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조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봉조는 평안북도 의주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으로서 1920년 9월 24일 동지 4명과 함게 평안북도 의주군 사산동 소나무 숲에서 일본 경찰과 충돌하여 일본순사 좌등(佐藤)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이어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이동순(李東順)의 밀고로 일경과 교전하였다. 1921년 3월 중순에는 압록강 유초도(柳草島)에 있으면서 교통국장 백승서(白承瑞)와 함께 안동현(安東縣) 일본영사관과 은행을 습격하고자 협의하였다. 그러던 중 일경 42명에게 피습되어 반격하다가 백승서가 준비한 밀입선을 타고 탈출하였다.
1922년 8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김창빈(金昌賓)·백세창(白世昌)·고민제(高民濟) 등과 함께 법무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23년 전덕원이 자신을 따르는 복벽계 인사들과 함께 통의부를 떠나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자, 그는 의군부에 가담했다. 의군부는 조직된 이후 융희(隆熙) 연호를 사용하고, 통의부를 적대시하며 통의부에서 관할하던 각 지방을 점령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봉조는 1923년 8월경 의군부 군무총감 전덕원으로부터 유격대장 이경일(李京日)의 지휘하에 동지 50명과 함께 평북 의주군 청성진주재소의 습격을 명령받고 작전을 전개한 뒤 이경일 등 동지 20명과 함께 귀환했다. 그러나 관전현 백석납자에서 통의부의 김석하(金錫夏)부대에게 습격을 받고, 본계호 팔도하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한봉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