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도시

 

'''이름'''
토미 도시 (Tommy Dorsey)[1]
'''본명'''
토마스 프란시스 도시 주니어 (Thomas Francis Dorsey Jr)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05년 11월 19일 /미국 펜실베니아 세난도아
'''사망'''
1956년 11월 26일/코네티컷 주 그리니치
'''직업'''
작곡가,지휘자,트롬본 연주자
'''활동'''
1921년 - 1956년

1. 개요


토미 도시는 1930~40년대 영향력 있는 빅밴드의 지휘자, 작곡가 그리고 트롬본 연주자이다. I'm getting Sentimental over you가 대표곡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도 그의 밴드에 소속돼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1930년대 말 유명 가수가 되기 위해 뉴욕의 클럽가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타미 달시의 밴드에 들어오게 되는데, 프랭크 시나트라가 타미 달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프랭크 시나트라는 없었을 것이며[2],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 역시 많이 달랐을 것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타미 달시의 오케스트라[3]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1940년 타미 달시와 그의 오케스트라의 스탠더드 팝 곡인 "I'll Never Smile Again"을 부르며 1940년 빌보드 차트에서 12주(!!!) 1위를 했다. 80년 전에도 12주 1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베니 굿맨이나 글렌 밀러, 해리 제임스와 함께 거론된다.


[1] 미국식 발음은 "타미 돌씨" 또는 "타미 다울씨"에 가깝다. [2] 그말인 즉슨 프랭크 시나트라는 탑스타는 커녕 뉴욕 클럽을 전전하는 생계형 가수나 하다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타미 달시가 프랭크 시나트라를 탑스타로 만들어줬고 이는 프랭크 자신이 생전 얘기했던 것이다. 타미 달시는 그 당시 미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밴드 리더였는데 그의 오케스트라의 무려 "보컬"로 들어온 것이다. 게다가 그 취입곡 중 하나가 1940년 미국에서 제일 히트한 곡 중 하나이니 (빌보드 12주 연속 1위), 타미 달시의 오케스트라에 들어온 것은 프랭크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었다 할 수 있다.[3] 빅 밴드. 클래식 음악 오케스트라가 아니고 스윙 재즈 오케스트라다. 이 당시 빅 밴드는 오케스트라라 불렸고 그들은 주로 스윙 재즈를 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