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알 까히라'''
아랍어: القاهر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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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왕조 시대에 지어진 모스크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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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불리는 알 아즈하르 마드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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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흐 앗 딘에 의해 지어진 시타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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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드 알리 모스크

면적
606 km2
행정구역
[image]이집트 알 카히라 주 카이로
인구
9,500,000명 (도심)
2050만명 (광역)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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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역사 도시 카이로
영어
Historic Cairo
아랍어
القاهرة الإسلاميّة
프랑스어
Le Caire historique
국가·위치
이집트 카이로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79년
등재기준
(i)[1], (v)[2], (vi)[3]
지정번호
89
아랍어: '''القاهرة '''(al-Qāhirah)
영어: Cairo
1. 개요
2. 전경
3. 역사
3.1. 바빌론 (동로마)
3.2. 푸스타트 (7 ~ 10세기)
3.3. 알 까히라 (10세기 ~)
4. 환경
5. 행정구역
5.1. 카이로 주(محافظة القاهرة)
5.1.1. 카이로 동부
5.1.2. 카이로 서부
5.1.3. 카이로 남부
5.1.4. 카이로 북부
5.2. 기자 시(مدينة الجيزة )
5.3. 그 외 기타 지역
6. 기타
7. 매체에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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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의 수도. 별명은 '''북아프리카수도'''. 인구는 대략 950만 명이고, 카이로 도시권(대한민국수도권 같은 것) 인구는 카이로, 기자, 칼리우비야, 무누피아를 모두 합산할 시 최소 2800만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이다. 기자 주가 행정구역 변화로 카이로의 많은 지역을 가져오면서 두 지역의 인구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실제로 북아프리카권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아랍연맹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다. 즉 아랍의 수도라는 별명이 틀린 별명이 아니라는 것. 요즘은 두바이로 위상이 옮겨가고 있지만 여전히 카이로는 중요한 도시다.
카이로는 이집트 북부 나일 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4]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중심지로 이미 옛날부터 북아프리카의 중심지로 활약했으며, 중동아프리카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집트[5] 수도란 점에서 그렇다.
아랍어 명칭은 '알-카히라' 정도가 된다. 카이로라는 표기는 영어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2.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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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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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하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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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의 성벽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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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고대 이집트 왕조들의 수도 역할을 했던 멤피스가 카이로 근교에 있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건설된 알렉산드리아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새 수도가 되면서 멤피스 지역은 점차 쇠퇴했다.

3.1. 바빌론 (동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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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시대 바빌론 성채의 남쪽 성탑. 부근에는 7세기 때에 지어졌고 975-978년에 재건된 공중교회 (알 까니싸 무알리꺼)가 있다.
현재 카이로 시내 남쪽에 남아있다. 641년 9개월 간의 포위 끝에 아므르 이븐 알 아스 휘하의 이슬람 제국군에 지즈야 납부를 조건으로 항복하였다. 이후 아므르는 포위 당시 야영지였던 곳에 본인의 이름을 붙인 사원을 세우는데, 이를 중심으로 푸스타트 시가지가 형성된다.

3.2. 푸스타트 (7 ~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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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룬 왕조의 걸작 이븐 툴룬 모스크
9세기 중반 사마라 양식의 나선형 첨탑
그 후 수백 년 간 알렉산드리아와 나일 델타 지역이 이집트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아랍 이슬람 세력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빼앗은 7세기 이후 상황이 반전되었다. 헬레니즘 때부터 이집트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는 해군이 미약했던 아랍인들에게 치소로 부적격이라 여겨졌고 따라서 칼리파 우마르는 내륙에 위치한 푸스타트에 총독부를 세웠다. (642년) 나일 강 동안에 위치한 도시는 범람기에도 시리아나 헤자즈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긍정적이었다. 본래 동로마 도시 외곽에 세워져 원주민들과 구별되었으나 결국 하나의 도시로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 왕조가 바뀌면서 아스카르(압바스 왕조), 까타이(툴룬 왕조) 등이 새 수도로 조영되기도 했으나 인구나 규모면에서는 여전히 푸스타트가 중심지였다.

3.3. 알 까히라 (10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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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카이로 지도
알 아즈하르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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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하킴 모스크
알 무스탄시르 치세의 재상 바드르 알 자말리에 의해 지어진 알 푸투흐 성문
이후 969년 이집트를 정복한 파티마 왕조튀니지를 버리고 이집트를 새 중심지로 삼으면서 푸스타트 남쪽에 신도시를 조영했는데, 그 이름을 "승리자", 혹은 "정복자"를 의미하는 까히라로 정하니 이것이 곧 우리가 말하는 카이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알 아즈하르가 들어선 것도 이 때다. 십자군 전쟁예루살렘 왕국의 공격 위협에 노출되어 푸스타트 구 시가지를 불태우는 등 위기도 겪였지만, 살라흐 앗 딘 집권 이후 카이로는 명실상부한 강대국의 수도가 되어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시대를 거치며 번영하였다. 당시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는 쇠퇴일로에 있었으므로 이미 중세부터 아랍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다만 200년간의 시아파 색을 지우기 위해 살라흐 앗 딘은 파티마 조 때에 지어진 마스지드 (모스크)와 마드라사 (대학) 들에 대한 소외 정책을 편다. 알 아즈하르 대학의 시아파 교수들은 축출되었고 알 하킴 모스크는 기병들의 마구간으로 쓰이다가 후에는 십자군의 감옥으로 이용되었다. 다만 맘루크 왕조 대에 이르러 알 아즈하르 대학은 수니파 사상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 신학 대학으로의 명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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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세 말부터 카이로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우선 흑사병이 14~15세기에 걸쳐 수십 차례나 유행하여 카이로 인구를 작살냈다. 당시 맘루크 왕조에서 맘루크를 사오는 주 거래처가 흑해 지역의 킵착계 튀르크 족속들이었는데, 이곳은 유럽 페스트 유행의 근원지였다. 따라서 흑사병이 진정되지 않고 계속 유행한 요인이 그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거기다가 중세 말 유럽 국가들이 지리상의 발견, 신항로 개척 등을 시작하면서 인도양을 통한 중개 무역을 주로 하던 이집트의 상업이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맘루크들의 내분과 정치 불안 등 이런저런 요인으로 골골대던 카이로는 결국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정복 이후 강대국의 수도에서 지방 도청소재지 정도로 격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수도 콘스탄티노플(코스탄티니예)에 이은 제국 제2의 도시로서 체면치레는 했다.
그렇게 오스만 제국의 속령으로 지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 이후 무함마드 알리 왕조가 이집트를 통째 들고 독립하면서 이집트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카이로는 이집트의 중심으로써 계속 성장, 발전하면서 무함마드 왕조의 친 서구화 및 근대화 정책, 영국의 지배,[6] 민족주의 발흥 등 이집트 근현대사의 주 무대가 되어 현대에 이른다.
이후 1992년 10월 12일 규모 5.8[7]의 지진이 발생해 545명이 사망하고 6512명이 부상,기자 피라미드의 벽돌이 떨어져 나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8]한국에는 당시 이집트와 수교 전이였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나름 유럽권 언론에는 크게 보도된 사건이다.
한국 현대사와도 인연이 있는 도시인데,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언급한 국제 협약인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 곳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해당 선언이 있었던 장소에 카이로 선언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4. 환경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답게 공해가 심각해서 카이로의 유물들에 직접적인 손상을 끼치는 수준까지 와 버렸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경제개발기 때와 흡사하다. 수천년을 버텨 온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거석상이 공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05년 카이로 밖으로 밀려난 게 대표적인 케이스다.
게다가 곳곳에 짓다가 만 건물들이 가득한데 다 지으면 세금을 부과하기에 몇몇 부분은 남겨둬서 '공사 중입니다.' 라는 표지판만 내걸면 건물세가 보류되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좋을지 몰라도 이런 건물이 꽤 많아서 도시 미관에 나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는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지는 도시'''로 여러모로 유명하다. 그래서 카이로 지하철을 놓을 때 '''땅 한번 파니까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나와서''' 여러모로 고생 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구가 많아서 200만 명은 공동묘지(!)에 살고 있다. #

5. 행정구역


카이로를 카이로 주(州)로 한정한다면 나일강 동쪽 지역 일부지만, 이집트 사람들이 생각하는 카이로의 범위는 더 넓다!(그래서 나일강 서쪽지역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기자이지만 배달 음식 시킬때 그냥 카이로라고 해도 온다.) 이 범위를 대 카이로(القاهرة الكبرى‎,알 까히라 알 쿠브라)라고 한다. 본 문서에는 일반적인 인식을 따라서 대 카이로로 작성한다.

5.1. 카이로 주(محافظة القاهرة)


카이로 주 (이집트)

행정구역상 카이로에 속하는 지역만 쓸 것.
나일 강의 동쪽에 위치한다.

5.1.1. 카이로 동부


  • 엘 마르그(المرج‎): 카이로 지하철 1호선 종점이다. 깔루비야 주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다.
  • 앗 살람(السلام)
  • 아인 샴스(عين شمس): 한국어과로 유명한 아인 샴스 대학교가 있는 그 곳이다.
  • 엘 마따리야(المطرية)
  • 엘 노즈하(النزهة): 카이로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 마스르 엘 게디다(헬리오폴리스, مصر الجديدة): 이름을 풀이해보자면 '새 이집트'라는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이름난 부촌이기도 하며, 유럽식 건물들이 많이 있다.
  • 나스르 시티(مدينة النصر): 신도시 중 비교적 오래된 신도시 중 하나로, 다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아즈하르 대학교 본교캠퍼스가 여기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헬리오폴리스와 맞닿아 있는 지역에는 아프리카 최대 쇼핑몰인 시티 스타스(city stars)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사다트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곳도 이곳이다. 다운타운에 비하면 살기 좋은 동네이나, 지하철이 없어서 교통편이 매우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 멘시예트 나스르(منشية ناصر ): 이집트 최대 빈민가 중 하나. 파트마 왕조 시기부터 형성 된 무덤들이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이 곳에 있으며, 여기에는 10만이 넘는 빈민이 살고 있다! 그 옆에 모까땀과 마주한 곳에는 성지순례 필수 코스인 쓰레기 마을과 동굴 성당으로 알려져 있는 성 시몬 성당이 있다.

5.1.2. 카이로 서부


  • 엘 와일리(الوايلى): 압바시야라는 지명으로 더 불린다.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으로 유명한 아인샴스 대학교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9]
  • 엘 모스키(الموسكى): 카이로 지하철 2,3호선 환승역이자 유명한 시장인 아타바가 이곳에 있다.
  • 밥 엘 샤아리야(باب الشعرية): 칸 엘 칼릴리가 있는 무에즈 거리를 여기를 통해서 갈 수 있다. 3호선 밥 엘 샤아리야 역에서 내려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살라훗 딘 시절에 지은 성벽이 남아 있다.
  • 불라끄(بولاق‎‎)
  • 엘 아즈바키야(الأزبكية): 보통은 인근 지하철 역인 1호선 감므라 역이나 엘 데메르다쉬 역으로 불린다. 콥트 정교회 본산이 있는 성 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 가릅(غرب)
  • 압딘(عابدين): 다운타운에 속하는 곳에 하나로, 카이로 주 청사와 압딘 궁(palace)이 이 곳에 위치해 있다.
  • 까스르 엘 닐(قصر النيل): 다운타운에 속하는 곳이자 유명한 거리 중 하나로, 타흐리르 광장과 이집트 박물관, 부촌 중 하나인 가든 시티(garden city)가 이 곳에 위치해 있다. 1,2호선 사다트 역이 있다.
  • 자말렉(الزمالك): 게지라(الجزيرة) 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일강 섬에 있기 때문에.. 카이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이로 타운과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외국 공관[10]이 매우 많이 위치해 있고, 이집트에서도 손 꼽히는 부촌이자 외국인 거주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남동-이태원 위치. [11]

5.1.3. 카이로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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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아므르 이븐 알 아스 사원
  • 싸예다 제이납(السيدة زينب): 무함마드의 교우 중 하나인 제이납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모스크가 있다.
  • 엘 바사틴(البساتين)
  • 엘 타빈( التبين)
  • 마스르 엘 까디마(مصر القديمة): 올드 카이로 중 콥트 박물관과 성가정이 피신한 장소에 세워진 성당, 642년 완공된 아므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 등이 있다. 푸스타트가 바로 이곳이다.
  • 다르 엘 살람(دار السلام)
  • 엘 칼리파(الخليفة): 살라훗딘의 시타델이 있는 곳이다.
  • 마아디(المعادي): 자말렉과 더불어 이름난 부촌 중 하나. 미국계 사립학교가 이 곳에 위치해 있어, 대부분의 한인들이 여기서 산다. 카이로에 있는 한국 식당 5개 중 4개는 여기에 있을 정도이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구금되어 있는 군 병원도 이 곳에 있다.
  • 모까땀(المقطم): 시타델을 가다보면 큰 돌 산이 있는데, 그곳을 모까땀이라고 한다. 쓰레기 마을을 보통 모까땀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멘시예트 나스르에 속해있는 곳이다. 여하튼 산을 넘으면 고급 빌라가 굉장히 늘어서 있는 곳이다.
  • 헬완(حلوان): 원래는 헬완 주(州)였으나, 카이로 주로 편입되었다.
  • 5월 15일 지역(15 مايو)

5.1.4. 카이로 북부


  • 앗 제이툰(زيتون): 콥틱 교회에 의하면 이 곳에 있는 교회에 성모가 출현했다고 한다.
  • 하다옉 옵바(حدائق القبة)
  • 앗 샤라비야(الشرابية)
  • 로드 엘 파라그(روض الفرج)
  • 엘 싸힐(الساحل)
  • 엘 자와히야 엘 함므라(الزاوية الحمراء)
  • 엘 쇼브라(شبرا): 뒤에 나올 쇼브라 엘 케이마랑은 다르다! 쇼브라는 카이로 주, 쇼브라 엘 케이마는 깔루비야 주에 소속되어 있다.

5.2. 기자 시(مدينة الجيزة )


기자 (이집트)

행정구역상 기자에 속하는 곳만 기재할 것.
나일 강의 서쪽에 위치한다.[12]
  • 도끼(الدقى‎)[13]: 다운타운에서 다리를 건너서 자말렉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면 도끼가 보인다. 자말렉과 마찬가지로 외국공관이 많으며, 대한민국 대사관도 여기에 위치해 있다. 아랍어 학원이 많이 위치해 있어 외국 학생(한국인 유학생 포함)들이 많이 거주하며, 이집트에서도 중산층 이상이 사는 곳이다.
  • 아구자(العجوزة): 무한데신이라는 거리가 유명하다.
  • 불라끄 엘 다크루르(بولاق الدكرور): 유명한 빈민가 중 하나.
  • 하람(الهرم ): 피라미드와 인접한 곳으로, 관광호텔들이 많은 까닭에 카바레라고 불리는 환락가가 이곳에 있다.
  • 엘 아므라니야(العمرانية)
  • 임바바(إمبابة): 쇼브라 엘 케이마, 불라끄 엘 다크두르와 더불어서 유명한 빈민가 중 하나다.
  • 북 기자(شمال الجيزة)
  • 남 기자(جنوب الجيزة): 카이로 대학교가 이 근방에 있다.
  • 엘 모닙(المنيب)
  • 킷 캣(الكيت كات)

5.3. 그 외 기타 지역


  • 쇼브라 엘 케이마(شبرا الخيمة): 깔루비야 주의 주도로, 공업도시이자 유명한 빈민가이다.
  • 뉴카이로(القاهرة الجديدة): 주로 타감마아 카미스, 레합, 까따미야 등의 부유층을 위한 신도시다. 차 없으면 다니기 힘들다.
  • 10월 6일(مدينة 6 أكنوبر)시& 쉐이크 자이드 시(مدينة الشيخ زايد)
  • 오부르 시(مدينة العبور)
  • 슈룩 시(الشروق)
  • 마디나티(مدينتى)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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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파티마 조 때에 지어진 알 아크마르 모스크
1997년 대한민국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에는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 곳이라는 역사적인 배경도 작용했으리라 보인다.
대한항공이 한때 타슈켄트 경유로 인천 - 카이로 노선을 운항했지만, 이집트 국내 불안으로 인해 현재는 단항되어서 두바이, 이스탄불,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야 한다. 2019년부터 대한항공이 여행사를 통한 전세기 직항편을 운항한다.
이슬람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헬리오폴리스같이 고대 이집트 문명 관련 유서 깊은 지역도 있다.

7. 매체에서 등장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사실 이집트 국토 자체가 나일강 유역 및 삼각주에 인구가 집중되어있어서 영토는 남한의 10배가 넘지만 실질 가용면적을 고려하면 남한보다 작은 북부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 대략 7000만 명 정도가 산다.[5] 그런데 실제로 이집트는 제4차 중동전쟁 후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정식 독립 국가로 승인하면서 중동 아랍 국가들의 격분을 사며 이로 인해 아랍 국가들의 지역기구인 아랍 연맹에서도 추방당하는 등 중동 밑 북아프리카 아랍 세계 국가들로부터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르완다, 가나, 우간다, 케냐, 카메룬, 탄자니아, 잠비아, 모잠비크 같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만들며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향력 행사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기 전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주도하며 중동 아랍권의 맹주를 자처할때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스라엘과의 국교 단절을 요구하는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이 있긴 있었다.[6] 식민지는 아니고, 보호령으로 삼아 지배하였다.[7] 경주 지진과 규모 자체는 같고,최대진도도 VIII(8)로 비슷하지만 안 그래도 후진국인 이집트에서 그것도 1992년에 일어났기에 피해가 극심했다.[8] 의외로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데,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는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더군다나 카이로는 아라비아판도 근처에 있는 상당한 지진 위험지대다.당장 세계적인 초화산으로 꼽히는 산토리니캄피 플리그레이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자.[9] 구글링에 의하면, 아인샴스 대학은 총 8개의 캠퍼스로 카이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아인샴스 대학의 공식 페이스북#에 표기된 대학의 위치는 엘 와일리 지역인 것으로 보아 본 캠퍼스는 엘 와일리 지역에 있는 것이 맞는 듯하다. 보다 정확한 내용은 현지 주민이나 해당 대학 재학생이 수정 바람(...).[10] 북한 대사관도 있다![11] 한인 식당이 하나 위치해 있다. 그 외 나머지 한인 식당은 전부 마디에 있다.[12] 기자 시는 기자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13] 이집트 아랍어로는 “도으이”라고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