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리 페이지 헤이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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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ley Page HP.38로 불리며 1930년 6월에 첫 선을 보였던 이 복엽 날개를 가진 폭격기는 시제기 단계였음에도 당장이라도 실전에 투입될 수 있을 만한 완성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자타가 공인하는 항공 선진국인 영국항공기 메이커 중에서도 고참축에 드는 핸들리 페이지(Handley Page Limited) 사의 주임 설계자였던 죠지 볼커트가 도면을 다듬어가며 만들어냈던 초기의 헤이포드 폭격기에는 12개의 실린더를 가져 575마력의 파워를 발휘하는 롤스로이스 케스트렐 III 직렬 수랭식 엔진이 쌍발로 장착되었다. 아직 인입식 착륙장치가 없던 때였던 탓에, 헤이포드는 30년대를 여는 최신예기면서도 고정식 착륙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날개의 폭은 75피트였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큰 편에 속했으며 쌍발기로서는 거의 가장 큰 기종이었다. 동체의 길이는 17미터가 넘었고, 익면적은 단발 전투기의 4.5~5배나 될만큼 넓은 136.6 m²나 되었던 HP.38은 등장 무렵만 해도 거인기로 부르는 이들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각 개량형은 사실 기본적으로 같았지만 탑재된 롤스로이스 엔진이 파워업되며 강화된 것과 이에 따라 프로펠러가 2엽에서 4엽으로 바뀐 것이 주된 개조 포인트였다. 아마도 헤이포드 폭격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동체가 아래 날개가 아닌 위쪽 날개와 맞붙어 있는 점일 것이다. 이런 구조로 인하여 조종사와 기관총 사수들에게는 뛰어난 시야가 주어질 수 있었다. 폭격기의 방어 무장으로는 구경 7.7mm 루이스 경기관총이 기수와 동체 상단, 그리고 동체 하복부에 사격시에는 아래로 내려서 쏠 수 있는 곤돌라식 총좌에 각각 1정씩 거치되었다. 또한 모든 폭탄이 내장식은 아니었지만 이 폭격기에는 선구적인 익내 폭탄창이 마련된 점도 주목할만 했다. 폭탄창이 있었던 덕분에 헤이포드는 장거리 임무에서는 양 날개 밑에 폭탄을 달지 않고 항속거리와 속도를 키울 수 있었다. 이처럼 핸들리 페이지 헤이포드는 훗날 추축국의 도시들에 맹폭격을 가한 4발 중폭격기들이 가진 특징을 몇 가지 먼저 선보이고 있었으며, 그 직계 후예로는 같은 설계자가 빚어낸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헤이포드 폭격기의 이와 같은 성능은 그 무렵으로서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1927년에 발행된 RAF 요구사양서 B.19/27 계획에 참여한 경쟁기였던 비커즈 배녹스(Vickers Vanox)나 시제기조차 공개하지 못한 애브로 613 같은 기체들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어 일찌감치 경합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죠지 볼커트가 제안한 디자인은 심지어 단엽 날개를 가져 비행성능만큼은 제일 앞서고 있던 후보기 페어리 헨든(Fairey Hendon) 마저도 탑재능력과 상승률, 무엇보다도 가격면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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