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표(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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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홍건표(洪建杓)
생몰
1923년 9월 17일 ~ 1975년 6월 24일
출생지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면 신룡리
사망지
전라북도 익산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홍건표는 1923년 9월 17일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면 신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북중학교 재학중이던 1939년에 동교생 이현상(李賢相)·장의찬·주낙원(朱樂元)·성익환·명의택·최고 등과 동지가 되어 조국광복을 위해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하고 동지포섭 등 준비작업에 착수하였다. 1941년에 보성전문학교에 진학하고 동지들도 각각 전문학교에 진학하게되자, 이들은 그해 가을에 당시 봉래동(현재 만리동)에 있던 주낙원의 집에 모여 정식으로 항일학생결사인 흑백당(黑白黨)을 결성하고 부서 및 선언문, 강령, 규약 등을 정하였다.
기본강령으로는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 절대비밀, 책임완수 등을 정하였으며 이때 그는 명의택과 함께 행동책의 일을 맡았다. 그리고 실천행동 방략으로써 친일파 처단 명부를 작성하는 한편 일인이 밀집하여 살고있는 당시 욱정(旭町: 현재 남산동 부근)일대를 방화하여 일인을 섬멸하는 계획도 세웠다. 또한 이들은 일제의 패망과 조국광복이 가까왔음을 알리는 격문을 각처에 뿌려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였으며, 흑뱅당 거사에 필요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그는 이현상과 함께 특공대로 뽑혀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교련용 38식 소총 2자루와 실탄 및 총검을 빼내었다.
그러나 1943년 10월에 흑백당의 동조자였던 보성전문학교학생 김창흠(金昌欽)이 귀향열차 안에서 우리말로 일제를 욕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가택수색을 당하였는데 이때 흑백당에 관한 문서가 발각됨으로써 흑백당의 조직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당원들과 함께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12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실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익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5년 6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홍건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