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시슈토프 카슈텔란
크시슈토프 카슈텔란 (Krzysztof Kasztelan, 1961년 10월 28일 ~ )는 폴란드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로, 1992년 유공 코끼리에서 활동한 스트라이커이다.
프로필
이름 : 크시슈토프 카슈텔란 (Krzysztof Kasztelan)
등록명 : 카쟈란
국적 : 폴란드
출생일 : 1961년 10월 28일
신체 : 174cm / 70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폴란드 우치에서 1983년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3시즌 동안 51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득점하였다. 이 시기에 뷔텍과 함께 동료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81-82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한 뷔텍과는 대조적으로 서브 멤버에 그치는 신세였다. 카쟈란은 데뷔 시즌에 15경기 1골을 기록하고 2년 차에 22경기 2골, 그리고 우치에서 마지막 시즌은 14경기에 출전하여 무득점에 그치는 저조한 활약을 이어갔고, 이후 팀에서 퇴단한 후 1986-87 시즌부터 폴란드 2부리그의 후트닉 크라쿠프로 이적하여 1988-89 시즌까지 활동하였다.
폴란드 국적의 타데우시 시비옹테크로 재미를 본 유공 코끼리는 그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대체 선수로 같은 폴란드 국적의 선수를 찾게되었는데, 한동안 무적 신세였던 카쟈란은 이 기회를 노려 해외진출을 모색해 1991년 11월경 한국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를 거쳐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였다. 카쟈란은 입단 당시에 폴란드에서 명망 높은 선수로 소개되며 유공의 핵심 선수였던 테드의 공백을 메워줄 선수로 낙점받았고, 이러한 이유로 특급 선수로 활약했던 테드와 '''동일한 연봉'''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쟈란은 테드와 국적만 같을 뿐이었다. 나이도 30세인 선수로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2년 동안 공백기도 있었던 선수라 제대로 활약할 리가 없었다. 결국,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하고 1992년 4월과 6월에 교체로 단 두 경기를 뛰고 그대로 방출되고 말았다.
유공에서 퇴단한 후로 고향인 우치를 연고로 하는 2부리그 팀인 파비아니체에 입단한 뒤, 한 시즌 활동하고 미련 없이 은퇴하였다.
당시 카쟈란의 입단 테스트를 지켜보던 김정남 감독은 슈팅 능력과 센스는 좋다고 평가를 내렸지만..
카쟈란의 아버지와 카쟈란의 아들 모두 폴란드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1992년 카쟈란으로 유공은 외국인 선수 농사 흉작에 방점을 찍고 말았다. 필립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선수였고, 3시즌 동안 활약한 폴란드 국가대표 출신 뷔텍은 점점 경기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면서 시즌 종료 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카쟈란의 덕분인지 이후로 폴란드 국적의 선수는 K리그에 20년간 등장하지 않다가 2021년 제주 유나이티드에 오스카 자와다가 입단하면서 겨우 명맥이 이어지게 된다.
[각주]
프로필
이름 : 크시슈토프 카슈텔란 (Krzysztof Kasztelan)
등록명 : 카쟈란
국적 : 폴란드
출생일 : 1961년 10월 28일
신체 : 174cm / 70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1. 유공 코끼리 입단 이전
폴란드 우치에서 1983년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3시즌 동안 51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득점하였다. 이 시기에 뷔텍과 함께 동료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81-82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한 뷔텍과는 대조적으로 서브 멤버에 그치는 신세였다. 카쟈란은 데뷔 시즌에 15경기 1골을 기록하고 2년 차에 22경기 2골, 그리고 우치에서 마지막 시즌은 14경기에 출전하여 무득점에 그치는 저조한 활약을 이어갔고, 이후 팀에서 퇴단한 후 1986-87 시즌부터 폴란드 2부리그의 후트닉 크라쿠프로 이적하여 1988-89 시즌까지 활동하였다.
2. K리그 진출
폴란드 국적의 타데우시 시비옹테크로 재미를 본 유공 코끼리는 그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대체 선수로 같은 폴란드 국적의 선수를 찾게되었는데, 한동안 무적 신세였던 카쟈란은 이 기회를 노려 해외진출을 모색해 1991년 11월경 한국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를 거쳐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였다. 카쟈란은 입단 당시에 폴란드에서 명망 높은 선수로 소개되며 유공의 핵심 선수였던 테드의 공백을 메워줄 선수로 낙점받았고, 이러한 이유로 특급 선수로 활약했던 테드와 '''동일한 연봉'''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쟈란은 테드와 국적만 같을 뿐이었다. 나이도 30세인 선수로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2년 동안 공백기도 있었던 선수라 제대로 활약할 리가 없었다. 결국,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하고 1992년 4월과 6월에 교체로 단 두 경기를 뛰고 그대로 방출되고 말았다.
3. K리그 이후와 은퇴
유공에서 퇴단한 후로 고향인 우치를 연고로 하는 2부리그 팀인 파비아니체에 입단한 뒤, 한 시즌 활동하고 미련 없이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당시 카쟈란의 입단 테스트를 지켜보던 김정남 감독은 슈팅 능력과 센스는 좋다고 평가를 내렸지만..
5. 에피소드
카쟈란의 아버지와 카쟈란의 아들 모두 폴란드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1992년 카쟈란으로 유공은 외국인 선수 농사 흉작에 방점을 찍고 말았다. 필립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선수였고, 3시즌 동안 활약한 폴란드 국가대표 출신 뷔텍은 점점 경기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면서 시즌 종료 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카쟈란의 덕분인지 이후로 폴란드 국적의 선수는 K리그에 20년간 등장하지 않다가 2021년 제주 유나이티드에 오스카 자와다가 입단하면서 겨우 명맥이 이어지게 된다.
6.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