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
Ἡράκλειτος ὁ Ἐφέσιος( BC 535 ~ BC 475)'''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인생은 장기를 두면서 노는 아이, 왕국은 아이의 것이니'''
'''인간에게는 성품이 수호신이다'''
'''원하는 게 다 생긴다고 해도 사람에게 더 좋을 건 없다'''
1. 출생 및 행적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에페소스의 귀족 출신이었다. 그냥 귀족이 아니라 구 왕족이라서 제법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장남이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동생에게 지위를 그냥 넘겨주고 대강 살았다고 한다.
그는 홀로 공부하고 스스로를 탐구해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크세노파네스(Ξενοφάνης ὁ Κολοφώνιος)의 제자였다는 설도 있으나 불분명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고독을 즐겼으며 선대 사상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말이 비판이지, 그냥 극딜이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과 수수께끼 같은 심오한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스코테이노스(σκοτεινός, 어두운 사람)’, 수수께끼를 내는 자 라 불렸다.[1] 아쉬운 대로 전해지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들 가운데 이에 관련된 일관된 성향을 찾아 보자면,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아마 자신이 통찰한 형이상학적 원리에 대한 인식 없이 그저 많이 알기만 하는 사람들을 지혜롭다고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편 디오게네스의 진술에는 아테네의 그리스 철학자 안티스테네스(Ἀντισθένης)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동생에게 가문을 물려준 것을 들어 그를 매우 고매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책을 한 권 썼다고 하는데 전문은 전해지지 않으며, 단편의 상태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 단편은 알쏭달쏭한 말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명료한 말이기도 하고 같은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얘기하는 등 뭐라 단정짓기 어렵다.[2] 그래서인지 고대의 철학자들도 그의 사상을 여러 가지고 해석했다. 플라톤은 만물유전설을 중점적으로 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을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한 일원론자라고 여겼다. 스토아 학파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자신들의 선구자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스토아 학파는 불, 우주, 로고스, 신 등이 고차적인 원리라고 생각하는데 이 기원을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로마에서 어떤 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이단의 시초로 보기도 했다. 기독교 철학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기독교 정신과 연관된 최초의 이교도로 생각해 로고스를 신의 말씀, 불을 최후의 심판 등으로 연결해 보려고도 했다.
2. 사상
그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에 의해 해석된 것이 오랜 시간 동안 철학계의 주류로 받아들여졌다. 플라톤 계열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것은 흐른다'''(판타레이, Πάντα ῥεῖ, panta rhei)가 될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 본인의 저작 중에 비슷한 언급을 찾아보기는 어렵다.[3] 어쨌거나 플라톤 계열의 이런 해석과 더불어 다른 엘레아 학파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공격한 영향에 의해[4] 헤라클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대립항으로 여겨졌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문이 전해지지 않는 데다가 비꼬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단락적으로 전해져서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종래의 견해를 따를 때,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의 주안점은 변화에 있다. 자연의 기본특성을 지속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헤라클레이스토스는 파르메니데스보다는 감각적인 표현을 더 신뢰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운동 가까이에 있으며 어떤 것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그런 까닭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는데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두번째로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아까와 같은 바로 그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두번째에선 강물도 나도 변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화함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변화란 오늘날 일반적이고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대상의 형태나 성질 등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대립 속에서 만물을 이해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사물들은, 양자의 대립, 예를 들면 뜨거움과 차가움,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 있음과 없음 등의 대립 속에서 인식된다. 대립이 사물을 만드는 것이다. 즉 대립하는 두 항의 어느 한 쪽이 없다면, 예를 들어 뜨거움만 있고 차가움은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우리가 아는 뜨거움으로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는 항상 수많은 양자들이 대립하고 있는 대립 상태인데, 이 대립들이 모여 통일된 세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개념을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과 활시위에 비유했다. 활시위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때 화살은 정지해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가려는 힘을 가진 채 활시위와 겨루고 있는데, 이것이 활의 모습이다. 그는 이 무한한 대립의 법칙을 가리켜 로고스(Logos)라고 제시한다. 로고스 하에서 세계는 대립을 통한 통일상태를 이루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과 통일의 두 개념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이해한 것이다.
옛날 한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헤라클레이토스를 단순히 세계의 근원을 불이라고 생각한 학자 정도로 가르치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을 세계의 근원으로 꼽은 이유는 아무래도 불이 자신의 사상에 들어맞는 이미지였기 때문인 것 같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불에서 다른 물질들이 나타났다는 식으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비교적 확실한 것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변화하는 불의 성질을 그가 마음에 들어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세계를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영원히 타오르는 불로 묘사했으며, 그 아래에서의 변화, 생성, 소멸을 전쟁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대립요소들의 투쟁을 강조한 것인데, 이런 불길이 모든 것을 단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혼, 말, 생각 등을 사용해 이런 이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그에게 있어 로고스가 말이나 사물의 겉모습과는 다른 어떤 종합적이고 초월적인 이치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이런 이치는 단순히 변화나 생성, 소멸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상대적인 개념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돼지가 황금을 좋아하겠는가, 인간이 돼지의 진흙탕을 좋아하겠는가, 인간계 최고의 미녀가 과연 원숭이들에게도 미녀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는 범죄가 있어야 정의를 알고, 배고픔이 있어야 배부름이 좋은 줄 안다는 식으로 가치나 개념도 대립항이 없으면 그 가치를 알기 어려운 것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자연철학에 대해서도 언급했고, 신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며, 사후세계나 인간의 혼과 그 혼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고,[5] 종교 제의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으며, 법질서나 체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런 비꼬기나 바른 삶에 대한 요구는, 그가 비판하는 그 전세대 현자들보다는 체계가 있는 구석이 있다. 천체, 인간, 자연, 동물 등등이 변화나 투쟁이라는 원리 안에 하나로 묶여 있다고 표현한 것이 그렇다. 거기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좋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변화나 투쟁 등의 이치를 꿰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마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왜냐면 사물이나 일의 이치를 깊게 파악하지 않고서는 좋은 일을 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호메로스나 7현인 등의 윤리적 가르침이 운동을 잘하거나 보증을 서지 말라는 상당히 단순한 종류였던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통일된 세계관과 그에 따른 삶의 자세 등을 천명한 것 등은 피타고라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피타고라스를 깠다.[6]
약간 항목이 횡설수설한데 헤라클레이토스 본인의 주의주장이 단편적으로 전해져서 그렇다. 그러나 아무래도 모든 것은 흐른다는 표어만으로 헤라클레이토스를 표현하기보다는, 그런 이치들을 포괄하고 있는 로고스를 잡아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더 그에게 가깝게 다가간 의견인 듯싶다....는 게 최근 한국 학계의 의견이다.
3. 창작물에서
- 단테의 신곡에 등장했다.
- 아테네 학당에 등장했는데, 라파엘로 산치오가 계단 아래에서 턱을 괴고 혼자 앉아있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얼굴을 넣음으로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미켈란젤로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일부러 그를 비관론자인 헤라클레이토스에 집어넣으며 간접적으로 디스했다는 말도 있다.
- 소설 소피의 세계에 등장했다.
4. 같이 보기
[1] 어떤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도취, 좀 재밌게 얘기하자면 진리뽕에 취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고대 그리스 세계관에서 헤라클레이토스만이 최초로 또 최초니까 당연히 유일하게 형이상학에 대한 커다란 깨우침을 얻었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주위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당연히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깨달음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공감해주지 않았을 거라는 추정. 때문에 멍청한 우민들 가운데 오직 자신만이 가장 지혜롭다는 뽕에 취한 상태에서 알쏭달쏭한 말들을 수수께끼로 제시하며 맘대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2] 단편의 경구는 공을 들인 흔적이 난다. 각운을 맞춘다던지, 비슷한 말로 대구법을 쓴다던가, 운율을 맞춘다던가,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던가, 같은 알파벳으로 단어를 시작한다던가 등등.[3] 헤라클레이토스는 평생 책을 단 한 권만 썼다고 전해지는데, 철학자들은 그의 책이 선대 철학자나 현인들의 책처럼 경구나 잠언 등으로 한 토막씩 이루어져 있어서 원하는 부분을 멋대로 인용하기 좋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반면 어떤 전승에 따르면 그 책은 세 부분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경구 모음집이 아니라 잘 정리된 책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4] 엘레아의 제논은 이 이론을 반대하기 위해 제논의 역설을 만들었다.[5] 고대인들은 신체의 각 부위가 인간의 어떠어떠한 능력의 근원이거나 발휘한다고 생각하길 좋아했는데 그와 비슷한 것 같다. 헤시오도스라던가 호메로스 등등 전세대 그리스인들의 혼에 대한 언급이랄까 인식은 그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숨결 정도로 미비한 편이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의 혼에 풍부한 의미를 불어넣었다.[6] 아마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밀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시시콜콜한 규칙들이 우스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 이런저런 가치나 인식의 상대성을 주장하던 헤라클레이토스로서는 딱 맞아 떨어지는 수학적 원리를 근본원리로 규명한 피타고라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법도 하다. 윤회설을 허무맹랑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7] 동명이인으로 약 1세기 후의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의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에 대한 해석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