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룬 왕조

 



868 ~ 905년간 존속한 이집트의 이슬람화 이후 첫 독립 왕조. 영토는 시리아~이집트에 걸쳐있었다.

1. 건국


툴룬 왕조는 이집트 최초의 지방왕조이다.
페르가나 출신 튀르크 계 아흐마드 이븐 툴룬은 868년, 아바스 왕조의 이집트 부총독이 되었다. 그는 도착하자 곧바로(868~872) 독자적인 이집트 군대를 편성하고 이집트와 시리아의 국고를 관리함으로써 군사적, 재정적 기반을 닦았다. 871년에는 중앙 정부의 재정관도 축출하고 독립을 굳혔다.
이븐 툴룬은 바그다드로 보내는 세수를 줄여 많은 부를 축적했고, 카타이 (후의 카이로) 에 성채로 둘러싸인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으며, 터키, 그리스, 수단의 노예들로 구성된 잘 훈련되고 좋은 장비로 무장한 군대를 조직했다.

2. 시리아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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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70년 칼리프 직위를 계승한 알 무타미드가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서쪽은 자신의 어린 아들 자파르 알 무와피드에게, 동쪽은 사실상 섭정으로서 그의 형제 알 무와파끄에게 맡김으로써 제국의 중앙권력을 대표하게 된 무와파끄와 이집트를 장악한 툴룬 간의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양자 간의 충돌은 섭정 알 무와파끄가 잔즈 반란 (이라크 남부/쿠웨이트의 흑인 노예 반란, 868 - 883) 진압과 사파르 왕조 (867~913) 의 야쿠브와의 전쟁(876.4월) 중에 양대 전선에 드는 재정의 충당을 위하여 툴룬에게 막대한 돈과 인원을 보내주도록 요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에 타협한 툴룬이 많은 돈을 보냈지만 무와파끄는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조공이 적다는 이유로 툴룬을 공직에서 제거하려했고, 아마주르를 시리아와 이집트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결정을 강행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사파르 조의 군대는 격퇴당했고, 잔즈 반란도 소강 상태로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
그러나 오랜 준비를 마친 툴룬의 군대는 이집트를 굳게 방어했고, 아바스 군대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얼마 안 있어 아마주르가 죽자 툴룬은 878년에 어려움 없이 시리아를 점령했다. 시리아는 그 후로 이집트의 곡창 지대인 델타 방어의 핵심 관문 역할을 하며 이집트가 서부 이슬람 세계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일조했다. (툴룬 - 파티마 왕조 - 아이유브 왕조 - 맘루크 왕조, 현재에도 아랍 연맹의 본부는 이집트의 카이로에 위치하여 있다.)
'''요약''' : 이집트는 조공이 적다는 이유로 877년에 아바스 군대의 침공을 받았으나 이분 툴룬은 쇠퇴기에 접어든 아바스 조의 군대를 격파하고 더 나아가 시리아까지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다.

3. 정통성 대결


툴룬은 칼리프 알 무타미드 편에 서서 섭정 무와파끄에 저항함으로써 중앙권력의 알력 다툼에도 개입했다. 툴룬 자신은 섭정의 지위를 얻고 이집트 - 시리아를 제국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려는 의도에서 그와 함께 하도록 칼리프를 이집트에 초청하였다. 섭정의 전횡에 불만이던 칼리프가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집트로 가기로 했지만 무와파끄의 수하들에게 차단되어 불명예스럽게 사마라로 되돌아 가게 되었다. 툴룬과 알 무와파끄 사이에 서로 자신이 칼리프의 보호자이며 상대는 반역자라는 선전전이 이어졌다.

4. 아바스 조와의 타협과 멸망


884년, 툴룬은 부강한 이집트를 남긴 채로 죽었고, 그를 계승한 아들 쿠마라와이는 886년에 쿠트바에서 알 무와파끄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조건으로 30년 동안 이집트와 시리아의 지배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합의로 이븐 툴룬 대에 시작된 갈등이 봉합되었다.
그러나 쿠마라와이를 포함한 툴룬의 후계자들은 무력한 통치자들로서 투르크 출신, 혹은 흑인 군사 계급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쿠마라와이의 통치기간동안 시리아와 이집트의 재정적,군사적 안정은 깨지고 말았다.
게다가 쿠마라와이가 896년에 다마스쿠스에서 자신의 노예에게 피살되면서 후계자 계승 문제로 내란이 일어나자, 그 틈을 노려 무와티끄의 아들인 칼리프 알 무타디드 (892~902) 가 군대를 파견하여 툴룬 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에 대한 아바스 중앙정부의 통치권을 되찾았다.
다만 932년에 역시 페르가나 출신의 튀르크 계의 익시드 왕조가 건립되며 아바스 왕조의 짧은 2차 이집트 지배는 끝이난다. 그 후 이집트는 이라크/이란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5. 역대 군주


  • 툴룬 (868~884)
  • 쿠마라와이(884~896)
  • 자이시(896)
  • 하룬(896~905)
  • 샤이반(905)

6. 사회적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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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드 이븐 툴룬의 재위기간인 868~884년 동안에는 농업이 발달하고 상공업이 장려되었으며,아바스 왕조의 전통이 툴룬 왕조를 통해 서부 이슬람세계로 전달되었다.툴룬 왕조의 수도인 알카타이에서는 공공건축사업이 실시되었고 아흐마드 이븐 툴룬 사원이 건설되었다.
툴룬 왕조의 수도 역할을 했던 카타이(카이로) 에는 왕조의 번영을 상징하는 아흐마드 이븐 툴룬 모스크가 있다. 사마라의 알무타와킬 대사원을 본떠서 만든 이 사원은, 당시 이라크에서는 유행했으나 이집트 건축물에는 그때까지 별로 사용되지 않던 벽돌과 석고로 만들어졌다.
툴룬 왕조가 몰락한 뒤 퇴보했던 이집트의 예술은 반세기 후 파티마 왕조가 세력을 잡은 뒤에야 회복되었다. 파티마 왕조의 예술은 툴룬 왕조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11세기경에는 이집트를 서부 이슬람의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