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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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황사중은 1895년 8월 24일 평양부 강동군 고천면 반석동(현 평양직할시 삼석구역 광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5월 하순경 문창선, 김원준(金元俊) 등 10여 명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비밀단체 조직·무기 구입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 6월 상순에 대한정의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황사중은 김원준·황면준(黃冕濬) 등과 함께 같은 해 7월 23일 평양남도 강동군 삼등면 제령리에 있는 백치운(白致雲)의 집, 1921년 3월 20일 평양남도 성천군 대곡면 지동에 있는 김이규(金履奎)의 집, 같은 해 4월 20일에는 강동군 원탄면 송오리에 있는 박승실(朴昇實)의 집 등으로 가서 군자금을 거둬들였다.
또한 다음날인 4월 21일 저녁에는 동지들과 함께 대동군 청룡면 기림리의 철도선로(鐵道線路) 위에 약 30관 가량의 궤도철선을 가로 놓아서 기차의 전복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강동경찰서에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해 즉시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12일 평양복심법원서 기각되었다. 이후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같은 해 12월 20일 경성형무소로 이감되었다.
1924년 칙령(勅令) 제10호에 의거하여 징역 7년 6월로, 1927년 칙령 제12호에 의거하여 징역 6년 4월 27일로 각각 감형되었다. 1927년 9월 25일 경성형무소에서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황사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