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훈

 


성명
한태훈(韓台壎)
이명
한선기(韓善基)
본관
청주 한씨[1]
생몰
1900년 6월 18일 ~ ?
출생지
평안남도 순안군 자덕면 장재리[2]
(현 평안남도 평원군 어파노동자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태훈은 1900년 6월 18일 평안남도 순안군 자덕면 장재리(현 평원군 어파노동자구)에서 아버지 한득엽(韓得燁)과 어머니 광주 이씨 이복증(李復曾)의 딸 사이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12월 18일 중국 지린성 통화현(通化縣)[3]에서 독립단에 가입했고, 1923년 3월 20일경 휘남현하(輝南縣下)[4]로 가서 농민들에게 호(戶) 마다 독립단비를 모집하다 같은 달 30일 보민회장(保民會長)의 밀고로 체포되어 몇달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8년 음력 1월에는 지린성 반석현(盤石縣)[5]에서 정의부에 가입한 후 반남특별구(盤南特別區) 경비대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9년 음력 3월 12일 2명의 동지와 함께 정의부에서 교부한 권총 1정씩을 휴대하고 휘남현 유수구(楡樹區)[6]에서, 같은 달 13일에는 안자하(安子河)[7]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4월 23일에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한태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장렬공파 29세 훈(壎) 항렬.[2] 인근의 산송리와 함께 청주 한씨 집성촌이다.[3]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通化)시.[4]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通化)시 후이난(輝南)현.[5]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지린(吉林)시 판스(磐石)시.[6]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通化)시 후이난(輝南)현 위슈촨(楡樹川).[7]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通化)시 후이난(輝南)현 안즈허(安子河)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