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1세
1. 독일 왕국의 국왕
1.1. 개요
작센 공작 출신의 독일 왕국 국왕이자, 오토 왕조의 시조.
1.2. 생애
독일 5대 부족 공국 중 하나인 작센 공국을 다스리던 류돌핑거 가문에서 태어나 912년 작센 공작이 되었다.
전 동프랑크의 국왕 콘라트 1세가 자손 없이 사망하여 왕가의 대가 끊기게 되자 콘라트 1세가 지목한 차기 국왕 후보로서 왕의 사후 프랑켄 부족 대표와 작센 부족 대표의 승인을 받고 국왕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당시 슈바벤 부족 대표와 바이에른 부족 대표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바이에른 출신 아르눌프(Arnulf)를 국왕으로 내세웠다.
이후 전쟁이 일어날 기세...였지만 하인리히 1세가 슈바벤과 바이에른 측의 편익을 지켜주는 조건(교회 지배권 등)으로 이들에게서도 왕권을 인정 받아 정식 국왕으로 임명된다.(하지만 이후 그의 세력이 커지자 이들에게서 다시 교회 지배권을 돌려받는다)
하인리히 1세는 자신을 '독일인들의 왕'이라 칭했다. 때문의 그의 즉위를 공식적인 독일 왕국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정통 왕족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왕이 되길 원하는 크고 작은 반란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이를 진압하고 왕권을 강화시켰으며 동쪽으로는 슬라브족과 마자르족, 서쪽으로는 서프랑크 왕국과 다투면서 나라를 지켜낸 국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후에는 '새 사냥을 좋아하는 왕(그래서 이 사람의 영어 위키백과 항목명이 'Henry the Fowler'이다.)'이었다든지, '성 건축을 좋아하는 성덕후 왕'이었다든지 하는 루머로 오랫동안 꽤 시달렸다가 최근 긍정적인 쪽으로 재발견 되는 중. 치세 내내 축성사업을 대대적으로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 쌓는 걸 좋아하는 덕후여서가 아니라 마자르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국경 방어의 일환으로, 대단히 중요한 업적이었다.
1.3. 오토 왕조
그의 아들인 오토 1세는 하인리히 1세 사후 부족 대표들의 선거로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고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다.
하인리히 1세는 작센 공국을 다스리던 류돌프(류돌핑거) 가문 출신인데, 그가 왕위에 오르고 그의 아들 오토 1세가 제위에 오른 후 그의 가문은 오토 왕조라 불리게 된다. 게르만 부족들은 전통적으로 분할상속제를 취하는 가문이 많았는데, 하인리히 1세는 분할상속 전통을 깨고 장자상속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그의 왕국(훗날 제국)은 후손들에게 온전히 세습되게 된다.
2.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하인리히 1세
자세한 것은 하인리히 1세(울펜슈타인 시리즈)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