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비첨

 



비첨의 대표적 명반 중 하나인 비제 교향곡 C장조
Sir Thomas Beecham, 2nd Baronet[1], CH (1879~1961)
영국의 금수저 지휘자.
다국적 제약회사로 유명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의 전신인 비첨필스 사장의 아들이다.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예정이었으나,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지휘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돈으로 오케스트라를 사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아마추어 출신이나 타고난 음악적 센스, 비범한 해석[2]으로 명성 있는 지휘자가 되었다. 학구적인 지휘자는 아니었으나, 감각이 뛰어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그의 지휘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영국인이긴 하지만 프레더릭 딜리어스[3] 이외의 영국 작곡가의 녹음은 많지 않다.[4] 영국음악 보다는 프랑스 음악에 애착이 있어서 그 쪽으로 녹음이 더 많다. 이외에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유명 작곡가들의 음악과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녹음하는 등 래퍼토리의 폭이 넓은 편.
런던의 4대 오케스트라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 물려받은 재산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초창기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한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나 악단과 관계가 틀어지자, 비첨은 런던 심포니를 나와서 개인 재산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설해서 지휘했다. 그러나 몇년후 역시 런던 필과도 관계가 틀어져서 런던 필에서도 나오게 된다. 때마침 월터 레그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려고 하면서 원로인 비첨에게 조언을 구하자, 비첨은 이 오케스트라를 날로 먹을 생각을 가지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창단에 관여했다. 그러나 월터 레그는 힘들게 창단한 오케스트라를 비첨에게 맡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당시 촉망받던 젊은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허투른 사람이 아니었던 레그는 비첨의 도움을 받았지만 비첨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곧 비첨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창단 작업에서 손을 뗐고 얼마 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설하여 운영했다.
비첨의 말년은 행복하진 않았는데 재산을 탕진한 비첨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오토 클렘페러, 존 바르비롤리와 함께 EMI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지휘자[5]였으며 이때문에 상당수의 녹음이 GROC으로 재발매 되었고 퍼블릭 도메인이 된 이후에도 2015년에 비제 교향곡과 아를의 여인 모음곡이 오리지널 자켓 시리즈를 통해 재발매되기도 했다.

[1] 줄여서 Bart.[2] 소박하면서도 여유있는 느낌을 줘서 듣기 편하다는 이유로 찾는 사람들이 있다.[3] 비첨이 1927년에 처음 녹음을 남겼다.[4]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말에 의하면 딜리어스를 제외하고 영국의 작곡가들을 경멸했다고 한다.[5] 이후 이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꽤 밀어준 지휘자는 사이먼 래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