을 확인하여, 금요일에 작은 글씨로 '금육'이라는 글자가 없는 날은 금육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 2-2) 그리고 금육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값비싼 고기를 먹지 않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따라서 금육일이라고 비싼 회를 먹는 행동은 취지에 다소 어긋나는 것이다.[43] 금육이라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그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 2-3) 전국의 가톨릭계 대학 학생식당 및 가톨릭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유치원 급식까지, 금요일 메뉴에서 육고기를 보는 건 쉽지 않다. 이 때는 생선이나 오징어 등 다른 단백질원이 제공되곤 한다.
- 2-4) 단, 위에서도 서술했고, 신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사실 가톨릭 교회에서는 1966년 이후에도 '재의 수요일'[44] 과 '사순 시기의 모든 금요일'들, 그리고 '성 금요일'[45] 에는 단식과 금육의 완화를 주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국가 지역교회의 공식적인 관면이나 별도 사목적 지시사항이 없는 이상, 사순 시기의 금요일에는 고기음식을 피하는 방식의 전통적 금육을 지켜야 하고,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엔 가톨릭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을 같이 종일토록 지켜야 한다. 단식의 방법에 대해서는 상술한 방법 참조. 또한 많은 신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금육재와 단식재 역시도 교회법이 정한 중한 계명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았을 시(관면도 안받고 대체 행위도 안했다면) 7성사와 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꼭 해야한다. 다만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정[46] 으로 인해 금육을 지키지 못할 경우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지킬 수 있는 경우는 최대한 금육/단식을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주일 등을 이용해 본당신부님께 말씀드려서 관면허락을 받거나 육식에 상응하는 다른 희생적 행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3. 교회법에 의해 1년에 1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는데, 한국 가톨릭에서는 1년에 1~2회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도록[48] 하고 있고, 이 때 신자 수를 집계하여 서류상 신자인 사람들은 따로 냉담자로 분류해서 신자 수에 집계하지 않는다. 신자들은 판공성사를 본 뒤 성사표[49] 를 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 신앙심도 깊고 성당도 매주 꼬박꼬박 나가는 사람이 판공성사를 못 봐서 냉담자로 처리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다만 판공성사를 3년 이상 거른 신자를 냉담자로 분류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발표하는 신자 통계에서 제외시킨다는 주장은 약간의 오류가 있으며, 상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3-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된‘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라는 규정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따로 성사표를 받아서 고해성사 하고 고해실 안에 있는 별도의 바구니[47] 에 성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 4. 1년에 1번 이상, 웬만하면 부활절 때 (고해성사를 보아 깨끗해진 양심과 마음으로)성체를 모셔야 한다.[50]
- 5. 교무금을 내는 것도 신자의 의무이자 양심이다. 천주교회에서 도움을 받는, 다시 말해 찢어지게 가난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입의 1/60에서 1/10까지 자발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무조건 내야 한다. 수입에서 정해진 액수도 없다. 그냥 본인이 내는 대로 내면 된다. 1,000원을 내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를 위해 대다수 성당 사무실에는 통장 리딩기와 결제장비들이 갖추어져 있다.[51]
- 6. 가톨릭교회의 혼인 교리를 존중하며, 혼인법을 잘 지켜야 한다.(혼인성사 참조.)
종교 중에서는 신자 관리가 대단히 명확한 편이다. 인구조사에서 집계되는 신자 수가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신자 수보다 많은 유일한 종교. 이는 매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판공성사를 받지 않는 영세자를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냉담자로 간주하여 신자 집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업체의 ERP시스템에 비견되는 통합된 전산 시스템인 양업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냉담자 처리를 확실하게 한다.
한국 천주교는 1년에 2차례(사순시기와 대림시기) 실시하는 판공성사를 3년 동안 하지 않거나 성사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를 쉬는 교우(냉담자)로 분류하여 교적을 본당에서 교구청으로 이관하고, 판공성사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적은 교구청에 보관하며, 당연히 신자 통계에 포함시킨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신자 수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가 발표하는 교세 통계 상의 신자 수보다 더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 가운데 다음 2개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신랑과 신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비신자일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 관면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된다. 혼배 당시 비신자였던 배우자가 여전히 세례성사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신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도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천주교에 대해 딱히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에서 "우리 집은 천주교 믿어요."라고 응답하는 경우 교적에는 없는 사람이 정부 통계에는 신자로 잡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둘째,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들이 10살 안팎쯤 되면 교리를 배워 첫 영성체를 하게 되며, 비로소 천주교 신자로서 교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서는 앞의 첫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실시하는 조사에서 교적 여부에 관계 없이 신자로 응답한다.
9. 7대 죄악과 7대 주선
자세한 것은 7대 죄악 문서 , 7대 주선 문서 참고.
10.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
금욕과 배란주기관찰법을 제외[52] 하고, 콘돔, 루프, 정관수술, 체외사정, 경구피임약 등 '''모든 형태의 인위적인 피임과 낙태, 그리고 시험관 아기를 비롯한 인공수정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강하게 금지'''[53][54] 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꼬마 아이가 가스불이 켜진 주방에 간다면 부모는 "가지마!"라고 경고한다. 이는 아이에게 주방으로 가는 자유를 뺏으려고 하는 행위가 아닌, 아이가 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낙태를 죄로 여기는 것은 인간을 규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낙태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더 큰 죄와 악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설명한다. 그렇기에 가톨릭에서 낙태는 당사자뿐 아니라 낙태를 주선한 이 역시 죄를 짓는 것이다. # #
그런 이유로 낙태의 부분 허용을 명시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 14조[55] 의 '''전면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낙태 반대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를 보다 세부적으로 자세히 파악하고 싶다면 낙태 문서의 '종교적 관점' 문단을 참조할 것.
체외사정의 경우 기독교에서 인공 피임 금지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인 창세기 38장 1-10절에서 문제가 된 행위가 바로 질외사정이었다(이것은 다른 종파들의 경우,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배란촉진제 사용에 대해서도 교육할 때 겁을 준다. 교회법에서 살인, 유괴와 함께 교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행위에 대해 처벌 조항이 있는 드문 케이스.
그 중 낙태죄의 형벌이 가장 강하며, 일반적인 낙태와 사후피임약[56] , 질내 피임 기구 등을 이용한 피임을 전부 포함한다. 낙태죄를 범한 게 확실한 사람은 '''자동 파문'''된다. 또 낙태에 협력한 사람도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 되어 마찬가지로 '''자동 파문'''된다. 원칙적으로 이 죄에 대한 사면권은 교황과 주교에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주교나 교황을 찾아가 고해를 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여성들이 보다 쉽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면서 낙태에 대한 사면권을 크게 확대했다. 즉 모든 사제에게 사면권을 준 것이다. 자비의 희년 1년 동안 적용되는 한시적인 조치였으나 무기한으로 바뀌어 회칙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의 경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서구와는 달리 여전히 가톨릭 교세가 강하지 않은 선교권 국가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서는 주교들의 사면 권한은 이미 신부들에게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성품성사 문서 참조. 그래서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부들이 예전부터 고해성사를 통해 낙태죄를 용서해 왔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가톨릭교회가 낙태를 받아들이거나 방조한다는 것은 아니다. 죄는 단죄하지만 죄를 뉘우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낙태는 여전히 '''대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낙태는 비극이며 분명히 잘못된 행위"라고 했다. 다만 교회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낙태를 선택하거나 강요당한 여성들, 깊이 깨닫지 못하고 낙태에 협조한 사람들, 낙태 이후 죄의식 때문에 신앙으로부터 멀어져간 사람들에게 이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를 하려는 것이다.
간혹 금욕도 강요한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있으나, 사실 날짜계산법 자체가 가임기를 피하기 위한 1달에 약 10일 정도의 주기적인 금욕이다. 날짜계산법을 인정하는데 금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모순된다.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평생 금욕하며 살아간다. 평신도들도 본인이 원한다면 평생 금욕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도 매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느님이 주신 하나의 생명체인 배아를 연구를 위해 파괴하는 것을 살인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공수정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현재 가톨릭에서는 성관계를 하느님께서 부부 사랑의 표현과 자녀 출산을 위해 주신 성스러운 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 또는 생명 연구를 위한 생명의 파괴를 반대하고 있다. 자위행위, 부부관계를 벗어난 혼전성관계 및 혼외 성관계(간통 등), 동성 간 성행위,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첨언을 하자면, 피임에 관한 신학적 견해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 사이에서 꽤나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황 바오로 6세가 "인간 생명" 회칙을 발표하며 모든 인공 피임 수단이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하자마자 독일 주교들은 이에 반발하며 "쾨니히스타인 선언"을 발표하며 피임법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평신도들 개인의 양심에 맡기자고 주장했을 정도. 물론, 교계 제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해 여전히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57] 사실 이 논쟁은, 그저 성에 관한 논란이 아닌 "교회의 권위"에 관한 논쟁으로 대두되었을 만큼 매우 중요하다. 이에 관심이 있다면 하단의 링크에 첨부한, 상반된 의견의 두 칼럼을 참고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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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타 종파와의 차이
11.1.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해
'''INTRODUCTION'''
서론
The Second Vatican Council, with its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and its Decrees on Ecumenism (''Unitatis redintegratio'') and the Oriental Churches (''Orientalium Ecclesiarum''), has contributed in a decisive way to the renewal of Catholic ecclesiology. The Supreme Pontiffs have also contributed to this renewal by offering their own insights and orientations for praxis: Paul VI in his Encyclical Letter ''Ecclesiam suam'' (1964) and John Paul II in his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1995).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과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론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하였음은 누구나 주지하는 바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6세의 회칙 「주님의 교회」(1964년)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1995년)를 통하여 교황들도 통찰과 실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The consequent duty of theologians to expound with greater clarity the diverse aspects of ecclesiology has resulted in a flowering of writing in this field. In fact it has become evident that this theme is a most fruitful one which, however, has also at times required clarification by way of precise definition and correction, for instance in the declaration Mysterium Ecclesiae (1973), the Letter addressed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Communionis notio'' (1992), and the declaration ''Dominus Iesus'' (2000), all published by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이에 따라 교회론의 다양한 측면들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하려는 신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분야에서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이 주제는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잘못을 바로잡아 설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교회에 관한 현대의 오류를 반박하는 가톨릭 교리) 선언 「교회의 신비」(1973년),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친교의 개념」(1992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성과 구원적 보편성에 관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2000년)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목적에서였다.
The vastness of the subject matter and the novelty of many of the themes involved continue to provoke theological reflection. Among the many new contributions to the field, some are not immune from erroneous interpretation which in turn give rise to confusion and doubt. A number of these interpretations have been referred to the attention of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Given the universality of Catholic doctrine on the Church, the Congregation wishes to respond to these questions by clarifying the authentic meaning of some ecclesiological expressions used by the magisterium which are open to misunderstanding in the theological debate.
이 주제의 광범위함과 관련된 여러 주제의 새로움은 지속적인 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 분야에서 새로 발표되는 수많은 글 가운데 일부는 오류가 있는 해석에 물들어 있어서 혼란과 의혹을 낳고 있다. 신앙교리성은 이러한 여러 해석들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의 보편성을 고려하여 교회론과 관련하여 신학 논쟁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교도권의 몇몇 표현들의 진정한 의미를 밝힘으로써 이러한 물음들에 응답하고자 한다.
'''FIRST QUESTION'''
Did the Second Vatican Council change the Catholic doctrine on the Church?
문의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이전 교리를 바꾸었는가?
'''RESPONSE'''
The Second Vatican Council neither changed nor intended to change this doctrine, rather it developed, deepened and more fully explained it.
답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바꾸지 않았고 그러한 의도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발전, 심화시키고 더욱 완전하게 설명하였다.
This was exactly what John XXIII said at the beginning of the Council.[1] Paul VI affirmed it[2] and commented in the act of promulgating the Constitution ''Lumen gentium'': “There is no better comment to make than to say that this promulgation really changes nothing of the traditional doctrine. What Christ willed, we also will. What was, still is. What the Church has taught down through the centuries, we also teach. In simple terms that which was assumed, is now explicit; that which was uncertain, is now clarified; that which was meditated upon, discussed and sometimes argued over, is now put together in one clear formulation”.[3] The Bishops repeatedly expressed and fulfilled this intention.[4]
이는 요한 23세가 공의회를 시작하며 한 연설에서 분명히 밝힌다.1) 바오로 6세는 이를 확인하였고,2) '교회 헌장'을 반포하며 이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러한 반포가 전통 교리에서 실제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셨던 것을 우리도 바랍니다. 과거의 것이 지금도 여전합니다. 교회가 수 세기 동안 가르쳐 온 것을 우리도 가르칩니다. 한마디로, 추정되던 것이 이제 분명해졌고 불확실하던 것이 이제 명쾌해졌으며, 숙고하고 토론하고 때로 논쟁하던 것이 이제 하나의 분명한 정식으로 종합되었습니다."3)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이러한 뜻을 여러 번 표명하였고 또한 실현하였다.4)
'''SECOND QUESTION'''
What is the meaning of the affirmation that the Church of Christ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문의 2: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RESPONSE'''
Christ “established here on earth” only one Church and instituted it as a “visible and spiritual community”[5], that from its beginning and throughout the centuries has always existed and will always exist, and in which alone are found all the elements that Christ himself instituted.[6] “This one Church of Christ, which we confess in the Creed as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 This Church, constituted and organised in this world as a society,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7]
답변: 그리스도께서는 단 하나의 교회를 "이 땅 위에 … 세우시고" 그것을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로 제정하셨기에, 이 교회는 처음부터 수 세기 동안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며 그 안에서만 그리스도께서 몸소 제정하신 모든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6)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it)."7)
In number 8 of the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subsistence’ means this perduring, historical continuity and the permanence of all the elements instituted by Christ in the Catholic Church[8], in which the Church of Christ is concretely found on this earth.
교회 헌장 「인류의 빛」 8항에 나오는 '존재한다'는 말은, 이 변함없는 역사적 지속성과 가톨릭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세워 놓으신 모든 요소의 항구함을 의미한다.8)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된다.
It is possible,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to affirm correctly that the Church of Christ is present and operative in the churches and ecclesial Communities not yet fully in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on account of the elements of sanctification and truth that are present in them.[9] Nevertheless, the word “subsists” can only be attributed to the Catholic Church alone precisely because it refers to the mark of unity that we profess in the symbols of the faith (I believe... in the “one” Church); and this “one” Church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10]
가톨릭 교리에 따라, 가톨릭 교회와 아직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않은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들이 있는 만큼,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 안에도 현존하고 활동한다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9) 그러나 "존재한다"는 표현은 가톨릭 교회에만 쓸 수 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하나인 교회를 … 믿나이다.) 일치를 가리키며, 이 하나인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10)
'''THIRD QUESTION'''
Why was the expression “subsists in” adopted instead of the simple word “is”?
문의 3: 단순히 "이다"라는 표현 대신 "안에 존재한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The use of this expression, which indicates the full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does not change the doctrine on the Church. Rather, it comes from and brings out more clearly the fact that there are “numerous elements of sanctification and of truth” which are found outside her structure, but which “as gifts properly belonging to the Church of Christ, impel towards Catholic Unity”.[11]
답변: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온전한 동일성을 가리키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교리를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이 표현은, 교회 조직 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들"이 발견되지만 이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고유한 선물로서 보편적 일치를 재촉하고 있다."11)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이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It follows that these separated churches and Communities, though we believe they suffer from defects, are deprived neither of significance nor importance in the mystery of salvation. In fact the Spirit of Christ has not refrained from using them as instruments of salvation, whose value derives from that fullness of grace and of truth which has been entrusted to the Catholic Church”[12].
"그러므로 이 갈라진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비록 결함은 있겠지만 구원의 신비 안에서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교회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 수단의 힘이 가톨릭 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12)
'''FOURTH QUESTION'''
Why does the Second Vatican Council use the term “Church” in reference to the oriental Churches separated from full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문의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에서 갈라져 나간 동방 교회들을 가리키면서 "교회들"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The Council wanted to adopt the traditional use of the term. “Because these Churches, although separated, have true sacraments and above all – because of the apostolic succession – the priesthood and the Eucharist, by means of which they remain linked to us by very close bonds”[13], they merit the title of “particular or local Churches”[14], and are called sister Churches of the particular Catholic Churches.[15]
답변: 공의회는 이 용어의 전통적인 사용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 교회들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사도적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우리와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13) 따라서, 그들은 "개별 또는 지역 교회들"14)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며, 개별 가톨릭 교회의 자매 교회들로 불린다.15)
“It is through the celebration of the Eucharist of the Lord in each of these Churches that the Church of God is built up and grows in stature”.[16] However, since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the visible head of which is the Bishop of Rome and the Successor of Peter, is not some external complement to a particular Church but rather one of its internal constitutive principles, these venerable Christian communities lack something in their condition as particular churches.[17]
"각 교회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성찬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난다."16) 그러나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를 가시적인 수장으로 삼는 가톨릭 교회와 이루는 친교는 개별 교회에게 외적인 보완이 아니라 내적인 구성 원리의 하나이며, 이들 존경할 만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개별 교회라는 조건에서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17)
On the other hand, because of the division between Christians, the fullness of universality, which is proper to the Church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 is not fully realised in history.[18]
다른 한편,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때문에,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교회 고유의 온전한 보편성은 역사 안에서 아직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18)
'''FIFTH QUESTION'''
Why do the texts of the Council and those of the Magisterium since the Council not use the title of “Church” with regard to those Christian Communities born out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문의 5. 공의회 문헌과 공의회 이후 교도권 문서들이 16세기 종교 개혁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교회"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these Communities do not enjoy apostolic succession in the sacrament of Orders, and are, therefore, deprived of a constitutive element of the Church. These ecclesial Communities which, specifically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sacramental priesthood, have not preserved the genuine and integral substance of the Eucharistic Mystery[19] cannot,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be called “Churches” in the proper sense[20].
답변: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이 공동체들은 성품성사에서 사도적 계승을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교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들은 특히 직무 사제직이 없는 까닭에 성찬 신비의 참되고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19) 가톨릭 교회에 따라 고유한 의미에서 교회들20)이라고 불릴 수 없다.
문헌 내 주석 전문 [접기・펼치기] [20]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Declaration ''Dominus Iesus'', 17.2: AAS 92 [2000-II] 758.}}}
-신앙교리성,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문의에 대한 회신, 2007년 6월 29일[58]
II.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의 사용에 관한 지침}}}{{{#!wiki style="margin:0px auto;display:table"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 사무처에서}}}9. 앞 단락들에서 제시된 역사적 준거들은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말을 신학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0.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은 오로지 개별 교회들(또는 개별 교회들의 집합, 예를 들어 총대주교좌 교회들 또는 수도 관구들)이 서로를 일컫는 말이다.7) 이렇게 자매 교회들이라는 말을 엄밀한 의미로 사용할 때에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는 모든 개별 교회의 자매가 아니라 어머니임을 언제나 분명히 하여야 한다.8)
11. 개별 가톨릭 교회와 비가톨릭 교회들에 대해서도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로마 개별 교회는 모든 다른 개별 교회의 자매라고도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상기한 대로, 가톨릭 교회가 어느 한 개별 교회나 교회 집단의 자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의 기본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단일성을 존중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오직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므로,9) 복수를 나타내는 교회들이라는 말은 개별 교회들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 두 교회’와 같은 말은 오해와 신학적인 혼란을 일으키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을 가톨릭 교회와 모든 정교회(또는 어느 한 정교회)에 적용시킨다면, 개별 교회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차원에서도 복수의 뜻을 내포하게 되어 교회의 실상이 애매하여진다.
12. 끝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은, 동방과 서방의 공통된 전통에서 입증된 것처럼, 유효한 주교직과 성체성사를 보존해 온 교회 공동체들에게만 사용될 수 있음도 유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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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30일}}}{{{#!wiki style="float:right"
예수 성심 대축일}}}{{{#!wiki style="float:right"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wiki style="float:right"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베르첼리 명예 대주교}}}{{{#!wiki style="float:right"
'교회'라는 말에 대한 가톨릭 스스로의 이해는 이러하다.
문헌 내 주석 전문 [접기・펼치기]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8항; 교황청 신앙교리성, 선언 「교회의 신비」(Mysterium Ecclesiae), 1973.6.24., 1항, AAS 65(1973), 396-398 참조.}}}
-신앙교리성,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에 대한 공지, 2000년 6월 30일[59]
1. 가톨릭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며, 세상에 교회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2. 가톨릭 교회와 개별 교회(예: 한국 가톨릭 교회, 한국 정교회)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표현된다. 개별 교회들에 대해서는 여러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개별 교회들끼리는 자매의 관계로 표현된다.
4.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교, 장로회 등은 교회 공동체(ecclesial Community)이지 교회가 아니다.
4.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
5. 비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현존한다(present).
6. 그러나 비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지(subsist) 않는다.
여기서 정교회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교회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가톨릭의 이해에 의하면 동방의 개별 교회들이 유일한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고, 정교의 이해에 의하면 서방의 개별 교회들이 유일한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때문에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를 '유이한' 보편 교회로 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11.2. 정교회와의 관계
정교회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비록 역사적으로 갈라져 서로를 파문했던 적이 과거에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교리적 차이도 대동소이하여 서로를 초대 교회의 직계 후손임을 인정하는 편이며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완전한 친교는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가톨릭은 정교를 이교(離敎/Schism)로 본다.
과거에는 서방과 동방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으나, 서로마의 서방교회에서는 6세기 말경 2차 중흥기를 누리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원본에 없는 "Filioque(성자로부터도)"라는 문장을 삽입했다.[60] 이에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포시우스(Photius)는 신학적으로 문제 있으며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61]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또한 726년, 동방 황제 레온 3세가 성상 파괴령을 내려 반감이 증대된 것에 성직자 결혼 문제, 정치적 문제가 합쳐지면서 내내 불화를 겪다가, 1054년 로마에서 온 추기경 사절단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미카일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것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었다('''1차 교회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정교회의 이름으로, 서방교회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역사가 갈라져버린다.
흔히 정교회가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종파라거나, 그 반대의 형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열 이전은 엄밀히 말해서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동역사이다. 이후 가톨릭 계열의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버린 사건 때문에 감정은 더더욱 극도로 나빠졌고, 두 교회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동서 교회의 분열은 '''분열'''이지 훗날 벌어지는 소위 종교개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분열 이전의 초대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동역사이지, 둘 중 한쪽만의 역사는 아니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고 보기는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개신교에 대한 시각과는 다르다.
종교적 권위가 거의 힘을 잃은 오늘날에도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권위는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건 단순히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교황을 범기독교의 수장으로 보느냐 마느냐와 같은 신앙/교리적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정치/사회적인 문제이다. 일단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거시적인 측면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톨릭은 기독교 단일 종파 중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장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가톨릭(25%)-개신교(51%)로만 나누자면 현재에도 미국은 개신교 국가라고 불릴 만하지만, 종파로 파고들면 가톨릭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최다종파인 가톨릭이 2위 종파인 남침례회의 4배가 넘는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도 가톨릭 교세가 만만치 않다.[62]
물론 가톨릭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 예컨대 '''이슬람권''', 서로를 정통교회로 인정하지만 워낙 가톨릭에게 쌓인 게 많은 정교회권, 유난히 가톨릭에게 츤츤거리는 북유럽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가톨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교황청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을 발표하거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언급을 할 경우 언론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장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콘돔 사용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했을 때 각국의 언론사들의 반응만 보더라도.[63]
11.2.1. 필리오케 문제
필리오케 문제는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의 큰 논쟁거리이다.
여기서 포티오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번째는 신경을 변경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신학적으로 그릇되었다는 것이다.그것은 "성자로부터도(라틴어로는 Filioque)"라는 구절을 추가한 것이다. 즉 "성부로부터 발하는 ...... 성령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에 서방 교회가 "성자로부터도"라는 구절을 추가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와 똑같이 성자로부터도 발하게 되었다. 이 구절은 589년 스페인의 제3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추가되었고, 8세기 후반 이후 전 프랑크 제국에 급속히 전파되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신성에 있어 성자-성부의 동등성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잔존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교황들은 처음에 이 구절을 추가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동방 교회는, 특히 포티오스가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로 재임하는 동안에, 신학적인 근거와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11세기 동·서방 교회의 대분열의 주원인이 되었고, 이후 재일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55-56쪽
다만 여기서 포티오스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변경을 금지한 신경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이라는 것이다.'''
즉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변경 금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381년 공의회의 그 신경은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가 열린 451년부터 비로소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확증되었으며 "보편 공의회"로 명명되었다.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445쪽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문서실에서 "졸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칼케돈 공의회 이전 시기에는 동방에서도 그저 드물게만 알려지고 사용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니케아 신경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수용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 신경이 황제의 관리들에 의해 교부들에게 정식으로 강권되었고, 그리하여 거기서 이 381년 공의회가 추인받아 보편성을 획득했다.
(중략)
로마에서는 ··· 500년경까지만 해도 니케아와 에페소와 칼케돈 공의회 셋만 보편공의회로 인정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9-60쪽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신경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인 것은 언뜻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왜 직전 세계 공의회가 아니라, 훨씬 전의 세계 공의회 신경을 겨냥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세계 공의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이해 때문이다.이 교회회의는 이미 콘스탄티노폴리스 지역 교회회의(382년)가 교황 다마소에게 보낸 서한에서(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교회사」''Historia ecclesiae'') "세계 공의회"로 불린다. 그렇지만 이 교회회의가 일반적으로 "세계 공의회"로 인정받은 것은 훨씬 나중 일이다.
-덴칭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소개
도대체 어떤 공의회들이 "보편적"ōkumenisch인가라는 물음은 가장 까다로운 물음 가운데 하나다. 역사학자로서 교회론적으로 먼저 결단하지 않고는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보편적"(즉, "전반적"allgemein) 시노드와 지역적(부분교회적) 시노드의 명확한 구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제쳐놓더라도,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던 많은 시노드의 보편성이 오랫동안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논란되거나 부인되는 반면,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전혀 보편적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전체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들도 있다. 후자의 대표 사례로는 그 신경이 오늘날 모든 중요한 그리스도 교파의 구속력있는 교리문서들 속에 들어 있는 저 공의회, 곧 381년에 개최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들 수 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15쪽
사실 세계 공의회(혹은 보편 공의회)라는 말은 엄밀하지 않았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경우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할 때 양적으로는 우위성을 지닐 수 있어도,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령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은 360년경에도 니케아 신경(325년)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니케아 공의회는 일차적으로 이전 공의회들도 했던 일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공의회는 이단을 단죄하고 그것에 맞서 신경을 확정했다.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해 보건대 니케아 공의회는 아직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고, 단지 양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을 따름이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예를 들어 갈리아 지방에서 아리우스설에 앞장서 대항한 걸출한 전사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가 니케아 신경을 공의회 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 역시 360년경에도 이 신경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공의회들은 뭐라 해도 시대와 상황에 메인 기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니케아 이후의 공의회들이 니케아 신경의 정식들을 간과하고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정식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후대의 관점에 터해 거기서 전체 교회의 "교의"에 대한 침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니, 이 "새로운" 정식들의 실패를 통해 비로소 전체교회의 구속력있는 신앙규범으로서의 니케아 신경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실 새로운 상황에서 전승되어 온 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식화를 모색하는 것은 뭐라 해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45쪽
심지어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의 경우는,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보편적이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전체 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에 해당한다.
조금 더 깨는 사실을 말하자면,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공식 문헌이라는게 있었는지조차 의심되고 있다.
또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경우도 비슷하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공식 문서들이 전해 오는 에페소나 칼케돈 공의회와는 달리, 이 첫 보편 공의회는 회의록과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는 니케아 공의회에 관해 단지 결실, 측 카논(법규)들과 신경만 가지고 있을 뿐, 토의 과정과 내용은 모른다. 공의회의 진행과정에 관해서는 아타나시우스 같은 참석자들의 단편적 메모들과 하나 하나 매우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할 교회사가들의 기록들(예컨대 에우세비우스의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나 1백 년 뒤 소크라테스의 저술) 약간만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공식 문서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필경 고대 공의회들은 국가적 회합들의 관례를 넘겨받아 재판 기록들을 작성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밖의 자문회의들에 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39-40쪽
물론 "무슨 시노드가 세계 공의회인가?"가 엄밀하지는 못했더라도 역사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와 신경은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점점 지위를 확립해나간 것은 맞기는 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옛 사람들에게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후대의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 에페소 공의회에 비해서 '매우' 우월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당시 동방 제국만 통치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 공의회를 소집했다. 당시 서방의 황제는 그라티아누스(375~383 재위)와 발렌티아누스 2세(375~392 재위)였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150여 명 가운데(소크라테스 『교회사』 5,8), 서방 사람들은 없었고,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는 사절을 파견하지도 않았다. 이런 까닭에 공의회의 영향력은 처음엔 보잘것없었다. (중략)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신경도 공의회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법규들만 여러 교회법 모음집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에른스트 다스만, 《교회사 II/2》,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16), 98쪽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대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비슷하게 변화한다.그리하여 거의 기정사실화한 다음과 같은 가정이 생겨났는데, 칼케돈 공의회에서야 비로소 거기서 벗어나게 될 터였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손바닥 안에, 높디높은 니케아 공의회의 넓디넓은 그늘 아래 있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와 대등하게 병렬하지 못하며, 비록 엄밀하게 예속적인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아무튼 근본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의 현실화"일 따름이다. 여타 공의회들은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진술들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상치되는지를 규명해야 하며, 전자는 승인하고 후자는 단죄해야 한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척도는 니케아 신경이다. 여기서 니케아 공의회는 일련의 공의회 중 첫 공의회가 아니라, "슈퍼(超) 공의회", 후대의 모든 공의회를 규정하는 규범이 된다. 바로 이런 공의회관에 터해 1차 에페소 공의회(431)가 개최되었고, 2차 에페소 공의회(449) ―이른바 "강도 공의회" ―에서는 이 공의회관이 더 극단화됐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2쪽
즉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동급'의 여러 공의회'들'이라는 생각부터가 칼케돈 공의회(451년)스러운 생각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을 통해 공의회 이념의 발전과정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단계의 본질은 이 수용에서 니케아 공의회 후 결정적인 둘째 걸음이 내디뎌졌다는 데 있다. 과연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과정에서 니케아 공의회의 독점적 지위가 점차 와해되었고, 니케아 공의회의 권위는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 새로운 이단들과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에 대응하여 언제나 새로운 신앙정식들이 요구되고, 또한 모든 참된 공의회는 동일한 권위를 보유하기 때문에 ― 반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식이 뚜렷이 대두했다. 이런 의식은 458년 황제가 칼케돈 공의회의 유효성에 관해 문의한데 대한 주교들의 답변 「코덱스 엔키클리우스」''Codex Encyclius''로 처음 나타났다. 여기서 모든 주교들은 원칙적으로 칼케돈 공의회의 니케아 및 그때까지의 모든 공의회와의 연속성과 일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주교들에게는 여전히 오직 니케아 공의회만이 이 일치의 척도요 준거점이었다. 그들은 강조하기를, 칼케돈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와 일치하기 때문에 유효하고 정통적이라 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은 동등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크레타 주교들의 한 서간은 그때까지 네 차례의 구속력있는 보편공의회를 서로 일치하는 동등한 공의회로 열거했다.[64]
―이런 맥락에서 이제 처음으로 그때까지의 보편공의회들이 확정·명기되었고, 또한 낮은 등급의 공의회들과 명확히 구별되었다. 이제 "네 공의회"는 고정된 상투어가 되었다.
(중략)
―더 나아가 6세기부터는 "네 거룩한 시노드"라 하여 네 복음서에 견주기 시작했으니, 이 공의회들은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다른 한편, 이제 넷이라는 고정된 숫자는 그것에 뒤이어 일련의 숫자를 꼽을 수 있게 했다. 과연 이 숫자는 뒤이은 보편공의회마다 고정된 서수序數를 부여했다: "다섯째", "여섯째", "일곱쨰" ··· 보편공의회. 이 줄은 원칙적으로 완결되지 않고 계속 추가될 수 있었으나 "가운데 끼어들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름 붙이기는 피상적인 셈하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한 공의회의 자기이해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으니, 공의회를 앞선 공의회들과 결합시키고 그 연속성에 편입시켰다.
어떤 공의회가 몇째 보편 시노드로 지칭됨으로써, 그 공의회는 자신의 권위를 공시하고 동시에 다른 공의회들과의 연속성과 한 계열 안에 정렬하게 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때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한 공의회의 고유한 권리 주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이런 셈하기는 통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바로 그런 일을 통해서 예컨대 381년 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그 연속선상에 "끼어들" 수 있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88-88쪽
결국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첫째, 세계 공의회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발전한 것이지,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시작되는 순간에 오늘날의 형태로 갑자기 완성되고 출발한게 아니다.
둘째,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기까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세계 공의회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셋째,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에페소 공의회(431년)의 신경 변경 금지는 니케아 신경(325년)을 겨냥한 것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에페소 공의회는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직접 살펴보자.
즉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문장 자체로 보든,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것은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신앙 고백이다. 다시 말해 니케아 신경(325년)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다. 그렇기에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선 안되고, 다소 느슨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엄격한 의미로 이해해버린다면, 훗날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것 부터가 에페소 공의회를 위반한 것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 ···
-에페소 공의회, 치릴로파의 제6회기, 431년 7월 22일[65]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451년)의 교부들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논리도 주목할 만 하다. 그들은 381년의 신경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니케아 공의회의 신경은 유명한 설교가이자 알렉산드리아의 한 본당 신부였던 아리우스(?~336)의 가르침에 관한 논쟁을 통해 생겨났다. 이 논쟁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하느님 아들의 신성에 관한 문제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구성원들은 이 신경을 자신들의 믿음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아리우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다소 부족한 신성을 가졌다는 그의 주장을 단죄하였다. 엄밀히 말해서 어떻게 이 신경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는 공의회의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중략)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는 이 신경에 어떤 것을 첨가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파문의 형벌로 금지시켰다(COD, p.65). 한편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특히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가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에페소 공의회의 맥락에서 공의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니케아 신경을 넘어서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니케아 신경은 새로운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특히 325년 이후 발생한 수많은 논쟁들을 고려할 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부제(archdeacon)는 381년 자기 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선포되었던 신경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이 신경은 선포된 이후 명백하게 교회 전반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이 381년 신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에페소 공의회의 금지령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것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이로써 합법적인 개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48- 51쪽
따라서 니케아 신앙을 고수한다는 것은, 신경의 텍스트 모든 글자를 엄밀한 의미에서 보존하자는 말이 아니다.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놀랍게도 칼케돈 공의회의 제 2회기인 451년 10월 10일 콘스탄티노플의 대부제大副祭인 아에티우스Aetius가 공의회에 모인 교부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150명의 주교들의 신앙"[66]
에 대해서 읽을 때였다. 그 후 이 신앙고백문은 칼케돈 공의회의 신앙정식이 만들어지기 전에 니케아 신경과 통합되었다. 니케아 신경의 교정본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교정본을 감수한 바 있는 도세티Dossetti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한 모든 희랍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이 칼케돈 공의회 제2회기나 아니면 칼케돈의 신앙정식을 만들때쯤에 다음과 같이 이구동성으로 재확인했다고 전한다.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처럼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에서 알려지고 승인되었음을 시인한다.[67]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70년이 넘도록 침묵을 지킨 이유[68]
에 대해서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는 잠시 접어 두고 그 신경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칼케돈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이단규정을 간단하게 덧붙여서 니케아 신경을 본질적으로 추인하는 성격의 신경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니케아 신경의 개정판 정도로 볼 수 없게 하는 어떤 편차가 보인다. "사실 이 두 텍스트는 전적으로 다르다."[69] 여기서 학자들의 의견은 양편으로 갈린다. 폰 하르낙과 같은 부류(F. J. A. Hort)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이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는 무관하고 독립적이라고 한다. 반면 칼케돈 공의회의 회의록을 수집-편찬한 슈바르츠 등은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자체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두 주장 모두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니케아 신경의 재확인이라는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70] 그렇다면 부인할 수 없는 이 상이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해결책은 1936년 프랑스 신학자 르봉[71]
에 의해서, 그리고 이어서 켈리,[72] 리터,[73] 도세티[74] 등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이들에 의하면 "니케아의 신앙"이라든가 "신경" 또는 "318명의 교부들의 해설(''ékthesis'')" 등과 같은 표현은 성문화된 어떤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신경의 신학적 내용, 무엇보다 "동일본질" 같은 니케아 공의회의 키워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이라든지 "니케아 신앙"이라는 호칭은 니케아에서 결정된 신앙내용을 근본적으로 수용하고 숭앙하는 어떤 특정한 신경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교의사적 추이에서 볼 때 "니케아 신앙"이란 말은 "동일본질"이란 말로 결정된 확고부동한 내용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나머지 그들 사이에서도 종종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 안에서도 신앙고백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니케아 신경을 약간 각색해서 세례 때의 신앙고백정식으로 사용한다든지, 신경의 말미에 이단에 대한 경고문구 등을 삽입한다든지 하지만, 이 정식들은 그래도 여전히 "니케아 신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75]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본질에 있어서는 "니케아적인" 어느 한 지역의 신경을 선택해서 아폴리나리스 이단과 마체도니오 이단을 반박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공의회는 새로운 신경을 따로 채택하지 않고 단순히 반-이단적인 명문을 삽입하여 니케아 공의회의 교의적 결정을 재확인한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새로운 신앙개조를 창작하지도 아니하고 니케아 신경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경을 보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도세티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신경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76]
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통성이 검증된 하나의 반-이단적 명문화를 삽입한 신경, 즉 니케아신경을 자구적으로 재생한 것은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재확인하는 신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2}$$2014), 428-431쪽
더군다나, 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오직 세계 공의회'만'이 신경을 변경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은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정통교리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니체아 공의회 신경을 넘겨받고 보완하였다는 가정은 (오늘날까지 신경의 출전에 관한 상황 연구가 어렵다 할지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으며 공의회 신경은 공식적인 형태로 칼체돈 공의회 문서에서 처음 전해지나, 그 이전에 이미 콘스탄티아(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가 자신의 작품 「정박자」[77]
(374년)에서 이 고백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른트 마누엘 바이숴Bernd Manuel Weischer는 후대에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이 「정박자」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신경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칼체돈 공의회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본문을 협의하거나 작성하였다는[78] 것이 오늘날[79]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다.
-H. R. 드롭너, 《교부학》,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1), 407쪽
살라미스의 주교인 성 에피파니우스의 저작 「정박자」(Ancoratus)에서는 두 개의 신앙고백을 전한다. 이 중 짧은 것은 후대의 가필이니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긴 것은 덴칭거의 소개문에서 보듯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여겨진다. 즉 로마도 알렉산드리아도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아닌, 살라미스의 주교 역시도 니케아 신경의 텍스트를 수정한게 교회사의 현실이다.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 「정박자」(Ancoratus), 374년
이 작품에는 두 양식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다. 짧은 양식(118,9-13)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150)과 매우 유사하며, 에피파니우스가 본래 니케아 신경을 인용한 자리에 후대 어느 필경사가 끼워넣은 것이다. B. M. Weischer, ''Qerellos IV 2: Traktate des Epiphanius von Zypern und des Proklos von Kyzikos''(Äthiopistische Forschungen 6; Wiesbaden 1979) 49-51. 긴 양식(119,3-12)은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교리 교육 때나 이단자들을 위한 세례 신앙 고백으로 쓰인 것이다.
(중략)
(ㄴ) 긴 양식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아버지,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저희는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외아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유형무형한 만물이 생겨났으며,
저희 인간 때문에, 저희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이 되셨으며, 곧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완전하게 태어나시어 사람이 되셨으니, 곧 성자께서는 죄 말고는 영혼과 몸과 정신과 인간의 모든 요소를 지닌 완전한 인간을 취하셨으며, 남자의 씨로도 아니고 인간 안에서도 아니라, 자신 안에서 유일하고 거룩한 일치로 육신을 이루셨으며, 예언자들 안에서 숨 쉬시고 말씀하시며 행하신 방법이 아니라 완전하게 인간이 되셨으며("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그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분의 신성도 인성으로 바뀌지 않았나이다.), 〈육신을〉 자신의 거룩한 완전함과 유일한 신성에 합치시켰으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오니, 바로 그분이 하느님이시고, 바로 그분이 주님이시며, 바로 그분이 임금님이시옵니다.), 바로 그분이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바로 그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영광 속에 성부 오른편에 앚으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바로 그 몸으로 영광 속에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믿나이다.
또한 율법 안에서 말씀하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시고 요르단 강에 내려오셨으며, 사도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성도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을 저희는 믿나이다. 바로 거룩한 영, 하느님의 영, 완전한 영, 보호자이신 영이시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성부에게서 발하시며, 성자께서 받아들이고 믿으신 분을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이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저희는 믿으며, 회개의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과 몸에 관한 공정한 심판을 믿으며, 하늘 나라를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그러나 성자나 성령이 없던 때가 있었다거나, 무에서 생겨났다거나, 또는 하느님의 아들이나 성령이 다른 실체(히포스타시스)나 본질에서[80]
나왔다거나,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여러분과 우리의 어미니인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파문한다. 또한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과 이 올바른 믿음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이단을 파문한다.
-덴칭거 42-45항
결국, 서방 교회가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은 에페소 공의회 문헌 그 자체에서[81] 보든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부적절하며,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 보존하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만약 서방에 대한 그 비판이 타당하다면, 똑같은 원리로 칼케돈의 교부들을 단죄해야 할 것이다. 칼케돈 공의회 정신에서 볼 때,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면, 신경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82]
그리고 서방 측의 필리오케 삽입을 독단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 니케아 신경은 살라미스의 성 에피파니우스에 의해서도 수정된 바 있으며, 589년의 톨레도 교회회의의 권위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건 당연히 아니며, 비록 레오 3세가 필리오케 삽입에 부정적이었다고는 하나 로마의 주교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것도 아니다.
11.2.2. 성사교류
가톨릭과 정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서로에 대한 파문을 철회하고 서로를 초대 교회의 직계 후손으로 인정한 이후, 성사교류를 맺어 각 교파의 신자들이 각자의 교회에서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법은 정교회 신자들이 가톨릭 교리와 교회에 대한 존중심과 준비만 되어 있다면, 가톨릭 사제가 정교회 신자에게 성체성사, 고해성사를 배풀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건 언제까지나 '''위급 상황에만 해당된다.''' 가톨릭 신자의 경우, 주일이 낀 상태로 외딴 섬으로 여행을 갔는데 가톨릭 성당은 없고 정교회 성당만 있을 경우 같은 경우에만 용인한다.
한편 정교회는 가톨릭 신자의 정교회 영성체 참여를 탐탁치 않게 보는데, 이유는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심재와 금육, 금식 규정을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완화했기 때문에 (정교회의 입장에서) 그들이 모령성체를 할 여지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정교회 신자 역시 정교회 성당이 거주지 인근에 없을 경우 불가피하게 가톨릭 성당에서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현재 정교회가 한국에서 교세가 적기 때문에 보통 정교회 신자들이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군대로, 정교회 군인들은 가톨릭에서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대신 받을 수 있다.
11.2.3. 정교회와의 차이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 교리적 측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서와 성전을 계시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정경 목록에서 차이가 있다.[83] 또한 니케아 신경에서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구문 가운데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가 잘못됐다는 신학적 입장을 동방 측이 내세운 필리오케 문제가 논쟁이 되기도 했다.
11.3. 개신교와의 차이
개신교와 가톨릭은 종교 개혁이라는 큰 사건을 겪고 갈라진데다 교리적인 간격도 매우 큰 편이어서, 이단으로 여기며 승인하지 않는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를 '신교'라는 표현보다 '열교(갈라진 공동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개신교에 대한 적대감정을 많이 누그러뜨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에둘러 표현할 뿐이며, 성사적인 공통점이 많이 남아있는 성공회마저도 사도전승을 공유하는 교회로 보지 않으니 장로교, 루터교 등 다른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이 어떠한지는 말해 무엇하랴. 그런 가톨릭일지라도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이적하는 신자의 경우 제한적이나마 개신교에서 받은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소속했던 교파의 교리에 따라서 다른데, 이를테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교파에서의 세례는 무효하다고 판단하며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음이 증명되면 유효하다고 판단해주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개신교와 기독교라는 공통된 틀안에 있어서 기초적인 사상은 같거나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해석이나 신학적 입장은 개신교 종파에 따라 차이가 커진다. 가장 가톨릭과 비슷한 교리와 전례를 가진 개신교 종파는 성공회이며, 그 반대는 재림교회이다. 개신교는 유형적인 일치에 중요성보다는 성경만을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통일된 신학은 없다. 과장 좀 섞어서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통점은 삼위일체와 예수를 통한 구원론 정도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84]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교회와 성경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가톨릭은 베드로의 권한을 이어받은 눈에 보이는 하나의 보편교회를 강조하고 성경은 전승의 일부가 기록된것으로 가르치지만 개신교는 대체로 무형적인 보편교회론과 성경이 스스로 증거한다는 자증성을 믿고 신앙, 교리의 유일한 바탕(오직 성경)이라고 본다.
- 성전과 성경해석의 차이도 크다.
개신교는 일단 자증하는 성경이 가장 중요한 규범이라 성경을 일종의 헌법 삼아 그것을 기반으로 해석한다. 관례와 전통은 성경의 권한을 넘지 못하므로 이를 받아들때도 성경을 기준으로 옳은지 옳지 않은지 판단한다. 성경에서 근거가 없거나 어긋나는 관행과 규범을 중시하는 행위는 과거 바리새인들의 유전을 예수가 비판한 것을 들어 위험하게 여기므로 성경에 뭔가를 첨가하고 부가하는 것은 경계한다.[86] 즉 '''성전'''으로 여기는 범위에서 가톨릭은 성경과 다른 전승을 모두 성전으로 보는 반면, 개신교에게는 활자로 된 '''성경만이 성전'''인 것이다. 해석에 있어서 전체를 두고 해석하는 것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같으나 해석의 방식은 주로 '''역사적 문법적 해석'''을 통해 문맥으로 해석하며 난해한 구절은 다른 성경구절로 판단한다. 즉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 특히 가톨릭에서 말하는 4중적 해석 중 알레고리적 해석은 그냥 신천지 비유풀이급 뇌피셜 취급한다. 다만 전승이라고 무조건 배격하진 않는다. 이른바 아디아포라라고 하여 성경이 금지하지 않은 것에서 유연하다. 대표적인 것은 일요일 예배와 유아세례 등이 있다.
이외에도 성경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가톨릭은 구약, 신약을 똑같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기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약 복음서 (특히 예수님 말씀) > 신약 서간서 > 구약 순으로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 계통에서는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도 많이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톨릭과 개신교 진보파는 성서비평학을 적극 받아들이지만, 개신교 보수파는 성서무오설을 고집하고 있다.
- 성경의 권수 역시 다르다.
- 기타 차이점
개신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성모승천이 외경을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성모몽소승천을 부정하는 한편, 가톨릭에서는 초기 교회 시기부터 내려오는 성전을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가 이 땅에서 죽지 않고 동정녀로써 승천하였다고 선포하였다. 5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로 간의 교리적 차이가 너무나도 뚜렷해진 것이다.
또한 '기독교' 자체가 아직 없었던 시절의 고대인들은 선하게 살았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례받지 못한 유아나 의로운 고대인들이 가는 ''''고성소''''가 있다고도 했었으며, 단테의 신곡에서도 고성소가 언급된다. 이 고성소라는 공간은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도 아니며, 참된 기쁨인 '지복직관(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의 평화와 안정을 얻는 장소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는 교황 첼레스티노 5세가 '고귀한 자리를 함부로 버린', 즉 자진 퇴위한 죄로 고성소에 들어가 있다(그런데 현실에선 훗날에 첼레스티노 5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축일은 5월 19일).
하지만 고성소 자체가 신학적 가설일 뿐 '믿어야만 하는 교리'는 아니라는 주장이 현대 가톨릭 신학계에서 강력하게 주장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 신학자가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가톨릭 교리서에서는 고성소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기존에 고성소에 갔으리라 말하던 영혼이 실은 모두 천국에 있으리란 것. 그리고 유아 고성소설은 결국 공식 폐기되었다. 고성소에 대한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이나 교황청 등이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는 한 가톨릭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고성소를 믿든 믿지 않든 아무 지장이 없다. 믿지 않아도 이단이 아니라는 뜻.
개신교에서는 구원의 철회, 탈락 문제가 만년 신학 논쟁 대상인데, 가톨릭에서는 논의의 가치도 없이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주제다. 세례를 받고 사함을 받았어도 대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보기 때문.
그 외 ''''연옥의 존재 여부''''와 ''''성모 마리아의 위상''''에 대한 오해가 있다. 연옥은 가톨릭 교리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을 위한 장소로, 일종의 속죄의 장소이자 천국으로 가기 위한 이전단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즉, 대죄를 짓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지만, 대죄를 인지하지 못하게 짓거나 자잘한 소죄만을 지은 경우 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옥에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정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만이 사후에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시, 죄를 지은 순서로 사람을 1열로 세우게 되면, 어느 선에서 천국행과 지옥행이 갈라져서 아깝게 지옥에 가는 사람과 석연치 않게 천국에 가는 사람이 발생하게 되는데, 연옥은 이러한 비합리를 해소하게 해준다.
죄를 지은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고 진심으로 참회하게 되면, 죄의 용서는 받으나 죄에 대한 대가는 남아있게 되는데 이를 잠벌이라 한다. 만일 살아서 이 벌을 다 갚지 않으면, 즉 기도와 선행 등으로 보속하지 않으면 남은 벌은 연옥에서 갚게 되는 것이다. 이 잠벌의 용서는 주교나 교황이 조건부로 주는 대사를 받으면 가능하되, 이를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양도 가능하다. 죽은 신자가 연옥에서는 더 이상 선행이 불가능하므로 오로지 은총으로만 영혼이 정화되는데, 살아있는 신자들의 대사 양도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연옥에 머무르는 영혼은 자신의 기도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의 기도, 그리고 이승에 속한 이들의 기도로 천국에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연옥은 위의 고성소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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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절대 예배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당장 성모송의 끝구절부터가 "저희를 구원하소서"가 아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이다. 간혹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에서는 '반드시'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거쳐서만 기도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지만,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에게 직접 기도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신자들은 정확히 말하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모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신 하느님에게 기도한다라고 하지만. 사도신경의 구절 중 하나인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에서 알 수 있듯, 가톨릭 신자들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이 우리를 위해 하느님에게 간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 뿐 아니라 천사나 성인들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단 그들에게 전구를 요청하는 것이지 절대로 그들에게 구원을 해달라거나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이나 예수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와는 달리,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와 성인은 신앙의 모범이고 공경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90] 공경의 근거도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느님에게 충실한 사람들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에 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이런 성모 마리아, 성인의 개념은 물론 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뜻인 전구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전구가 없는 개신교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뜻을 가진 문장으로 마치는것 만이 인정된다. 개신교에서는 전구 대신 서로를 위한 기도로서 중보기도가 있으나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뿐이므로 중보기도라는 명칭은 비성경적이라는 논란이 있어 대신 도고기도, 청원기도 또는 이웃을 위한 기도 라는 명칭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가톨릭과 정교회는 미사, 기도, 또는 마음을 다잡거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성호경과 함께 십자성호를 긋지만, 개신교에서는 하지 않는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호 긋는 순서와 의미는 조금 다른데, 자세한 건 성호 문서를 참조. 그 외 가톨릭의 성당은 성상이 존재하며, 일반적인 십자가뿐만이 아니라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형태의 십자고상을 사용하는데, 개신교의 경우는 예수가 없는 십자가만 사용한다.간혹 십자고상이 있는 개신교(성공회,루터교 등)예배당도 있긴 하다.
가톨릭에는 7성사, 즉 세례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 병자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라는 것이 존재한다. 반면 개신교는 세례와 성만찬 이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성사적 예식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성품성사는 가톨릭 사제로 임명하는 의식이며 고해성사는 신자가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의식이다. 성체성사는 가톨릭 미사의 핵심으로 예수가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한 것을 본딴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미사의 후반부에 성체를 신자들에게 나눠주지만 성체를 신자들이 함부로 다루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신자, 신자가 아닌 자에게는 성체를 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개신교의 예배에서는 성찬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특별히 행해야 하는 날짜가 정해지진 않았다. 그리고 만인제사장을 인정하는 이유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는 없다.
- 목사가 혼인이 가능한 것에 대해 개신교에서 말하는 만인제사장설에 따르면, 목사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하자면 성직자와 평신도의 영적인 구분을 부정한다. 즉,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사제라는 말로서, 각자 맡은 직무만이 다를 뿐이라는 교리다. 가톨릭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평신도 사도직'이 존재한다. 하지만 목사와는 다르다.
- 가톨릭교회에서만 성직자 독신이 의무이다. 정교회는 결혼한 사제도 성직자이며, 별거를 하는 조건으로 주교도 될 수 있다. 오리엔트 정교회와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교)에서도 성직자 독신은 의무가 아니다. 구 가톨릭교회도 독신제를 폐지했으나, 가톨릭이 아니라는 비판은 일부 국가교회의 여성 사제 안수부터 듣기 시작했다.
- 혼인성사는 성례(개신교에서 성사를 일컫는 말)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회에서 결혼 안 한 사람은 혼인한 게 아니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 교회에서 결혼예배를 드린다고 다 성례가 아니라, 교회의 표지로 교회에서만 할 수 있는 행사라야 성례로 본다.
- 장로회 중 보수적인 교단이나 침례회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십자가를 교회 밖에서만 예배당의 표지로 쓰고, 교회당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로 간주한다. 다만 장로회 중에서도 에큐메니컬 성향의 교단[101] 에서는 교회당 내에서도 십자가를 쓴다. 물론 감리회나 그 영향을 받은 교단[102] 에서는 십자가를 사용한다. 교파마다 다름.
- 테오토코스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물론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보다 높다거나 하느님 이전에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을 낳는 은총을 누린 여인이라는 뉘앙스다. 대다수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하느님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인성만을, 혹은 육체만을 낳은 것이라는 주장은 이단이 된다. 성자가 마리아에게서 인간의 육체를 취했다는 것은 맞으나, 그 결과로 마리아가 낳은 것은 단순한 인간이 아닌 인성과 신성이 겸비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인간만을 낳았다는 말은 잘못된 주장이다. 이런 교리가 정식화된 것은 초창기의 네스토리우스파 이단과 관련이 있다. 근데 가끔 칼케돈 신조를 인정한다면서 테오토코스에 회의적인 개신교 신자도 눈에 띈다.[103]
- 한편 주된 교리의 차이와는 별도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차이점으로 술, 담배 등에 대한 허용이 있다. 개신교에서는 교파마다 교리가 다양해서 술담배 등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선 음주 및 흡연을 기본적으로 자제할 것을 권장한다. 음주의 경우 (엡 5:18)[104] 을 근거로 한다. 흡연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성경 어디에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고전 3:16~17)[105] 을 들어,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술의식에 사용하던 행위를 할 수 있겠나'라는 입장이다. 혹은 같은 구절을 자신의 몸을 헤치는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목사 등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신자들은 술과 담배를 하는 경우 그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최근 들어 개신교 신자 중에서도 음주 흡연자가 꽤 많고, 장로회의 창시자인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지독한 골초였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술, 담배에 비교적 관대해서 성직자들도 지나치지만 않으면[106] 술과 담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 돈 까밀로 신부가 시가와 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11.4. 의화에 관하여
이 부분은 상당히 길고 난해한 주제이므로 따로 서술한다.
개신교와 갈라진 교리적 원인 중의 하나로 신앙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차이가 있다. 개신교는 이신칭의(칭의론)라고 해서, 오직 은총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칭함받을 수 있다고 하며 이를 '칭의'라고 한다. 반면 가톨릭은 은총과 믿음으로써 '의로워진다'고 주장하며 이를 '의화'라고 부른다. 단순히 칭함받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107] 이기 때문에 은총을 보존하려는 개인적인 노력인 뒤따르는 선행,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4대교리 중 하나가 바로 '상선벌악'. 개신교에서의 선행의 의미는 '구원받은 자로서 행해야 하는 의무' 혹은 '구원받은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위'에 가깝다. 유교식 표현으로는 '극기복례'를 일부 말하는 셈.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개신교에서는 몸(행위)과 마음(믿음)을 분리된 것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가톨릭은 선행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를 믿음과 이분법적으로 딱딱 분리하지 않는 이유는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 주류 중 하나인 칼뱅파와는 달리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108] 인간이 본인의 의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자유의지로 은총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고 본인의 참된 믿음을 증명하는 것에는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는 등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인간의 공덕 그 자체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행위구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하느님이 내려주는 은총이야말로 구원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어떻게 보면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신학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09]
때로는 개신교에서 칭의-성화-영화라고 해서 구원의 3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첫 걸음을 떼기위한 '칭의'를 강조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해진다는 면벌부가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캐오(삭개오). 그는 회개한 이후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4배로 갚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므로 면죄부 따위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통회하게 되는데, 통회란 스스로의 잘못을 '''아파하는''' 것이다. 이 통회를 단지 성당이나 교회에 나와서 "할렐루야~ 나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했으니 앞으로 반성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엉터리다. '''결국 따지고 보면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 받는다는 기본 교리는 똑같고 사소한 표현과 관점의 차이인데, 개신교 일각에서는 가톨릭이 행위구원론을 주장한다며 끊임없이 왜곡된 음해와 비방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10]
1999년, 가톨릭과 루터교회가 "의화(칭의)는[111]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이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의 실현을 위해 믿음의 징표인 선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구원관에 합의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2006년 감리회가 이 공동선언에 동참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외형적으로나마 점차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화해와 일치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매우 지엽적인 사건.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루터회 전체와의 합의가 아니다. 루터회 세계 연맹과만 합의가 이루어 졌고 이에 속하지 않은 미주리 시노드 등은 당연히 서명 안했다. 외려 모든 감리회가 소속된 WMC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감리회 전체와 합의가 이루어진 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관련하여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루카 복음서 22:37~40, 공동번역성서)"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게 둘 다 중요하다는 것.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까.
결국 가톨릭이 '행위 구원론'을 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구원은 '''오직 은총'''만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는 '''오직 믿음'''만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개신교도 공유하는 가르침이다.
2006 일반적으로, ‘공로’(meritum)라는 말은 공동체나 사회가 그 구성원의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을 가리킨다. 그것이 선행일 때는 상이 주어지고, 악행일 때는 벌이 주어진다.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공평에 상응하는 것이다.
2007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창조주께 받았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2008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공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은총에 협력하도록 자유로이 안배하셨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느님의 어버이다운 활동은 인간을 감도하심으로써 시작되며, 반면에 협력을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실은 그 뒤를 잇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려야 하고, 그다음으로 신앙인에게 돌려야 한다. 실제로 인간의 공로 자체도 당연히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데, 인간의 선행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주도와 도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리서
인간공로를 이해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느님 앞에 인간공로가 불가능한 영역'''과, '''피조물의 공로는 유비적인 의미에서 공로라 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 공로를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성화은총에 의하여 인간이 동등하지 못한 수준에서 유비적으로나마 하느님의 진정한 상대자라는 점에 있다. 물론 상대자가 된 것은 인간의 독립된 지위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해서이다. 이로써 공로의 교리는 구속된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긍정하는 셈이며 인간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존재를 완성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톨릭 대사전, '공로' 문서
사실 의화는 '''오로지 은총'''만에 의하여 이루어지되 인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신앙'''만이 의화시키나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다. 의화는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이면서도 일생에 걸친 과정이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으나 성서는 공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톨릭 대사전, '의화' 문서
은총은 선물이니만큼 어떤 강요도 없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따라서 은총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상대방으로 삼으신 인간의 반응과 관게없는 하느님의 일방적인 행위로 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은총에는 증여의 성격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은총은 당사자의 일방이 자기 재산을 무상으로 상대분에게 줄 의사를 표시하고 또한 상대방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은총 문제에 있어서는 그 차원과 성격은 다를지라도 하느님의 입장과 동시에 인간의 입장도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계시되신 하느님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가톨릭 대사전, '은총론' 문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가톨릭 신학은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 공로를 부정한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 공로가 가능하다고 가톨릭이 말할 때는, '''유비적(類比的, analogous)''' 의미에서 공로라고 불리는 것이지 '''일의적(一義的, univocal)''' 의미에서의 공로가 아니다. 물론 '''다의적(多義的, equivocal)''' 의미에서의 공로도 아니다.[113] 비유하자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증여를 할 의사를 표하고 자식이 이를 수용했다면, 그 증여의 공로는 아버지에게 돌려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의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이를 거절했다면, 증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자식 탓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의화된다면 하느님 덕분이고, 어떤 사람이 의화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 탓이다. 따라서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적 관점에서 볼 때 '''오직 은총'''으로 인간은 의화한다. 또한 자식이 아버지의 증여 의사에 동의하여 증여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오직 믿음'''으로 의화한다고도 가톨릭은 말할 수 있다.'''예를 들어 장애인용 의자에 앉아 있는 환자는 자기 힘만으로 돌아다닐 수 없다. 그러나 그 환자 곁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이 그의 의자를 밀어주면서 자발적으로 그를 도와준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이 경우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으로써는 일으킬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자신이 운반되는 것에 동의하는 일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은총 질서 속에서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다.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놓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이 표현에서 드러나는 수동형 동사(''dejarse amar: 자신을 내어놓는 것'')는 구원 질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역할을 보여주는 데 있어 능동적인 표현보다 훨씬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이 수동형은 구원 질서 안에서 인간의 자유가 순전히 '수용적'(受容的)이라는 점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차원에서 행동하는 것이지 무엇을 생산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은총론》, 윤주현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1), 283쪽[112]
그러나 선행 역시도 강조하는 이유는, 야고보서에 '행함(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있듯이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에 있다는 그 선행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갈라티아서 5장 6절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라고 서술한다. 후술할 트렌토 공의회 문헌에서 보듯, "선행은 얻은 의화의 열매와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의화의 증대 요인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서술이다. 또한 역시 트렌토 공의회 문헌에서 보듯,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주시"며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오직 은총'''으로 의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은총'이 의화시키는 것과 '선행이 의화의 증대 요인'이라는 것이 모두 가톨릭의 가르침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가톨릭 교회에서는 개인이 착한 일만을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오직 은총'과 '오직 믿음'으로 의화된다고 가르치며,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인 선행도 중요시하는 것이다.[114]
끝으로, 트렌토 공의회(=트리엔트 공의회) 6차 회기에서 의화에 관하여 선언한 것들 중 일부를 서술하겠다. 이는 해당 공의회가 개신교 신학자들을 의식하였고, 이들에게 가톨릭의 교의를 분명히 하는 것을 목적 중 하나로 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와 통교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의인이 될 수 없긴 하지만, 죄인의 의화는 지극히 거룩한 그 수난 공로로 의화하는 자들의 마음에[115]
성령께서 작용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이 확산되고 그들 안에 자리 잡을 때 실현된다.''' 그 결과로, 의화과정에서 인간은 죄의 용서와 더불어 자신이 가지처럼 붙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용서에 천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모든 선물을 받는다. 즉, 믿음, 희망, 사랑이 그것이다. 희망과 사랑이 없는 믿음으로는 인간은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그분 신비체의 살아 있는 구성원도 될 수 없다. 이런 연유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무용이라고[116]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의미가 없으며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라고[117]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제6차 회기 의화에 관한 교령. 제7장 죄인의 의화가 무엇이며, 그 원인들은 무엇인가
인간은 믿음을 통해서[118]
그리고 무상으로[119] 의화한다고 사도(바오로)가 말하였는데, 이 말은 가톨릭교회가 옹호하며 표명해온 항구하고 일치된 견해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요, 온갖 의화의 기본이며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이고",[120]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과 친교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121] ''' 또한 우리는 무상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화에 앞서 그 어떤 것도, 믿음이나 행업도 이 의화 은총을 얻는 전제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화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 공로로 얻어지는게 아니며, (앞서 언급한 사도의 말대로) 만일 무슨 공로가 있어서 의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더는 은총이 아니다."[122]
같은 교령. 제8장 믿음을 통하여 무상으로 주어지는 죄인의 의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죄가 용서되지 않고 용서된 적도 없다는 믿음은 필요한 것이다.
같은 교령. 제9장 이단자들의 헛된 믿음을 거슬러
이제, 받은 은총을 지속적으로 간직했든, 잃었던 은총을 다시 회복했든, 이처럼 의화한 자들에게 사도(바오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제시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123]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보여준 선행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124] 그리고 "여러분은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125] 그러므로 끝까지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126]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으로 하느님의 자녀에게 자비롭게 약속된 은총인, 또한 하느님 바로 당신께서 하신 약속에 따라 그들의 선행과 공로에 신실하게 부여해야 할 상급인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야 한다. 실로 이것은 사도(바오로)가 자신의 투쟁과 달음질 이후에 자신에게 예정되어 있고, 정의의 심판관에 의해 자신에게 수여될 것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던 바로 그 정의의 월계관을 의미한다[127] .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지체들의 머리로서, 그리고 가지들을 위한 포도나무로서[128]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주신다.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화한 자들이 삶의 처지에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한 일들을[129] 통하여, 하느님의 법을 충만하게 만족시키고, 때가 오면 (그들의 은총 지위의 상태에서 죽는다는 조건으로[130] )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을 갖추는 데 그들에게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실로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131]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로움은 마치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의로움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다.[132] '''우리 안에 머물면서 우리를 의화하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그 의로움은 바로 하느님의 의로움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어 그 의로움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록 성경에서(보잘것없는 당신 제자들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상급을 못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또한 사도가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라고[133] 증언하실 정도로[134] ) 인간의 선행에 비중을 상당히 많이 부여하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은총이 인간들의 공로가 되기를 바라실 정도로 모든 인간에게 그토록 좋으신 분이신[135] 주님을 믿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신뢰하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그 어느 그리스도인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136] 그리고 "우리는 실수하는 일이 많기"[137] 때문에, 우리 각자는 자비와 선만큼 엄격함과 심판도 눈앞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조금도 없을지라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138] 인간들의 전 인생은 인간의 판단에 따라 측정되고 심판되어서는 안 되고, 하느님의 판단에 따라서 행해져야 한다. "그분은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실 것이며 마음속의 생각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느님으로부터 각자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39] 하느님은 성경에 쓰인 대로, "각자에게 행실대로 갚아주실"[140] 분이시다.이러한 의화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에 이어서(이 가르침을 각자가 성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의화할 수 없을 것이다.)[141]
본 거룩한 공의화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을 첨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모두가 마음에 간직하고 따라야 할 사항들뿐만 아니라, 피하고 멀리해야 할 사항들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같은 교령. 제16장 의화의 열매, 곧 선행의 공로와 그 공로의 성격
결국 의화에 관한 핵심 키워드를 3가지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1. 만일 누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로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없이 인간 본성의 힘으로 행하거나 법의 가르침에 힘입어 행한 자신의 선행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2. 만일 누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이 단지 더욱 쉽게 의롭게 살게 하고, 더욱 쉽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뿐이기 때문에, 비록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마치 은총 없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의로운 삶과 영생을 구현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3. 만일 누가 의화 은총을 얻는 데 성령으로부터 내려오는 영감(靈感) 없이, 그리고 그분의 도움 없이 필요한 만큼의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회개를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중략)
10. 만일 누가 우리에게 공로가 되어주신 그리스도의 의로움 없이 인간이 의화한다고 주장하거나, 바로 그 의로움으로 인해서는 허울뿐인 의인이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중략)
24. 만일 누가 인간이 받은 의로움이 하느님 대전에서 선행을 통해서는 보존되거나 증대되지도 않고, 선행은 얻은 의화의 열매와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의화의 증대 요인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같은 교령. 의화에 관한 법규들.
- 오직 은총
- 오직 믿음
-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
12. 오해
가톨릭은 가장 긴 역사만큼 외부의 곡해 내지는 오해도 많다.
12.1. 성모 공경에 대한 오해
성당에 설치된 성모상이나 성인에 대한 전구 교리를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142] 를 믿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신교의 프로파간다도 한몫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에 성모 마리아를 끼워넣는다", "비성경적이다"는 망언을 펼친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선교할 때 천주교가 마리아 믿는다고 한 소리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여파도 있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교리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 바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이기 때문에, 또한 하느님인 예수가 성모님의 부탁이라면 틀림없이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최고위 성인으로서 공경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경배하는 성도는 산 이와 죽은 이를 구분짓지 않으며, 바로 이 성도의 가장 선두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가 바로 성모 마리아인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등 일부 반가톨릭적 이해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앞을 가로막고 자신이 성도들의 경배를 대신 받는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비방하고 있다. ''' 물론 이렇게 왜곡하고 비방하는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
성당 입구나 마당에 성모상이 서 있는 것 역시 '마리아교'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공격을 불러일으키는데, 본래 성당 마당에는 그 성당이 세워진 곳이 순교자의 무덤일 경우에 해당하는 순교성인의 상을, 혹은 그 성당의 주보성인의 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성당이 성당의 주보성인 대신 한국 천주교의 주보성인인 성모 마리아상을 스스로 택할 뿐이다. 천주교의 교리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믿음의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자이고, 예수는 삼위일체론 교리에 따라서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둘의 대우는 엄연히 다르다. 광화문에 세종과 이순신의 동상이 있다한들 우리나라가 세종이나 이순신을 신으로 모시는 나라가 아닌, 나라의 어른 즉 위인으로서 공경하는 것과 같다.
성경의 어떤 훌륭한 인물이라도 특별히 언급하여 칭찬하는 경우가 없는 개신교 입장에선 오해가 있을만도 한데, 성모송 또한 여타 기도문과 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성모송에는 마지막의 저희를 위해 빌어달라는 부분이 있는데.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전구(轉求)를 구하는 것으로 [143]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비는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 기도를 전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서방 교회의 기도문 중 하나인 성인 호칭 기도를 들어봐도, 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 야훼)에게는 '자비를 베푸소서'(miserere nobis)라고 하지만, 성모 마리아 이하 성인들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o nobis)라고 한다. [144]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28절)
(중략)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1-42절)
루카 복음서 1장 중 (공동번역성서)
즉,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로 착각하는 건, 마치 연예인 매니저한테 말을 걸어 연예인에게 선물을 전달해달라며 건네주는 것을 보고, 연예인의 팬이 아니라 매니저의 팬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모 마리아를 신성시하는 신자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가톨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 지나치고 어긋난 성모신심은 교황청에서도 엄연히 금지하고 있고, 신자들 사이에서도 외면받는 이단적 교리다.
이런 연유로 가톨릭 신자들 앞에서 이 말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 있다. 사실 이런 반응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저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타인의 종교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종교적 믿음생활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결례인 것이 당연한 거다. 그러니 절대 하지 말자.
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위상이 다른 성인들보다 높고, 성모승천대축일이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 의무 축일이거나,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명동성당에서 한반도와 한국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출처 라는 점[145] 과 같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이 가톨릭을 바라보았을 때 성모 마리아의 위상을 높이는 면면이 있다. 어차피 한국의 개신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상은 매우 낮거나 없다시피한 경우가 많은 데다[146] , '그게 숭배지 어째서 공경이냐'고 따지는 '들을 귀조차 없는' 개신교 신자도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요약하자면, 성인 중의 한 분으로 공경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지 성모 마리아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이 성모를 신으로 여기기에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가톨릭에서 기도란 성인에게 바칠 수도 있고, 성인과 함께 하느님께 바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성인 자체가 어떤 신성한 초월적 권능을 지녔다고도 믿지 않는다. 성모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가톨릭 신자가 기도할 때 적지 않은 경우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라는 구절이 들어가는데, 이것이 가톨릭의 기도에서 성인의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개신교의 관점에서는 성인들의 전구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므로, "예수님이 하느님이랑 우리를 같이 연결해주셨는데 왜 마리아한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냐"는 비판을 한다. 그러면서 가톨릭을 보고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우긴다. 그렇게 따지자면, 목사에게 기도를 청하는 개신교 신자들은 목사를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 설명한 가톨릭에 대한 오해나 비방은 '''주로 反에큐메니즘 정서가 강한 보수파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으로[147] ,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는 개신교 교단들[148] 은 대체로 천주교를 다른 전통의 교회 정도로 보지, 이단 내지는 기독교의 탈을 쓴 이교(異敎)로 비방하지는 않는 편이다. 사실 에큐메니컬 교단들도 성유물, 성인 공경, 성모 마리아, 고해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식으로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등 긍정적으로 보진 않긴 하다. 그저 비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 단, 예장통합, 대한감리회와 같은 보수적 에큐메니컬 계열에서도 가톨릭을 유대교처럼 '믿는 신만 같은 타 종교'로 보는 시선이 드물지 않다.
아래에 쓰인 것은 주로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위 문단에서 언급되었던 것들도 많지만, 이런 오해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했으며, 작성에 있어서 현직 교리교사의 간략한 의견과 함께 천주교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의 의견을 참고했다.
12.2. 성경, 성인, 구원관에 관한 오해
- 가톨릭은 신앙과 성경 가르침에서 이탈된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신앙과 성경, 그리고 성전에 충실한 역사가 가장 긴 종교이다. 이에 대해 교회의 역사성과 기독교 신앙의 전승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단에 대한 현대적 시점과 핵심에 대한 본질적 일치의 관점이 중요하다.
- 가톨릭 신자들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선행을 통한 인간적인 화해와 협력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로 보기 때문에 선행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행위구원론이나 펠라기우스주의가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에 도달할 수 있고 선행은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하기 위한 은총을 통한 개인적인 노력이다.
- 가톨릭을 행위구원론이나 종교무관심주의, 다원주의(종교가 없거나 어떤 타종교인도 다 구원받는 걸 인정하는) 종교라고 오해하는 시각도 상당수 비신자부터 근본주의적 일부 개신교도들까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명한 오해이다. 이 역시도 절대 사실이 아니다.
- 상기 문단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와 성인성녀들을 숭배하지 않는다. 본래 기독교의 근본이였던 만큼 하느님이 믿음의 대상이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이 흠숭의 대상이다. 성모 마리아는 성인들에 대한 공경의 대상 중에서 가장 높은 공경, 즉 상경(上敬)의 대상이다. 즉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 중에서 가장 으뜸된 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천주는 흠숭, 성모는 상경, 성인은 공경이라고 할 수 있다.[151] 사제서품식 때 부르는 성인 호칭 기도에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하고, 성모를 비롯한 성인들에게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한다.
- 가톨릭 교회에서는 천상의 모후(Regina Caeli)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모후면 임금의 어머니이고,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아들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측천무후나, 예전 조선시대에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나 대비[152] 를 연상시키고는 하늘의 여왕이니 하면서 우상숭배 운운하는데 완벽한 오해임이 분명하다. 성모 마리아가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몰아 내고 ‘내가 구원의 길이다’라고 한 적 없고,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 하느님을 지배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 없음을 아무리 얘기해 주어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까지 가톨릭 교회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 묵주 기도는 성모 마리아의 발 아래에 장미를 바치는 것에서 유래한다. 어디까지나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에게 바치는 기도로서,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어머니가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예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기도에 깊은 의미가 실린다.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신자는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생애 전반을 묵상하게 되어있다. 묵주 기도를 포함해 성모님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는 정확히 말하면 성모님에게 '함께 하느님께 청하여 주시기를', 혹은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시기를' 청하게 되어있다. [153]
- 일부 개신교인들의 가톨릭 비방으로, "그들은 혼인을 금지하고, 또 믿어서 진리를 알게 된 이들이 감사히 받아 먹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음식들을 끊으라고 요구합니다"라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디모데전서) 4장 3절의 성경구절을 가톨릭에 대입해, 이것이 "가톨릭의 성직자, 수도자 혼인금지와 금육 교리를 성경이 단죄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초기교회사와 그리스도교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드러나는 비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당 성경구절이 단죄하는 행각은 성직자의 혼인금지나 금육이 아니라 당시 영지주의 일부 종파에서 주장했던 극단적인 결혼금기와 유대 민족적 성향의 기독교 분파에서 자주 저지르던 특정 음식 거부를 이단적 사상으로 보아 단죄한 것이다. 초대교회 시기에는 이런 이단들이 창궐하여 극도로 과한 금욕주의를 강요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예를 들어 초기 교회 신학자이자 호교론자중 한명이었던 타티아누스(120~172)는 나중에 이러한 이원론적인 극단주의에 빠져 '영지-엔크라트'파라고 불리는 이단종파를 창설하여 결혼 자체를 죄악시하고 고기와 포도주를 신자들이 먹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미사(성찬예식)때 미사주로 포도주 대신 물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54]
- 또한 일부 개신교인들의 유명한 레퍼토리 중 하나로, 교황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을 때가 많음에도 교황무류성을 주장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 불린다는 이유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비난하는데 앞장서는 개신교 교파들도 많은데, 가톨릭의 교황(그리고 주교들)은 공식적으로 사도들의 후계자이다. 사도들이 신약성경 후반부에서 한 전교 행적과 초대교회 수립 등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받아,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역할'을 지속해서, 대신해서 한 업적이듯이, 교황직과 주교직도 사도들 이래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교황 역시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는 호칭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황이나 가톨릭의 주교, 사제 개개인의 인품이나 개인행실과는 상관없다. 또 교황이나 주교들을 신격화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도들의 역할을 이어받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일 뿐이며, 또 개신교에서도 신약성경 내용에서 사도들의 개인적 행적, 실수 등과는 '별개로' 성령의 힘을 입어 공개적으로 행한 교리선포들[155] 은 신앙적으로 무오류하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사도들의 적법한 후계자인 교황 역시 신앙과 도덕 차원에서의 교리선포가 무오류함을 지니는 것은 가톨릭 교리상 당연하다. 교황 무오류성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교황무류성 문서를 참고하자.
12.3. 기타 오해들
- 천주교 신자가 아니거나, 일부 개신교 신자들, 그리고 교리지식이 다소 부족한 상당수 천주교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 중 하나로, 천주교는 1939년 이후로 조상제사를 전면 허용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전면 허용이 아니라 특정 유교적 요소[156] 를 제외했다는 전제 아래 조건부로 조상제사 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 일반적 유교 조상제사는 천주교에서 여전히 우상숭배의 죄이다. 자세한 관련 원칙과 허용/금지사항에 대한 것은 이 문서 참조
- 특히 한국 천주교에서 묵주는 목에 걸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금지된 일은 아니다. 다만, 묵주는 목걸이 용도가 아니라 기도를 도와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액세서리 목적으로 걸고다니는 것은 지양해야한다. 그래서 묵주를 목에 걸 때는 옷 안으로 걸도록 권유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평신도들이 좀 큰 묵주를 목에 걸고다니는 경우도 꽤 있다. 묵주를 어떻게 하고 다니든 본인의 자유이며 케바케이다. 성물 자체를 우습게 여기거나 종교적 이유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큰 잘못인 것이다.
- 천주교 마산교구에서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짓고 주둔하던 웅천왜성에서 자신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예수회 소속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를 불러 미사를 드렸던 것을 근거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하느님의 손길을 전했다"라며 성역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웅천왜성 축조에서의 가혹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웅천왜성에 가톨릭 신자들이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를 기억하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들, 그것 자체는 웅천왜성 축조의 가혹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 비유를 하자면, 남한산성 성지가 '신라 문무왕이나 조선 인조의 국토 방어 의지'나 '축조에서의 노동 환경' 때문이 아니라, '순교가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성지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벌써 조선국을 정복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히데요시)의 정복욕에 의한 것입니다.
>
>Alessandro Valignano, Adiciones(1592) del Sumario de Japon, Adicion 4, IV, 487.
또한 당사자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조차도 왜군의 침략에 비판적이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전쟁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함에 의해 저질러졌다
>
>세스페데스 신부의 보고서 中 #
더군다나 박철 교수(전 한국외대 총장)는 "세스페데스 신부를 왜군 종군신부로 모는 건 역사 왜곡"이라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박 전 총장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온 것은 극비리에 이뤄졌으며, 그 배경에는 1566년부터 가스파르 비렐라 신부가 ‘꼬라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 숙제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박 전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1587년 천주교 추방령을 발표한 터라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은 극비리에 이뤄졌고, 도착한 후에도 1년 동안 웅천 왜성의 은밀한 곳에 칩거하면서 복음 전파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1년 만에 체류 사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귀에 들어가자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을 도왔던 일본의 지방 제후들이 신부를 황급히 일본 땅으로 돌려보냈다.
>박 전 총장은 “체류 당시 영내에 머물면서 왜군에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만 접촉했으며, 일본군 천주교 병사들을 대상으로 미사와 세례성사를 집전한 것을 두고 종군신부라고 규정하는 건 역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귀족의 자손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포로를 데려가 비센테(Vicent)라고 세례를 주고 보살핀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의 참화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일본에 있던 예수회 부관구장 신부에게 알림으로써 유럽에 전쟁의 진상과 조선 왕국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이며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종군신부’ 논란의 발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1930년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山口正之)의 ‘세스페데스의 서간문 연구’ 논문에서 왜군의 ‘종군신부’라고 단정지은 것이 시초라고 설명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당시 야마구치에 의해 왜곡된 주장이 아직도 국내 일부 교회사 연구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
>프레시안 기사
- 가톨릭 신부들은 아동성애자들이다.
- 국내 가톨릭에서는 딱히 상관없는 문제이나 서구권에서는 몇몇 막장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행태[160] 가 드러나면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특히 교황청이 해당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더 가중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엄청 심하게 일어난적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가톨릭 성직자들이 아동성애자라고 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 실제로는 타 직업에 비해서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교사보다도 적다고 한다. 해당 교구에서 은폐를 시도하면서 오히려 일을 벌렸다는 게 진짜 문제다.
-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경의 정경화가 이루어졌다.
- 니케아 공의회는 주로 삼위일체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공의회였고, 정경 목록을 정하기 위한 공의회는 아니였다. 서방교회의 정경 목록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해졌다. 카르타고 공의회는 지역 공의회였지만 서방교회 전체는 여기에서의 정경 목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카르타고 공의회 정경 목록은 트렌토 공의회때 보편 공의회(세계 공의회)의 레벨로 재확인 되었다.
- 가톨릭교회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다.
-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성직자들의 진보 성향이 전체적으로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직자들 개개인의 정치 성향이 진보로 기울어진 것이지 가톨릭 교회 그 자체는 특정 정치성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도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일 뿐, 교황의 수위권 혹은 교도권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게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모두 믿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를 추구할 뿐, 피지배자만의 교회, 착취받는 자만의 교회 같은 것은 지향하지 않는다. 당장 신자 십수억 규모의 초거대 종파가, 공식적으로 특정 정치 성향을 교리적으로 지지한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것이다(...) 그나마 가톨릭이 지지하는 정치 성향이 있다면 반전주의 정도.[161] 한국에서나 가톨릭이 진보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지, 북미나 유럽 지역에서는 가톨릭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의 집단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 기독교, 특히 중세 가톨릭 교회 때문에 중세시대에 고대 로마 시대에서 기껏 발전시켜왔던 유럽의 문명을 지체시키고 퇴보시켰다.
- 중세 문서 참조.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식은 떡밥이다.
- 중세 가톨릭은 교리적으로 천동설을 공인했다.
- 신학자들의 관심대상은 삼위일체론이 어떻고 실체변화가 어떻고였지, 저어기 우주에 박힌 별들이 아니었다. 교리적으로 천동설을 공인한 적은 없고, 단지 당시의 주류 자연철학 이론이던 천동설에 대해 '신학적으론 이러이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고 이런저런 썰들을 붙였을 뿐이다. 즉 현대 가톨릭이 진화론을 보고 '신학적으로는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의 경우 지동설 그 자체의 참-거짓 논증 때문이 아니라,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야기된 일련의 정치적 사태에 대한 재판이었다.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그의 저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가 교황을 풍자한다는 루머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
- 가톨릭은 예수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가톨릭은 선행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종교다/가톨릭은 가톨릭을 고의적으로 믿지 않아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개방적인 종교다.
- 전형적인 보수 /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의 마타도어이기도 하고,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이 아니라도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비종교인들 역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가톨릭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및 고정관념 중 하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다 틀렸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교리를 버린 적이 없으며 이는 애초에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종파인 이상 앞으로도 영구히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또한 가톨릭은 선행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행위구원론을 이단으로 배격한다. 구원의 여정에 있어 선행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리스도와 가톨릭교회에 대한 믿음은 없이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은, 가톨릭을 믿지 '못한' 비신자들의 구원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구원의 가능성은 불가항력적인 무지나 불가능을 전제로 한다. 즉 시대적인 한계나 또는 물리적인 제약의 한계 등으로 복음을 듣지 못하거나 가톨릭을 믿지 못한 사람 중 자기 문화권의 양심을 최대한 지키고 선한 삶을 산 사람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고, 이 구원의 가능성이라는것도 타종교에 무슨 신적 권능이나 구원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가톨릭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이미 선교를 접한 상황이라거나)에서 가톨릭 믿기를 고의적으로 거부한 비종교인/타종교/타종파인은 아무리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다 주장하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
-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 기적들을 믿어야 된다.
-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 없으면 절대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 이론적으로는 자기의 죄를 절실히 뉘우치고, 거기다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모독한 것까지 슬퍼하는 회개(상등통회) 만으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자신의 죄악이 대죄라면 완전한 마음으로 회개한 후라도 고해성사는 나중에라도 필수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외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심층적으로 알고 싶다면 밑에 첨부해 둔 본문,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가 작성한 개신교가 가톨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오해>를 참고하자.
12.3.1. 여성혐오 오해
- 가톨릭은 여자를 혐오하는 미소지니 기반의 종교이다?
- 주로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보통은 가톨릭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종파들을 여혐종교라고 지칭한다. 그 이유를 천천히 들어보자면 이러한데, 첫 번째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어 그에 영향에 따라 오늘날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라는 이유. 두 번째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부분을 이유를 들어 여자를 혐오하는 종교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여자를 혐오하는 사상을 전파하는 종교가 아니며, 문명권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여성들의 권위를 올려준 역할을 수행했고,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역사적 부분으로 보았을 때 로마 문명권에는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선포되면서 이전에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복지적인 부분을 상당히 많이 발전시켰는데, 보통 빈민 구제에 대한 부분이 중점이 되었고, 당대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소유물과 음식을 복지로써 하층민에게 도움을 주었고, 남성과 여성 모두 교사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 중 부유한 여성들은 교회 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병원과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덕분에 모성애에 대한 부분이 크게 주목되었다.
- 중세 초기~근세까지 집어보면 여성들이 군사적 지위를 가진 사례가 있다. 앞 항목에 언급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주님 앞에서는 성별, 지위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전제하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예로는 교황청으로부터 직접 승인받은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Order of the Glorious St. Mary). 군주의 역량에 따라 평민 여성들에게도 입단의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기사단을 창설하기도 했고, 이 외 유명한 튜튼기사단, 구호기사단과 같이 다양한 방향으로 입단할 수 있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사라센 병력들의 기록에는 여성 성전기사단을 포로로 잡은 기록이 있다. 군사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국가의 재산과 안정을 수호하는 면에서 중요한 것으로, 성별을 떠나 여성들에게 신분에 상관없이 기회를 제공하도록 발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사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배했던 유럽은 아랍, 동양을 비교해봐도 여성 지도자의 숫자가 매우 많은 편이다. 가톨릭이 여성을 혐오하는 종교였다면 애초에 권력층에 올라설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살리카법을 언급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는데, 살리카법은 가톨릭 교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게르만 국가였던 프랑크 왕국의 법이다. 이 살리카법이 시행된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이 시기의 시대적인 흐름에 대해서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164]
- 가톨릭 예비신자 교리서에 성모 마리아를 가장 존경하는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서 낳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하느님이시니,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명의 정신으로 성령에 의한 동정 잉태를 받아들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중략)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와 교회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올 어머니로 받들며, 그분께 자녀다운 효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교회 헌장, 53항 참조)
- 여성 성직자를 허용하지 않기에 여성혐오이다?
- 여성 성직자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여성을 차별한다는 것은 여성 비종교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이다. 비종교인을 위해 설명을 해주자면, 가톨릭에서는 성직자와 신자들이 함께 성가를 부르며 신앙에 관련된 의식을 행하는데 이것은 흔히 한 번쯤은 들어본 미사이다. 그러나 왜 항상 미사를 주관하는 신부는 남성만이 있는가를 생각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여성 차별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역사를 집어서 이 미사의 형태는 모두 예수라는 인물이 자신이 유대인 사제들에게 잡혀가기 이전에 최후의 만찬[165] 에서 보여준 그 모습의 형태를 구현하는 모습이다. 그때 당시 예수가 말한 것은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라는 말과 이것은 나의 몸과 피이니 너희는 이를 행하여라 라는 말을 이어서 덧붙인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은 남성이었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주는 것처럼, 그 모습을 이어가기 위해서 남성 성직자[166] 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는 것이지, 여성을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 그래도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면 역사의 인물을 빗대어서 생각해보자, 영국사 중에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알프레드 대왕이라는 군주가 있었다. 링크를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대략적으로 굵직한 업적을 서술하자면 왕국에 침공한 바이킹을 몰아내고 잉글랜드의 중앙집권체제과 군사적인 업적에 대해서 크나큰 발판을 세운 사람이다. 일반적인 사람보다 능가한 업을 세운 사람이므로, 당연히 업을 치하하기 위해 역사적 문건이나 그림으로 남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당대 저술가,예술가던 오늘날의 컨텐츠(게임,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용맹스럽게 나아가는 남성 알프레드 대왕으로 묘사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사람들이 여성을 혐오하거나 차별하기 위해 남성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알프레드 대왕은 남성이었고 그 인물의 모습과 업적을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서인 것이지 성별에 대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구현하기 위한 성체를 나누어주는 성직자 또한 마찬가지. 애초에 위 내용을 떠나서 여성을 차별하는 의식과, 혐오하는 사상이 근간에 있었다면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역사의 수순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이 신앙의 핵심과 중심적인 부분을 만들어낸 예수 그리스도는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있었고, 자신이 십자가 형으로 죽고 다시 부활했을 때는 사도가 아니고, 남성이 아닌 여성을 가장 먼저 만나러 갔다.
- 그러면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여성의 권위를 올린 것도 사실이며, 군사적 지위나 왕실에 큰 권력까지 행사할 수 있었고, 후기 19세기까지 장교의 직위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게 받아들였는데, 왜 유독 여성 사제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부담을 가지는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의미, 존재를 살펴보자면 신앙인들에게는 삼위일체의 존재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자 초월적 존재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것을 간단하게 필멸의 인간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는 생각이 많다. 단순히 말해 여성 성직자의 인정은 좋다 or 싫다와 같은 원초적인 호감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여성을 차별하기 위해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아니다.
- 그렇지만 신부(종교) 문서에서도 나왔듯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논리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전승이 끊어질까 우려하는 것은 참된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성스럽게 해석될 수 있는 모든 직업들을 그러한 이유로 남성들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남성 교사에게서만 수업을 듣고, 남성 의사에게서만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인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벗어나 여성 사제의 역할을 인정하는 성공회 등의 타 기독교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가톨릭 측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제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남성이었던 예수를 대신해 성찬을 하는 대역이라서 인간 형태의 예수와 성별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지, 단순히 성스러운 직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3. 신학
좀 더 신학적으로 가톨릭에 대해 알고 싶다면 호교론(護敎論)을 펼치는 책으로는 볼티모어의 대주교였던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의 교부들의 신앙이나, 개신교 목사에서 가톨릭 신학자로 전향한 스코트 한의 저작들[168] 이 추천된다. 좀 더 부드럽고 생활 신앙적 가르침을 원하면 스코트 한의 저작들을, 강한 호교적/교리적 가르침을 원하면 <교부들의 신앙>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깊은 교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두 스타일 모두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 더욱 좋다.
가톨릭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부(敎父)[169] 들의 탄탄한 철학적 토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고전 저작 중에서는 <고백록>, <신국론> 등 철학자로도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작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170] 이 제일 많이 권해진다. 특히 <준주성범>은 개신교에서도 신앙 교재로 쓸 만큼 깊이 있는 고전 걸작.[171]
단 평신도 사도직, 교리교육 봉사직 이상에게 추천될 정도로 찐한 책들이 많으니 신앙생활이 익숙해진 다음 신부님/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차근차근 읽는 것을 권한다. 물론 고전 중에서도 <신심 생활 입문>이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 자서전>처럼 새내기 신자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일드한 책들도 있다.
14. 문화
흔히 개신교를 믿는 것을 ''''교회 다닌다'''', 가톨릭을 믿는 것을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톨릭에서는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아니다. 가톨릭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나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동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교회 건물이 아닌 사제와 신자들의 모임을 일컫기 때문이고, 교회가 모이는 장소가 '성당'이기 때문에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가톨릭의 헌법을 ‘교회법’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개신교의 경우, 일제강점기만 해도 교회라는 단어를 가톨릭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하고, '교회당(敎會堂), 예배당' 등의 단어를 사용했으나, 이후 용법이 변화해서 현재와 같이 되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교리적으로는 교회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모임으로 정의한다. 일단 한국에서 성당이라고 부르는 곳에 가서 간판을 보면 '교회'라는 명칭을 쓰는 곳이 더 많다.[172] 오늘날에 가톨릭 교회를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신교의 교회와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구분하자면 교회는 개념, 성당은 그 교회가 모임 장소로 이용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해외에서의 가톨릭 교회도 성당(cathedral)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해외에서 사용하는 cathedral이라는 용어가 교회와 성당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cathedral은 정확히 주교좌 성당, 즉 대성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구 내의 일반 성당들은 그대로 church로 표기한다. 개신교회[173] 중에서도 과거 대성당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사용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교회들에 cathedral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서양의 가톨릭 교회의 경우 제일 붐비는 일요일 오전 10시 교중미사를 무조건 대성당에서만 거행되는데, 그러다보니 외국인인 한국인들은 대성당의 존재만 알고 있어 서양도 한국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를 구분하는 걸로 인지하는 듯.
또한 천주교 성당이면 '''어디를 가든지 동일'''한 성경구절과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곳이다. 성당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각 성당의 외형과 규모(크기),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 실내장식의 분위기 등 사소한 것들 뿐이다. (같은 교파라도) 목사나 장로들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른 개신교 교회와는 차이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 이사를 가더라도 이전까지 다니던 교회를 계속 출석하는 경우도 많고,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교파와 목회자의 스타일 내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교인 수평이동). 그러나 천주교의 경우 집 근처의 성당에 다니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고, 굳이 집에서 먼 성당에 다닐 이유가 없다. 물론 개신교의 경우 교회들마다 따로 헌금을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헌금 수입의 감소 등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교회 자체적으로도 신자의 이탈을 꺼리기도 한다. 또한 개신교 신자들은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받을 때 거액의 직분 헌금을 내는데, 그런 큰 돈을 내고 나면 다른 교회로 옮기기도 아깝다는 이유도 있다.
가톨릭은 신자들이 교리와 그 권장사항을 따르길 강하게 요청하지만, 신자들이 그 권장사항을 지키지 않는다고 외적으로 신앙을 박탈하는 경우는 현대에는 많이 없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 '콘돔이나 루프, 정관수술 등의 인공피임을 금지한다'는 교리가 있지만, 최소한 한국 가톨릭의 신자들이 콘돔을 사용하든 말든 외적인 신앙생활에서 보이기에는 자기가 대놓고 이 사실을 밝히고 다니지 않는 이상 제재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174] 물론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왜 콘돔 사용을 금하는지 그 뜻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뜻에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해성사를 할 순 있어도, 현실에서 그런 사유로 가톨릭에서 따로 처벌하는 일은 찾기 힘들며 성당에서 추방되는 경우도 없다. 파문은 옛날에는 분명 신앙 외적인 부분에서도 한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처분이었지만, 현대의 파문은 '''신자가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교회를 통한 은총을 유보하는 것'''에 가까우며, 파문 결정도 대단히 신중히 하며 나중에 복권될 기회도 충분히 준다.[175]
가톨릭에서는 선교를 권장하고 대단히 중요한 행위로 본다. 단, '''포교행위를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물론 가톨릭도 전교(포교)를 하고, 각종 외방전교회, 교황청 전교회를 비롯한 선교회들도 대단히 많으며, 선교 역사도 대단히 길다. 지정된 수도회의 수도자(수사/수녀)와 여기서 오래 훈련 받은[176] 소수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해당 교구의 철저한 통제 하에 시행한다. 교육만 성실히 받으면 그 외 자격 조건은 없다. 하지만 대부/대모가 될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을 권하는 편이다(이끌어 오는 사람의 대부/대모가 되는 일이 많으니까). 18세 이하의 청소년도 포교단 할동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긴 하나, 한국의 교육 현실 때문에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또 개인적 차원의 천주교 전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칭찬받을 덕목이자 준 의무차원으로서 적극 권장한다.
포교와 전도는 분명히 칭송받을 덕목이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그것이 곧바로 구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교는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참된 복음은 말과 설득보다 모범적인 행동과 그리스도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신자들의 삶에서 드러내는 '''실천'''이 곧 구원의 길이고 은총이고 선행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천주교인으로 주위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곧 최고의 선교활동 중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도 계신다.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가톨릭 교세가 크게 확장한 데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2번에 걸친 방한과 시성식 영향이 컸지만, 사회 약자를 돕고 정의로운 일에 나서며,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간접적인 포교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의 막무가내식 협박성 포교와 달리 대중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도 있다.
만약 십자가 짊어지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친다거나, 길거리에서 휴대용 물티슈 나누어 주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하는 행위가 전교의 전부다라고 정의한다면, 가톨릭 교회는 그런 의미의 전교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전교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복음서 28:20)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 전교를 정의한 성경 구절을 들자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복음서 13:35)가 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다른 종교의 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목사의 자녀와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올리면서 개신교식의 혼인예절을 하게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적 존중''' 차원에서 이들의 예식을 비난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으며, 전통 예식이라도 종교적인 의미가 퇴색된 경우에는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지난 시대에 저질렀던 탄압과 무자비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결과. 또한 그러한 문화를 가톨릭 속에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 천주교에는 미사 중에 국악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복 입은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상도 있으며, 아프리카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글빙글 돌고 춤추면서 야외 미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철학은 물론이고 불교, 이슬람 등 타 종교에 대해서도 필히 공부하게 되어 있다. 예로 외국에 있는 한인 성당과 한인 절은 서로의 기념일에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예수회는 전통적으로 세속 학문과 철학 연구에 있어 전문적인 학자 사제들을 배출해왔다. 풍부하고 객관적인 내용으로 전세계 철학도들의 필독서인 철학사 시리즈의 저자가 영국의 예수회 신부 프레데릭 코플스톤(Frederick Copleston)일 정도. 그만큼 문화와 학문에 대한 개방성이 개신교에 비해 매우 크다고 평가된다. 광주광역시의 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는 실제로 철학이라는 과목 명으로 학교의 재단인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수사님이 강의하는데, 개신교는 물론이거니와 이슬람, 불교, 유교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생물''' 과목을 강의하는 교사가 '''신부님'''이라는 것. 당연히 진화론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학교는 지나다니다 보면 전대 교장 신부님이 수레를 끌고 다니며 제초작업이나 나무를 다듬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는 조상제사를 '''조건부'''로 허용한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새로이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단, 신위나 신주, 제방은 금하며 사진을 놓는 것만 허용된다. 자세한 것은 제사/종교별 입장의 천주교 문서 참조. 사진이 없어 제방을 놓아야 하는 경우는 신위(神位)라는 글자를 빼고 이름만 써야 한다. 그래서 사실 제사를 허용했다기보다는 토착화의 일환으로 조상 추도 의식 내지는 조상의 영혼을 위한 기도식을 제정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는 유교에서 조상 혼백의 개념이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교에서 조상의 혼백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고 가문의 길흉화복과 전혀 무관하며, 단지 자식으로서 예를 갖추는 것 뿐이다.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고 못 박은 것도 이런 취지이다. 조상의 혼백이 길흉화복과 연관된다는 믿음은 도교와 민간 신앙이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조상이 돌아가시더라도 예를 다해 잘 모시면 선한 행동이 보답받는다는 정도의 믿음은 있지만 그 정도는 타협 가능한 수준이고, 기복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에서도 대차게 비판받는다. 오로지 보상 정도로만. 일본에서는 신사 참배도 동일한 맥락으로 허용한다.
사실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은 서양에서도 있다. 마을 어귀의 가족묘지에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정도의 추모 의식이 그것이다. 다만 묘지가 아니고 집에서, 묘비가 아니고 신위 앞에서, 묵념이 아니고 절을 하고, 저녁 음식이 아닌 제사상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 우상숭배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791년 순교한 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공초에서 이러한 개념이 상충하면서도 대립하는 요상한 컬처 쇼크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상당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것도 영향이 있다. 지금의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교적 요소를 제외한 명절의 차례 역시 교회 공동체의 일로 승화시켰고, 심지어 설이나 추석 때 '''성당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특히 설날에는 합동 차례가 끝난 뒤 주임신부가 세뱃돈을 나눠 주기도. 본래 주임신부 개인 돈으로 나눠주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문초관 : 네 죄목은 신주를 불태운 것. 죽을 죄를 지었지?
윤지충 : 천주학 역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무 쪼가리가 내 부모라고 가르쳤습니까?'''
문초관 : 여기가 서양이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는 조선이다.
윤지충 : '''조선에서도 5대째 되면 신주를 불태웁니다.'''
문초관 : …4대까지가 성현이 정한 육신의 도리이다.
윤지충 : 그거 누가 정한 것입니까?[177]
문초관 : ……'''매우 쳐라!'''
이렇듯 현대의 천주교는 지역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관용적이고 현지화도 상당한데, 이는 천주교의 지향점이 '어느 국가 어느 민족이라도 믿을 수 있는 '''보편된(catholic) 교회''''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논란이 되는 작품인 다빈치 코드에 대해서도, 그저 픽션적인 작품이라는 단순한 결론만 내려두고 신경쓰지 않는다. 금서라고 칭하거나 반박하는 일도 없다. 2009년에 교황청에서 찰스 로버트 다윈의 진화론에 대하여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1950년경에 교황 비오 12세가 "진화론은 인간의 발전에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발언을 상기하면서, 이에 대해 창조론은 그에 발맞춰 다른 방향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황청 부속기관인 로마 산타 크로체 대학의 신부이자 교수인 주세페 탄젤라 니티도 "4세기에 활동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서도 진화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교황청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는 가설 이상의 사실"이라고 밝히며 "진화론이 가톨릭의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언급만 없다 뿐이지, 사실상 교황청은 진화론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영혼은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주장만큼은 굽히지 않고 있는데, 이건 가톨릭 한정 혹은 기독교 전반의 근본을 뒤흔들 문제이기 때문이다.[178]
가톨릭에는 '''수도회'''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특정한 구역에서 특정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사제/수도자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메이저 수도회는 예수회, 아우구스티노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토회, 도미니코회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자 수도회가 약 30여 곳, 여자 수도회가 약 130여 곳이 있다. 생각보다 매우 많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신부나 수녀는 교구 소속 신부이거나 교구에 파견된 수녀이며, 수도회 소속 신부/수사/수녀는 대외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이거나 특정한 목적의 외출이 아니면 수도회 밖으로 나오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보기가 힘들다.
'''봉쇄수도원'''이라고 하여 '''평생'''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닌, 그만큼 철저한 구도(求道)와 봉사를 한다는 뜻이므로 오해는 하지 않도록 하자. 수도회를 다룬 작품 중에서는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매우 추천할 만하다. 물론 진짜로 수도원 담벼락 안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신자들과 신부들이 가지는 관계도, 개신교에서 신자들과 목사들이 가지는 관계와 다소 차이가 있다. 교리적으로 파고들면 개신교는 '교회의 권위란 적법한가?'에 대한 의문에서 분리된 종파이기에 '교회와 신자'라는 관계에 있어서는 가톨릭보다 신앙을 다소 개인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부(목사)와 신자의 관계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나는데, 오히려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이 관계를 덜 중시한다. 교구사제들은 몇 년마다 교구에서 다른 본당으로 뺑뺑이 돌리는 신세인 반면, 목사들은 자의로 이적하거나 숙청 당하지 않는 이상 해당 지역 신자들과 수십년씩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179] 또한 신자들이 교육을 받을 때도 가톨릭은 전세계가 동일한 교리를 공유하므로, 사제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그 스타일에 차이점은 있을지언정 동일하다. 반면 개신교는 같은 교단 내에서도 목사들 개개인의 해석이 차이가 날 수 있고, 정말 심각하게 막 나가지 않는 이상 뭐라고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서적 등을 통해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들은 일단 '가톨릭' 타이틀[180] 만 제대로 붙어있다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읽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지는 않는지, 혹시 문제 있는 목사의 서적은 아닌지 등등을 짚어가며 읽는 편이다. 때문에 가톨릭 신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본당신부 이외에 정보를 취할 경로가 많으며, 본당신부와의 관계가 개신교 신자들이 목사와 가지는 관계와 차이가 있다.
비유하자면, 가톨릭의 신부는 초 거대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하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직원'에 가깝고, 개신교의 목사는 어떤 특정한 협회에 소속된 '회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교단에서의 대우나 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나는 것.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도 신부들과 신자들의 관계가 (개신교에 비해) 너무 냉랭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181]
가톨릭의 신부를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점주로, 개신교 목사를 자영업자로 비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비유든 본질을 파악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지금도 유럽 가톨릭 교회에는 우리나라 개신교처럼 한 번 소임지가 정해지면 평생 그곳에서 사목하고 있는데, 이것과 우리나라처럼 일정기간 사목 후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경우 일장일단이 있고,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사제와 신자들 사이의 관계에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한데, 이는 과거 성직자와 평신도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라 사제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가 되어야지, 예수 그리스도는 배제된 채 사제와 신자 간의 인간적인 관계가 우선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사제가 소수의 특정 신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나라 사제들은 붙박이가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동하기 때문에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가 개신교 예배당과 같을 수 없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개신교 예배당 분위기에 익숙한 시각에서 보면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가 냉랭하다는 오판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서로 다름의 문제이지, 비교의 문제는 아니다.
14.1. 한국 가톨릭의 문화
15. 역사
16. 동아시아에서의 가톨릭
동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지역은 대한민국, 마카오, 홍콩 등이 있다.
16.1. 대한민국
16.2. 중국
의외로 명나라의 엘리트 서광계 등이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교회는 중국과의 마찰이 심하다. 애초에 일당제 국가인 중국의 공산당이 표방하는게 무신론이기도 하고,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종교를 모두 공산당 아래에서 관리 감독한다는 원칙을 세워놔 당에서 종교인을 임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사제들도 '''중국 공산당에서 자체적으로 임명'''한다. 이들의 집단을 '중국 천주교 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고 한다. 이 천주교 애국회에 속하는 걸 거부하는 신부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된다.
가톨릭 사제들은 모두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은 주교들이 임명해야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신부를 뽑아 임명한다. 심지어 주교 서품도 교황청의 승인없이 공산당에서 해버린다. 본디 성직자 서품, 특히 주교 서품은 교리상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이는 교회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많은 중국 대륙의 가톨릭 신자들[182] 은 당이 관리하는 교회에는 나가지 않으며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가톨릭의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교회는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당국의 종교규제를 피해 모이는 지하교회 같은 경우는 가톨릭,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공식 교회 수치보다 매우 많다. 왜냐면 공식 교회를 배교자로 보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홍콩이나 마카오, 싱가포르 등의 그리스도인이 많은 중화권 사업가들이 몰래 지하교회에 '''성경''' 등을 반입하다 걸려 추방당하거나 투옥되기도 한다.
때문에 애국교회라 불리는 관영 단체를 바티칸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과 외교관계도 수립하지 않고 중화민국(대만)과 수교중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에 "교회를 수하에 두려는 '국가단체'는 가톨릭 교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참고: 중화인민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그러나 교황청으로서도 급속히 성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대가 공산당 애국교회의 사제와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는 방식으로 인정하고 있긴 하다. 특히 주교에 관해서, 일단 애국교회 소속으로 서품을 받았어도 교황청에 순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바티칸과 공산당 양쪽에서 인정받고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이런 의사를 전달하지 않은 '일부 극소수'[183] 주교가 있지만, '''중국에 없는 것은 바티칸과 중국 공산당 양자가 모두 동의하는 주교회의이지, 양자에게 모두 합법적인 중국인 주교가 아니다.'''
이는 위에서 링크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서한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이다.
즉 베네딕토 16세의 이 서한이 있었던 시기를 기준으로 할 때, 극소수를 제외하면 중국인 주교들은, 지하교회에서 활동하든 애국회에서 활동하든, 교회법상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주교였으며 재치권을 온전히 허락받았으며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었다.일부 주교들은[184]
교회 생활에 대한 부당한 통제에 굴복하지 않고 베드로의 후계자와 가톨릭 교리에 온전히 충실하려는 열망에서 비밀리에 축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밀스러운 상황은 교회 생활의 정상적인 특징이 아니며, 역사가 보여 주듯이, 목자들과 신자들이 이러한 방법에 의존해 온 것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신앙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교회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들에서 국가 기관의 간섭에 저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황청은 이러한 합법적인 목자들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효력을 위해서도 정부 당국의 인정을 받고, 모든 신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 안에서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그러나 특수한 상황의 압력 아래 놓인 다른 목자들은[185]
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품을 받는 데에 동의하였으나, 곧이어 베드로의 후계자와 다른 형제 주교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교황은 그들의 성실한 마음과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고 이웃 주교들의 견해를 참작하여, 그들이 주교 재치권을 온전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교회의 보편 목자의 고유한 책임으로 허락하였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그들 축성의 특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완전한 친교를 재건하려는 깊은 사목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사제와 신자들은 자신의 주교가 합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한 까닭에 여러 가지 심각한 양심의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더욱이 인정받은 주교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합법성을 입증할 분명한 표지를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당 교구 공동체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일단 그러한 인정을 받았으면 되도록 빨리 공개되어야 하고, 인정받은 주교들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이루는 온전한 친교의 확실한 표지를 점점 더 제시하여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일부 극소수''' 주교들은[186]
교황의 위임 없이 서품을 받았고 필요한 법적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거나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라 이들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유효하게 서품된 주교들에게 성품을 받았고 가톨릭 주교 서품 예식이 존중된 것이 확실하다면 유효하게 서품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지는 않지만 성사 집전으로 비록 합법적이지는 않다 하여도 그들의 직무를 유효하게 수행합니다. 필요한 조건들이 성립되어 이러한 목자들도 베드로의 후계자와 모든 가톨릭 주교와 친교를 이룬다면 중국 교회가 얼마나 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의 주교 직무가 합법화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중국 교회가 로마 주교와 전 세계 다른 모든 개별 교회와 결합된 가톨릭 교회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제와 신자들과도 더욱 풍요로운 친교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위 기사가 나왔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주교들은 교황청과 중국 정부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다.교황청은 지난해 9월 22일 중국과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협약’에 서명했다. 이 협약으로 교황청은 불법으로 서품된 중국 주교 7명을 인정했고, 이들을 각각 교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현재 중국의 모든 주교들은 교황청과 중국 정부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협약 이후 중국에 새로 임명된 주교는 아직 없다.
2019년 3월 10일 가톨릭신문 기사
따라서 애국회의 사람들을 모조리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라고 취급해버리는 것은 가톨릭 입장에서도 옳지 않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을 교회법적 합법으로 끌어안는 것은 바티칸이든 중국 공산당이든 오래 전부터 원하고 있는 바이며, 서로 동의한다.
다만 대화가 막히는 주제는 2가지로, '주교 서품권'과 '바티칸-중화민국(대만)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언론들이 관영 단체에 대한 바티칸의 호의적 태도를 마치 교황청이 굴복한 것처럼 간주하면서 오해를 낳고는 하는데, 교황청은 주교 서품권을 포기한다고도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한다고도 발표한 적이 없다. 이미 공산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바티칸과 베트남 공산당 양측이 동의하는 주교들이 당당히 활동하고 있기에, 바티칸과 공산당 양측의 동의를 얻는 주교라는 개념은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참조 기사와 번역)
In mainland China, there are also some bishop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not yet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Some may still be living in situations deprived of freedom and are unable to exercise their episcopal ministry. Consequently, a future bishops’ conference in China would have to include all the legitimate bishops of the open Church as well as the clandestine bishops.To strive for and protect the legitimate authority of the bishop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in China, Rome should also conduct a dialogue in order that these bishops be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as legitimate. Some people are worried that the illegitimate bishops are being treated with excessive leniency in Sino-Vatican negotiations puts the principles of faith and communion of the church in second place. Such worries are unnecessary.If the Holy See has any intention of forsaking the principles of faith and communion of the church, there would actually be no need for it to dialogue and negotiate with the Chinese government. The unceasing dialogue actually represents the unwavering stance of the Holy See towards this question.
중국 본토에는 정부에 의해 아직 인정받지 못한 비밀 교회들에 속한 주교들도 있다. 일부는 아직도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 살고 있을 수 있으며, 자신들의 주교 직무를 실행할 수 없다. 그 결과, 장래의 중국 주교회의는 공식교회의 모든 합법 주교는 물론 이들 지하교회 주교들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편집자 주[187]
- 공식교회의 상당수 주교는 주교 서품 전후에 교황청과 의사소통을 통해 합법 주교로 인정받은 상태이다.)중국에 있는 지하교회 주교들의 합법적 권한을 추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로마는 이들이 정부에 의해 합법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대화를 실행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 합법 주교가 중국과의 대화 속에서 (교황청이) 너무 양보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신앙이라는 원칙들이 뒤로 밀리는 가운데 처리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런 염려는 불필요하다.
만약 교황청이 교회의 일치와 신앙의 원칙들을 내버릴 생각이 있다면 중국 정부와 대화하고 협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다는 것 자체가 이런 물음에 대한 교황청의 확고한 입장을 대변한다.
또한 지하교회가 처한 어려움은 당면한 현실이며, 이들에게 '이대로가 좋으니 그대로만 있어다오'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톨릭적 관점에서 옳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바티칸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중국정부와 바티칸과 협약이 일부 이루어져 중국정부는 향후 바티칸의 승인을 받고 주교 서품을 하도록 하며 바티칸은 미승인된 중국주교도 승인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통혼 추기경, 홍콩
교황청과 중국 당국의 대화는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으며, 베트남 등 여러 특수한 사례들을 참조하여 주교 서품이 논의되고 있다.
한편 중국 영토이지만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 교구는 로마 교황청의 정상적 수위권 아래 놓여 있다. 그래서 중국 추기경은 본토가 아닌 홍콩의 추기경과 마카오 추기경, 대만 추기경의 3인으로 치기도 한다.
홍콩과 마카오는 기독교가 교세가 큰 편으로, 신/구교 합쳐 2016년 기준 87만 명이나 되는 신자가 있다. 700만 인구뿐인 곳임을 감안해 볼때 적어도 12% 이상의 상당수[188] 가 그리스도인이며, 그 중에서도 과반수가 가톨릭을 믿고 나머지는 성공회와 장로회 등 신교이다. 홍콩에서 가톨릭은 개신교 교단인 성공회, 루터회, 침례교 등과 함께 사립학교 대부분을 갖고 있으며, 최근 우산혁명이나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 등 민주화 운동에도 그리스도교가 적극 참가해 젊은 층으로부터 '''민주화 종교'''라며 호응을 좋게 얻고 있다. 홍콩교회는 반공 및 진보 성향이 강한 편으로 젊은 층 중에서 최근 들어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는 층도 많다. 당장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불리는 민중가요는 Glory to Hong Kong이라는 노래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집회에선 Sing Hallelujah to the Lord라는 성가도 많이 불린다. 홍콩 가톨릭의 경우 사회적 영향력도 강한 편이다.홍콩 섬 완차이에는 가톨릭 교도 공동묘지가 해피밸리(Happy Valley) 쪽에 있다.[189]
마카오는 아시아 최초로 주교를 맞이한 곳으로 포르투갈인과 중국인의 혼혈 중국인인 마카이엔사는 대대로 가톨릭 신자들이며 도미니코회 로사리오 관구가[190] 마카오에 있고, 마카오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도미니코회원들이 양성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마카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륙인들도 토착 마카이엔사들과 섞이게 되고 영향을 받으며 가톨릭 신자가 되고 있다.
16.3. 중화민국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이 중화민국, 즉 현재 대만을 실효지배하는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수교국이자 유럽에서는 유일한 수교국이기도 하고, 중국 대륙을 다스리는 공산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과 바티칸의 마찰로 인해 대만 가톨릭의 입지는 중국 본토에 비해 그나마 좋은 편이다.
하지만 수적으로 대만의 가톨릭 신자는 전체 종교인 비율 중 아주 소수인데, 2010년대 기준으로 많은 통계들이 대만내 가톨릭 신자를 1~2% 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만은 전통적으로 미신이 강했던 곳으로 70%의 대다수 인구는 도교와 불교 그리고 대만 원주민 원시종교 등이 섞인 혼합 전통종교를 믿으며 기존 고등 보편종교들이 이상하게 번성하지 못하는 곳이다. 일본과 비슷한 셈. 불교조차 대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고, 전통종교 내 유입된 불교적 요소인 관음신앙만 잔뜩 보인다.
더구나 중국의 힘이 점점 더 커지면서 바티칸도 중국을 더 의식하고 있기에 앞으로 어떻게 정황이 흐를지는 미지수인데 정황 상 가톨릭 신자도 미미하고 가톨릭 영향력도 미미한 대만 대신 신자 수가 꽤 많고, 가톨릭 영향력이 큰 홍콩 및 마카오를 영유하는 중국과 정식 수교하여 홍콩 및 마카오에 정식으로 교황청 대사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16.4. 일본
센코쿠 시대 무렵 일본과 무역을 하던 스페인,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전래되었다. 센코쿠 시대의 다이묘들은 서양 세력과의 무역으로 이득을 챙기기 위해 가톨릭 전래를 허가하였고, 오토모 소린이나 타카야마 우콘, 이치죠 카네사다,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구로다 조스이 등 스스로 가톨릭 신자가 되는 다이묘도 있었다. 이 때 개종한 사람들은 일본에서 키리시탄으로 불렸고, 다이묘의 경우는 키리시탄 다이묘라 불렸다. 조선보다 일찍, 선교사에게 직접 전래받았던 터라, 안정적으로 교세를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시마바라의 난이 발생하고 진압되면서 무자비한 박해가 일본 가톨릭에 닥치게 된다. 이 내용은 카쿠레키리시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세속주의의 영향 등으로 무종교 비율이 높은 동아시아권임을 고려해도 일본의 가톨릭은 독보적으로 비중이 낮다. 모든 기독교 종파를 합쳐도 전체 인구의 약 1% ~ 2% 수준에서 오르내리는데 그치며 가톨릭만을 고려하면 2013년 기준으로 44만명 수준이라 0.3% 남짓에 불과하다. 신자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는 편이며 예외적으로 카쿠레키리시탄의 영향이 있는 나가사키 교구는 인구대비 신자 수가 4%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높다.
역대 추기경은 6명이 있었으며 최초의 일본인 추기경인 도이 타츠오 베드로(도쿄 대주교) 추기경을 시작으로 타구치 요시고로 바오로(오사카 대주교), 사토와키 아사지로 요셉(나가사키 대주교), 시라야나기 세이이치 베드로(도쿄 대주교), 하마오 후미오 스테파노(요코하마 주교), 마에다 만요 토마스 아퀴나스(오사카 대주교) 순으로 서임되었다.
이 가운데 도이 베드로 추기경은 1963년 콘클라베(바오로 6세)에, 시라야나기 베드로 추기경과 하마오 스테파노 추기경은 2005년 콘클라베(베네딕토 16세)에 각각 참여한 바 있다. 현행 추기경은 마에다 토마스 아퀴나스 추기경이 재임중이다.
잘 알려졌듯이 일본은 신토와 불교의 입지가 가장 큰데, 이런 전통적 종교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한 부라쿠민[191] 계층이 신분 평등을 내세워 선교하던 가톨릭을 받아들여 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기도 하다.
천황이 인간선언으로 일본에서 '형식상의 인간 국가원수'가 되었지만, 현대 신토에서도 드러나듯이 여전히 천황이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일신 교단인 가톨릭과 주류 일본 종교계의 괴리는 여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동아시아의 신(神)이라는 한자 자체가 본래 가톨릭의 주님을 표현하는데는 부적합한데, 일본에서 '카미(神)'로 읽는 신(神)의 개념은 그 자체가 워낙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도 구별되므로 더욱 그렇다. 오늘날의 일본에서는 다양한 종교와의 접점이 생겨 '카미(神)' 의 의미도 혼용되어 쓰이지만, 이러한 큰 차이때문에 일본내 가톨릭은 소수종교로서의 입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가톨릭 교구 설정의 역사가 한국보다 오래되다 보니, 한국 천주교와 다르게 전교지역이 아니라서 인류복음화성이 아닌 주교성성 관할지역에 속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천주교는 일본에 선교사제를 보내는 관구 중 하나다.
일본은 신자 및 사제의 부족으로 교구 아래 소교구는 공동선교지구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본당의 주임이 부임하지 않고 선교사제와 교구사제 몇 명이 공동으로 여러 본당을 담당한다.
신학교는 도쿄 가톨릭 신학원과 후쿠오카 가톨릭 신학원 두 곳이 있다. 도쿄 가톨릭 신학원이 도쿄관구와 오사카관구의 사제 양성을 담당하고 후쿠오카 가톨릭 신학원이 나가사키관구의 사제 양성을 담당한다. 이 두 학교는 2009년 일본 가톨릭 신학원 도쿄 캠퍼스와 후쿠오카 캠퍼스로 잠시 통합되어 철학과 1~2학년(1~2학년)과 부제 과정(6학년)는 도쿄 캠퍼스에서, 신학과 1~3학년(3~5학년)은 후쿠오카에서 양성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운영상의 문제가 지적되어 한쪽 캠퍼스를 폐지하는 안이 논의되었으나 두 신학교의 역사를 모두 존중하여 2019년 다시 분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대중 영상 매체의 영향으로 가톨릭계 사립 학교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선량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꽤 있다.
17. 비판
이하 서술된 내용들은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유럽사에 대한 피상적인 견해만 가지고 쓴 근거가 부족한 서술들도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한국에서 서양사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깊지 않다보니 교과서, 미디어 등으로 간단하게 배운 지식에만 기반한 인상비판이 주를 이루는 것이 이 주제다.
가톨릭은 흔히 중세=암흑기라는 공식과는 다르게 로마시대의 문화 지식을 보존함과 동시에 빈민구제 등으로 한때는 유럽사회의 정체성 확립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처럼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왕과 제후 등 세속세력과 손잡고 또하나의 지배층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이 종종 가해지지만, 이는 중세사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이해에서 비롯된 면도 크다. 가톨릭 교회 자체가 중세 내내 단일한 성격의 집단으로 남아있었던것도 아니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일괄적으로 타락했던 것도 아니다. 수도원 운동을 비롯한 교회 내의 쇄신운동은 중세 내내 지속되었던 운동이었다. 또한 '왕과 제후 등 세속세력과 손잡고'도 사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서술이다. 세속 권력층과 손을 잡거나 대립하는 문제는 각 개별 사안과 시대마다 판이하게 달랐다. 그리고 개혁적 성향의 교황이나 주교들은 세속 권력과도 대립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항해시대 무렵에는 유럽의 제국주의자들과 함께 식민지 침략의 선봉장의 역할을 하였으며 선교라는 미명하에 유럽국가의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였고 식민지가 있던 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의 전통종교를 탄압하는 하는 바람에 한때 식민지였던 곳은 현재도 기독교와 전통종교 간의 갈등이 심하다. 일본에서는 초창기 전국시대 일시적으로 규슈를 기독교, 신토&불교로 분열시켰고 명나라에서 남경교안을 유발하는 한편 한국에서는 제주도 향토종교를 탄압하는 바람에 이재수의 난이 일어났으며 일제강점기 뮈텔 주교는 일본에 저자세를 해 안중근의 고해성사를 방해하고 고해성사로 알아낸 신도의 비밀은 지킨다는 원칙을 깨고 고해성사와 선교를 통해 알아낸 독립의사들 정보를 총독부에 알려서 그 대가로 명동성당의 터를 넓히는 흑역사도 있다.
그리고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이해가 피상적인 사람들은 가톨릭에 그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식의 피상적인 이해는 중세 말기에서 근대 초기까지의 사건들을 대충 마녀사냥과 얼기설기 엮어서 '교회의 권위를 되찾고 사회 불만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마녀 사냥을 행했다'는 식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는데, 이 역시도 현재 역사학 연구 성과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런 쉬운 단순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알수 있다. 일단 근대 초기의 마녀사냥은 대부분 세속권력에 의해 행해졌고, 교회법정은 오히려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가톨릭권보다도 개신교 국가였던 스코틀랜드, 독일 지역들, 북아메리카에서도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교회법에 의한 이단재판소가 가장 활발했던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오히려 마녀 사냥이 가장 적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지막 마녀사냥'인 세일럼 마녀 재판은 가톨릭과는 거리가 먼 영국령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일어났다. 때문에 마녀사냥의 원흉을 가톨릭 교회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자세한 것은 Darren Oldridge (eds), The Witchcraft Reader (Routledge, 2019) 참고. 16-17세기 유럽의 학살은 결코 가톨릭 교회 혼자서 원흉 소리 들어가며 책임질 문제가 아니며, 한 집단에게 책임을 돌릴정도로 간단한 현상도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우스타샤라는 크로아티아의 정교유착 파시스트들은 독일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며 세르비아 정교인 및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신의 이름으로 이를 막아야 할 크로아티아 가톨릭계는 오히려 이 전쟁 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우스타샤 간부 중 신부들이 참여한 경우도 많았으며, 이들은 심지어 '''발칸 반도의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야세노바츠 절멸수용소의 운영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상을 무시한 챙우리나라 가톨릭계가 이들을 '''독립군으로까지 묘사하며 칭찬'''하는 왜곡기사를 쓴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기관총을 든 신부님>이라는 글로 이걸 통렬하게 까던 하영식 기자에게 일부 신부들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적반하장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의 가톨릭계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군을 지지했으며 이후 프랑코가 죽을 때까지 강압적인 독재를 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나올 때도 스페인의 주류 가톨릭 고위층에선 침묵했다. 물론 스페인 내전 이전 때부터 공화정부가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학살하는 경우도 있는 등 가톨릭 교회를 강력하게 탄압해서 내전 당시에 프랑코 편에 선 것은 어쩔 수 없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스페인 가톨릭에서 프랑코 정권에 대해 아주 지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바스크 지방의 가톨릭 교회는 스페인 내전 때부터 오히려 가톨릭 교회를 탄압한 공화전선의 편이었고, 다른 스페인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도 프랑코 집권 이후에는 종종 몇몇 성직자들이 쓴 소리를 하고 프랑코의 독재 통치에 간접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프랑코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했다. 가톨릭의 수호자라고 프랑코 스스로가 떠든 바람에 이들을 대놓고 탄압은 못했다. 그리고 프랑코가 늙어 죽어가던 집권 말기 땐 결국 스페인 가톨릭 주요 성직자들까지도 프랑코의 독재에 불만을 드러냈다. # 반공정책을 펴고 가톨릭을 수호했다고 하지만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프랑코의 강압적이고 비상식적인 독재 통치에 스페인 가톨릭 교회조차도 결국 엄청난 염증과 답답함을 느꼈다는 얘기.
그리고 '공화정부가 가톨릭 교회를 탄압했기에 내전 당시 프랑코 편에 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라고 이야기하려면, 애초에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등의 서남부 유럽 지역에서 가톨릭 교회는 공화주의나 자유주의적 사조에 가장 강경하게 반대한 세력 중 하나였음 역시 이야기해야 한다. 18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사이 유럽을 뜨겁게 달군 구체제(앙시앵 레짐)와 신체제(자유주의, 공화주의적 근대시민운동) 사이의 분쟁에서 가톨릭 교회는 명백하게 구체제의 편에 서 있었고, 구체제 지지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 즉 가톨릭 교회 주류와 공화정부간의 대립은 구체제와 신체제간 대립의 일부로써 일어난 것이지 가톨릭 교회가 일방적으로 탄압당하는 입장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당시의 폭력적인 정치적 대립을 현대 사회의 윤리로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세속주의화된 사회상의 변화에 적응한 현대 가톨릭 교회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마치 '세속정부가 종교를 탄압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편향된 역사왜곡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20세기 초반 이전의 서남부 유럽에서 가톨릭 교회는 명백하게 보수반동주의적 정치세력의 핵심적인 구성원이었던 만큼 보수주의 세력이 공화주의 및 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가했던 박해와 탄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며, 위에서 예로 든 스페인의 사례 역시 가만히 있는 가톨릭 교회를 공화정부가 괜히 탄압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권위주의(군주정 및 파시즘) 정치세력의 핵심이었던 가톨릭과 공화정부는 이미 서로를 적대시하며 공격을 주고받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192] .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문제가 있다. 가톨릭 교회가 공화주의 이념에 반대한다는 이유는 프랑스 혁명 당시처럼 단순히 반동 정치세력 중 하나로서 가톨릭 교회의 종래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 정도까지는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지만 스페인 내전 당시에 있었던 신부, 수녀 등 종교인들에 대한 집중적인 학살까지는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교회 조직 자체나 주교 등 수뇌부들과 별개로 하층 성직자들은 재산도 별로 없고 대체로 지역사회에서 민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바는 없지만 해외에서는 신부의 '''아동 성범죄''' 사례가 상당히 많이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톨릭 내부에서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를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하려한 정황들이 있다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도 이 사건들의 은폐에 연관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어 베네딕토 16세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한 일도 있다. 피해 아동의 상당수가 남자아이라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 볼수있다.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 문서 참조.
한국에서도 신부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외국에서도 있었다는 게 뒤늦게나마 밝혀졌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자들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권장하는 편이다. 실례로 가톨릭이 국교였던 적이 있는 이탈리아는 기독교 계열의 정당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그 정당들 대부분은 가톨릭 계열이다. 독일 같은 경우도 기독교민주동맹을 통해서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입김이 강하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허용할지라도, 성직자들이 정당을 만들거나 선출직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교황청은 성직자 및 신자들의 사회활동을 위한 사회교리서를 통해 교회가 허용하는 사회활동의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조항에서 정치활동은 사제가 아닌 평신도(신자)들의 몫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래 전부터 "사제들도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따라서 이런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볼 때 요즘 논란이 되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교회법에서 어긋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 천주교 내의 비공식 조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한국 천주교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 천주교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정부 비판, 4대강 사업 비판 등은 주교회의에서 대체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과 입장을 같이 하는 편이다.
고로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가톨릭 교회의 비공식 집단이라 아무리 목소리가 커도 영향력이 별로 없으나,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가톨릭 때리기로 바뀜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자기 식구 지키기로 돌아선 게 크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등의 부끄러운 역사 때문에,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걸 요구당하면 대체로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고 가톨릭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정치성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 힘든 게, 가톨릭 교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학법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반대'''했는데 의외로 '''한기총'''과 연대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권 사용을 종용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법률 불복종 운동'''을 하겠다고 정부를 협박했다.
당시에도 내부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편들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논란이 있었고, 특히 가톨릭 교리상 별 상관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가톨릭 계열 재단법인 등 높으신 분들의 이기적인 밥그릇 챙기기라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이런 흐름을 총괄하고 결정권도 있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를 통해 당시 사학법 개정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재밌게도 당시 정치적인 사학법 반대 입장을 주교회의에서 통과시킨 건 정진석 (現 추기경) 니콜라오 대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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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발간한 책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천주교는 황사영에 대해 내심 옹호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반역 및 국가전복을 기도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사회적 정의와 상관없이 자기보신주의만 내세워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193] 주교를 비롯하여,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한국 가톨릭의 수치스런 역사다.
또한 천주교에서 국내의 천주교 성지들을 성역화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천주교 성지 중 다른 종교 시설들과 겹치는 곳들을 천주교만의 성지로 바꾸는 짓을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천진암/주어사 터를 놓고 불교계와 벌이는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을 천주교 중심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천도교에서 발끈하고 있다.
사실 서소문 역사공원의 경우 현재 천주교에서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서 '관광지 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 링크한 유튜브 영상에 보이듯이 스타트는 가톨릭에서 한 게 맞다.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관광 상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만 처형당한 게 아니라,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녹두장군 전봉준을 포함한 동학농민운동의 중요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거기다 여기서 처형당한 천주교인 중 하나가 '''황사영 백서 사건의 당사자 황사영이다.'''
특히 천도교는 일전에 교조 최제우의 순교지인 대구 관덕정에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성지화 사업을 벌여 성당을 지으면서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는데다, 서소문 역사공원 사업과 관련해 '겉으로는 역사기념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순교 성지 관련 시설 건립에 필요한 예산 확보"란 말을 쓰는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번 사태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참조 영상
이 와중에 가톨릭 측에서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불교 측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안그래도 승암산 이름 문제, 천진암, 주어사 문제 등에서 가톨릭과 마찰을 빚은 전례가 있는 불교 측에서도 서소문 성지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의 과거를 지적하며 불쾌해하는 중이며, 가톨릭프레스에서는 천주교 측의 성지화 사업이 결국은 돈 때문이라 보며 비판하였다. #1#2#3[194]
또한 주교들의 인사 관련 부정적 행위(링크)와 직무이탈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앞서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불교 폄하 발언을 한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박문수 씨가 추가적인 불교 폄하 발언을 해 불교 측에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중.[195] 더군다나 박문수 씨는 진보 계열 천주교인으로 진보적 언론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196] '와 새로 창간되는 '가톨릭평론' 일간지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불교와 천도교 관련 행사나 단체에도 활동 참여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 타 종교와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이런 성지화 작업에 열중하는 교단의 행보에 경종을 울리는 여론이 존재하나, 그렇게 두드러진 상황은 아니다.
또한 천주교 측이 주어사 터에 있던 해운대사 의징(海運大師義澄)의 부도비를 1973년 11월 멋대로 가져간 사실까지 언급되는 등 불교계에서 점차 날을 세우고 있다.
그 외에 2009년에 가톨릭, 불교, 성공회, 원불교의 여성 수도자 모임인 삼소회 주관으로 열린 각 종교 성지 순례 행사에서 가톨릭과 성공회, 원불교 측이 보인 무례한 행위와 음식과 관련된 교단 간 규정 등으로 반감이 쌓이던 중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성당 행사에서 기도문 낭송 행사로 충돌이 벌어진 사례도 있다. 다행히 나중에 서로 화해했지만. 혹자는 해당 기사만 보고 성공회 측 문제라고 하지만, 여행의 시작 기사를 보면 일행 중 수녀들에 대해 천주교와 성공회 수녀라고 되어 있다.
영국은 다른 개신교가 주류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과 투쟁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형성했고, 국가적으로 성공회를 밀고 있고,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했다. 17세기부터 가톨릭교도가 공직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 선거권도 갖지 못하게 한 법률이 19세기 초까지 있었다. 영국에서는 현재도 계승률(Act of Settlement)에 의해 왕위를 성공회 신자에게 한정하는데, 한 번이라도 가톨릭교도였던 사람은 성공회로 개종하더라도 왕위계승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 역시도 개신교 문화권이다보니 가톨릭 신자들이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왔다. '중세=닥치고 암흑시대, 가톨릭=암흑시대를 만든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중세 가톨릭을 만악의 근원 취급하는 건 영미권에서 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이긴 하다. 이 와중에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는 개혁적이고 근현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톨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미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197]
한국 내 기독교계에서 개신교의 비중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신교는 현대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라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인 가톨릭을 밀어내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 개신교에 실망한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태가 많아져서, 내부적으로는 위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디테일로 들어가보면 개신교는 단일 종파가 아니고, 명백히 이단으로 낙인찍힌 군소 교파들도 개신교 통계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교파별 분류를 할 경우 가톨릭 신자수가 가장 많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현대에는 영국 자체가 종교색이 많이 희석되어서 영국 내 차별은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처럼 영국에서 점차 가톨릭 교세가 확장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도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고[198] 라틴계열을 포함한 미국 내 모든 가톨릭 신자가 2017년 기준으로도 국민의 5분의 1 이상(22%) 차지하기 때문에 가톨릭의 입김이 상당하다.
18. 여담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역대 두번째 가톨릭 신앙자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 법원에서 판사나 검사가 입는 법복의 유래가, 사실은 가톨릭 성직자의 복장을 따라 한 것이다.[199]
-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방정교회 신자 그리고 성공회 신자는 가톨릭 신자처럼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200]
- 천주교 신부가 성공회 신부로 개종할 경우 사제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에 대한 약간의 보수 교육만 받으면 성공회 사제로 활동 할 수 있다. 성공회에서는 가톨릭의 성품성사의 유효성을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 성공회는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의 성품성사를 모두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정교회 신부에 대해서도 똑같다.
- 가톨릭의 로마자 표기인 catholic을 띄어쓰기하면 cat holic, 즉 '고양이에게 환장하다'라는 뜻이 되어서 이를 다룬 언어유희 밈이 오래 전부터 있다. 구글의 밈들
- 가톨릭이 처음 동아시아에 전파되었을 당시 동아시아 사람들은 예수가 뭔가 석가모니 비슷하게 왕(조물주)의 직함을 버리고 일반 평민들과 생활한 것과 둘 다 똑같이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이유로 가톨릭이 불교의 한 종파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크리스찬 승려(예수님을 열심히 숭배하는 스님)라는 해괴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에 다수 존재했었다.
19. 관련 용어 및 관련 문서
- 군종 신부
- 수도자 : 남자 수도자 = 수사(修士) / 여자 수도자 = 수녀(修女)
- 수도회
- 가르멜 수도회
- 베네딕토회
- 예수회
- 프란치스코회
- 도미니코회
- 성심수녀회
- 살레시오 수도회/살레시오 수녀회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 카르투시오회
- 수도복
- 스카풀라
- 복자
- 본당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전통 가톨릭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선종(가톨릭)
- 성인(기독교)
- 순교
- 성지
- 수호성인
- 성모 발현
- 대사#s-6
- 대죄
- 대송
- 7성사
- 세례성사
- 견진성사
- 성체성사
- 고해성사
- 성품성사
- 혼배성사
- 병자성사
- 내친구들
- 레지오 마리애
- 선택#s-2
- 오푸스 데이
- 유벤투템
- 청년성서모임
- 가톨릭평화방송
- 광주가톨릭평화방송
- 대구가톨릭평화방송
- 부산가톨릭평화방송
- 대전가톨릭평화방송
- 가톨릭신문
- 성경
- 성전
- 성물
- 성상
- 이콘
- 성수
- 성유
- 십자가
- 성호
- 기도문
- 성호경
- 주님의 기도
- 사도신경
-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 성모송
- 삼종기도 (부활삼종기도)
- 묵주/묵주기도
- 십자가의 길
- 성무일도
- 연도
- 천주성교공과
- 미사
- 트리엔트 미사
- 성당
- 공소
- 성가
- 미사보
- 렉시오 디비나
- 교적
- 떼제[201]
- 방사#s-2
- 복사
- 전례력
- 전례복
- 제구
- 아비뇽 유수
- 사코 디 로마
- 해방신학
- 신축민란
- 신유박해
- 병인박해
- 카쿠레키리시탄
- 교회론/가톨릭
- 재속회
- 축복#s-2.1
- 축성#s-2
20. 인물
21.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은연 중에 복선으로 많이 이용되며, '''현실과의 갭이 크다 못해 100억 광년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창작물 중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 혹은 가톨릭을 참조한 세력인 경우 주인공의 꽉막힌 소속집단으로 자주 출현한다.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이 아닌 경우가 당연히 더 많으며[202] , 이런 경우는 제3세력으로 등장하거나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타 종교나 타 기독교 종파에 비해 체계가 계급적이고 뚜렷하게 잡혀있기 때문에 구현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회는 미국 대통령 최다 배출 종파라는 나름의 위엄이 있지만, 영국만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여 거대 세력으로 설정하기가 어렵고, 루터회든 청교도든 개신교는 종파 수도 많고 조직체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톨릭과 비슷한 시스템의 정교회는 가톨릭에 비해 세계적인 인지도가 현저히 덜하다. 구세군의 경우는 뚜렷한 조직체계와 군대를 연상시키는 시스템 때문에 잘다루면 그럴듯한 물건이 나오지만, 인지도가 미미하며 기껏해야 자선 등의 이미지로 알려지는 정도다. 즉 세계의 메이저 종교들 중 오랜 역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지도, 뚜렷한 조직 체계, 많은 신자 수 같이 창작물에서 써먹기 좋은 요소들을 전부 다 가지고 있는 단일 교단이 가톨릭 말고는 마땅히 없는 것이다. 또한 가톨릭은 교단 역사에 중세 시절의 이단심문소, 파문, 마녀사냥, 면죄부, 종교 개혁 같은 부정적인 면모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타 종교 및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대해 가장 유화적인 태도를 가진 교단으로 변한 현재의 모습, 20세기 세계 각지에서 반독재 투쟁에 동참했던 수많은 가톨릭 성직자들 같은 긍정적인 면모가 전부 존재하기 때문에 선역, 악역, 선악이 모호한 제3세력 중 어떤 성향으로 설정해도 묘사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참조하기 편하고 굴리기도 편한 종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에 창작물에서도 그만큼 자주 이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신부나 수녀, 교황님이 마술을 쓴다거나 바티칸이 전투종족을 양산해 내는 곳으로 나오기도 한다. 특히 신부님 캐릭터들은 인간흉기가 많으며 철권 시리즈의 1대 킹이나 헬싱의 알렉산더 안데르센 등이 대표적이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 로마 정교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가톨릭은 주적인데, 주인공인 카미조 토우마와 학원도시, 그리고 이들과 손을 잡은 영국 청교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다. 세계 제3차대전을 겪은 후 아군 포지션이 되기는 했는데 비중은 심하게 적다.
- 다른 형태로 가톨릭계 명문 사립 여학교가 주 무대인 낭만적인 작품도 있다.
- 고전 게임이나 소설 등에서 퇴치를 위해 전투를 하러 가는 그룹에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있을 경우, 대부분 역할은 회복이나 버프를 주는 역할(...)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다만 최근으로 올 수록 창작물 속 가톨릭, 혹은 가톨릭을 모티브로 한 종교집단의 사제나 수녀들의 역할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역할변화가 바로 악마나 이단을 제거하기 위해 교단에서 극비리에 양성한 무력집단이라는 설정의 전투신부나 전투수녀 같은 경우. 이 경우 역할에 맞는 과격함이나 잔혹함을 나타내기 위해 중세 마녀사냥에서 모티브를 얻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일단 이단이다 싶으면 앞뒤 안 가리고 오만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상대를 갈아버리는 광신적인 캐릭터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 다만 현실의 가톨릭은 적어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들 중 호전성(?)이 낮은 축에 들어가는 교단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서 작중 전투신부나 전투수녀로 묘사되지만 그게 교단의 비밀 무력집단 소속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존나 센 사람이 신부 혹은 수녀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설정도 자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교단 비밀 무력집단 소속 이단심문관 캐릭터들과 달리, 이 유형의 캐릭터들은 평상시에는 지극히 멀쩡한 신부/수녀이고 타 종교나 무신론자 등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누가 봐도 확실하게 악으로 분류할만한 대상'에게는 어지간한 이단심문관 캐릭터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냉혹하고 무자비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203]
- 중세 고증덕후로 유명한 하세쿠라 이스나의 라이트 노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작품에서는 항상 "정교"라는 이름으로 "이교"와 대척점에 선 종교로 등장하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서 흔히 판타지에서 보여지는 듯이 나쁘게만은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16세기 종교개혁을 모티브로 한 늑대와 양피지의 경우에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부패한 종교로 묘사된다. 자세한 내용은 늑대와 향신료/고증, 늑대와 양피지/고증,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고증 문서 참조.
21.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09년에는 실제로 '''퇴마사를 교황청 내에서 단체로 육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 오타쿠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204] 그러나 그 전에도 신자들 중에서도 알 사람은 많이 알았던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사실 성직자 과정 중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딱히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품성사 중 7품급 가운데 '구마(驅魔)품'이 3번째 품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또한 구마기도는 묵주기도 등의 다른 기도를 하되 청하는 바를 '구마'로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일반 신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묵주기도든 주님의 기도든지 좋으니 생각나는 통상기도문 중 아무 거나 외면서 지향을 마귀를 몰아내 달라고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마귀야 물라가라." 라고만 해도, 성경 중 예수가 마귀를 몰아내는 장면을 읽고 나서 같은 말을 덧붙여도 구마 기도가 된다. 부활절 파스카 성야 미사와 세례성사 때 하는 '마귀를 끊어버림' 예식 역시 구마 행위이다. #
다만 성직자에게 특별히 유보되는 것은 한국 가톨릭에서 흔히 '엑소시즘'이라고 불리는 ''''장엄구마식''''인데, 이 장엄구마식은 남용할 때 폐해가 너무 큰 관계로 반드시 해당 교구장의 허락을 받도록 교회법으로 규정했다.[205]
이 장엄구마식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성직자들이 흔히 알려진 '엑소시스트'들이며 현재 한국 가톨릭 성직자 중 엑소시스트라 할 만한 사람은 알 수 없다. 구마에 관한 강론이나 구마를 할 수 있지만, 알려져 보았자 대다수 신자들에게 좋을 것이 없으며, 무엇보다 구마사제는 본인과 구마사제가 소속된 교구의 주교만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교구의 성직자라도 누가 구마사제인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장엄구마식을 따로 배우지는 않는다. 기도문을 찾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에 대해서는 구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가톨릭에서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 누구나 구마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보며, 신심의 차이로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마기도문을 일반 신자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또 의외. 다만 이는 장엄구마식에 쓰이는 기도만 해당한다. 미카엘 대천사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긴급한 구원의 기도 같은 것에는 사실상 구마를 청하는 기도도 많다. 심지어는 수호천사들에게 악마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청하는 기도도 있다.
다만 좀 더 추상적인 개념에서 악으로부터 보호를 비는 것과, 구체적으로 대상을 영적인 악의 존재로 지정하고 물러갈 것을 명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성령쇄신지도신부들도 뛰어난 구마능력을 갖고 있다는데, 정신과에 가야 할 사람이 엑소시즘 권한을 받은 성직자에게 올 가능성이 많거니와, 현대 가톨릭에서는 그러한 정신이상 증세에 대해 악마의 영향이라고 여기는 것을 마지막 가능성으로 미루는 것이 교리이다.
이처럼 엑소시즘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악한 존재로부터 구해달라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는 종교적 의식이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악한 존재를 물리친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식 때문에 영화나 게임, 소설 등 많은 창작물에서 엑소시즘을 '신앙이 깃든 무기와 도구로 무장한 사제가 악마와 맞짱떠서 때려죽이는 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고, 이런 창작물들 때문에 보통 사람들도 구마사제(엑소시스트)를 무슨 '카톨릭 교회 내 대 악마 전투집단' 정도로 착각하고 있으니 문제.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exorcismus)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다. 세례를 거행할 때 간단한 형식의 구마를 행한다. “대구마(大驅魔)”라고 부르는 장엄한 구마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서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구마는 마귀를 쫓아내거나 마귀의 지배력에서 구해내는 것이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주신 영적 권한으로 행하는 것이다. '''질병, 정신 질환은 마귀들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질병은 의학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를 행하기 전에 질병이 아니라 마귀들린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
이를 다룬 창작물로는 2013년 개봉한 영화 컨저링, 2015년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 2019년 개봉한 사자 와 변신, 2018년 OCN 드라마 손 the guest, 2018~2019년 OCN 드라마 프리스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