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테이스티 사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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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티 사가의 등장 식신. 모티브는 피자.종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밝은 성격의 청년. 종종 속임수를 쓰지만 여행과 자유를 사랑하는 삶을 즐긴다. 싸움을 싫어해서 선을 넘지 않는 한, 먼저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곤 한다. 치즈의 장난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고, 자신의 보디가드인 카사타에게 종종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늘 환하게 웃고 있어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지만 말 못 할 걱정을 숨기고 있다.
2. 초기 정보
3. 스킬[3]
4. 평가
5. 대사
6. 배경 이야기
6.1. 1장. 약속
「카사타, 받아!」
「피자, 이쪽이야!」
「빨리 빨리~!」
내가 사는 곳은 그리 크진 않지만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자원이 있는 나라다.
나의 마스터는 이 나라의 국왕이다.
국민은 친절하고 인심이 좋다.
국왕 역시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공주는 착하고 아름답다.
따듯한 햇살이 만물을 비추며 생기를 불어넣는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따라 천천히 흔들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자, 난 고개를 들고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봤다.
「피자, 빨리 와! 이러다가 과수원 아저씨한테 잡히겠어!」
「알겠어!」
난 재빨리 담 쪽으로 달려가 윗부분을 잡았다.
치즈가 카사타의 손을 밟고 담벼락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난 아직 담벼락 아래에 있는 카사타의 손을 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뒤쫓아 온 사냥개가 담벼락 아래에서 으르렁거리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우린 깔깔거리며 웃었다.
담 반대쪽으로 뛰어내리자, 과수원 아저씨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어깨를 으쓱하며 눈빛을 교환한 다음, 혀를 쏙 내밀고 도망갔다.
우린 과수원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지, 치즈는 무릎을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치즈의 볼을 검지로 쿡 찔렀다.
「치즈, 너 운동 좀 해야겠다. 허구한 날 성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그렇지!」
「난 너희처럼 한가하지 않거든? 참, 마스터께 드릴 사과는?」
「여기 있어.」
「돈도 잘 드렸지?」
「물론이지! 아까 그 나뭇가지에 매달아뒀어. 돌아가는 길에 바로 볼 수 있게 해놨지, 게다가 금화라고!」
성에 도착한 우리는 가장 예쁘고 잘 익은 사과를 골라 공주에게 건넸다.
공주님과 치즈에게 인사한 뒤, 나는 카사타와 성안을 돌아다녔다.
그날 밤, 우린 성의 지붕에 누워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자 기분까지 상쾌했다. 난 아까 딴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옆에 앉아 있는 카사타를 봤다.
「카사타.」
「응?」
「다른 나라엔 분명 재미있는 게 많겠지? 지난번에 지나가던 상인이 그랬는데, 어떤 나라의 왕도는 우리나라 전체만큼 크다고 하더라.」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카사타는 자리에 눕고 눈을 감았다.
「우리... 공주님이 건강해지고, 후계자가 생기면 치즈랑 셋이서 같이 가보자. 어때?」 난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납작 엎드려 카사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래.」
카사타가 눈웃음치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 셋이서 여행 가기로 약속한 거다!」
「...응, 약속.」
머지않아 우리의 약속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실현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6.2. 2장. 운명의 일탈
공주님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다.
그리고 요즘은 부쩍 더 안 좋아졌다.
내 얘기를 듣고 웃을 때 기침하다 피를 토하기도 했다.
우리가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그녀의 손수건에 묻은 새빨간 피를 똑똑히 봤다.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마스터도 점점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갔다.
해가 지날수록 여왕을 닮아가는 딸을 보며 저주에 걸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다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현명했던 마스터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마스터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딸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역시 공주님이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치즈는 웃음을 잃었고, 카사타는 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을 예전처럼 웃게 할 순 없었다.
그때마다 아픈 공주가 우릴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떠돌이 상인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마스터를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공주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모든 게 하늘이 내린 축복일 거라고 생각했다.
신께서 착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가엾게 여겨 내려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날 난 마스터의 옆에서 처음으로 그놈과 마주했다.
솔직히 말해서 놈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단정한 옷차림에 기품 있고 우아한 언행을 사용하는 청년이었다. 평생을 성에서 살아온 나보다 이곳에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언제나 기괴한 문양이 찍힌 상자를 들고 다니긴 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남자는 방에 들어오는 날 보더니 몸을 일으켜 정중히 인사했다.
내가 마스터 옆에 서자, 마스터가 말했다.
「이쪽은 떠돌이 상인 비타이 선생이다. 수많은 곳을 여행한 덕에 신비한 기술을 많이 알고 있지. 우리 공주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말이야.」
「신께서 가엾은 공주님을 위해 우릴 만나게 해주신 게 분명합니다.」
분명 고상하고 예의 바른 말이었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차갑고 끈적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
그때 「비타이 선생」이 날 보며 따듯하게 웃었다.
역시 착각이겠지.
우릴 도와줄 거야.
「실례합니다만, 폐하. 이분은...」
「짐의 식신 피자라네.」
「피자 님의 깃발... 정말 아름답군요...」
비타이는 이상할 정도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난 애써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 비타이는 공주님을 치료하는 동안 성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난 마스터의 분부대로 비타이가 만든 약을 공주님께 가져다주었다.
「공주님은 어떠신지요?」
「전보다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비타이 씨는 의사신가요?」
「의사요?」
그는 의아하다는 듯 내가 한 말을 따라 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평범한 상인입니다.」
비타이의 미소는 여전히 불편했다. 난 습관처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마침 옆에 있던 책장에 머물렀다.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한 권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이라는 건 어렵긴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연구를 통해 Aqua Vitae라는 액체를 발견했는데, 지금은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술이 되었다.'라는 내용이라든지...
「Aqua Vitae... 생명수라...」
그때 곧게 뻗은 손이 내가 읽던 책을 낚아채갔다.
「여기 공주님의 약입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꺼림칙하기만 했다.
난 약을 받아들자마자 잽싸게 방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흐르자 공주님의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에 마스터는 크게 기뻐하며 비타이를 신임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믿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스터의 신임은 맹목적이었다.
비타이가 아무리 황당무계한 소리를 해도, 마스터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6.3. 3장. 비극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마스터가 날 서재로 호출했다.
휴식 시간엔 절대 부하를 방해하지 않는 마스터였지만, 비타이가 성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부터는 빈번한 일이 되었다.
아마 너무 바쁘셔서 지금에야 시간이 나신 거겠지...?
난 이렇게 생각하며 마스터의 서재로 갔다.
벼락이 치며 서재 안을 밝혔을 때, 난 마스터가 몰라볼 정도로 비쩍 말랐다는 걸 깨달았다.
「피자. 자네에게 있어서 공주는 어떤 사람이지?」
「...친남매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럼 나는 어떤가?」
「마스터 역시 제 가족과도 같습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럼 나와 공주를 위해... 부탁할 게 있네.」
마스터는 내 쪽으로 다가와 생기 없는 눈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스터... 대체 어떤 부탁을...」
그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시커먼 뱀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를 속박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해드리죠.」
'예의 바른' 남자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며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부탁하네, 비타이 선생.」
마스터는 공격받는 날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서재를 빠져나갔다.
「식신인가?」
「후후... 식신? 그냥 평범한 상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몸을 휘감고 있는 뱀이 화라도 난 듯 나를 더욱 세게 쥐었다.
「마스터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직도 말할 기운이 있다니, 대단하군요. 이건 폐하께서 직접 결정한 겁니다,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이다음부터는 당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비타이는 알아듣기 힘든 복잡한 말들을 잔뜩 늘어놨지만, '연금술'이라는 단어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생명」의 「씨앗」이다.
식신은 순수한 몽환의 힘을 지니고 있다. 몽환의 힘은 이 세상의 기원이자 모든 생명의 시작이다.
비타이는 식신의 힘을 사용해... 아니, 몽환의 힘을 사용해 공주를 치료할 생각이다.
몽환의 힘이 공주님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씨앗」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는 나 하나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씨앗」은 끊임없이 몽환의 힘을 흡수해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낙신이랑 똑같잖아?
그땐 이 모든 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더러 다른 사람을 해치라니, 공주를 위한 것이라도 난 할 수 없다.
「당신이 동의만 하면 공주님은 계속 살 수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일 텐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후훗... 얌전히 있어요. 곧 끝날 테니까...」
뱀의 시뻘건 눈이 천천히 다가왔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약속하죠.」
그는 변함없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스터는 왕좌에 앉아 자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 옆에서는 공주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난 마스터가 준 평화 깃발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뱀이 날 물어뜯기 시작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마스터와 공주가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맥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왕좌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비타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우아하게 웃으며 마스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난 손을 뻗어 놈을 제지하려 했지만, 검은 뱀이 날 놓아주지 않았다.
몸이 두 동강 날듯이 끔찍한 고통이 느껴져도 마스터와 공주가 눈앞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안 돼, 그들을 놔줘!
움직여야 해, 어서!
제발!
소리치려고 애썼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어둠이 내 주변을 완전히 감싸자, 숨이 막혀 왔고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스터는 내 깃발이 우리나라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다.
식신의 생명력처럼, 우리나라의 평화도 영원할 거라는 의미였다.
난 과수원에서 카사타, 그리고 치즈와 함께 밤하늘을 보며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절대 질 수 없어.
이 깃발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공주 역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는 심연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때 깃발이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은은한 빛을 냈다.
빛이 어둠을 쫓자, 내 의식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6.4. 4장. 정해진 운명
심연에서 빠져나온 후 어떻게 정신을 잃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자 송곳으로 뼈를 찌르는 듯 아팠다. 속박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간신히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난 딱딱한 석판 위에 누워 있었다.
도망가려고 했지만, 몸이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난 이를 악물고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여긴 마스터의 서재가 아니라 비타이가 머물던 곳이었다.
내 아래엔 기괴한 마법진이 하얀 염료로 그려져 있었다.
공기 중엔 약 냄새가 가득했고, 옆에 잇는 책상엔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와 칼이 가득했다.
대체 뭐 하는 곳이지?
성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물이 끓는 소리, 그리고 부츠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깨어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비타이는 내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던지듯 내팽개쳤다.
머리가 석판에 부딪히며 '쿵'하는 소리가 났다. 난 참지 못하고 고통에 찬 신음을 냈다.
「일어났었군요~」
비타이가 악마 같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군요...」
난 연기하는 걸 포기하고, 웃고 있는 놈을 노려봤다.
「화라도 난 건가요?」
그때 거대한 진동과 함께 실험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쥐새끼가 들어 온 모양이군요.」
「그렇게 귀여운 동물로 불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비타이 씨.」
카사타가 벽을 뚫고 나타났다.
흙먼지가 휘날렸다. 비타이는 카사타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카사타는 재빨리 틈을 타 내게 다가왔다. 순간, 비타이 쪽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날아왔다. 날 속박했던 그 뱀이었다.
뱀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곧장 카사타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카사타는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날 속박하고 있는 족쇄들을 풀었다.
뜨거운 액체가 내 얼굴에 떨어졌다.
검은 뱀이 카사타의 눈과 코에 깊은 상처를 내며 피가 쏟아진 것이다.
「카사타, 괘, 괜찮아?」
「괜찮아.」
카사타는 날 끌어안으며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이 깃발을 저딴 녀석에게 쉽게 넘길 수야 없지.」
내게 깃발을 넘기며 카사타가 말했다.
내가 무거운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카사타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미안해, 카사타. 나 때문에...」
「미안할 거 없어. 널 지키는 게 내 일이잖아.」
「대단하군.」
뱀이 순식간에 비타이의 곁으로 돌아가더니, 지옥의 불꽃처럼 그를 감쌌다.
「하지만 이 뱀에게 입은 상처는 쉽게 낫지 않을 거다.」
비타이는 특유의 우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사타의 기습을 가볍게 피하다니, 인간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역시... 식신인가?」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식신으로서 이런 짓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제대로 한 적이 없군요. 아콰 비타이...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는 내 물음에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아, 아콰 비타이... 【Aqua Vitae】 ...새, 생명수?!」
전에 그의 방에서 봤던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군요. 그 쪽에겐 위스키... 이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색 뱀이 그의 손을 서서히 휘감고 있었다.
「식신이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난 목에 핏대를 세우고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뭐 나쁜 짓도 아니지 않습니까? 난 그저 당신의 마스터를 도우려는 것뿐입니다.」
위스키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꿈을 실현시켜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 생명을 부활시키는 것이죠.」
「전 폐하께 모든 위험을 말해드렸습니다. 당신을 희생해 공주님을 구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쪽은 그저 실패작에 불과하게 되었군요.」
위스키의 웃음을 보자 마음이 참기 힘든 충동으로 가득찼다. 난 깃발을 쓰다듬으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그때 갑자기 깃발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깃발이 검은 뱀처럼 불을 내뿜었다. 절망으로 가득찬 복수심이 이 불길처럼 내 이성을 삼키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개를 까딱할 힘조차 없던 내 몸뚱이가 제멋대로 위스키를 향해 깃발을 크게 휘둘렀다는 것이다.
위스키는 내 행동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하긴, 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서인지 위스키의 동작이 둔해졌다.
상처를 입히진 못했지만, 그의 외투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난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뱀 두 마리가 엉켜있는 장신구가 내 앞에 떨어졌다.
위스키의 문양이었다.
「흥미로운 『실패작』이군요.」
위스키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지만 당신은 예기치 못한 수확입니다. 피자.」
「그럼 다음을 기약하죠!」
위스키는 왕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두운 방엔 나와 카사타만 남았다.
난 뱀 두 마리가 얽힌 장신구를 꽉 잡았다. 장신구의 날카로운 부분이 손을 찔렀지만, 놓지 않았다.
평화에 대한 내 신념을 선포하기라도 하듯...
카사타에게 도움을 받아 간신히 탈출했지만, 왕국의 병사들이 우릴 쫓아왔다.
공주님은 세상을 떠났고, 마스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린 모든 것의 원흉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있었다.
운명은 악마 같은 남자가 나타난 그 순간,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6.5. 5장. 피자
피자는 낙천적인 식신이다.
그의 마스터는 한 작은 나라의 국왕이었는데, 풍부한 자원과 귀여운 여동생, 든든한 남동생과 함께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국왕의 딸에겐 치즈라는 귀여운 식신이 있었다.
피자와 마스터가 성당에 간 어느 날, 피자는 그 구석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식신을 발견했다.
그의 이름은 카사타다.
카사타는 마스터가 없었고, 오갈 데가 없었다. 낙신에게서 간신히 도망쳤다고 했다.
피자가 카사타를 국왕에게 데려갔고, 국왕은 그를 받아들였다.
피자는 자신이 과거에 세계라도 구한 줄 알았다. 이토록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공주의 병은 폭탄의 도화선과도 같았다.
공주의 병 때문에 마스터가 실의에 빠졌을 때, 한 남자가 희망을 품고 나타났다.
자신을 떠돌이 상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연금술"을 할 줄 알았는데,
이 연금술이라는 걸 이용해 공주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국왕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처음엔 공주의 병세가 호전되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는 피자를 연금술의 재료로 사용해 공주에게 몽환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다른 사람을 죽여 생명을 이어나가게 할 계획을 세운다.
피자는 마스터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켜 공주의 생명을 연장하자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받아들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마스터의 부탁이라고 해도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스터는 애초에 피자의 동의를 구할 생각도 없었다.
위스키는 피자를 끌고 실험실로 갔다.
계획대로라면 피자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지고, 순수한 몽환의 힘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피자를 낙신처럼 끊임없이 몽환의 힘을 흡수하는 존재로 만들어서 「생명」을 창조할 셈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했다.
식신의 의지는 위스키의 생각만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위스키가 실험실을 포기하고 도망가려던 순간, 예상 밖의 실험이 그를 기대하게 했다.
피자의 깃발이 낫으로 변하더니 자신의 뱀을 베어버린 것이다.
흥미롭긴 했지만, 더는 머무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예상한 대로 공주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그날 밤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국왕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의 길을 택했다.
이 결과가 바로 위스키의 목표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죠!」
위스키는 이렇게 말하곤, 뱀으로 주변을 파괴하며 길을 만들었다.
사방에 연기가 안개처럼 일었고, 위스키는 피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리 사이엔 끊어지지 않는 인연이 있어. 날 믿어.」
위스키의 목소리가 사라지자마자, 피자는 카사타의 손에 이끌려 위험한 곳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
그때 피자는 아직 위스키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위스키가 사라진 후, 피자와 카사타는 그 무시무시한 곳을 빠져나왔지만, 왕국의 병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왕국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쫓고 쫓기던 끝에, 그들은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공주의 방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에 도착하자, 무릎을 감싸고 울고 있는 치즈를 발견했다.
치즈를 보자 마음이 놓였지만, 그녀가 전한 소식은 다시 그들을 침울하게 했다.
공주는 세상을 떠났고, 국왕의 동생은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그리고 이 모든 죄를 피자와 카사타에게 씌웠다.
치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시간도 없이 세 사람은 성을 빠져나왔다.
국왕의 동생은 피자와 그의 일행이 공주와 국왕을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 그는 야수에게 물어 뜯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체로 발견되었다.
모두의 눈을 피해 피자와 카사타는 숨어 살았다.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왕국 전체의 병사가 자기들을 쫓는 이유다.
왕이 사라지니, 귀족들끼리의 권력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나라는 혼란 속에 빠졌다.
어느 날.
산 절벽에서 피자는 바람을 맞으며 왕국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뱀 두 마리가 엉켜 잇는 장신구를 손에 쥔 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위스키라는 남자가 떠나기 전에 한 말이 이 모든 걸 예고한 듯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여기까지 끌고서 뛰는 건데!」
치즈는 드디어 숨을 돌렸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피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랑 피자가 사건이 일어난 곳에 우연히 있었는데, 누명을 쓴 거 같아.」
카사타는 혼란스러워하는 피자 대신 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누명이었구나.」
치즈는 피자가 왜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봤다.
그는 치즈의 맑은 눈에 어둠이 찾아오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피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위스키를 막겠다고, 다시 이런 슬픈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기억은 나 혼자 기억하는 거로 충분했다.
7. 코스튬
8. 기타
- 최악의 영어 보이스로 피자가 손꼽힌다. 성인 여자가 억지로 소년 목소리를 흉내내는 티가 많이 나며 캐릭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 북미 서버에서는 피자 때문에 보이스를 껐다든가 일본어 보이스로 바꿨다는 말이 많다. 마찬가지로 스테파니 코뮤어가 보이스를 맡은 주량원자 또한 보이스 평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