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제

 


'''11대 흉노 선우
호연제선우
壺衍鞮單于
'''

''''''
난제(攣鞮)
''''''
호연제(壺衍鞮)
'''아버지'''
호록고선우(狐鹿姑單于) 난제호록고(攣鞮狐鹿姑)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8년
'''재위 기간'''
기원전 85년 ~ 기원전 68년
흉노의 제11대 선우. 호록고의 아들로 호록고가 우곡려왕인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웠지만 위율과 어머니의 모의로 선우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불만을 품은 좌현왕, 우곡려왕 등이 한나라에 귀부하려고 하자 협박을 받은 노도왕의 고발로 이 사실을 전해듣고 추궁하자 이들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노도왕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고, 두 왕은 자신이 사는 곳에 돌아갔지만 용성에서 개최되는 모임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고, 이 때부터 흉노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82년에 어머니가 부정을 저지르는 등 나라가 어지럽자 한나라가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위율과 모의하여 화친하기로 하였는데, 한나라가 사자가 와서 소무를 찾자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기러기의 날개에 끼워서 보낸 소무가 쓴 편지를 통해 호택(바이칼 호)에서 살아있다는 생존 사실이 한나라에게 알려지면서 다시 온 한나라의 사자가 문책하자 소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무, 마굉 등을 돌려보내고 한나라와 화친한다.
기원전 81년[1]에는 흉노에서 한나라의 변경을 침입했다가 구탈왕이 생포되자 기원전 80년[2]에 선우의 동생인 좌곡려왕이 화친하고자 하였지만 그가 죽었고, 기원전 79년[3]에 우현왕인 여오왕[4]에게 한나라의 변경을 엿보게 지시한다. 그러나 사전에 한나라에 항복한 자가 이 계획을 한나라에게 알리면서 장액을 공격한 여오왕이 전사하면서 이 이후로 장액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지만, 흉노는 이후에도 수 차례 변경 지역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71년에 한나라에서 범명우, 액제납하, 한증, 조충국, 전광명, 상혜 등이 오손국의 귀족들과 함께 공격을 받아 흉노가 쇠퇴하자 그 해 겨울에 스스로 수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오손국을 공격하여 노약자들을 잡아갔다. 그렇지만 돌아가던 와중에 큰 눈으로 대부분이 동사하여 10분의 1만이 살아남았으며, 그 틈에 정령국, 오환국, 오손국 등의 공격을 받아 크게 약해지자 함부로 보복할 생각을 못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와 화친하고자 하였으며, 기원전 68년에 사망한다.
[1] 한서에는 기원전 81년, 자치통감에서는 기원전 80년에 한 것으로 되어있다.[2] 한서에는 기원전 80년, 자치통감에서는 기원전 79년에 한 것으로 되어있다.[3] 한서에는 기원전 79년, 자치통감에서는 기원전 78년에 한 것으로 되어있다.[4] 자치통감에서는 이오왕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