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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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Fredric Michael Lynn
출생
1952년 1월 3일
국적
미국
출신지
시카고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데뷔
1974년 9월 5일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1974~1980)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81~1984)
볼티모어 오리올스(1985~1988)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988~198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90)
'''197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제프 버로우스
(텍사스 레인저스)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서먼 먼슨
(뉴욕 양키스)
'''197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마이크 하그로브
(텍사스 레인저스)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마크 피드리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 개요


MLB 최초의 신인왕과 MVP를 같은 시즌에 수상한 인물이다.

2. 선수시절


루키 시즌은 15게임밖에 출전하지 않았기에, 신인 자격을 상실하지 않았다.
풀타임 첫해인 1975년에 23살의 나이로 타 .331, 출 .401, 장 .566, OPS .967, wRC+ 161, fWAR 7.1, bWAR 7.4을 찍고, 만장일치에서 1표 모자른 신인왕 및 MVP를 수상하였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1979년으로서, 27살의 나이로 타 .333, 출 .423, 장 .637, OPS 1.059, wRC+ 174, fWAR 8.6, bWAR 8.8을 찍었다.
1979년의 MVP는 양쪽에서 모두 논란거리였다. 그 해 수상자는 AL에선 돈 베일러, NL에선 키스 에르난데스와 윌리 스타젤이 공동 수상했는데 굉장히 어이없는 성적이었다. 그 해 fWAR 순위에서 양 리그 1위는 NL에서 J.R. 리차드(8.8), AL에서는 린(8.6)이었다. 하지만 리차드는 NL 19위에 그쳤고, 린은 AL 4위에 그쳤다. 더 놀라운 건 NL MVP에 오른 윌리 스타젤은 적어도 그 해엔 NL fWAR 타자 부분에서만 따져도 35위에 머문 선수였다는 것. 무엇보다도 MVP급과는 거리가 먼 2.7 fWAR를 찍었다. 심지어 규정타석도 기록하지 못했던 선수였다(480타석). 실제로 빌 제임스는 가장 멍청한 1970년대 MVP 선정을 윌리 스타젤의 1979년이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돈 베일러 또한 AL fWAR 타자 부분 25위에 그친 타자이다. 그런데도 두 선수가 MVP를 수상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팀 성적이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었기 때문에 이 상을 수상했다. 1947년의 AL MVP 데자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1] 그나마 논란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키스 에르난데스였다. NL 전체 2위의 fWAR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016년의 MLB 기자들이라면 아마 린, 브렛, 리차드, 에르난데즈 중 2명을 골랐을 것이다.#
그 외에는 평범한 성적을 기록, 명전에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1996년에 첫 후보로 올라 5.5%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다음 해에 4.7%를 기록하는데 그치며 바로 탈락했다. 사실 초년병 이후 성적이 다소 평범했던건 무릎수술만 3차례 받은 걸 포함해 발가락, 허리, 햄스트링 부상 등 엄청난 유리몸이었기 때문.
[1] 적어도 그 해는 조 디마지오가 받아서는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