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시

 


1. 개요
2. 관련 문서
3. 참고 문헌

'''Frisii'''

1. 개요


프리시는 고대 게르만족의 한 일파로, 기원전 4세기 때 북해 인근에 정착하였다. 이후 로마인들이 저지대에 진출했을때 이들은 북홀란드, 프리슬란트, 흐로닝언 지역 일대에 거주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저지대 지역을 차례대로 정복하면서 프리시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 역시 기원전 12년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Nero Claudius Drusus)에 의해 정복되었다.[1]
드루수스는 자신이 굴복시킨 프리시인들에게 유화 정책을 폈는데, 그는 프리시인들에게 단지 쇠가죽만 바치게 하였다. 이때문에 프리시인들은 드루수스에게 호감을 품었으며, 드루수스가 바덴 해(Wadden Sea)에서 익사할 뻔하자 한 프리시인이 그를 구해주기도 했을 정도였다. [2]
그러나 프리시인들이 언제나 로마인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였다. 28년, 프리시인들은 로마 제국의 세금 정책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프리시인들의 독립성은 로마 제국에게 있어 큰 골칫거리였다. 프리시인들의 저항 이후 이들이 모여 사는 프리슬란트 지방은 프리시오눔(Frisionum)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제국에게 편입, 행정구역화 되었다.
프리시가 로마 제국으로 편입된 이후 이들의 로마화는 가속화되어 3세기가 지나면 거의 완전히 로마에 동화되었다.
프리시인의 후예들은 각각 네덜란드의 프리슬란트 주와 독일 니더작센주의 동프리슬란트 지방, 그리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북프리슬란트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근현대 이후로도 프리시인들이 사는 지역들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강조하는 편이며 특히 지금도 주(州) 단위로 자치를 인정받는 네덜란드 쪽 프리슬란트에서 두드러지는 편이다. 이는 근대 이전까지 프리슬란트가 다른 저지대 지역과 사실상 서로 다른 나라였던 탓도 있다.

2. 관련 문서



3. 참고 문헌


  • 김영중, 장붕익 공저, <네덜란드史 (세계각국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4

[1] 네덜란드史, 14p[2] 네덜란드史, 14-1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