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화

 


1326~1395, 중국 호주 종리에서 태어났으며 주원장, 주덕흥, 서달과 동향 출신으로 이들은 지주의 소를 치는 목동 노릇을 하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원나라 말기 농민 봉기 및 반란 시기에 곽자흥 휘하 홍건적에 속했고 주원장을 가담시키는 활약을 한다. 곽자흥 사후 주원장을 보좌해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명나라 개국에 지대한 공을 세우면서 개국공신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남방을 정벌하는 등 전공을 세우며 신국공에 봉해지는 등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다가 1389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가서 6년 후 병사하였다. 죽은 뒤 동국왕에 봉해지고 양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주원장의 개국공신 숙청 과정에서 유기, 서달 등 숙청을 피한 몇 안되는 공신이었는데 애초에 주원장과 같은 동향이라서 주원장의 성격을 잘 파악했기 때문에 처신을 잘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