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청
1. 개요
土靑. 조선 세조 9년인 1463년에 세조의 명으로 개발한 국내산 코발트 염료를 이르는 말.
2. 내용
조선 세조가 1463년에 전남 강진(康津) 지역에서 처음 채취하는데 성공한 염료다.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청화안료로 여겨진다.
아라비아(주로 이란 지역)에서 수입되는 회회청(回回靑)은 굉장히 가격이 비싼데다 중국 해금정책의 대표적인 수출금단품목 중 하나였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도자기 제작 및 사찰의 단청, 기왓장·의복의 염색, 회화용 물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수요가 많았다.
특히 한국은 예로부터 중국과 함께 도자기로 유명한 나라였기 때문에 당시 대세였던 청화백자의 주 재료인 회회청 수입이 매우 절실했다. 물론 주요 수입로인 중국에서는 강력한 유통 통제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고 이에 직접 자급자족하고자 한 것이다. 이때 세조가 처음 개발한 토청은 기존 회회청보다는 좀 더 어두운 색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예종 또는 성종 시기에 개발을 중지하였으며, 대신 1478년부터 중국산 회청을 따로 수입하여 회회청과 섞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다만 중국산 회청을 섞어서 사용할 경우 수입가격이 상대적으로 좀 헐하긴 했지만 대신 도자기 색이 탁하고 품질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3. 토청이 사용된 대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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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70호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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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59호 백자청화매죽문병.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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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청화백자국죽문각병(靑華白磁菊竹文角甁)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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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도마리 1호요지에서 출토된 심청(深靑), 심(深), 청(靑)등 토청 색깔을 가리키는 청화백자 명문편들.출처 다만 이것들은 토청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세조가 개발한 또다른 국내산 청화안료인 회회청사이석(回回靑似以石), 토철(土鐵), 심청(深靑)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세조 이전에는 조선에서 청화백자를 제작했다는 기록이나 편년 유물이 전무하며 주로 중국에서의 전래품에 의존했다가 세조대에 이르러 국내에서 청화백자를 제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세조연간에 전라도 강진, 순천, 경상도 밀양, 의성, 울산 등지에서 토청(土靑), 회회청사이석(回回靑似以石), 토철(土鐵), 심청(深靑)등으로 나타나는 회회청을 채취해 자기 번조를 시도하였다. 즉 세조가 당시 전라도에서 토청을, 경상도에서 토철, 심청, 회회청사이석을 개발했고, 위의 도자기 파편들은 전라도의 토청이 아닌 경상도산 청화안료로 만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