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리스

 

Τόμυρίς / Tomyris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미디어에서


1. 개요


마사게타이 족의 여왕.
남편인 마사게타이의 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으며, 키루스 2세가 구혼 요청을 빙자해서 사신을 보내자 마사게타이의 왕위를 노린 것을 알아채고 거절했다. 이에 키루스가 마사게타이를 여러 차례 공격하면서 아락세스 강을 건널 다리, 뗏목, 탑 등을 만들었다.
토미리스는 마사게타이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강에서 3일 거리만큼 물러날 것이니 건너오라고 하면서 그대(키루스 2세)의 나라에서 맞이할 것이라면 그대가 3일 거리만큼 물러나라고 제안한다. 이에 키루스는 고민을 하게되고 크로이소스의 제안대로 마사게타이로 넘어가기로 결정한다. 키루스 2세가 강을 건너기로 하자 토미리스는 약속대로 군대를 3일 거리만큼 물러났다.
크로이소스는 또 넘어가서 하루 거리에 부대의 일부만 주둔 시키고 그곳에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쌓아두도록 하고 강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키루스에게 조언한다. 이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물러나자 토미리스의 아들이 이끄는 부대가 공격하여 키루스의 남겨진 부대를 도륙하고 남겨진 포도주에 취해 잠자던 중 포로가 된다.
키루스에게 아들인 스파르가피세스를 사로잡히자 토미리스는 아들을 돌려준다면 아무런 대가없이 나라를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아들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태양신의 이름으로 그대가 좋아하는 피를 실컷 맛보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키루스에게 포로가 된 스파르가피세스는 키루스에게 묶여진 몸을 풀어줄 것을 애원했고, 이에 키루스는 스파르가피세스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포박을 풀어주자 마자 자살해 버리고 만다. 이에 광분한 토미리스는 페르시아군을 공격했고 다수의 공방(헤로도토스는 이 전투가 비헬라스인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중 가장 치열한 전투라고 했다)을 거치며 전투를 이어나가던 와중에 결국 토미리스가 승리 하게 되었다.
토미리스는 온 사방을 뒤져 키루스의 시신을 뒤져 찾아냈고 가죽 부대에 사람의 피를 가득 담은 다음에 키루스의 머리를 가죽 부대에 담그면서 조롱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계략으로 내 아들을 사로잡으면서 나를 망쳤지만, 하지만 나는 위협했던 대로 그대가 피에 물리게 해줄 것이오" 라고 했다.
실제 이름은 불분명하고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지어낸 이름이며 이 때의 키루스 2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헤로도토스는 이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역사, 1권 214장

2. 미디어에서


문명 6에서 스키타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문명 6 스키타이 참조. 마침 문명 6 페르시아에서 키루스도 나온다. 둘의 문명 특성은 완전히 극과 극. 서로의 문명에 관련된 도전 과제도 있다.
카자흐스탄 영화 토미리스는 제목처럼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