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

 



1. 개요
2. 개발 및 특징
3. 활동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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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 초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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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 후기형. 동체 상부에 있는 터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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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ley Page Halifax'''
제원(핼리팩스 Mk.III)
승무원: 7명
전장: 21.82m
전폭: 31.75m
전고: 4.55m
익면적: 110.6 m^2
전투중량: 24,675kg
최고 속력: 454km/h (고도 4,115m에서)
항속거리: 3,000km
최대 상승 고도: 7,315m
무장: 전방에 빅커스 K 기관총 1정, 동체 상부 터렛과 후방 터렛에 7.7mm 브라우닝 기관총 4정
폭장량: 최대 13,000 파운드
출력원: 브리스톡 허큘레스 XVI 공랭식 14기통 엔진 4기(1,615 마력)

1. 개요


숄트 스털링 이후 나온 영국의 중(重)폭격기.
원래는 벌처(Vulture) 엔진을 사용하는 쌍발 폭격기로 계획되었으나 벌처 엔진의 성능에 문제가 생기자 대신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 4개[1]를 장착하기로 했다. 이 서류상 스펙이 마음에 든 영국 공군이 미리 100대를 주문하면서 핼리팩스가 개발되었다. 종전 후에도 생산되었고 다양한 회사의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최대 생산량을 자랑할 때는 거의 1시간당 1대 수준으로 나왔다고 한다.[2]
영국이 스털링으로 중폭격기라는 개념을 잡았다면 핼리팩스는 중폭격기 설계의 기본이 되었고, 이는 아브로 랭커스터로 이어진다. 1941년에 실전 투입되었으며 거의 미국의 B-17 수준의 성능을 보여주며 독일에게 불벼락을 선사해줬다.[3]

2. 개발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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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는 1939년에 첫 프로토타입이 등장했으며 1940년에 두번째 프로토타입을 제작해서 풍동시험과 시험비행을 했다. 이후 사내에서 H.P. 57이라고 명명된 기체가 1941년에 핼리팩스 Mk.I으로 생산된다. 하지만 Mk.I은 비행중에 엔진 2개가 멈추거나 급기동시에 기체가 요동치며 불안정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 원인은 꼬리날개의 설계 문제였고 이를 개량한 것이 H.P.59이며 핼리팩스 Mk.II로 생산된다.. Mk.II는 Mk.I때와 다르게 전방에 있던 터렛을 제거하는 대신 동체 상부에 디파이언트 전투기 같은 터렛을 장착했다. 또한 엔진이 출력이 증가된 멀린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핸들리 페이지사가 핼리팩스의 생산성을 개선해서 나온 설계안이 H.P.61이며 곧 핼리팩스 Mk.III로 명명되어 생산된다. Mk.III는 핼리팩스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기종으로 엔진을 공랭식 엔진인 브리스톨 허큘레스로 교체하고 프로펠러를 드 해빌랜드사의 것으로 바꿨다. 그 외에도 장거리 비행을 위해 만든 H.P.63이 있었으며 이는 핼리팩스 Mk.V로 불린다. Mk.V는 다시 멀린 엔진을 장착했다. 또한 폭탄창을 개량해서 수송용으로 사용한 모델은 H.P.70로 채택된 이후 핸들리 페이지 홀튼(Halton)이라고 불린다. 핼리팩스는 폭격기, 수송기, 초계기 버전으로 생산되었으며, 각각 핼리팩스 B, C, GR로 부른다.(예시: 핼리팩스 B.II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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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리 페이지 홀튼.
핼리팩스의 폭탄창은 과도하게 세분화된 스털링보다는 덜하지만 폭탄창이 여전히 나누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폭탄창에는 스털링처럼 1000 lb 폭탄 9발까지 탑재 가능했다. 재미있게도 핼리팩스는 주익 내측에 250lb 폭탄 정도 크기의 폭탄을 실을 수 있는 소형 폭탄창이 있다.(IL-2의 폭탄창을 생각하면 좋다.) 소이탄과 같은 소형 폭탄을 주익 폭탄창에 싣고, 동체에 위치한 주폭탄창에 큰 폭탄을 탑재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어쨌든 핼리팩스는 4000 lb 폭탄 '쿠키'를 탑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서서히 아브로 랭커스터에게 자리를 빼았기게 된다.
무장은 7.7mm 브라우닝 기관총이 주로 사용되었다. H.P.58이라고 20mm 기관포를 장착해보는 안이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동체 상부 터렛은 생산모델에 따라 2연장이기도 하고 4연장이기도 하다. 영국 폭격기의 고질적은 문제이기도 하지만 폭격기 하단에는 어떠한 무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는 기체 하방으로 접근하는 적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핼리팩스는 총 6,176대가 생산되었다. 1,589대만 핸들리 페이지 사에서 생산되었고 잉글리시 일렉트릭(English Electric), 페어리(Fairey), 런던 항공기 제작소(London Aircraft Production Group), 루터스 세큐리티즈(Rootes Securities) 사에서 각각 2,145대, 662대, 710대, 1,070대가 생산되었다. 가장 많이 핼리팩스를 생산한 회사는 잉글리시 일렉트릭 사였고, 이렇게 항공기를 생산한 경험을 통해 잉글리시 일렉트릭 캔버라를 만들게 되는 초석을 닦았다.

3. 활동


핼리팩스는 1941년 3월에 첫 실전 투입이 되었고 르 아브르 폭격으로 시작해서 주로 야간에 독일에 대한 공습을 했다. 핼리팩스는 빠르게 블렌헤임이나 웰링턴, 햄든과 같은 중(中)폭격기를 대체해갔다. 브레스트항을 폭격해서 샤른호르스트를 놀래키기도 했지만 당시 수평폭격의 명중률은 아주 좋지 못했고 이는 곧 상층부에서 중폭격기에 대한 불신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아브로 랭커스터가 개발되던 때 영국의 공군 사령관인 아서 해리스는 핼리팩스가 랭커스터에 비해 폭탄창이 조금 작아 4,000파운드 '쿠키'를 탑재하지 못한다는 점을 불만스러워했다. 하지만 핼리팩스는 폭탄창이 세분화되어 큰 폭탄을 아예 싣지 못하는 스털링 폭격기에 비하면 폭탄창이 거대했기 때문에 종전 때까지 랭커스터와 함께 야간공습으로 독일에 열심히 폭탄을 투하했다. 1943년에 시칠리아에 상륙할 때 지상군을 지원하러 가기도 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때도 벌떼같이 와서 독일군 머리 위에 폭탄비를 뿌리기도 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 잘 쉬고 있는 티르피츠에게 폭탄을 투하하러 갔지만 연막 때문에 실패하기도 했다. 핼리팩스는 대전동안 82,733번의 작전에 동원되어서 224,207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동 시기에 1,883대가 격추되었다.
전후 핼리팩스는 민수용으로 사용되어 영국의 주요 여객기로 사용되었고 프랑스인도, 이집트, 파키스탄등은 군용으로도 사용했다. 1961년 파키스탄에서 퇴역하면서 핼리팩스의 폭격기로써의 사용은 끝이 난다.

4. 기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워 썬더의 1.59 버전 발표와 함께 영국의 폭격기로 등장하였다. BR 대비 아주 높은 폭장량으로 그동안 울며 겨자먹기로 종이비행기 웰링턴으로 폭격해오던 영국 유저들에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 다만 실제로도 그랬듯 방어무장이 그리 좋지는 못하다.
국산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도 추축군 영국폭격기 20레벨 기체로 등장한다. 성능은 그럭저럭 쓸만하지만 워썬더와 마찬가지로 방어무장이 답이없어서(옆동네 독일트리에도 있는 하부기관총이 이녀석은 없다...) 미션앵벌이 용으로나 쓸만한 녀석이다. 피탄면적도 넓고 속도도 굼벵이니 폭장량 말곤 믿을게 못된다. 그래도 잉여스러운 추축군 폭격기 라인업 중에선 그나마 탈만한 물건이다.


[1] 영국 왕립공군은 철저한 대량 생산을 위해 스핏파이어, 허리케인, 모스키토 등등 뿐만 아니라 대형기에도 좋은 고출력 엔진이 없다면 일단 멀린을 우구장창 울궈먹을 작정이었다.[2] 벌처 엔진 때문에 실패한 비행기가 바로 아브로 맨체스터이다. 맨체스터에 대해서는 아브로 랭커스터 문서 참고.[3] 그렇지만 B-17하고 비교하면 핼리팩스가 상승고도와 방어무장이 좀 모자라다.[4] 핼리팩스 Mk.III의 폭격기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