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버그 포위전
Siege of Petersburg
피터스버그 포위전은 미국 남북전쟁중인 1864년에서 1865년 사이에 남중의 주요 거점인 버지니아 주 피터스버그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리치먼드-피터스버그 공방전 또는 피터스버그 전투(Battle of Petersburg)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구소련 시대 레닌그라드라도 불렸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하고 영문으로는 비슷해서 레닌그라드 공방전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남북전쟁 시대인데도 1차 세계대전 때의 서부전선 같이 무려 8개월 동안 지리한 참호전을 벌였다.
때는 남북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북군이 남부연합의 수도인 리치먼드로 압박해 들어가던 시기로 1864년 6월 9일부터 1865년 4월 25일까지 벌어졌다. 포위를 한 공격측은 북군 연방(Union)이었고 피터스버그를 방어하는 측은 남군 연합(Federation)이었다.
이 전장에서 유명한 전투는 1864년 7월 30일에 있었던 북군의 공세, 일명 구덩이 전투(Battle of Crater)이다. 남군은 북군의 공세에 대비해서 오랫동안 길고 구불구불한 참호와 철조망 등 방어선을 구축해왔기 때문에 북군도 도저히 돌파가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공병의 제안으로 빅스버그 포위전에서 써먹었던 지하갱도 폭파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즉 남군의 방어선 지하까지 긴 갱도굴을 파고 대량의 화약으로 폭파해서 방어선을 파괴하고 방어선이 무너진 틈에 돌격하자는 것.
저번 빅스버그 포위전에서도 북군이 똑같이 지하갱도 폭파는 성공했지만 그후 혼란상 때문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성공시키기 위해 전원 흑인으로 돌격부대를 구성하고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하지만 이들을 이런 위험한 돌격임무에 동원했다가 실패하고 사상자가 많아질 경우 인종차별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일 가능성이 있어서 작전 개시 직전에 일반병사로 구성된 부대로 바꾸었다.
[각주]
1. 개요
피터스버그 포위전은 미국 남북전쟁중인 1864년에서 1865년 사이에 남중의 주요 거점인 버지니아 주 피터스버그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리치먼드-피터스버그 공방전 또는 피터스버그 전투(Battle of Petersburg)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구소련 시대 레닌그라드라도 불렸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하고 영문으로는 비슷해서 레닌그라드 공방전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남북전쟁 시대인데도 1차 세계대전 때의 서부전선 같이 무려 8개월 동안 지리한 참호전을 벌였다.
때는 남북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북군이 남부연합의 수도인 리치먼드로 압박해 들어가던 시기로 1864년 6월 9일부터 1865년 4월 25일까지 벌어졌다. 포위를 한 공격측은 북군 연방(Union)이었고 피터스버그를 방어하는 측은 남군 연합(Federation)이었다.
2. 구덩이 전투
이 전장에서 유명한 전투는 1864년 7월 30일에 있었던 북군의 공세, 일명 구덩이 전투(Battle of Crater)이다. 남군은 북군의 공세에 대비해서 오랫동안 길고 구불구불한 참호와 철조망 등 방어선을 구축해왔기 때문에 북군도 도저히 돌파가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공병의 제안으로 빅스버그 포위전에서 써먹었던 지하갱도 폭파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즉 남군의 방어선 지하까지 긴 갱도굴을 파고 대량의 화약으로 폭파해서 방어선을 파괴하고 방어선이 무너진 틈에 돌격하자는 것.
저번 빅스버그 포위전에서도 북군이 똑같이 지하갱도 폭파는 성공했지만 그후 혼란상 때문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성공시키기 위해 전원 흑인으로 돌격부대를 구성하고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하지만 이들을 이런 위험한 돌격임무에 동원했다가 실패하고 사상자가 많아질 경우 인종차별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일 가능성이 있어서 작전 개시 직전에 일반병사로 구성된 부대로 바꾸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