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제
흉노의 제11대 선우. 호록고의 아들로 호록고가 우곡려왕인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웠지만 위율과 어머니의 모의로 선우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불만을 품은 좌현왕, 우곡려왕 등이 한나라에 귀부하려고 하자 협박을 받은 노도왕의 고발로 이 사실을 전해듣고 추궁하자 이들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노도왕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고, 두 왕은 자신이 사는 곳에 돌아갔지만 용성에서 개최되는 모임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고, 이 때부터 흉노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82년에 어머니가 부정을 저지르는 등 나라가 어지럽자 한나라가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위율과 모의하여 화친하기로 하였는데, 한나라가 사자가 와서 소무를 찾자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기러기의 날개에 끼워서 보낸 소무가 쓴 편지를 통해 호택(바이칼 호)에서 살아있다는 생존 사실이 한나라에게 알려지면서 다시 온 한나라의 사자가 문책하자 소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무, 마굉 등을 돌려보내고 한나라와 화친한다.
기원전 81년[1] 에는 흉노에서 한나라의 변경을 침입했다가 구탈왕이 생포되자 기원전 80년[2] 에 선우의 동생인 좌곡려왕이 화친하고자 하였지만 그가 죽었고, 기원전 79년[3] 에 우현왕인 여오왕[4] 에게 한나라의 변경을 엿보게 지시한다. 그러나 사전에 한나라에 항복한 자가 이 계획을 한나라에게 알리면서 장액을 공격한 여오왕이 전사하면서 이 이후로 장액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지만, 흉노는 이후에도 수 차례 변경 지역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71년에 한나라에서 범명우, 액제납하, 한증, 조충국, 전광명, 상혜 등이 오손국의 귀족들과 함께 공격을 받아 흉노가 쇠퇴하자 그 해 겨울에 스스로 수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오손국을 공격하여 노약자들을 잡아갔다. 그렇지만 돌아가던 와중에 큰 눈으로 대부분이 동사하여 10분의 1만이 살아남았으며, 그 틈에 정령국, 오환국, 오손국 등의 공격을 받아 크게 약해지자 함부로 보복할 생각을 못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와 화친하고자 하였으며, 기원전 68년에 사망한다.
[1] 한서에는 기원전 81년, 자치통감에서는 기원전 80년에 한 것으로 되어있다.[2] 한서에는 기원전 80년, 자치통감에서는 기원전 79년에 한 것으로 되어있다.[3] 한서에는 기원전 79년, 자치통감에서는 기원전 78년에 한 것으로 되어있다.[4] 자치통감에서는 이오왕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