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넬스도르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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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독일의 조각가 요한 고트프리드 샤도가 제작한 '헨넬스도르프 전투에서 활약한 치텐 기병대' 조각상.
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1. 개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인 1745년 11월 23일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군이 오스트리아-작센 연합군을 헨넬스도르프에서 기습하여 패퇴시킨 전투.

2. 배경


1745년 후반, 오스트리아는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조르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에게 잇달아 패배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국왕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로이센과 강화를 맺으라는 신하들의 권유를 듣지 않고 슐레지엔 탈환을 위한 새로운 공세 작전을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오스트리아-작센 연합군은 이번에는 슐레지엔에 주둔한 적을 우회하여 프로이센의 수도인 베를린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다.
우선 육군 원수 루토프스키가 지휘하는 작센 주력군이 오스트리아 분견대와 합세해 작센에서 출발해 남쪽에서 진군하고, 보헤미아에서는 로트링겐 공작 카를 알렉산더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주력군과 작센 분견대가 남동쪽에서 진군해 베를린을 협공하기로 했다. 여기에 러시아도 프로이센을 공격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어서, 일이 잘 풀린다면 프로이센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계획은 얼마 안가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누설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작센의 재상 하인리히 폰 브륄이 정보를 누설했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적국의 재상으로부터 정보를 입수받았는지 아니면 첩보를 통해 적의 계획을 파악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이 적의 계획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에 대왕은 적을 각개격파하기로 마음 먹는다.

3. 전투 경과


11월 보헤메아에서 라우지츠로 들어간 오스트리아, 작센군은 서로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프로이센 내부로 진군했다. 이에 대왕은 마그데부르크에 레오폴트 폰 안할트-데사우 장군이 이끄는 3만 병력을 배치해 작센에서 올라오는 적을 치게 한 뒤 자신은 일부 병력을 이끌고 보헤미아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상대하러 갔다. 그러면서 한스 카를 폰 빈터펠트에게 3,000명의 경보병을 주어 나이센 강 주변에 전개해 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적의 척후병들을 처단하게 했다.
11월 21일,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소규모 프로이센군은 작센군이 주둔한 헨넬스도르프 인근에 도착했다. 이후 대왕은 이틀간 강행군을 하느라 지친 병사들을 휴식시키면서 한스 요아힘 폰 치텐 소장이 이끄는 경기병대를 파견해 적의 연락망을 차단하게 했다. 치텐은 임무를 말끔하게 수행했고, 작센군과 오스트리아군과의 연락망이 단절되었다.
이제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판단한 대왕은 11월 23일 새벽 작센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에 경악한 작센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대왕은 목표를 오스트리아군으로 변경하고 다음날인 24일 괴를리츠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기습했다. 이때 괴를리츠에 주둔한 오스트리아군은 소규모 선봉대였는데, 난데없이 적이 나타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주했다. 그때 후방에서 진군하고 있던 카를 알렉산더는 패주한 병사들로부터 프로이센군이 기습했다는 소식을 듣자 전의를 상실하고 보헤미아로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