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이씨

 


廣州 李氏

[image]
'''廣州 李氏
광주 이씨
'''
}}}
'''관향'''
경기도 광주시
'''시 조'''
이자성
'''파조'''
사인공파
광릉부원군파
문경공파
광천군파
광원군파
좌의정공파
참판공파
좌통례공파
문숙공파
목사공파
십운과공파
석탄공파
암탄공파
율정공파
'''집성촌'''

'''인구'''
181,377명(2015년) | 국내 53위
1. 개요
2. 역사
2.1. 조선 이전
2.2. 조선 시대
3. 분파
4. 특이사항
5. 유명인물[1]

[clearfix]

1. 개요


한국의 성씨. 시조는 신라 내물왕 시절에 내사령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다. 참고로 여기서의 광주는 '''경기도 광주시'''이고, '''광주광역시'''를 본으로 하는 성씨는 광산 이씨(光山 李氏)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81,377명. 이씨 중에서는 전주 이씨, 경주 이씨, 성주 이씨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인구수다.

2. 역사



2.1. 조선 이전


광주이씨족보에 보면 그 조상들이 신라 때 칠원(현재의 경남 함안)에서 일종의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자성을 시조로 하여 내려온 칠원성은 신라의 모든 성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한 뒤에도 마의태자만을 왕으로 섬길 뿐 왕건에게는 굽힐 수 없다 하여 끝까지 항거하였으므로 크게 노한 왕건이 대군을 이끌고 친히 성을 함락시킨 뒤 이씨성을 가진 일족들을 모두 체포하여 회안(현재의 경기도 광주)지방 관헌들에게 노비로 삼도록 하였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경기도 광주 지방 노비들 중에서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대로 재주 있고 덕망 높다고 주위에 알려지면서 이를 동정한 관리들이 그들의 신분을 높여주어 고려 말경에 이르러서는 더러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다. 이들 중에 이당(唐)이 고을 원님의 아전을 살고 있었는데 그 원님의 딸과 혼인을 맺어 그들 사이에서 대대로 재주있고 덕망높은 자손들이 번창하니 한음 이덕형 선생을 비롯하여 광주 이씨의 주류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분의 후손들이다.
이당의 다섯 아들이 다같이 과거에 급제하였고 아전의 자식으로 오형제가 전부 과거에 급제한 사실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모두가 부러워하였다. 다섯 아들 중 둘째가 유명한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으로 고려말 정몽주 등과 함께 높은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의 집이 있던 고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 서울의 둔촌동이 되었다. 둔촌동에는 지금까지도 그가 살던 유적지와 그와 관련된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조상 중에서 오늘날 기록이 확실히 남아있는 사람이 한음의 8대조 되는 둔촌(遁村) 이집(李集)선생[2]이므로 대부분의 광주이씨들은 이당(李唐)을 시조로 하고 둔촌을 광주 이씨의 제1대로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본관을 회안으로 칭관하다가, 940년 지명이 광주로 개칭됨에 따라 광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2.2. 조선 시대


조선 시대 때는 몰락과 중흥을 반복하다시피 했다. 조선 초기때만 하더라도 이장손 등으로 대표되며 가장 잘나가는 명문가 중 하나였는데 성현이 용재총화에서 지금 가문의 융성함으론 광주이씨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3] 굳이 덧붙여 말하자면 왕이 집안의 기운을 부러워할 정도였다. 예종이 이인손의 묘를 이장시키고 세종대왕의 묘로 삼는다던가,[4] 성종이 아들을 낳을 때 이극배의 집에서 낳게 한다던가 할 정도였다.[5] 이극배는 연산군 초기에 영의정으로서 섭정승을 맡기도 했다. 19살된 연산군이 하도 똑부러져서(?!) 3개월만 맡고 내려왔다고.[6] 그러나 이극균이 왕의 횡음을 바로잡으려고 쓴소리를 하다가 그 조카인 이세좌와 함께 갑자사화 때 처형됨으로써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세좌의 죄는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죄 아닌 죄. 무오사화갑자사화를 겪으며 그야말로 싹 다 쓸려나갔다. 그 후 이준경[7], 이덕형 대에 들어 다시 부활했지만 광해군 대의 권신 이이첨인조반정으로 몰락하면서 다시 한번 쓸려나갔다.(...) 이이첨 이후에는 큰 몰락도 중흥도 없이 그냥 무난하고 조용하게 지낸 듯. 현종대엔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도빈을 배출하기도 하였으며 그 아들인 우항 역시 경종대에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다. 다만 이우항은 신임사화 때 무고하게 죽었다. 숙종 대엔 대사헌을 지낸 이원록과 이조판서 등을 지낸 이원정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들 경북 칠곡군에 위치한 광주이씨 칠곡파 매원마을은 영남에서 손꼽히는 남인 양반 집성촌이었다.[8] 그 아들인 이담명은 사노친곡십이장이란 시조로 유명한데 이는 갑술옥사로 아버지와 함께 유배 당했을 때 쓴 것. 정영조대의 인물로는 영조대의 청백리 이하원,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혔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의관을 부르거나 왕세손과 만나게 해주는 등의 일을 한 이광현, 정조대의 실학자 이기양 등이 있다.
조선 시대 광주이씨는 문묘 종사 대현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종묘 배향공신 1명을 배출했다. 이밖에 상신 5명, 문형(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등도 나왔다. 총 문과 급제자는 188명에 달했으며[9], 무과 급제자 또한 124명이 있다.[10] 생원진사시, 역과, 음양과, 율과, 의과 등까지 모두 합쳐 총 71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다만 일제강점기 때의 유명인물은 많지 않은데, 을사늑약 후 활약했던 의병장 이백래, 이동하,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항쟁을 하던 이수택이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이종훈이 있다. 석공예가 이순석[11] 등도 있다.

3. 분파


사인공파
광릉부원군파
문경공파
광천군파
광원군파
좌의정공파
참판공파
좌통례공파
문숙공파
목사공파
십운과공파
석탄공파[A][12]
암탄공파[A]
율정공파[13]

4. 특이사항


광주이씨(廣州李氏)와 영천최씨(永川崔氏)의 후손들 간에는 그들의 조상인 이집(李集)과 최원도(崔元道) 사이의 우의를 상고하면서 양가가 같은 날 묘제를 지내며 서로 상대방의 조상 묘에 잔을 올리고 참배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멸족에 가까운 풍파를 겪었음에도 가문 자체는 명문가로 유명했던지 본관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과거에는 광주 이씨라는 이유만으로 그 셋째 딸을 주곤 했다고.[14] 아직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일례로 광주 이씨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심지어 친일파가 없는 것까지도 자랑으로 삼을 정도.

5. 유명인물[15]


  • 이당 : 광주이씨 대종의 시조.
  • 이집 : 고려 말의 학자. 호는 둔촌. 현재 광주이씨 후손들의 절대다수는 둔촌 이집의 직계후손들이다.
  • 이지직 : 포은 정몽주의 문인. 호는 탄천
  • 이지강 : 조선 전기 문신. 문숙공. 호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 참찬 역임
  • 이인손 : 조선 전기 문신. 충희공. 우의정
  • 이극배 : 조선 전기 문신. 광릉부원군. 영의정
  • 이극감 : 조선 전기 문신. 문경공. 형조판서
  • 이극증 : 조선 전기 문신. 광천군. 좌참찬,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역임
  • 이극돈 : 조선 전기의 문신. 광원군. 좌찬성 역임. 무오사화 항목 참고
  • 이극균 : 조선 전기 문신. 좌의정
  • 이세좌 : 조선 전기의 문신. 이조판서, 예조판서, 판중추부사 역임. 폐비윤씨가 사사될 당시 사약을 전달했다 하여 갑자사화때 연산군에 의해 사사되었다.
  • 이연경 : 조선 중기 문신. 학자. 사헌부 지평(持平) 등으로 활동하며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도왔다. 문하에 노수신(영의정), 심건, 강유선 등 당대 최고의 문신, 학자를 배출했다.
  • 이윤경 : 조선 중기 문신. 호는 숭덕재. 병조판서 역임
  • 이준경 : 조선 중기 문신. 호는 동고. 영의정 역임
  • 이광악 : 임진왜란 3등공신. 김시민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해 진주성을 승전으로 이끈 장본인. 김시민 장군이 적의 흉탄에 쓰러진 뒤, 흐트러진 병졸을 추스리고 선봉에서 전투를 진두지휘해 마침내 대승을 이끌었다.
  • 이이첨 : 조선 광해군대의 권신
  • 이덕형 : 오성과 한음의 그 유명한 한음이다. 참고로 이항복경주 이씨이다.
  • 이윤우 : 호는 석담. 공조참의 역임. 칠곡에 세거하고 있던 칠곡 광주이씨 문중을 이후 영남 남인 명문가로 성장하게 하는 데에 반석을 놓았다.
  • 이원정 : 조선 후기의 문신. 호는 귀암. 이조판서, 형조판서 역임
  • 이명래 : 이명래고약 창시자
  • 이윤재(국어학자)
  • 이종훈(독립운동가) : 독립운동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
  • 이강(독립운동가)
  • 이항진(1916) : 독립운동가
  • 이석(1910) : 독립운동가
  • 이수각(1887) : 독립운동가
  • 이수목(1890) : 독립운동가
  • 이달영 : 독립운동가
  • 이수일 : 독립운동가
  • 이수택 : 독립운동가
  • 이태영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로 유명하며 남편은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 아들은 정대철 전 의원이다.
  • 이정재 : 자유당 정권시절 정치깡패[16]
  • 이종환 :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 본인의 호를 딴 '관정 이종환교육재단'을 운영하며 기부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 이중재 : 전 국회의원(6선), 광원군파 21대손
  • 이경재(1932) : 전 국회의원, 이중재 전 의원의 사촌동생
  • 이순재 : 배우, 전 국회의원
  • 이휘소 : 물리학자
  • 이수성 : 전 서울대 총장, 전 국무총리
  • 이용훈(1942) : 전 대법원장
  • 이명재 : 전 검찰총장
  • 이도련 : 성우, 배우
  • 이종구(배우) : 성우, 배우
  • 이택순 : 전 경찰청장
  • 이종석 : 헌법재판소 재판관, 좌통례공파
  • 이주영 : 전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전 해양수산부 장관, 문경공파 24대손
  • 이종구 : 전 국회의원, 이중재 전 의원의 아들, 광원군파 22대손
  • 이종배 : 국회의원(미래통합당), 문경공파 22대손
  • 이용호 : 국회의원(무소속), 문경공파 20대손
  • 이경재(1941) : 전 국회의원,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위의 이경재와 동명이인
  • 이수인 : 전 국회의원, 교수. 이수성 전 총리의 동생
  • 이우재(1934) : 전 체신부 장관, 전 국회의원, 전 한국전기통신공사(KT) 초대사장
  • 이상옥 : 전 외무부 장관
  • 이달곤 : 국회의원(미래통합당), 전 행정자치부 장관
  • 이용근 : 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 이정재(1946) : 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이명재 전 검찰총장의 동생
  • 이해재 : 전 경기도지사
  • 이춘희 : 세종특별자치시장,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 이종상 :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표준 영정과 오천원, 오만원 지폐 속 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 이용훈(종교인) : 가톨릭 성직자, 현 천주교 수원교구장
  • 이인재 : 전 파주시장
  • 이해식 :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전 서울 강동구청장
  • 이기재 : 전 서울 노원구청장
  • 이일재 : 배우
  • 이경제 : 본명 이경재.[17] 한의사, 이인재 전 파주시장의 동생
  • 이택수 : 리얼미터 대표
  • 이윤석 : 개그맨
  • 이승엽 : 국민타자, 전 야구선수
  • 이윤정 : 가수, 이경재(1941) 전 의원의 딸
  • 이효리 : 걸그룹 '핑클' 출신 가수.
  • 이준석 : 미래통합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본인 항목에는 전의 이씨인 것으로 나왔으나 광주 이씨 종친회 소식광주이씨 회보 4월호에 언급되면서 확인사살. 좌통례공파 22대손이라고 한다.
  • 이광수 : 배우 , 23세손 '洙'자 돌림
  • 베이식 : 본명 이철주, 힙합 랩퍼
  • 이보람 : 그룹 씨야 출신의 가수
  • 이기광 : 가수. 하이라이트의 멤버로 황금어장 - 라디오 스타에서 광주 이씨임을 밝혔다.[18]
  • 혜리 : 본명 이혜리. 걸그룹 걸스데이 소속 가수
  • 이주연 : 그룹 더보이즈 소속 매인댄서 이주연

[1] 출생연도순[2] 이 사람의 호인 둔촌이 지금의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의 유래다.[3] 當今門閥之盛 廣州李氏爲最[4] 이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인손의 묘를 파보니 거기에는 연과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편지에는 연을 하늘 높이 날려 줄을 끊고 연이 떨어진 자리에 자기 묘를 이장하라는 말이 써 있었다고. 죽기 전에 이미 자기 묘를 왕에게 뺏길 것을 알았던 것. 이 일화는 연하리의 어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연하리가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연하리는 여주 연하리다.[5] 참고로 성종은 아들이 15명이다.[6] 연산군 집권 10년 가량은 나름 상당한 치세였다. 문제는 그 이후.[7] 이세좌의 손자이다.[8]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유네스코 세계유산경주시 양동마을안동시 하회마을 외에 방문한 양반 집성촌은 매원마을 한 곳 뿐이다.[9] 두산백과 기준인데 191명맞는 듯하다. 196명이라는 말도, 197명이라는 말도 있다!(...)[10] 이쪽도 246명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쪽은 사실이 아닌 듯.[11] 1905 ~ 1986. 어린이대공원의 유관순 열사, 국회의사당의 해태를 조각했다. 공예쪽에선 유명한 인물.[A] A B 상기된 종파 간에 계보상의 세수차이는 숙질(叔姪)관계이다.[12] 여담으로 경주 이씨에도 같은 파명이 존재한다.[13] 대종회에 속한 종파하고는 계보상으로 증조손 관계에 있고, 석탄공파와 암탄공파하고는 조손 관계에 있다.[14] 셋째 딸은 딸들 중 가장 예쁘고 귀엽다는 속설이 있다. 거기서 나온 게 '셋째 딸은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말.[15] 출생연도순[16] 참고로 배우 이정재는 전주 이씨다.[17] '재'자 돌림이라고 한다.[18] 공교롭게도 일베에서는 역시 이기광은 토종 홍어라는 개소리를 펼쳤는데 완전히 헛다리 짚었다. 이기광의 출생은 광주광역시가 맞지만 일베충들이 말하는 그 광주가 아니다.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광산 이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