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직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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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수도이자 한반도 북부 최대 도시. 북한에선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며, 북한의 정치, 경제, 인구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한 최대 도시이다. 한반도 전체로 봐도 인구로는 추산에 따라 서울, 부산에 이은 3위[5] 의 대도시이다. 평양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특권 계층과 당국으로부터 불순 분자가 아니라고 판명받은 서민[6] 으로, 일반 주민들은 평양에 자유롭게 오갈 수 없을 정도다.
평안도의 '평' 역시 평양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7]
2. 명칭
순우리말로는 부루나[8] 라고 부른다. 평양이라는 지명은 순우리말을 한문으로 옮기면서 생긴 말이다. 평양시민들이 애칭으로 평양을 부루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별칭으로는 버드나무의 고장이라는 뜻의 유경(류경, 柳京)이 있다.[9] 류경 호텔의 류경도 여기서 따온 명칭이다. 고려시대의 명칭에서 비롯한 서경(西京)이라는 역사적 표현도 있다.
로마자 표기 시에는 P'yŏngyang이 길기 때문에 종종 P'yang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서북(평양)방언으로는 피양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을 의식해 P'yang이라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스펠링이 (평창(Pyeongchang)과 유사해서, 평창을 평양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흥행이나 이미지 문제를 거론하며 평창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IOC 위원들도 있었다. 실제로 한 케냐 사람이 평창을 가려다가 실수로 평양을 간 사례가 있다고 한다.#출처 그나마 남북한의 외래어 표기법 차이로 인해 평창의 평은 Pyeong, 평양의 평은 Pyŏng(또는 Pyong)으로 표기되기는 한다.
우편 주소를 적을 때는 평양직할시가 아니라 그냥 평양시라고 적는다고 한다. 이는 남포, 라선, 개성의 경우도 마찬가지. 참고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경우는 '서울특별시 ○○구 ○○동', '서울시 ○○구 ○○동', '서울 ○○구 ○○동'등의 표기가 모두 보이는 편이다.
3. 지리
서울에서 철도로 약 260km 거리에 있다. 대구광역시[10] , 광주광역시[11] 보다 가깝다. 직선상 거리로는 약 190km 정도로 전라북도 전주시나 경상북도 안동시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가수 신형원의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에서도 이 부분이 언급된다. 휴전선에서의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휴전선에서 세종특별자치시까지의 거리와 비슷하여, 서울 수준의 군사적 최전방도 아니지만 딱히 휴전선에서 멀다고 볼 수도 없다. 물리적 거리도 가깝지만 남북분단 이전 일제강점기 시점까지 서울(특히 한강 이북이나 인천권 인접 지역) 지방의 방언이나 문화는 남부지방보다는 북부지방에 좀 더 가까웠다. 다만 문화어가 평양말이라고 북한은 주장하지만, 정치적 성격의 주장으로 언어학적으로는 서울말에 더 기반을 두었다고 평가받는다. 북한 방송 말투보다 서울말과 차이가 있는 사투리가 2000년대에도 쓰였다. 문화어는 "합니다"라고 하지만, 평양에서는 "합네다"라는 말도 쓴다는 증언도 있다. #
넓이는 약 1,300km²(광복 당시 275km²), 인구#s-1는 2008년 기준 3,255,288명[12][13] )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한반도 전체 통틀어서 서울, 부산에 이은 3번째의 대도시였다. 반면 북한이 UN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581,076명으로, 이 기준으로 보면 인구로는 인천광역시와 대구광역시에도 밀리는 한반도 5번째 도시가 된다. 이후에는 정확한 통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인구 변화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상하며, 자료에 따라서는 300만 명 이상으로 보는 기사도 있다. 2017년에는 260만의 인구를 200만으로 감축한다는 기사도 있다.# 다만, 북한은 2010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평양의 면적을 줄였기 때문에 면적이나 인구가 더 줄었을 것이다. 2008년 자료를 기준으로 줄어진 면적만을 가지고 측정한 인구는 2,999,466명으로, 2018년의 인천과 대구보다는 많다.
3.1. 도시 구조
고대의 주력 도시들은 강이나 산 같은 자연지형을 방어 시설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고 이는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였다. 때문에 한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북한산 일대를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던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 또한 대동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보통강을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다(한양, 뤄양 같은 양陽자 돌림 도시는 강북이다. 평양의 양壤-흙더미-은 다른 자지만, 역시 강북이다).
평양은 본평양, 서평양, 동평양, 남평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 본평양: 대동강 북안의 전통적인 평양 중심지를 일컫는다.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서성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동평양: 일제강점기 대동강 동안에 형성된 시가지. 동대원구역, 대동강구역, 선교구역, 사동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남평양: 충성의다리를 통해 연결되는 대동강 남안의 시가지를 말한다. 락랑구역 일대다.
- 서평양: (신)보통강 서쪽에 광복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를 말한다. 만경대구역 일대다.
다만 북한에서 강남지역은 강북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편으로 강남은 평양 노동인력 거주지이고 통일거리 사업 이후 사실상 방치 되어있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주는 주요기관은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있다고 보면된다... 사실 지하철 노선을 깔려고 하는 등 강남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려고 한적은 있지만 건설 도중에 하저터널이 붕괴하는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백지화 되어버렸고, 1990년대 이후로는 평양지하철의 확장이 중지되다시피하면서 현재까지도 지하철이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강남지역의 개발이 지지부진하게 된 것.
평양의 독특한 도시 구조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이념을 반영하기 위한 계획이다. 대한민국이 경제가치에 따라 도심은 주로 부가가치가 높은 고밀도의 업무·상업지구가 형성된 것에 비해,[16] 평양의 중심지는 정부 기관이나 공공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한이 블록 중심의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한다면 북한은 통일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 거리 중심의 신도시 개발을 한다는 것. 대로변에는 아파트가 위치하여 있으며, 주택가 내부에 공업·상업지구가 위치하여 집과 직장이 근접한 구조다. 즉 보행도시다.
당장 직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배치구조지만,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르는 남한으로 보자면 '명동 대로가에 주거지가 위치한 것과 비슷한' 도시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게, 서울도 1970년대까지는 그랬다. 서울도 시 중심가인 중구, 종로구에 수많은 주택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울시내가 확장되기 이전까지는 비슷했다. 지금의 남한 중소도시에 가보면 번화가라 할지라도 조금만 지나면 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자가용은 물론이고, 대중교통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주거지는 필연적으로 일터와 가까워야 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지가 상승과 교통수단의 발전이 도심지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구조를 가진 오늘날의 도시구조 형성에 기여한 것이다.
쉽게 말해,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부동산 거래도 이루어지고는 하지만 토지를 사는 개념은 없고, 주택이나 건물 거래를 하는 수준인데 이게 상당히 불분명한 개념이기 때문에 도심 공동화가 이루어 진다거나 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중소도시이던 시절 그때의 그 느낌으로 이때까지 발전해 온 것.
사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도시가 이러한 구조를 띠고 있다.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동유럽 국가들의 도시나 소련의 도시들은 공장지대 주변에 상업지구가 위치하고 있고, 상업지구 가까이에 주택가가 위치해 있고, 그 주변에 가족단위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이나 녹지, 경기장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서방 세계에서는 이렇게 나름대로 깔끔한 구조 때문에 도심의 쇠퇴(Urban Decay)를 막을 수 있는 구조로 호평 받은 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개발 한 번 하려고 해도 엄청난 시간과 조율과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도시가 '''아예 새로 짓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심시티를 해본다면 이해가 될지도. 예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과거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평양 일부 구역, 특히 동평양 쪽에는 거대한 건물들 뒷쪽으로 아직 60년대식 주택 단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유는 북한의 발전 속도가 남한에 비해 더딘 것도 있고,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이사가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한국처럼 대규모 도시개발로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멀쩡한데 걍 그대로 집을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다만 이것도 2010년대 들어 건설붐이 불면서 남한이나 중국처럼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식이되면서 본평양과 그 근교 지역은 남한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3.2. 지형
대동강과 그 지류들인 여러 하천들에 의해서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서부와 북부 일대에는 오랜 기간 동안 침식작용을 받아서 낮은 구릉성 산지들이 많이 분포했다. 평양평야는 경작이 가능한 낮은 구릉지들이 많고, 근처에 안주평야와 재령평야가 있으므로 굉장히 넓은 평야를 주변에 가지고 있다.
3.3. 풍수
택리지에 의하면 100리 정도 되는 평야가 앞뒤로 펼쳐져 있어서 기상이 크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평양의 풍수를 행주(行舟)형[17] 이라고 하는데, 평양 전체가 하나의 배와 같기 때문에 우물을 만드는 것은 선박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고 여겨서 우물을 파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실제로 우물을 판 이후로 평양 시내에 많은 화재가 발생해서 우물을 다시 메웠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떠다 판 이야기는 평양의 풍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주형의 풍수를 보완하는 비보[18] 로서 배를 묶는 닻과 같은 상징물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배는 재물을 뜻하고, 재물을 담고 있던 배가 떠나지 않으려면 닻으로 묶어둬야 된다나. 이러한 비보로서 연광정 밑에 닻이 묻혀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까지 풍수지리설이 퍼져 있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런 것에 무관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닻을 건져 올렸는데, 하필 닻을 건져 올렸던 1923년에 평양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에 기겁한 평양 주민들은 그 닻을 다시 찾아 다시 제자리에 묻어놨다고 한다.
3.4. 지질
시생대에 생긴 낭림층군을 포함하여 원생대층, 고생대층, 신생대층이 분포했다.
3.5. 기후
냉대동계건조기후(Dw)에 속하기 때문에 연교차가 큰 편이다. 연 평균 기온은 10.5℃, 1월 평균 기온은 -5.8℃, 7~8월 평균 기온은 24.4℃로 서울보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조금 시원한 편이다.[19] 참고로 남한 철원군 시가지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1월 평균 -5.5℃, 8월 평균 23.8℃이다. 물론 중강진이나 함경 지방보다는 당연히 따뜻하다. 같은 위도에 있는 스페인 이비자의 1월 평균 기온은 무려 '''12℃'''(...) 북위 '''60도'''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헬싱키와 겨울철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
연 평균 강수량은 939.8mm인데, 한반도가 으레 그러하듯이 강수량의 70% 가량이 여름#s-1에 집중되어 내린다. 특히 7~8월에만 488mm가 내려 두 달 동안 한 해 강수량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반대로 겨울에는 한국의 서울특별시보다도 강수가 적어서 베이징처럼 '''사막이 된다.''' 실제로 12~2월의 평균 강수량은 각각 16.5, 12.2, 11.0mm로 서울의 60%에 불과할 뿐더러[20] 세 달을 합쳐도 50mm가 채 안 된다. 평양의 겨울 풍경을 보면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마치 낙타나 선인장이라도 나타날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900mm가 넘으므로 세계 평균 정도는 되기에 적지 않은 강수량이지만, 6~9월의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 8달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고작 261.3mm뿐이다. 여름의 우기를 제외한 평양의 연평균 강수량은 392mm에 불과해 사실상 BSk에 가까운 셈이다. 서울 역시도 6~9월을 제외한 나머지 8달간 강수량은 389.2mm에 불과하지만, 불과 직선거리 20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약 1.5배의 차이가 나기에 이만하면 적지 않은 차이라 볼 수 있다.[21]
이 때문에 평양은 대도시로써 대도시의 인구를 감당할 수리시설 확충과 수원 확충, 상수도, 하수도 정비가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북한 정권에서 이 사업이 제대로 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만든 문수 물놀이장(워터파크)의 수질이 매우 나쁘다는 보고서가 공개된 적도 있다.
4. 역사
평양은 기원전 3세기(고조선, BC 281년)에 건설되어 경주(신라, BC 57년), 서울(백제, BC 18년)보다 약 200여 년 더 앞서 건설되었다. 이른바 '단기위고 3천년'[22] 의 도읍으로, 고조선[23] , 고구려, 고려[24] 의 고도이자 현재는 북한의 수도. 번영한 시기가 한정되어 있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한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큰 곳이다. 손꼽히는 고도인 서울특별시나 경주시에 못지 않는데, 평양은 한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수도였고[25] 고구려의 후반부의 수도[26] 였다. 수도의 지위를 잃은 이후로도 고려시대의 3경[27] 중 하나였고, 조선시대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 북한 정권의 정치적 중심지이자 수도가 되었다. 이에 평양에는 남한의 서울이나 경주 못지않게 전통유적이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명왕릉을 비롯한 고구려의 유적과 고려시대 유적이 특히 많은 편이며 비록 이후에 개건한거고 논란도 많지만 단군왕검을 모시는 단군릉도 있다. 북한이 개발되거나 통일되면 이러한 전통유적 보존 및 교토 같은 고도의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개경과 라이벌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고 특히 고려 전반의 지역사는 개경과 서경의 대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맞설만한 정치적 힘과 문화적 정통성을 가진 도시는 평양 즉 서경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개경 귀족세력 입장에서도 서경(평양)이 아무리 뻗대도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라는 평양의 엄청난 정통성때문에 쉽게 건들지 못했다. 묘청의 난이 발생한 걸 보면 두 수도 사이에도 위상의 차이가 있던 정도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수도인 서울과 라이벌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단, 고려시대에는 개경과 어느정도 경쟁이 가능했지만 중앙집권제가 발달한 조선시대에는 '2위 도시'라는 상징성 빼곤 한양과 경쟁 자체가 되지 못했다.
다만 한국사에서 딱 한 번 평양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 바로 남북국시대이며, 신라에게도 발해에게도 수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사실상 양국의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어 고구려 멸망 후 고려가 서경으로 삼기까지의 253년간(668~921) 폐허로 방치되었다. 수도인 기간은 약 500년으로 의외로 짧은 편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에서는 원래 다른 곳을 수도로 삼다가 왕조 후기에 평양으로 옮긴 것이었고 고려 서경은 위상은 높았다지면 결국 개경에 밀려 수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도였던 기간만 치면 1070여 년의 서울과 990여 년의 경주에 크게 밀린다. 다만 수도가 아니었을 때에도 한사군의 중심지, 고구려 제 2도시(국내성 시기), 고려 제 2수도, 조선 제 2도시였기 때문에 꾸준함의 측면에서 인정받는다.
원래 1948년 제정된 북한 헌법 10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성립 초창기에는 한반도 정치체의 정통성이 서울에 있음을 은연중에 인정한 상태에서, 적화통일을 전제했던 조항으로 보인다. 이 때까지는 평양은 일종의 임시수도와 같은 위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남북분단상황이 고착화되자 나중에 김일성 일인 독재 체제를 확립한 197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이 부분은 삭제되고 대신 평양을 혁명의 수도로 규정하였다.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기준으로 서울은 지방 대도시라는 것이다.
혁명의 수도라는 이름 하에 사실상 수도임을 인정한 다음부터 북한은 지금의 북한 지역에 중심지를 두었던 고조선이나 고구려, 고려와 그 뒤를 잇는 현재 북한정권의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며[28][29] 단군릉, 동명왕릉 등을 크게 개건하였는데,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한반도 정치체의 정통성이 남한과 서울이 아닌 평양에 있다는 선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30]
5. 현재
5.1. 정치
현재 시장인 평양시당 위원장은 현재 김영환[31] 이다. 본래 북한의 행정구역 책임자는 시, 도, 군 당 책임비서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2016년 5월 제 7차 당대회 이후 당 위원장으로 직함이 변경되었으며 명목상의 평양시 수장인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차희림이나 북한 행정구역의 실권은 각 시당군의 당 위원장이 가지고 있으므로 전자 쪽으로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관련 기사 김영환은 양강도당 위원장으로 있었는데, 2020년 4월에 전 평양시당 위원장인 김능오의 자리를 승계했다.
현재 평양에 거주 중인 사람들은 핵심계층~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의 충성도가 높은쪽에 속하는 사람들로, 평양시민증을 가진 인민은 타 지역민과는 차원이 다른 특혜를 주고 있다. 이런 성분보다는 충성도가 더 중요해서, 핵심계층이라도 충성도가 낮다고 판명되면 쫓겨나며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도 살 수는 있다. 일례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나 남자의 자격 탈북여성 토크편을 보다보면 평양 출신과 그 외 지방 출신 출연자들의 '''배경지식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똑같은 주제로 자신의 경험담 이야기를 하다가도 '''서로가 "그랬어요?"하며 놀라는''' 경우도 부지기수. 그나마도 일반 탈북민들이나 전공자들이 '''보고 욕 할 정도로''' 대본 따라 가는 프로그램인데도 그렇다. 사실상 서로 다른 나라나 다름없는 수준.
북한의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양, 특히 본평양 일대는 북한에서 최고의 부촌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지방 사람들은 포상휴가를 받거나 수학여행을 갈 때에나 방문하는 수준. 평양은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특권층 도시이기 때문에 일반 북한 주민들은 사는 게 쉽지 않은 데다가 출입도 쉽지 않기 때다. 갈 돈도 없을 뿐더러 평양시 여행증을 받는 건 타 지역 여행증 받는 것보다 수 배는 더 어렵다. 그만큼 평양은 북한 당국이 간판으로 내세우는 도시이기 때문에 북한 전국 인민들의 피땀을 모아서 평양 꾸미기에 공들이고 있다.
일단 평양시민들은 다른 지방을 여행할 때 통행증이 필요없고, 생필품과 수도/전기 공급 제 1순위이며, 인트라넷이 그나마 공급되는 곳이다. 인터넷은 아예 허용을 안한다. 자가용 소유가 거의 불가능한 타 지역들과는 달리 평양에선 자동차가 생각 외로 많이 보이기도. 심지어 출퇴근 시간은 교통 체증까지 있다.
이렇게까지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1972년 김일성 유일체계가 확립되고 평양이 혁명의 수도로 격상되면서 충성도가 낮은 주민들을 타 지역으로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평양 때문에 재정이 악화되면 이런 일이 있다고 알려진다. 당연히 권력의 중심지인데 불안분자들을 곁에 둘 리가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평양에 거주하려는 지방 주민이 평양 남편과 결혼하려고 하는 일, 뇌물을 쓰려는 일도 있다. 그러나 평양 인구를 줄일때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지방으로 쫓겨난다고 하니 가급적 돈많은 사람을 찾는 편이다.
이는 뒤집어서 본다면 평양 거주민들의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은 타 지역에 비해 굉장히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도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소식 당시 조용조용한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평양 지역은 그야말로 난리법석. 다만 그만큼 중앙 정부의 집중적인 통제를 받기도 하여 신흥 부유층들이 인근의 평성시 등을 선호하는 현상도 최근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남한) 국적의 사람이라면 통일부의 방북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북한과 관계가 없는 제3국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광이 열려있는 곳이다.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 우방국뿐 아니라 영국인이나 일본인 등 여러 서방권 국민들도 방문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오토 웜비어 치사사건 전까지는 미국인도 방문할 수 있었다. 사건 후 2017년 9월 1일부로 미국인의 북한 관광은 전면금지되었고, 북한 방문하려면 국익 관련이나 취재, 인도적 지원 목적이 있음을 미 국무부에 예외사례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비자가 필요하고 항공편 구하기가 까다로운 문제는 있지만[32] , 패키지 상품은 물론 자유여행도 받아주고 있으며, 그들의 시점에서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혼자 다니는 것도 딱히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만약 평양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pyongyang'''[33] 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셀 수 없이 나오므로 참고하도록 하자. 탈북자들의 유튜브에서도 평양에 살았던 사람의 증언까지 있으며, 이런 것은 정치 성향이 강한 유튜브[34] 를 빼면 믿을만한 정보가 있으며, 북한이 보여주지 못하는 다소간의 사상적 이완도 언급한다. 한국 방송에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2018 남북정상회담 전후의 평양을 취재했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점을 노려서 북한 관련 관광상품엔 오로지 평양과 금강산, 개성특급시, 그리고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정도만 허용해준다.[35] 이와 같은 '관광 코스'들은 당연히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매우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그래서 평양을 비롯한 관광 코스를 찾은 관광객들은 굶주리고 헐벗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의외로 자가용들도 돌아다니고 주민들이 스마트폰을 쓰는 등 발전한(?) 평양의 모습을 보고 '북한도 생각보다 잘 사네'라고 생각을 한다고.
이 외에도 북한이 자국의 모습이라며 공개하는 모습들(새로운 시설 건축, 당의 지시를 정직하게 따르며[36]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그럭저럭 사는듯한 시민들의 생활상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본평양의 모습뿐이며, 시장화로 삶이 넉넉해진 모습[37] 은 북한 당국이 장려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단속을 돈주를 포함한 주민들이 무력화시킨 것에 더 가깝다.
이런 본평양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평양 인구의 20~30%, 40~60만 정도이며 나머지 70~80%는 일반 노동자, 농민 등으로 지방도시 주민과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평양의 모든 시민이 특권계층이 아니며''', 평양의 서민보다는 지방에서 좀 부유한 계층이 더 잘 사는 모습도 흔하다. # 본평양 근교에는 교도 통신, AP통신, AFP통신의 지부가 있는데,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은 모두 북한 사람이다. 평양 시내에서 군인은 기본적으로 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금지되며 부대가 이동할 때도 평복으로 갈아입게 한다. 평양시민은 외국인과 말을 많이 하거나 대응이 나빠도 비판될 수 있다. # 한국으로 치자면 방문객들에게 청담동 같은 부촌이나 강남역 일대, 여의도, 종로 같은 중심지구만 안내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진입은 통제하며, 그 주민에게 함부로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남한의 1960년대 초(혹은 그 이하)를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반전세계(反轉世界)가 펼쳐진다. 게다가 평양의 행정구역은 서울보다도 두 배 이상 넓으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이 얼마나 많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38] 다만 그런 모습을 구경하려면 가이드의 매의 눈깔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점이 문제. 실제로 일본 언론 아시아프레스의 한 기자가 몰래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가니 상점에서는 어떤 백화점으로 가라면서 팔이 잡힌 채로 호텔로 끌려갔으며, 다시 몰래 나가니 한 남자가 "위험에 처하면 안 되니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며 또 호텔로 데려 갔다고 한다. 이건 신고 당한 것이라고 한다. #
그래서 북한의 잘 사는 모습은 평양 일부만 불과하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기도 한다. 북한에서 본평양 지역처럼 잘 사는 곳은 없어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인데, 북한 정치에 대한 반발심으로 저곳 아니면 모두 끼니조차 잇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방에도 평균적인 평양 시민보다 부유한 사람이 많으며, 탈북자의 경우 평양보다 못사는 함경도 북부 출신(전체 탈북자의 80%대)이 많은데도 2016~2019년 경에는 90% 이상이 세 끼를 잇고 있다. # 이는 2000년 이전에 32.1%에 불과하던 것이다. 위성사진으로 봐도 동평양 쪽의 허름한 곳보다는 지방(사리원, 함흥 같은 내륙 포함)의 중견 도시 중심부가 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2020년 북중 국경인 혜산시 같은 경우에 여성의 경우 남한 기준으로도 살찐 사람이 유튜브 영상에 등장, 많은 사람이 중국이냐고 믿지 않으려는 바람에 편집자[39] 가 같은 장소에 인민군이 걸어가는 모습을 올려 북한이 맞음을 증명한 사례도 있다. # 북한이 생각보다는 잘 살 때도 있다는 것은 주민들이 정부의 말만 듣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기에 정권 찬양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북한 전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활동 자체가 아예 불법[40] 인데 그게 부패[41] 로 검열이 무력화된 것이라는 증언도 많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특이한 증언도 새어 나오고 있다. 외부에 보여주는 정치의식마저 실제 평양시민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평양에서 2017년 탈북한 탈북자의 언급에 따르면, 뒤에 설명하듯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여론이 50~60대 사이에서도 흔하고, 그 아래 세대는 더하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의 정수분자(精粹分子, 어떤 사회나 조직체에서 가장 우수하고 기본 주축이 되는 사람.)’, ‘김정일주의 정수분자’는 20대에는 없다고 한다. ‘국가가 어떻든 내 입만 굶지 말자, 내가 잘 먹고 잘살자’는 인식이 삶을 지배한다고 한다. 학교 다닐 적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를 열심히 공부했으나 다 헛소리로 여긴다고 한다. 다만 이건 어른들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10대가 더 심해서, 김정은 때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면 나중에 먹힌다는 인식도 강하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 젊은 세대는 사상적으로 이완된 모습도 보인다. # 당국에서는 이런 외부 문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약 사범보다 중대하게 여겨 감옥에 넣으려고 하지만, '걸리는 놈이 머저리'라는 말이 돌 정도로 이런 문화가 퍼져 있으며, 심지어 "김태희 이민호 장나라 팬이 평양에 특히 많다."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옛날처럼 무조건 충성은 안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지, 위와 같은 주장에서도 아직은 정치적으로 과거에 머물러있거나 그 잔재가 남은 사람도 많다고 주장한다. 노인, 노병 같은 경우는 흔히 알려진대로 충성심이 강하다고 한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학생 이하의 나이대에서는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려고 애국심으로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한 명도 없으며, 심지어 당국의 코로나 환자가 없다는 주장을 믿지 못하기도 하지만, 주부 같은 경우에는 배급을 주고 생활을 좀 개선시켜주면 농촌에 동원시켜도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5.2. 경제
평양, 특히 본평양 일대와 그 밖의 지역의 생활 수준은 눈에 띄게 차이가 크며[42] , 2017년 현재 평양 시민, 특히 본평양 지역 주민의 생활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중산층에 준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평양 시내의 식당들에는 매일 저녁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며, 북한(평양)내에서 대한민국의 고급 백화점 포지션(사실 우리나라와 비교하기에는 민망하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해당화관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외화로 판매함에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데다가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고층건물도 크게 늘고있다. 특히, 평양에는 2010년대 들어 헬스클럽과 같은 사회 체육 시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평양에 한정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평양 내부를 촬영한 영상에선 살이 찐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북제재 속에서도 살까기 열풍이 분다고까지 할까. #
아무튼, 이렇게 평양 시민에 대한 특별한 대우 때문에 북한사람들은 평양에서 살고 싶어서 안달 한다. 탈북자들도 과거 습관 때문에 남한도 북한 같은 줄로 생각해 정착 초기에는 서울 거주에 매우 집착한다. "북한에서는 피양가고 싶어서 병아리도 피양피양 하고 운다."나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평양 공화국과 지방공화국으로 나뉘어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2017~2018년경 호황기 기준 평양의 일부 방 5개짜리 최고급 아파트들은 시세가 2억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남한에서 2억 정도로 아파트를 사려면 서울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고 경기도나 광역시 등의 대도시에 있는 웬만한 20평대 소형 아파트를 사기에도 모자란 돈이지만, 북한의 소득수준을 생각할때 북한에서 2억 원은 정말 엄청난 거액이다.
공식 경제비중은 13.3%, 비공식 경제비중은 86.7%로 파악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했다. # 평양도 부패가 만연하며, 잊을 만하면 들이닥쳐 검열을 한다. 돈을 찔러달라는 뜻이다. 반대로 돈만 많으면 평양처럼 살기 좋은 곳도 없다. 돈을 무한대로 찔러줄 수만 있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봐야 한다. '불법'적인 사업이 많은데, 대포폰으로 단속을 피해야 한다. 권력기관도 부패하여 대포폰도 잘 만들어진다고 한다. #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남한의 불법과는 다르다. 후진국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경제시스템의 효율적 운영을 막는다. 가령 북한 같은 경우에는 사업을 크게 벌이거나, 자본주의적 경영을 하는 사업을 꾸리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규제가 뇌물을 통해서 무력화되어 경제가 그나마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국에서도 법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아직 남은 경우가 있지만, 북한이 이것이 매우 심하다. #
그리고 평양의 1인당 GDP가 '''$2,700''' 내외로 지방들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의 GDP보다 10배 이상 낮으며, 남한의 1986년도 GDP보다도 낮은 수치다. #. 이집트보다도 낮다. 한마디로 상위 10%만 모아둔 도시가 이미 우리보다 30년 이상 뒤쳐져 있다는 말.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아는 제법 잘 사는 평양의 모습은 평양 내에서도 극히 일부라는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경제 수준이 높아 북한 내에서도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화된 곳 중 하나라고 한다. 2017년 기준 평양 출신 탈북자의 언급에서는 '책임자 동지'라는 사장이 종업원을 고용하고, 해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탁구장과 빵 생산, 휴대전화 판매 등 개인사업을 통해 수입이 많을 때는 월 1500달러(한국 돈 170만 원)를 번다고 한다. 일정 금액을 여러 사람들과 투자하여, 그 지분에 따라 수익을 나눠가진다고 한다. 평양 시민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북한이 발전하려면 개혁·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라는데, ‘중국식 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50, 60대 어른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 때는 주체사상이 약화되었어도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김정은을 지지했다고 하였다. 호텔이나 모텔은 없는데, 커플을 위한 집을 빌려주는 서비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또한, 재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의 주택을 두고 투자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주택을 사두면 재개발 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 평양에서는 고층보다 저층이 선호된다. 승강기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전기 사정 탓에 자주 멎어 고층에 살면 힘들다. 재개발이 유력시되는 곳에 집을 사둔 평양 사람들은 당국이 다음 개발 지역을 선정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
그러나 대북제재 여파로 2019년경부터는 경기 침체가 심하다고 한다. 평양의 집값이 거의 반값이 되었으며, 택시회사가 있는데 사납금(북한에서는 입금비라고 부른다.)을 못내서 자살한 택시기사가 있다는 보도가 있다. # 고소득층이 대북제재의 타격을 입어, 이들이 주로 사용할 수 있었던 택시도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납금이 하루에 80~130달러로, 한국 택시회사도 이 당시 사납금이 하루 110달러(13~14만원 가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다. 불황에도 깎아주는 법은 없다고 한다. 2018년만해도 사납금을 납부한 뒤에도 50~100달러(5~11만원)를 택시기사가 가져갈 수 있었다는 언급이 놀라운데, 월 26일 근무를 가정하면 130~270만원 정도를 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에서는 2018년 기준 서울시 법인택시 평균 총수입이 217만원이라고 한다. # 북한치고는 꽤 고소득이라 그만큼 인기 있던 직업이었다.
다만 북한의 시장경제란 것이 제도적인 장려가 있기 보다는, 주민들이 알아서 자본주의를 터득한 것을 조금씩 허용한 것이라 시장경제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보호장치가 부족하다. 이 사례에서도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의 택시회사가 평양의 사업을 독점하려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2020년경부터는 코로나19, 수해, 대북제재의 삼중고로 극심한 불황 상태일 것으로 추산된다. 방역을 한다고 그동안 어느 정도의 허가가 있던 도 간의 이동이 거의 막혔으며, 중국으로부터 수입마저도 전년대비 4~5분의 1 가량으로 줄었으며, 지방도 피해를 입어 평양에서 가져갈 것도 줄었기 때문이다.
5.3. 교통
5.3.1. 도로교통
평양은 북한의 중심지로 각 지방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되었다. 현재 평양개성간 고속도로, 청년영웅도로, 평양순안간 고속도도로 & 평양향산간 관광도로[43] , 평양원산간 관광도로, 평양강동간 고속도로가 평양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또한 구 평양남포간 고속도로[44] 는 청년영웅도로 개통 이후 일명 강안도로라 불리는 일반도로로 격하되었는데, 대안, 천리마, 룡강 등 주요 위성도시를 커버해주지는 못하지만 서해갑문과 직결되는 이점이 있다.
한편 평양신의주간 고속도로가 현재 건설 중이다. 안주시 이남 구간은 현 평양묘향산간 고속도로를 전용하려는 것으로 보이며[45] , 신의주시에서 압록강대교를 통해 선양시-단둥시간 고속도로 지선과 연결된다.
평양시내 가로망은 주로 본평양 및 동평양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평양시내에서 대동강을 건너는 다리는 총 6개가 있으며, 옥류교를 제외한 다리들은 모두 왕복 4차로[46] , 옥류교는 왕복 6차로로 건설되어 있다. 원래 북한은 철도를 수송의 중심으로 삼고 도로를 철저히 단거리 보조교통수단으로만 인식하였으나,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수도건설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도로망을 부쩍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양 도로교통수단의 중심은 무궤도전차와 시내버스인데, 무궤도전차는 헝가리 및 체코제 일부 차량을 제외하고는 북한제 차량이 주로 운행되고 있다. 평양의 무궤도전차는 크게 련못, 서평양, 평천, 문수에 무궤도전차사업소를 두고 있으며 련못사업소에 역전대대와 룡성대대, 서평양사업소에 모란대대, 문수사업소에 사동대대가 각각 배속되어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평양의 무궤도전차 노선은 다음과 같다.
- 련못무궤도전차사업소
련못동~룡성
- 서평양무궤도전차사업소
서평양역~서포
서평양역~평양역
개선문~황금벌역
서평양역~평양역
개선문~황금벌역
- 평천무궤도전차사업소
화력발전소~서평양역
- 문수무궤도전차사업소
문수~평양제2백화점
문수~락랑
대동강동~평양제1백화점
무궤도전차는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특성상 매연이 없고 소음이 적은 점은 유리하지만, 일단 북한의 열악한 기술로 제작한 차체의 노후화도 심각할 뿐더러 북한의 전기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47] 멈춰서기 일쑤. 이렇게 무궤도전차 운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전기가 없어도 운행 가능한 일반 버스에 점점 비중이 실리고 있다.문수~락랑
대동강동~평양제1백화점
평양의 시내버스 운행은 제1~4 려객 자동차사업소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파악된 평양의 시내버스 노선은 다음과 같다.
- 북평양권(평양제1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대성산~강동
대성산~삼석
대성산~모란봉
대성산~미림
대성산~팔골
련못동~과학1동
련못동~순안
련못동~평양역
룡성~미림
서성~룡성
서성~력포
우의탑~산업동
대성산~삼석
대성산~모란봉
대성산~미림
대성산~팔골
련못동~과학1동
련못동~순안
련못동~평양역
룡성~미림
서성~룡성
서성~력포
우의탑~산업동
- 동평양권(평양제2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대동강동~대동문
대동강동~미림
대동강동~평양제1백화점
대원리~력포도자기공장
사동~대동문동
선교~평양역
선교~평양제1백화점
송신~장진
문수~대보동
문수~금수산태양궁전
정백동~평양제2백화점
탑제동~대동강역
대동강동~미림
대동강동~평양제1백화점
대원리~력포도자기공장
사동~대동문동
선교~평양역
선교~평양제1백화점
송신~장진
문수~대보동
문수~금수산태양궁전
정백동~평양제2백화점
탑제동~대동강역
- 남평양권(평양제3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락랑~대극장
락랑~대보동
락랑~산업동
락랑~원암리
락랑~전승탑
락랑~대보동
락랑~산업동
락랑~원암리
락랑~전승탑
- 서평양권(평양제4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광복역~평양제2백화점
만경대~대평
만경대~부흥역
팔골~련못동
팔골~월로리
[image]만경대~대평
만경대~부흥역
팔골~련못동
팔골~월로리
그러나 '''석유가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전기조차 부족한 판에 석유로 굴러다니는 버스가 제대로 다닐 리가 없다(...). 덕분에 선교 등 평양 외곽지역 버스 정류장들은 종종 이런 꼴을 보인다고 한다.
2011년부터 평양의 일부 전차와 시내버스에 교통카드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관광버스도 종종 보이지만 90년대에 일본에서 퇴역한 시외버스로 굴린다. 하지만 당연히 선전 차량만은 '''토요타 하이에이스''' 같은 최신형 신차만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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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이 사진처럼 한국산 차도 꽤 돌아다니는데 이 차들은 대북지원 차원에서 넘겨주거나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중고차를 들여온 것이다. 이 버스는 슈퍼 에어로시티로 6분 30초부터 확인 가능하다. 한국 내수용 모델과 별 차이는 없어 보이나, 뒷면의 '슈퍼 에어로 시티' 엠블럼은 붙어있지 않다. 평양 이외에도 북한 전역에서 한국차를 꽤 볼수있다.
그 외에 고속버스를 담당하는 평양고속도도로려객자동차사업소와 시외버스를 담당하는 평양제1먼거리자동차수송대가 있으며, 평양시 밖으로 나가는 시외버스들은 기본적으로 붉은별역, 락원역, 광복역 등 지하철 종점역을 기점으로 하여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시외버스의 운행회수는 대부분 하루 1~2회 정도로 극히 적은 회수만 움직이기 때문에 북한 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써비차'''(서비스차)라 불리는 사설 여객운수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써비차들은 대부분 트럭 등을 이용해 사람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주는 서비스로, 지방민들이 합법적으로는 얻기 쉽지 않은 평양입경 허가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받아내준다고 한다. 대략 평양입경비용만 1 ~ 2만원 정도 들어간다는 듯. 재미있는것은 이 입경비용은 평양이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평양을 경유하기만 하는 경우[49] 에도 얄짤없이 적용되며, 평양시내 구역이 아닌 강동군도 똑같이 까다로운 입경심사(혹은 높은 입경비용)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황해남도 지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서해갑문은 출입통제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써비차들은 이에 맞춰 다소 일찍 출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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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평양 시내의 자동차 수가 급증하면서 출퇴근 시간[50] 이외에도 교통 체증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으며, 주유소, 유료주차장도 늘고 있다고 한다. 기사
5.3.2. 철도 & 궤도 교통
평양의 궤도교통 영상
평양은 철도교통과 수송전선의 중심지로서, 경의선(평의선·평부선), 평라선, 평덕선, 평원선이 지나며, 평양역은 북한 철도의 중심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특유의 이동 억제 정책과 평양 진입 통제정책, 북한 철도의 노후화 등으로 인해 우리의 서울역과 같은 활기를 찾기는 힘들다. 다만 2013년 말 북한과 중국이 신의주-평양-개성에 이르는 고속철도 건설에 합의한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도시교통수단으로는 평양 지하철 2개 노선과 3개 궤도전차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지상 전철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주로 강동역, 순안역, 대평역으로 운행되는 통근열차가 와전되었거나,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아래의 평양 지하철 노선도로 인한 오해로 보인다. 뭐, 80% 이상 전철화가 되기는 된 북한 철도인데다, 통근열차로 운행하는 차량도 노후화된 평양지하철 전동차를 개조해서 운행하는 듯 하니, 광역전철 비스무리한 것이라 볼 수도 있긴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비유로는 부산의 도시통근열차나 경의선 통근열차 같은 계통인데, 열차를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 같은 걸로 쓴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그 통근열차라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자세한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통근형 무궁화호 같은 물건일 수도 있고, 동해선 광역전철같은 물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개집표도 따로 하면서(=직환승 안 됨), 지하철과 똑같은 전철 전동차를 사용하고, 통근열차처럼 운행하고 배차도 딱 그정도 수준이지만, 광역전철 딱지를 붙이고 있는 동해선 광역전철과 같은 예시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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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서 자주 보이는 평양 지하철 노선도인데, 여기서 말하는 국철은 그저 말 그대로의 국철, 즉 국영 철도일 뿐이다.[51] 몇 가지 자잘한 오류, 이를테면 '''릉라도'''를 '''릉나도'''로 표기했다든가, '''동대원'''이 있을 자리를 '''동대문역'''으로 표기했다든가. '''서포'''로 표기된 것 역시 련못에서 서포를 거쳐 룡성으로 나갈 경우 엄청 빙 돌게 되어 있어 정말 계획이 저럴까 싶긴 한데 서포를 찍어야 거칠 수 있는 룡문역이 표기되어 있으니 애매하다. 그렇지만 일본인이 계획선 내용까지 수집해 한글 표기로 이 정도 퀄리티의 노선도를 만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또 잘 보면 대한민국의 환승역과는 다르게 환승역에 2나 3을 붙여서 구분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을 카피한것으로 보인다.
노선도 자체만 본다면 또 특이한 점이 보이는데 다름 아닌 혁신선과 천리마•만경대선이 광복역과 부흥역을 통해서 직결이 되는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 1기 지하철 계획 당시의 4호선을 보는 느낌이다.[52] 하지만 이 역시 계획이 확실하다고 하기가 좀 애매하니...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위의 노선도에 나오는 것처럼 천리마선을 룡성구역 방면으로 연장할 계획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수립되었다고 한다.[53] 다만 련못동 이북에 '''무지막지하게 큰 수맥이 흐르고 있어서''' 터널을 못 뚫는다나(...). 이를 피하려면 결국 심도를 조정해야 할 텐데 핵전쟁에도 견뎌야 할 지하철을 얕게 파는 건 죽어도 안 할 테니 이래저래 안습.
트램, 즉 궤도전차는 원래 6.25 전쟁 직후 폐지되었으나, 1991년 기존 도시교통수단의 포화로 인해 재도입되었다. 현재 서평양역-락랑, 토성-문수, 만경대(송산)-평양역, 송신-주체사상탑의 4개 노선이 운행중이며, 전구간 표준궤로 운영중이다.[54] 지하철 이외의 교통수단들은 보안사항도 아닌지 북한에서 펴낸 지도나 지리지에도 당당히 표기되어 있다(...). 많은 도시들이 궤도전차를 도로 중앙에 설치하는 데 비해 평양 궤도전차는 송신-주체사상탑 노선을 제외하고는 가변차로 형태로 되어 있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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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제 Tatra KT8D5K/T6B5K/KT4K/T4D/B4D 등이 운행 중이며, 이 중 KT4 차량 일부는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차량은 T6B5K이며, 측면의 별 하나가 5만km 무사고 훈장이다. 즉 저 차량은 '''30만km를 무사고로 운전한 영웅차량'''. 저런 별 하나 못 달고 다니는 차량이 수두룩하니 얼마나 대단한 위업을 세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별 표시는 버스 등에도 도입하고 있으며, 간혹 가다 70년대에 서구 공산권 국가에서 수입한 차량 같은 경우에는 측면의 별이 30개(...)가 넘어가는 엄청난 버스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래 썼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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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김일성종합대학 앞에서 금수산태양궁전 앞까지 연결해주는 '''금수산선'''이 1996년 개통되었다. 이 노선은 특이하게도 1,000mm 협궤를 쓰고 있다. 이름에서도 보이듯 '''광명역''' 폐역 이후 궤도교통수단이 끊어져버린 금수산태양궁전의 셔틀 노릇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 차량은 취리히 트램에서 운용하던 4/4 1b 모델인데, 각각 '''1947년과 1954년에 제작되어 1995년에 퇴역된 차량을 1996년에 북한에서 이탈리아를 통해 들여온 것이다.'''참고자료 명색이 국조로 모시는 양반 참배용 노선인데 이런 닳을 대로 닳은 차량이나 끌어다 써야 했던 당시 북한의 사정에 그저 안습. 물론 체코의 공업 수준은 동구권 1위 겸 세계적인 수준으로, 구 오스트리아 제국의 산업 생산량 75%를 차지했던 지역이며,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프랑스의 1인당 소득을 앞질렀던 적도 있었다. 아마 오래된 차량이라도 쓸 만하기 때문에 투입된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걸 아직도 쓰는 다른 나라들은 신형 차량이 더 많다.
그런데 2015년 9월 들어 궤도전차가 철폐되었다는 설이 돌고 있다. 대동강 이남 구간이 잘렸으며, 해당 구간은 노선버스로 대체되었다.
5.3.3. 수상교통
북한당국이 도로를 투자하기에는 돈이 영 없기 때문에 별 다른 인프라 투자 없이도 운영 가능한 수상운송이 나름대로 발달했다. 평양시 해운부 수상운수관리국에서 운항을 담당하고 있으며, 선착장은 만경대, 미림, 평천, 락랑구역 금대리, 강동군 맥전리 등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한강 유람선과 비슷하게 옥류 1~3호까지 운영되고 있다. #
- 평양 주변 교통
- 금대~평양
- 금대~남포
- 만경대~강남군
- 미림~맥전
- 평천~두루섬
- 평천~송림
- 평양 내 교통
- 김일성광장-주체사상탑
- 김일성광장-5월1일경기장
- 옥류교-대동강다리
- 김일성광장-과학기술전당
5.3.4. 항공교통
북한 국제공항인 평양순안국제공항이 북쪽에 있다. 정확한 명칭은 '''평양국제비행장'''.
일단 국내선은 청진시, 해주시, 함흥시, 개성특급시, 강계시, 길주군, 남포시, 삼지연, 신의주, 원산시으로 운행한다고는 되어 있는데#, 실제로 민간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며 현재는 모든 국내선 항공편이 부정기 운항중이다. 다만 삼지연-평양 구간은 이따금씩 중앙 경축행사가 있을 때 '''량강도 대표단'''을 수송하곤 한다. 간혹 라선시 대표단도 행사에 따라 열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청진비행장이 소속되어 있는 함경북도 대표단은 얄짤없이(...) 청진청년역에서 열차를 타는 것을 봐서는 청진이 아닌 다른 비행장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비용 문제 때문에 라선시 대표단은 비행기를 타지만[56] 정작 함경북도 대표단은 비행기를 못 타는 안습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국제선은 현재 베이징시, 상하이시, 선양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운행 중. 외항사는 유일하게 중국국제항공은 베이징-평양 노선이 하계 기간에만 취항한다.(이 덕분에 평양순안공항 내의 유일한 고려항공 비지니스 라운지는 스타얼라이언스 카드로 입장이 가능. 단, 아시아나항공 카드로는 평양착발 노선에 대해 마일리지 적립도 안 될 뿐더러, 순안 공항 라운지 입장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스얼 골드에 대한 우선 탑승수속권도 해당 노선에 대해서는 아시아나 항공 골드는 제외 되는 것으로..) 중구역 해운동에 위치한 조선국제려행사와 평양국제비행장 사이에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대원 이북지역에 공항이 있었으나 이 지역은 현재 당창건기념탑, 동평양대극장, 문수유희장, 평양산원 등이 들어선 동평양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사동구역 미림동에 미림비행장이 있으나 활주로 규모 자체가 워낙 짧아서 제대로 된 항공기능은 순안이 담당하고 현재는 주로 열병식 비행 연습장용 정도로 이용하고 있다.
5.4. 문화
옛날부터 평양은 강계시, 진주시와 더불어 '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이와 관련해 '''"여자는 서울 말씨에, 평양 인물에, 강원도 살결이라야 한다."'''[57] 라는 속담도 있다. 또한 평양 사람들이 대체로 인심이 좋다는 것을 나막신에 빗대어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이라는 속담도 있다.
북한의 문화 활동은 기본적으로 군중문화고, 또 모든 예술 단체가 국가 아니면 당, 혹은 군 같은 집단에 소속된 공립 단체다. 그리고 이것들의 중심지도 당연히 평양이라서 문화 인프라는 상당히 다양하고 대규모로 갖추어져 있다.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조선인민군협주단, 조선국립교향악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 은하수관현악단 등 북한 내 1급 예술단들은 모두 평양을 본거지로 하고 있고, 각자 전용 극장이나 콘서트홀을 갖고 있다.
다만 이들 시설도 대부분 북한의 리즈시절이었던 1960~70년대에 지어졌고, 그 뒤로는 고난의 행군으로 노후화가 심해졌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지 2000년대 이래 순차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해 현대적으로 개건하고 있다. 시설들은 건축 문단에서 나열한다.
평양에는 이런 국가 주도의 문화 말고도, 비공식적인 문화도 삶의 일부다. 비록 지방보다 검열 시도가 강하여 대놓고 북한 당국이 싫어하는 문화를 즐기지는 않는다지만, 경제력, 도시화로 역설적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 사상과 맞지 않는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평양 주민들의 삶에는 이런 문화가 더 영향력이 클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탈북자들은 흔히 더치페이 같은 건 문화충격이라고 하며, 심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묘사한다. 그러나 평양의 중산층 이상으로는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문화가 무너진다고 한다. 연상 연하 커플이 늘어나고, 경제력 있는 여성들이 데이트 비용을 책임지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 한국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있으며, 권력 기관과의 유착으로 이런 것의 단속이 무력화되는 일이 벌어진다. 단속이 심해지면 잠시 주춤해지다가 음지에서 다시 퍼지는 현상이 이어진다. 시장에서 CD 같은 걸 팔다가, 팔지는 못하니 아는 사람끼리 인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더 숨기기 쉬운 USB, SD카드 같은 것을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2020년 기준 수년 전부터 빼빼로 데이를 기념하는 경우가 생겼으며#, 현재는 지방의 일부 젊은이에게도 퍼진다고 한다. 중국이나 한국의 영향을 받아 경제력이 되는 계층을 중심으로 집에서 결혼식을 하던 풍습이 무너지고, '결혼식전문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음식도 이런 식당에서 해준다고 한다. 평양이 이런 추세가 가장 이르게 나타나고, 이런 문화가 지방에 퍼지는 중이라고 한다. ##
5.5. 교육
마찬가지로 서울보다 주요 교육 시설의 집중 현상은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일단 김일성종합대학부터 시작해서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의과대학, 김형직사범대학, 평양교원대학, 평양외국어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평양철도대학,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무용대학, 평양미술대학 등 분과 별 북한 최고의 대학교들이 몰려 있다. 재학생들도 어지간해서는 평양 시민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다가 지방에서 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정말로 드물다.
대학교 외에도 유치원과 소학교, 중학교 같은 교육 기관도 지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개중에는 김일성훈장이네 3대혁명붉은기훈장이네 하는 것들을 받고 엘리트 학교마냥 취급되는 학교도 있다. 당연히 평양 시민들 중에서도 웬만큼 빽있고 출신 성분 좋은 학생들만 다닌다고 보면 된다.
2010년에 평양과학기술대학이 개교되어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유니스트에 이은 5번째 IST 시리즈인 줄 알았으나, Institute 대신 University가 명칭에 들어가서 공식 영문 약칭은 '''PUST'''가 되었다.
6. 건축
모든 것의 선전효과를 노리는 독재정권의 특성상 일단 권위주의적으로 큰 것과 특정 형상을 그대로 본따는 형태주의 건축물, 민족성을 강조하는 제관식 건축을 엄청 좋아한다. 남한으로 유신이 반공을 강조하여 정치적 정당성을 얻으려 했던 자유센터나 독재와 북한을 의식해서 만들었다는 세종문화회관,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건축 양식이 북한에서 아직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독재라는 것을 놓고 보기에는 소위 서방의 자본주의 건축에 적대적이고 문화가 완벽히 통제되는 구 공산권 특성상 남한의 유신 독재시설 보다 더하다고 할수 있는데 평양의 거의 모든 공공 건축물들은 당의 주도로 지어졋고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유로운 동선이나 개인의 성향이 담긴 자유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보기 힘들다.
현재 북한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평양 행정의 중심지이자 상류층 주거지인 사실상 강북지역에 몰빵되었다. 참고로, 평양 중심부에서의 건물 신축은 금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상하수도망 등의 인프라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2010년대 들어 평양에 고층아파트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소문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북한에 대한 정보자체가 불분명한 게 많다보니... 이에 대한 설명으로, 사실 수도 공급도 잘 안되지만 그냥 짓고 본 것이며, 관리비를 걷어 발전기를 돌리거나, # 20층에서조차 그냥 물을 긷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
6.1. 공공시설
- 평양 개선문
- 금수산태양궁전
- 김일성광장
- 김일성종합대학
- 대성산혁명렬사릉
- 류경 호텔
- 문수 물놀이장
- 옥류관
- 인민대학습당
- 주체사상탑
- 평양TV타워
- 평양 민속공원
- 개선청년공원
- 대성산 유희장
- 만경대 유희장
- 봉수교회
- 칠골교회
- 장충성당
6.2. 예술시설
6.3. 체육시설
6.4. 고건축 및 유적
평양 근교에 있는 것들도 포함.
- 평양성
- 동명왕릉
- 대동문과 평양종
- 보통문
- 연광정
- 모란대 - 부벽루, 칠성문, 전금문, 평양성 현무문, 최승대, 을밀대, 영명사 [59]
- 숭령전[60]
- 광법사, 법운암
- 용곡서원
- 청암리 사지
- 정백동 고분군
- 대성산성
- 안학궁지
- 고구려 첨성대
- 정릉사 (교외)
- 단군릉 (교외)
- 고구려 시대의 벽화무덤 #
7. 행정구역
7.1. 구역[61]
- 대동강구역(大洞江區域)
- 대성구역(大聖區域)
- 동대원구역(東大院區域)
- 락랑구역(樂浪區域)
- 력포구역(力浦區域)
- 룡성구역(龍成區域)
- 만경대구역(萬景臺區域)
- 모란봉구역(牡丹峰區域)
- 보통강구역(普通江區域)
- 사동구역(寺洞區域)
- 서성구역(西城區域)
- 삼석구역(三石區域)
- 선교구역(船橋區域)
- 순안구역(順安區域)
- 은정구역(恩情區域)
- 중구역(中區域)
- 평천구역(平川區域)
- 형제산구역(兄弟山區域)
7.2. 군
7.3. 편입 행정구역
평양 밖의 지역을 체제 선전, 특권 부여를 위해 평양에 편입시키는 사례가 있다. 정말 멀리 떨어진 곳을 월경지 형태로 평양에 편입시켜버렸다.
- 방현동
구 구성시 방현동. 북한의 미사일 관련 시설이 밀집해있는 곳으로 이 곳에 거주하는 미사일 관련 종사자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해 2018년 2월 10일 평양에 편입되었다.
7.4. 행정구역 개편
2010년 하반기에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북한이 매년 펴내는 조선중앙연감의 내용에 의거하면 평양시에 속해있던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과 승호구역 등 남부 행정구역을 황해북도로 편입시켰다. 이는 기존 면적 대비 약 57% 정도가 줄어든 것. 북한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결국 평양 시민에게 더 이상 특혜를 모두 주지 못하게 되자 평양 면적을 줄여 평양 시민의 인구를 줄이자는 심히 괴랄한 의도로 추측하고 있다. 기사 1 기사 2 다만 지도를 보면 여전히 면적만으로는 평양이 서울보다 큰 상황.
다른 이유도 제기된다. 이 기사를 보자. 이런 방법을 쓴 이유를 보면 평양에서 쫓겨난 4개의 지역이 다소 외국인들의 눈에 거슬릴까봐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실제로 그 쪽 지역들을 보면 평양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도 사동구역, 력포구역 같은 동평양역, 송신역 근처 허름한 주택가를 포함한 구역이 남아 있으며, 이는 구글 어스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이 아니면 그냥 외국인의 출입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주된 이유는 전자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승호구역이 떨어져나간 것'''은 의문이 남는다. 승호구역은 평양직할시 내에서 '''승호 수용소라는 최악의 정치범수용소'''를 굴리던 구역이었는데 이 승호구역이 2010년에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승호구역이 평양직할시에서 떨어져나가면 외지인들의 승호구역 방문이 자유로워지는데, 승호구역에 1994년까지 '''정치범수용소를 굴려놨'''기때문에[62] 이 승호구역을 평양에서 떨어냈다는 것은 북한 일반 주민들한테 승호 수용소에 대한 정보가 퍼질 리스크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1991년에 이미 까발려졌고, 정보통제도 100% 완벽한 것은 아닌데다 암시장과 연계된 돈주라 하는 신흥 중산층을 기반으로 외국의 정보가 역으로 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진짜 진작에 흔적까지 싹싹 다 지워 없앴을 수도 있다. 일단 승호 수용소의 폐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발언한 내용이 있는 시점은 1994년.
7.5. 과거 행정구역
아래 행정구역들은 2010년을 기점으로 황해북도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지역들은 평양시에 흡수되기 이전에는 모두 평안남도였던 지역들이다.
8. 남북통일 이후 전망
이하의 낙관론/비관론 문단에서는 평양직할시가 통일 후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느냐에 대해 다룬다. 전체적으로 평양은 북한의 수도라는 어마어마한 상징성 때문에 낙관적인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낙후지역의 거점을 개발하는 정책을 높으신 분들이 선호한다는 점에서 볼 때 평양은 이에 완전히 부합한다.
만약 현 대한민국 정부 주도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현재 남한의 행정구역 체계상으로도 최소한 '''평양광역시'''로 전환 또는 승격되거나, 행정구역 체계를 개편한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높은 위상의 행정구역으로 설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 정부에서 1997년 울산광역시를 마지막으로 광역시 난립을 막기 위해 광역시 승격 사례를 더는 만들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평양은 이미 직할시로서 광역시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북 5도 대표 중심지라는 위상 때문에라도 광역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 북한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 및 정치적 이유로 평양특별시가 되리라는 예상도 있으나, 북한에서 특별시는 우리와는 다르게 직할시 아래에 있다 보니 이렇게 되면 평양시민 입장에선 강등당한 기분(...)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8.1. 낙관론
평양특별시[63] 라는 서울과 동급인 특별시가 될 수도 있으며, 평양광역시로 승격되어 대한민국의 8대 광역시가 되거나,[64] 정 아니면 부산과 함께 특별시-광역시 중간 단계의 (예시) "부산직할시" 및 "평양직할시"를 유지할 수도 있다.[65]
평양 발전에 낙관적인 사람들은 최소 통일한국 제2의 도시, 최대 서울과 대등한 도시가 될 것임을 전망한다. 세계적으로 독특한(...) 도시인 현 평양 도심은 잘 보존해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고, 이쪽으로 자본이 몰려드는 한편 평양 인근의 드넓은 평야에 일산신도시, 분당신도시같은 신도시를 개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평양은 북한의 주요 기관들이 밀집되어 있는 만큼 북한에서 그나마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면 다른 지역을 개발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들 수 있다.
또한 도시를 개발할 때 대동강 남쪽으로 탁트인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서울, 부산처럼 이미 포화상태인 남한의 다른 도시들보다 개발 여력이 많이 남아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황해북도로 이전된 상원군, 중화군, 승호군 이 3곳 중 일부라도 다시 평양의 행정구역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더불어 오랫동안 북부지방의 요충지답게 서울만큼이나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북한의 수도로써 제대로된 고속도로의 대부분이 평양을 향해 연결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은 '''이미 인구 300만 명 정도의 대도시'''[66] 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노동력과 소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통일 뒤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제일 먼저 진출할 곳들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인구 300만 명 정도의 대도시에 자본이 들어서면 몰락하기는 힘들다. 인구가 많은 곳에 인프라가 우선 배치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일자리 때문에 인구가 몰리고, 그만큼 경제력이 성장하고, 또 인프라가 들어서는 이러한 무한루프의 결과물이 서울 공화국이다.
한편, 서울특별시에 과하게 밀집된 인구를 분산하는 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그나마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인 데다가 '''평양'''이라는 도시의 네임드는 남북은 물론 해외에서도 잘 먹히기 때문에[67] , 통일 이후의 북으로 진출하는 남측의 거주민들이 선호할 확률이 높다. 통일 이후에는 기존 북한 전역에 걸친(예산 문제로 일부 지역만 우선 개발하더라도 최소한 평양-남포, 사리원, 개성, 라선, 함흥, 청진, 원산은) 개발이 요구되며, 쏟아져 내릴 공무를 처리할 공무원들도 필요한 상황이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만으로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무리이고, 이 때문에 좋든 싫든 간에 몇몇 남한인들은 이주가 불가피하다.
또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져 새로운 터전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이주 희망 지역 1순위인 곳이다. 물론, 북한 주민들은 아예 남한으로 이주하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의 삶이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든 남한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든 힘겨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2순위는 평양. 어쨌든 평양은 서울만은 못하지만 북한에선 발달된 도시다. 더군다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평양이 최고라는 인식이 상당하다. 단순히 경우의 수지만, 오히려 예상 외로 북한 주민들이 집값이 비싼 남한의 수도권보다도 평양을 선호할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못 해도 북한 주민들의 수도권으로의 '''이주 수요를 분담'''할 수 있는 도시이다. 또한 평양은 수도인 주제에 아직도 농지나 미개척지인 부분도 상당하다. 물론 실제로는 군부대인 지역도 있겠지만, 군부대도 결국 철거된 후에는 개발 대상이기 때문에 상관없다.[68] 이곳에다가 예전에 강남을 개발했던 방식으로 신도시를 건설해 놓으면 지금에 비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균형개발을 좋아하시는 높으신 분들의 특성상 평안권, 함경권, 황해권, 북강원권에 거점을 설정하고 인프라를 확충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우선 순위로 유력할 도시는 평양이다.
무엇보다 평양은 '''관광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평양은 적어도 고조선의 후기 수도로 추정되며,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이였던 걸로 추정되며, 고구려의 후기 수도[69] 였으며, 고려, 조선시대 때 제2의 도시였다. 그리고 북한 정권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평양은 여러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다. 또한 평양냉면과 평양의 한정식 등 각종 요리들은 예로부터 전주와 양대산맥을 이룰 정도였으며 현 남한에서도 굉장히 유명하다. 이러한 콘텐츠를 잘 살려서 관광도시로 내세우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양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높기 때문에 기타 지역보다 투자를 우선 받을 확률이 충분하다. 평양의 입지가 라선, 원산에 비해 밀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수도였던 데다가 그로 인한 북한 사람들의 동경, 남한에서까지 가지는 존재감, 그리고 역사성[70] , 그간의 정치적 입지가 주는 상징성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곧, 평양의 발전이 북한의 발전으로 인지될 것이다. 그나마 상징성이 강한 개성도 평양에는 상징성이 밀린다.[71] 괜히 미래의 북한의 경제발전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다.
8.2. 비관론
통일 뒤에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하기 좋은 곳은 이때까지 휴전선과 가깝다는 이유로 개발에서 소외되었던 경기도 북부 일대와 '''개성'''[72] 이 더 매력있는 곳이다.[73] 특히 파주와 고양의 개발이 비교적 최근에 되었고 경기남부보다 개발이 띄엄띄엄되었다는 점을 보면, 오히려 일산-운정 확장이 더 쉬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중국/러시아 접경 지대인 라선특별시와 강원도 (이북 5도하 함경남도) 원산시, 신의주시 등과 같이 교통이 편리한 곳이 우선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통일 후 북한의 인구가 남한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고 남한의 인구 역시 구 북한 지역으로 가는 것을 반길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인프라 개발 일자리 따라 북한 가는 사람은 있을테고 북한에도 잔류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재로선 남한으로 가는 북한이주민보다 많을 확률은 적다.
인프라가 갖춰져있기는 하나 북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개발했다는 점이 독이 될 수 있다. 근래에는 '속도전'을 핑계로 '빨리 지어서 우리의 위상과 힘을 과시하자'라는 식으로 지은 건물 때문에 일들이 터지고 있다. 어쩌면은 평양에는 수백 채의 삼풍백화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정부 주도로 안전 점검을 통해 전부 재건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기존 시설까지 다 갈아엎느라 철거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
평양을 통일한국의 새 수도로 지정하는 것 역시 정치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다.
심지어 평양은 경주와 부여 등과 같이 과거에 왕도였던 곳으로 매장문화재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마 통일이 된다면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발의 제한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9.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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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북한 지역 행정구역은 광복 이후의 행정 구역 변경을 반영하지 않으며, 광복 직후의 것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시내 지역에는 일본인들이 붙인 일본식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일부 지명 옆에 적힌 일본어는 일본인들이 부르던 이름인데,큰 도시 시가지에 붙은 일본식 지명은 일본인이 직접 지은 지명인지라 정말 일본 국내에서 쓰이는 경우와 똑같이 읽었으며 개중 훈독으로 읽는 지명이 많았다.1946년 미군이 만든 지도에서 왼쪽 아래에 있는 범례 칸에 한국식, 일본식 발음이 병기되어 있어 이것으로 일본식 발음을 알 수 있다. 취소선을 친 발음은 100% 확실하지는 않은 것이며 주석으로 부연설명한다.(고로 취소선 필터 적용 시 내용 이해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끄기 바란다) 또한 이러한 일본식 지명은 원래 '정'(町, 마치 or 초)으로 끝나던 지명이다. 예를 들면 산수동은 산수정(山手町, 야마테마치)으로.
광복 당시 기준 91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시청 소재지는 산수동이었다.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 산수동(山手洞) (야마테마치) - 시청 소재지
- 항동(港洞) (미나토마치)
- 수동(壽洞) (코토부키마치)
- 남문동(南門洞) (난몬초)
- 대화동(大和洞) (야마토마치)
- 욱동(旭洞) (아사히마치)
- 천동(泉洞) (이즈미초)
- 남산동(南山洞) (난잔마치)
- 팔천대동(八千代洞) (야치요마치)
- 행동(幸洞)[74]
- 남동(南洞) (미나미마치)
- 동동(東洞) (히가시마치)
- 죽원동(竹園洞) (타케조노초)
- 교구동(橋口洞)[75]
- 홍매동(紅梅洞) (코바이마치) - 평양역 소재지
- 약송동(若松洞)[76]
- 서동(西洞) (니시마치)
- 황금동(黃金洞) (오곤마치)
- 암동(巖洞) (이와오마치)[77]
- 유동(柳洞) (야나기마치)
- 빈동(濱洞)[78][79]
- 진동(賑洞) (니기와이마치)
- 본동(本洞) (혼마치)
- 앵동(櫻洞) (사쿠라마치)
- 상수리(上需里) - 평안남도청 소재지
- 설암리(薛巖里)
- 창전리(倉田里)
- 경상리(慶上里)
- 경제리(鏡齊里)
- 신창리(新倉里)
- 기림리(箕林里)
- 전구리(磚九里)
- 아청리(衙廳里)
- 능로리(陵路里)
- 진향리(眞香里)
- 수옥리(水玉里)
- 순영리(巡營里)
- 이향리(履鄕里)
- 대찰리(大察里)
- 하수구리(下水口里)
- 장별리(將別里)
- 계리(鷄里)
- 관후리(舘後里)
- 상수구리(上水口里)
- 신양리(新陽里)
- 경창리(景昌里)
- 죽전리(竹典里)
- 감점리(監店里)
- 이문리(里門里)
- 채관리(釵貫里)
- 평천리(平川里)
- 서성리(西城里)
- 당산리(堂山里)
- 인흥리(仁興里) - 대동군청 소재지
- 능라리(綾羅里)
- 동대원리(東大院里)
- 신리(新里)
- 선교리(船橋里)
- 양각리(羊角里)
- 구정리(九井里)
- 서내리(西內里)
- 봉수리(鳳岫里)
- 대타령리(大馳嶺里)
- 내리(內里)
- 상흥리(上興里)
- 감북리(坎北里)
- 용흥리(龍興里)
- 미산리(嵋山里)
- 청암리(淸巖里)
- 오촌리(鰲村里)
- 의암리(衣巖里)
- 문수리(紋繡里)
- 율리(栗里)
- 대신리(大新里)
- 불당리(佛堂里)
- 장진리(將進里)
- 오야리(梧野里)
- 정백리(貞柏里)
- 석암리(石巖里)
- 토성리(土城里)
- 조왕리(助王里)
- 사동리(寺洞里)
- 빈리(蘋里)
- 미림리(美林里)
- 추을리(秋乙里)
- 송신리(松新里)
- 장지리(長池里)
- 신동창리(新東倉里)
- 장천리(將泉里)
- 구동창리(舊東倉里)
- 칠산리(七山里)
10. 기타
- 이름에서 보듯 평양냉면의 본진이다. 실제로 북한 사람이든 탈북민이든 실향민이든 서북 출신들이 평양냉면에 갖는 자부심은 매우 대단한데, 그래서 옥류관을 북한 입장에서 아주 띄워주고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았으며 하루 5천~1만 2천 그릇이 나간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8세기 조선왕조 시절 평양에는 '냉면 거리'가 있었는데, 현재의 옥류관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정확하게 그 평양전도에 나타난 냉면가 중심의 대동강변 쪽에 있다.
- 평양의 지역신문은 평양신문 이다.
- 2009년 4월 16일: 평양에서 엔하위키(당시 명칭)에 접속한 사실이 대시보드에 기록되어 뭇 위키러들이 "김뽀글도 위키니트냐?"며 경악했다. 다수의 위키러들이 목격했고, 이에 운영진이 즉각 로그 추적에 나섰지만 어찌된 일인지 위키와 자게 쪽 로그에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대시보드 공급자가 IP 분류를 잘못해서 다른 국가의 아이피가 북한 쪽으로 분류되어 오류가 일어난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지만 리그베다 위키에 달린 대시보드는 북한 접속도 추적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모를 일이 되었다(…). 결국 그 이후에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나, 2010년 2월 23일에 북한에서 리그베다 위키에 접속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62명이나 접속하는 듯. 근데 사실 2012년 6월엔 한국어 위키백과를 북한 정부가 반달한 일이 있어서(…)[80] 대부분은 보위부 산하 정보전 전담 조직이나 김책공대 같은 곳으로 추측. 사실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기구에서는 학술 목적으로 인터넷을 연결해놓고 있기 때문에 학술 목적의 검색 도중 우연히 접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 2013년 11월: 스웨덴의 속옷 회사 비외른 보리에서 세계의 도시를 선정해 자사의 섹시 팬티를 공중투하하는 이벤트를 하기로 했는데, 소문을 들은 한국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평양이 선정되었다. 반 장난성으로 선정되었지만 이 대인배 회사는 정말로 했다. 규모는 좀 줄어서 조촐해졌지만. 외국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수준. 자세한 내용은 평양 속옷투하 참조. 그전에는 저스틴 비버의 월드 투어 예정지로 북한의 평양이 안티팬들의 트롤링으로 추천당했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 2014년 5월: 평양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 배틀필드 4의 새로운 DLC에 평양을 배경으로 하는 맵이 나 것이라는 루머가 나왔으며 사실상 스크린샷 등지에 나오는 북한의 선전문구 등으로 인해 기정사실화된 상태. 게다가 DLC소개 문구 중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폭군의 기념물사이에서 시가전을 벌이세요!" 라는 문구가 삽입되있다고 하여 확인사살. 그리고 실제로 맵이 나왔다.. 아쉽게도 김일성동상은 파괴하지 못한다.. 자세한 것은 배틀필드 4/맵#s-6.3 문서를 참조.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세계관에서는 이곳에 템플 오브 노드가 세워질 정도로 Nod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거점 중 하나로 나온다. 더 재미있는 건 같은 시기에 서울은 GDI 지역사령부가 있고 한반도 전체가 블루 존에 속하는 등 GDI의 중요한 거점이었다는 것. 이 기묘한 관계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 2015년 4월 27일 발매한 영국 밴드 블러의 8집 앨범 The Magic Whip의 10번 트랙 제목이라는 것이 2월 19일에 발표되었다. 멤버 데이먼 알반이 평양 관광 중 느꼈던 것을 담은 곡이라고. 참고로 그는 양각도 호텔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고 아리랑 공연을 봤으며 김일성광장 등을 둘러봤다고 한다. 데이먼이 찍은 평양의 영상은 'Blur - The Magic Whip: Made in Hong Kong'이란 영상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 'Everyday Robots'의 수록곡 'Heavy Seas Of Love' 뮤직비디오에도 평양의 모습이 나온다. 자세한 것은 블러 및 데이먼 알반 문서 참고.
- 2016년 8월 3일: 경비행기를 타고 평양상공을 관람하는 관광상품이 소개되었다.
- 2016년 스팀 유저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가 공개되었는데 점 하나가 북한 평양에 찍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
- 평양역에서 1994년 4월 15일 오전 5시 ‘김일성 장군의 노래’같은 음악을 틀어놓은 뒤로 계속 시보 기능으로 이런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한다. 2001년 2월 16일부터는 현재와 같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라는 김정일이 만들었다고 주장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다고 한다. # 유튜브에서는 외국인 방문객들이 초현실적이고 음산한 음악이 아침 5시, 6시, 7시, 간혹 자정에도 울려퍼진다는 반응을 드러내며 이를 촬영한 영상을 찾을 수 있다. 구체적인 음악을 틀어놓는 시간대는 그때그때 다른 듯하다.
- 주민종합 편의시설이라는 '해당화관'이라는 건물은 북한에서 유일하게 지하주차장이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
10.1.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1] 평양직할시 인민위원회 소재지 좌표. 일제강점기부터 평양부청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2] 2019년 12월 기준 통계청 공식 자료[3] 설명에 따르면 북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체제 선전 동영상'''은''' 아니며, 실제로 이런 모습은 일부 평양 시민에게는 일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양은 외국인이 다닐 수 있는 지역이 정해져 있으며, 이곳에서는 아무리 살펴봐도 깨끗한 풍경만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 심지어 평양 지하철에서는 옷차림도 제지할 수 있다. #[4] 여기서 구역은 우리나라의 자치구와 거의 같다.[5] 대구, 인천보다 인구가 많은지는 추정에 따라 다르다.[6] 대동강 서쪽 평양 중심부(본평양)뿐만 아닌, 대동강 동쪽의 동평양을 위성으로 보면 허름한 집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는 노동자들이 주로 산다고 한다.[7] 안은 안주시이다.[8]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루나'는 평양의 순우리말에 해당되는 단어를 이두식으로 읽은 것이고 평양의 순우리말을 현대 한국어식으로 나타내보면 벌판을 의미하는 '벌'과 하천을 의미하는 '내'를 합쳐 '벌내'로 표기할 수 있다. '부루나'와 서라벌의 이두식 발음인 '서부루'의 '부루'라는 공통된 표기, 서라벌의 신라시대 재현음인 '*ᄉᆡᄫᆞᆯ[\*sɔjβɔl\]'과 '서부루', '벌내'와 '부루나'의 차이를 비교해볼 때 '부루나'는 발음상으로 실제 순우리말과는 거리가 멀 확률이 높다.[9] 그래서 조선 후기 평양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상인들을 유상(柳商)이라고 불렀다.[10] 서울역-동대구역 경부본선 이용시 약 325km, 경부고속선 이용시 약 285km.[11] 용산역-광주송정역 호남본선 이용시 약 345km, 호남고속선 이용시 약 300km.[12] 출처: 여기에서 북한통계>인구일제조사>2008>인구>도, 시/구역/군, 도시/농촌별, 성별인구 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13] 이 자료는 2008년 북한에서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알아낸 자료이다.[14] 사실 원래는 북한의 재침을 걱정해서 아예 강남을 수도로 삼고 한강을 북쪽 방어선으로 삼으려던 계획도 있었으나 결국 둘이 합쳐져서 원래대로 강북을 복원하면서 강남도 서울에 편입시켜서 지금의 서울이 완성된 것이다.[15] 다만 강남지역이 처음 평양에 흡수된 것은 해방 이전이다. 서울특별시도 1936년에 한강 이남 일부인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16] 물론 서울의 광화문같은 곳에는 정부기관이나 공공시설있긴 하지만, 이건 예외의 사항이다.[17] 도시 구조가 강에 둘러싸 지역이 마치 배와 같은 지형을 뜻한다. 남한에는 청주시가 행주형의 지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산에 의해 둘러싸인 지역을 장방형이라고 하는데, 개성과 경주가 이러한 지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18] 풍수의 모자라는 바를 채워주는 인공 지형물을 뜻한다.[19] 1973년 이후 관측된 평양 최저기온은 2001년 1월 12,15일 -26.5℃이며, 비공식적으로 1917년 1월, 1920년 1월에 기록한 -28.5℃라는 기록이 남아있다.[20] 서울의 12~2월 평균 강수량은 각각 21.5, 20.8, 25.0mm이다.[21] 다만 서울~평양 거리는 서울~전주 거리와 비슷하므로 아주 먼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가까운 편도 아니다. 개성이 오히려 60km밖에 안 떨어져 있어 훨씬 가깝다.[22] 대한제국 말기 즐겨 불러진 평양가 1절의 가사이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 모두 평양에 도읍했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인데, 후술 하듯 상징적인 표현일 뿐 고조선 후기와 고구려 장수왕 ~ 보장왕까지의 수백년만 수도였다.[23] 보통 연나라 소왕이 진개를 보내 고조선을 격파한 해를 기원전 281년으로 보기 때문에 그 이후에 요동 지역에서 평양 일대로 수도를 옮겼을 것이라는 게 현재로선 다수설이다.[24] 921년부터 1136년까지 215년간 고려 '제2수도'였으며 수도로서의 서경의 입지는 훈요십조, 지방행정, 분사제도, 서희의 담판 발언, 서경별곡 등에서 드러난다. 1136년 묘청의 난 이후 서경의 지위는 '부수도' 지위로 격하되어 개경이 아닌 동경, 남경의 그것과 비슷해졌다.[25] 중심지 이동설에 따라 고조선 후기에만 평양 일대가 수도였던 것이 다수설이다. 고조선 문서 참조.[26] 건국 자체는 오녀산성(졸본)에서 이루어졌고 2대 왕인 유리왕 대에서는 국내성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미천왕이 한사군을 축출한 이후 평양의 중요도가 늘어나다가 장수왕 대에 들어서야 수도가 된 것.[27] 개경, 동경, 서경. 서경은 특히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로 인해 수도 개경보다는 격이 낮으나 동경과 남경보다는 격이 높은 제2의 수도였다. 다만 묘청의 난 이후로 격하당해 분사제도가 폐지되어 동경, 남경과 격이 같아지고 원간섭기 이후 고려 말에는 제2도시 위상을 남경에게 빼앗긴다.[28] 남한에서도 물론 고조선이나 고구려, 고려를 우리 역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남한에선 어디까지나 우리 역사 중 일부분이고 백제나 신라, 조선 등과 대등하게 서술해 균형을 지키려 노력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정통 왕조로서 대놓고 북부지방 왕조를 편애하고 반대로 신라, 백제나 조선, 대한민국 같은 중남부지방에 중심지를 두었던 국가를 직접적으로 깎아내리는 서술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29] 남한도 북한처럼 북부 지역의 왕조를 깎아내리는 서술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세뇌교육을 하는 나라가 아니어서인 이유가 가장 크긴 하지만(...) 북부의 정통성도 동시 계승하려고 하는 남한 입장에서는 북부 왕조를 깎아내릴 이유가 딱히 없으며, 북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면 고구려나 발해처럼 민족적으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대국들이 부정되기 때문인 것도 있다. 잘못하면 우린 이렇게 작은 나라들만 나라꼴이었고 저렇게 땅덩이만 큰 놈들은 바보였으므로 큰 나라는 필요 없다는 뉘앙스가 될 수 있다.[30] 대만도 2000년도 중반까지 헌법상 수도가 난징이었으나 타이베이가 실질적인 수도이고, 민진당 정부에서 난징 = 명목상 수도라는 표현을 자제하게 되었다. 국민당 정부에서는 명목상 수도가 난징이라는 주장을 1년에 한 번씩 한다. 그나마 대만은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지만, 북한은 6.25 남침 때 몇 달간 서울을 점령해 본 게 고작이다.[31]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32] 북한으로 통하는 항공편이 많지가 않다. 이유는 당연히 수요 문제.[33] 남한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pyeongyang,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으로는 P'yŏngyang이다.[34] 종북이나, 극우 성향의 유튜브가 모두 있다. 정치관을 홍보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앞뒤가 안맞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35] 개성공단은 사업체 관련인이 한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역일 뿐이지, 관광지가 아니다.[36] 북한은 부패가 매우 심한 나라다. 정직하게 살면 굶어죽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평양에서도 빈번하다. 다만 이런 부패 행위 자체가 반드시 정권에 대한 불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이런 식으로 주관적으로 넉넉한 생활도 가능해 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37]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 전력 분배까지 돈주가 관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38] 당장 서울만 하더라도 미개발지역이 많은것을 생각하면 평양은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다.[39] 탈북자로,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아이들을 세뇌시키려는 이 정권은 뒤집힐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40] 실제로 북한 형법 제114조에는 "개인의 기업 및 영업죄"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대량의 이득을 얻으면 최대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징역)에 처한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법제데이터서비스에서 법령정보>북한법령으로 들어가 형법을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41]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부패로, 한국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과 사상적 통제의 약화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경제 문단 참조.[42] 앞서 언급했듯, 평양의 가난한 지역보다는 지방의 중견 도시가 잘 사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평안남도 평성 같은 곳은 치적 사업물이 별로 없어 다소 깨끗하지는 않아도 평양 못지 않게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전해진다.[43] 사실상 동일 노선.[44] 1978년에 개통되었던 기존 평양-남포 고속도로다. 남한으로 치면 경인고속도로 같은 포지션.[45] 실제 신안주에는 신의주 연장을 대비한 시설이 있다는 카더라가 있다.[46] 락랑과 평천을 잇는 충성의다리는 양옆을 전차궤도가 잡아먹어서...[47] 평양의 휘황찬란한 야경은 선전용이다. 2014년 들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여전히 밤시간대 평양시내의 민가 불빛이 어둡다고 증언하고 있다.[48] 도로를 보면 작은 점들이 찍혀있는데 용도는 교통관련이 아니라 이 쪽 관련이다.[49] 예를 들어 사리원에서 평양을 거쳐 안주나 신의주 등지로 가려 할 경우.[50] 평앙 출신 탈북자들에 의하면, 출퇴근 시간에는 원래 교통 체증이 있었다고 한다.[51] 일본에선 시내에 자리한 JR노선도 광역전철(한국으로 치면 수도권1호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처럼)처럼 타고 다니니 어떻게 보면 철도망이 이렇게 보이는 것이라 할 수도. 그리고 우리나라도 2000년 까지만 해도 경의중앙선 용산~청량리 구간과 일산선, 과천선, 안산선, 경인선 같은 광역전철 구간을 국철이라 부르기도 했다.[52] 당시 4호선은 강북 지역에서 한 바퀴 돌아서 리본 모양으로 빠져나가는 형태였다.[53] 주로 은정구역과 평성시에 밀집된 과학자들을 유사시에 평양시내의 대피시설로 불러들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54] 일반적으로 앞의 두 노선과 '''만경대(송산)-송신''' 노선을 하나로 묶어 3개 노선으로 설명하는데, 대략 2000년대 초반 평양역-주체사상탑 구간이 철거되었다. 이 구간에서 대동강을 건너는 대동교가 워낙 좁은 다리다 보니 교통체증(!)이 심해져 철거한 것으로 추측된다.[55] 다만 송신-동평양백화점 노선도 송신종점 - 송신2동 구간은 가변차로로 운행중이다.[56] 라선시는 경제무역지대라 북한에서는 평양 다음으로 부유하고 라선시 대표단은 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다.[57] 여기서 말하는 서울 말씨는 상경민들의 영향으로 지방 억양이 가득 섞인 요새 서울말이 아니라 평양 쪽 사투리의 '억양'과 비슷하게 들리는 옛 서울 사투리다.[58] 일본 국회의사당과 비슷하게 생겼다.[59] 과거 평양의 대표적 유적으로 유명했으나, 6.25 전쟁기 폭격으로 파괴됨.[60] 원래 모란대에 있었으나 현재는 본전과 대문만 남아 평양학생소년궁전 곁으로 옮겨졌다.[61] 여기서 구역은 우리나라의 자치구와 거의 같다.[62] 1991년 국제 앰네스티의 폭로로 승호 수용소가 전 세계에 까발려졌고, 1994년에 김일성이 죽자마자 김정일이 전격적으로 승호 수용소를 폐지했다.[63] 과거 북한 정권의 수도(였)다는 점을 보면 서울과 함께 특별시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있다. 다만 이럴 경우 평양보다 인구가 더 많은 부산광역시에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산은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평양은 통일 이후 북한 지방 인구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평양특별자치시 제안도 있긴 하나,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는 광역행정구역으로 삼기에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은 지역을 행정수도로 삼기 위해 억지로 광역자치단체로 만든 것에 가깝다. 반면 평양은 이미 250만 명 이상으로 광역시로 승격되기엔 인구가 충분하다. 특자시 논의를 할 만 한 곳은 위상에 비해 인구가 적은 개성시와 나진시. 그 외엔 북한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특별시가 직할시보다 급이 낮아서, 평양특별시라는 이름이 될 경우 구 북한인 입장에선 평양이 강등당한 느낌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는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64] 심지어 네이버와 구글에는 평양광역시가 자동완성에 뜬다.[65] 다만, 이 경우 명칭은 어감 문제 등으로 직할시가 아니라 명칭을 새로 만들 가능성도 높다. 이미 과거 1963년부터 1994년까지 '''부산직할시(1963년), 대구직할시(1981년), 인천직할시(1981년), 대전직할시(1989년), 광주직할시(1986년)'''가 있었다가 나중에 광역시로 전환한 것이었기 때문에...[66] 인구 규모만 놓고 보면 서울과 부산에 이어 통일한국 제 3의 도시이다. 인천보다 조금 크다.[67] 물론 고구려나 고려시대의 중심지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동아시아 안에서라면 모를까 동아시아 밖으로 나가면 평양의 인지도가 절대로 긍정적이지가 않다는게 문제지만... 물론 이것도 평양을 개발해서 "평양의 환골탈태"식으로 세상에 알리면 회복할수 있다.[68] 다만 이는 강남군 등도 포함했을 때의 이야기다.[69] 물론 704년 고구려사에서의 수도 중에서는 424년간 수도였던 국내성이 가장 오래갔지만 국내성보다 평양성이 지리적 이점이 더했고, 안학궁 등이 세워지며 번영했다. 그리고 국내성은 건국 초기와 발전, 성장기에 수도였던 데에 반해 평양성은 최대 판도를 이룬 전성기와 삼국통일전쟁 시기에 수도였다는 점도 의미 있다. 다만 국내성의 고구려사 내 중요성이 평양성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일단 국내성기가 183년이나 더 길고 그때문에 집안 지역이 평양보다 고구려 유적이 더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313년 이전에는 평양이 고구려 영토가 아니었다. 즉 704년 사직 중 절반인 349년간은 평양은 고구려 소속조차 아닌 것. 또한 국내성은 평양 천도 이후에도 고구려의 제 2수도로서 마지막까지 정치적 중요성을 잃지 않았다. 평양에서 밀려난 연남생이 국내성을 본거지로 삼은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70] 전술했다시피 고조선, 고구려, 북한 정권의 수도였고, 고려, 조선 당시에도 제2도시 역할을 했다.[71] 고려시대(+ 조선 극초기)를 제외하곤 개성의 위상이 평양보다 위였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경주도 수도론 오래 가봤지만 신라만의 수도이기에 고조선, 고구려, 고려, 북한 등 여러 시대의 수도였던 전적이 있는 평양엔 밀린다. 평양을 앞서는 유일한 도시는 서울밖에 없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백제,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등 여러 시대의 수도였는데 수도 지속 기간이 평양보다 두 배 이상 길다.[72] 특히 개성은 수도 이전 후보로도 많이 언급되는 곳이며, 당장 '''원주'''와 함께 경의중앙선 전철의 연장 최우선지가 되는 곳이다.[73] 단 해당 항목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문화 유적지와 특히 지형적인 문제로 인해 수도 이전 후보지로서 제약이 많다.[74] 미유키마치가 있긴 한데, 한국어가 '행정'이 아닌 '향정'으로 적혀있다. 참고로 미유키는 幸의 일반적인 독음은 아니다.[75] 하시구치마치가 있긴 있는데, 한국어가 '교구정'이 아닌 '교정'으로 적혀있다.[76] 와카마츠초가 있긴 한데, 한국어가 '약송정'이 아닌 '송정'으로 적혀있다.[77] 참고로 한국어가 '암정'이 아닌 '엄정'으로 적혀있으나, 단순한 오자로 추정된다.[78] 하마마치가 있긴 한데, 한국어가 '빈정'이 아닌 '함종'('함정'에서 반달표가 빠진 것으로 추정)으로 적혀있다.[79] 광복 직전 대한민국 내 시(당시에는 부)에 가장 많던 지명 중 하나였다. 심지어 포항시는 이를 분동하여 동빈1가동, 동빈2가동, 남빈동으로 남아있다.[80] 그리고 나무위키가 리그베다 위키시절이었을 때도, 김일성 문서를 북한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반달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