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 Need
[image]
All I Need는 일본의 비주얼계 밴드이다.
2000년경의 공식 사이트 모습.
All I Need는 1995년경 아키토(Akito), 마르(Mar),하야시(Hayashi), 타마키(Tamaki) 이 4인이 모여 도쿄에서 결성되었다. 아키토와 타마키는 이전에도 밴드 Virgin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1] , 나중에 하야시와 마르가 합류한 뒤에 1996년에 데모 테이프들을 발매하며 인디생활을 시작했다. 비슷한 비주얼계 밴드 Galla의 멤버들과 교류를 쌓게 되었고, 후에 이들은 Galla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2] 다만 Galla와 달리 이들은 브릿팝과 영국의 락 트랜드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 등, '소프트계'로 분류되어서, 사운드에서는 Galla와는 음악적인 성향차이가 있다. 그 외에도 Break Out 출연과 신풍괴도 잔느의 오프닝으로 유명한 Lastier와도 연결짓는 리스너들이 종종 있다.
아무튼 이들은 Galla와 달리 길거리 공연은 그다지 하지 않았고, 소극장을 전문으로 돌면서 2부작으로 "Headline Collection" 투어를 돌아 인디 씬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지 않고도 저명인사가 된다. 이 Headline Collection 투어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All I Need는 이전의 Headline Collection 투어의 후속투어 격인 'Shining Growing Up Baby' 투어와 'Smooth Or Rough' 투어를 앞으로 있을 정규데뷔 앨범을 위해 계속 돌게 된다.
[image]
[image]
1997년 11월 11일, All I Need는 Galla의 멤버인 유지 다나카의 도움을 받아 첫 정식 데뷔앨범인 "Beauty Maniac"을 발매하고, 이 앨범이 히트하게 되어 All I Need는 단번에 인기 밴드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를 본 Polydor 레코드 일본지사의 스태프는 인디시절부터 All I Need를 인상깊게 보아 이들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이들은 1998년부터 Polydor 레코드 산하로 들어가 정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image]
1998년 5월 20일, All I Need는 Polydor 레코드로 옮기고 나서 내는 첫 메이저 데뷔싱글인 "Running Over Me"를 발매한다. Running Over Me는 Galla의 데뷔 싱글인 죄의 처벌처럼 오리콘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언더 인디시장에서의 반응만큼은 Galla보다는 뜨거웠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셈.
[image]
(싱글 2집 키즈아토.)
[image]
(정규 2집 상상의 저편.)
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고 같은해 9월 23일에 싱글 2집 키즈아토"(傷跡)"를 발매하였으며, 연달아 11월 11일[3] 에는 정규2집 "소조 노 카나타(상상의 저편, 想像の彼方)"을 발매한다. 이 두 앨범은 이들의 음악성이 인디와 비주얼 계를 벗어나, 그들만의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키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평을 받으며 이들의 디스코그래피 중 중요한 역할이 된다. 또한 이때가 All I Need의 인기가 최절정일 때여서, 이때 팬클럽 '''Beauty Maniac'''[4] 을 창단하는 등, 괄목성대하게 성장한다.
(1999년 3월 3일 발매된 싱글 3집 "7장의 지도".)
1999년은 메이저 데뷔 직후 KIT POP HILL 98' 참전 등의 굵직한 이벤트가 포진되었던 전년도와는 달리 대외적인 유명 이벤트에 등장하는 횟수는 적었지만, 7장의 지도와 같은 싱글들의 PV 촬영이나 자잘자잘한 규모의 장기 투어 등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image]
[image]
그러나 다행히도 1999년 12월 1일, 절치부심하여 발매한 정규 3집 "Sigh"로 All I Need의 숨통은 트이게 되었고, 어느정도 앨범 수익이 생기자 2000년 1월부터 3월까지 소극장서 7th Avenue까지 도는 등 대규모로 투어를 돌았다. Sigh는 그들이 발매한 정규앨범들 중 성적은 가장 높았다. 특히, 이때는 메이저 잡지인 サァカス(사~카스)지의 99년 12월호 커버모델로 서기도 하는 등, 데뷔 초 이후 최고로 선전하던 기간이었다.
[image]
(싱글 6집 You.)[5]
싱글 6집 You의 활동도 어느정도 잘 풀리었고, 이전의 투어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거대한 규모로 계획한 3부작 투어 "To the lost children, in the generation" 투어와 함께 화보도 새로 찍어 한동안 앨범이 없어도 All I Need는 2000년 한 해동안 바쁜 나날을 보내었다.
[image]
그리고 2000년 11월 15일, All I Need는 정규4집 Face And Back Unity를 발매하고 활동을 이어가던 찰나, '''문제가 발생한다.'''
2000년 12월, Polydor 레코드와의 불협화음이 문제가 되어 '''All I Need는 레코드에서 방출되고, 그것까지 모자라 해체까지 시키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자 All I Need의 팬클럽이었던 Beauty Maniac이 '''격렬한 항의를 해'''이들은 다행히 해체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Polydor 레코드에서 방출되었고, 과거의 인디 경력을 되살려 밴드 멤버들이 All I Need의 모든 것을 책임하는 Beauty Maniac Company를 설립해 2001년 4월까지 공연을 이어오다 결국, 해체하고 만다.[6]
라이벌격 그룹으로 회자되던 Galla보다 좋지않은 환경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콘 차트 인까지는 못했지만 롱 런을 한 덕에 장수할 시 좋은 성과를 장기적으로 낼 수 있는 밴드로 평가되었으나 전술한 소속사의 문제로 아쉽게 사라졌다는 평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팬클럽의 결속력이 낮았다보니 현재[8] 는 '그런 밴드가 있었지' 정도로 전락한 상태.안습. 다만 아키토의 SNS 계정을 중심으로 현재는 팬들이 다시 결집되 생일축하 메세지 러쉬를 이어나가는 등, 다시 높은 결집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르(마사유키)의 개성넘치는 기타 연주, 타마키의 연륜있는 드럼, 하야시의 부드러운 베이스에 보컬인 아키토의 목소리가 모두 인상적이다. 아키토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처음에는 답답한 느낌을 안길수도 있으나, 몇번 듣다보면 호소력 짙은 감성에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또 Galla와 달리 All I Need는 보컬인 아키토가 All I Need의 거의 모든 활동을 직접 프로듀싱 했다보니 그의 역량이 부각되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 역시 시작은 Galla와 같이 인디로 시작하다 보니 상당히 밝은 사운드의 인디 록을 전문적으로 하였으며, 1집앨범 Beauty Maniac으로 오버그라운드 시장에서 그들만의 인디 록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으로 'ガラス細工'와 타이틀곡 'Beauty Maniac' 같은 공격적인 넘버가 대표적. 그러나 Beauty Maniac 앨범에서는 인디 락 사운드 이외에도 'So Blue'와 'Travel In Space'로 선보인 애수 락, 'absorbed'의 브리티시 락 사운드 등으로 다양한 장르 스펙트럼을 선보여 그들의 다채로운 음악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Polydor Japan에서 메이져 데뷔를 한 이후에는 레코드의 영향 때문인지[9] 브리티시 사운드로서의 성향이 더욱 짙어지고, 밴드의 거의 모든 프로듀싱을 맡던 아키토의 역량또한 발전하면서 정통 브리티시 락, 락발라드 풍의 사운드로 밴드의 음악적 성향을 재편하게 된다. 물론 '7장의 지도'라던가, 정규앨범 내의 수록곡 몇곡 등 기존의 인디 락 사운드를 선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브리티시 락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계로 밴드는 다시 발돋움한다. Galla가 싱글 '페로미스트'를 기점으로 미국에서 유행하던 뉴 메탈과 얼터너리브 락을 접목해 일본에서 시도하다 실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image]
'''아키토 (Akito)'''
'''마르 (Mar)'''
'''하야시 (Hayashi)'''
'''타마키 (Tamaki)'''
Ameblo 블로그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특이사항: 서프사이드 하이스쿨 애니메이션 오프닝
차트진입 실패
차트진입 실패
All I Need는 일본의 비주얼계 밴드이다.
2000년경의 공식 사이트 모습.
1. 개요
1.1. 데뷔 전
All I Need는 1995년경 아키토(Akito), 마르(Mar),하야시(Hayashi), 타마키(Tamaki) 이 4인이 모여 도쿄에서 결성되었다. 아키토와 타마키는 이전에도 밴드 Virgin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1] , 나중에 하야시와 마르가 합류한 뒤에 1996년에 데모 테이프들을 발매하며 인디생활을 시작했다. 비슷한 비주얼계 밴드 Galla의 멤버들과 교류를 쌓게 되었고, 후에 이들은 Galla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2] 다만 Galla와 달리 이들은 브릿팝과 영국의 락 트랜드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 등, '소프트계'로 분류되어서, 사운드에서는 Galla와는 음악적인 성향차이가 있다. 그 외에도 Break Out 출연과 신풍괴도 잔느의 오프닝으로 유명한 Lastier와도 연결짓는 리스너들이 종종 있다.
아무튼 이들은 Galla와 달리 길거리 공연은 그다지 하지 않았고, 소극장을 전문으로 돌면서 2부작으로 "Headline Collection" 투어를 돌아 인디 씬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지 않고도 저명인사가 된다. 이 Headline Collection 투어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All I Need는 이전의 Headline Collection 투어의 후속투어 격인 'Shining Growing Up Baby' 투어와 'Smooth Or Rough' 투어를 앞으로 있을 정규데뷔 앨범을 위해 계속 돌게 된다.
1.2. 데뷔 후
[image]
[image]
1997년 11월 11일, All I Need는 Galla의 멤버인 유지 다나카의 도움을 받아 첫 정식 데뷔앨범인 "Beauty Maniac"을 발매하고, 이 앨범이 히트하게 되어 All I Need는 단번에 인기 밴드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를 본 Polydor 레코드 일본지사의 스태프는 인디시절부터 All I Need를 인상깊게 보아 이들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이들은 1998년부터 Polydor 레코드 산하로 들어가 정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1.3. Polydor 레코드 시절
[image]
1998년 5월 20일, All I Need는 Polydor 레코드로 옮기고 나서 내는 첫 메이저 데뷔싱글인 "Running Over Me"를 발매한다. Running Over Me는 Galla의 데뷔 싱글인 죄의 처벌처럼 오리콘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언더 인디시장에서의 반응만큼은 Galla보다는 뜨거웠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셈.
[image]
(싱글 2집 키즈아토.)
[image]
(정규 2집 상상의 저편.)
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고 같은해 9월 23일에 싱글 2집 키즈아토"(傷跡)"를 발매하였으며, 연달아 11월 11일[3] 에는 정규2집 "소조 노 카나타(상상의 저편, 想像の彼方)"을 발매한다. 이 두 앨범은 이들의 음악성이 인디와 비주얼 계를 벗어나, 그들만의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키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평을 받으며 이들의 디스코그래피 중 중요한 역할이 된다. 또한 이때가 All I Need의 인기가 최절정일 때여서, 이때 팬클럽 '''Beauty Maniac'''[4] 을 창단하는 등, 괄목성대하게 성장한다.
(1999년 3월 3일 발매된 싱글 3집 "7장의 지도".)
1999년은 메이저 데뷔 직후 KIT POP HILL 98' 참전 등의 굵직한 이벤트가 포진되었던 전년도와는 달리 대외적인 유명 이벤트에 등장하는 횟수는 적었지만, 7장의 지도와 같은 싱글들의 PV 촬영이나 자잘자잘한 규모의 장기 투어 등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image]
[image]
그러나 다행히도 1999년 12월 1일, 절치부심하여 발매한 정규 3집 "Sigh"로 All I Need의 숨통은 트이게 되었고, 어느정도 앨범 수익이 생기자 2000년 1월부터 3월까지 소극장서 7th Avenue까지 도는 등 대규모로 투어를 돌았다. Sigh는 그들이 발매한 정규앨범들 중 성적은 가장 높았다. 특히, 이때는 메이저 잡지인 サァカス(사~카스)지의 99년 12월호 커버모델로 서기도 하는 등, 데뷔 초 이후 최고로 선전하던 기간이었다.
1.4. 2000년
[image]
(싱글 6집 You.)[5]
싱글 6집 You의 활동도 어느정도 잘 풀리었고, 이전의 투어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거대한 규모로 계획한 3부작 투어 "To the lost children, in the generation" 투어와 함께 화보도 새로 찍어 한동안 앨범이 없어도 All I Need는 2000년 한 해동안 바쁜 나날을 보내었다.
[image]
그리고 2000년 11월 15일, All I Need는 정규4집 Face And Back Unity를 발매하고 활동을 이어가던 찰나, '''문제가 발생한다.'''
1.4.1. Polydor 레코드의 일방적인 퇴출
2000년 12월, Polydor 레코드와의 불협화음이 문제가 되어 '''All I Need는 레코드에서 방출되고, 그것까지 모자라 해체까지 시키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자 All I Need의 팬클럽이었던 Beauty Maniac이 '''격렬한 항의를 해'''이들은 다행히 해체까지 가지는 않았다.
1.5. 해체
그러나 이들은 Polydor 레코드에서 방출되었고, 과거의 인디 경력을 되살려 밴드 멤버들이 All I Need의 모든 것을 책임하는 Beauty Maniac Company를 설립해 2001년 4월까지 공연을 이어오다 결국, 해체하고 만다.[6]
1.6. 해체 후
- 베이시스트 하야시는 All I Need 해체 후 같은 해에 "Spoonhead"라는 밴드를 세워 활동하였으나 2005년 Spoonhead가 해체되며 비주얼계를 은퇴하여 현재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 기타리스트 마르는 비주얼계 밴드인 8-13에 합류했으나, 8-13이 분할 활동으로 몇개월 후 해체되자 비주얼 계에서 은퇴하였다. 그러나 어느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자신만의 원 맨 밴드로 비주얼계에 복귀하였고, Galla 해체 후 떠돌고 있던 드러머 오하시 타카아키[7] 와 베이시스트 시노다 타츠야를 영입해 2003년에 원 맨 밴드를 청산하고 'Muff'를 새로 차려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Muff에서는 All I Need 시절의 예명이던 '마르'를 청산하고 본명인 타구치 마사유키로 활동하고 있다.
- 프론트맨이자 보컬이었던 아키토는, 잠시동안 비주얼락 밴드였던 'Hush'의 객원 보컬로 가입해 2004년까지 활동하였으며, 아키토는 그 후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Galla의 다나카 유우 등을 영입해 All I Need의 정규 1집 이름을 딴 '뷰티 마니아'를 시작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뷰티 매니아는 2006년을 끝으로 활동을 접게된다. 뷰티 매니아를 접게 된 아키토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07년에 밴드 Acalli을 결성해 활동을 이어가나, Acalli 마저도 밴드가 불화로 인해 2010년 활동중지 되어버렸고, 결국 아키토는 비주얼 씬에서 사라졌고, 그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던 도중 2015년 12월 31일에 자신의 웹사이트에 신년인사를 통해 조만간 돌아오겠다고 소식을 전했다. 이후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소식을 꾸준히 전해주는 중.
- 드러머였던 타마키는, 비주얼락 밴드인 Monkey★Spunk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며, 또한 아키토의 뷰티 마니아 프로젝트에 객원 드러머로 참여하는 등 여전한 의리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타마키는 불화로 인해 자의 반타의 반으로 뷰티 마니아를 떠났고, Monkey★Spunk 또한 2008년 해체되면서 비주얼 계를 떠나버렸다.
2. 전체적인 평가
라이벌격 그룹으로 회자되던 Galla보다 좋지않은 환경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콘 차트 인까지는 못했지만 롱 런을 한 덕에 장수할 시 좋은 성과를 장기적으로 낼 수 있는 밴드로 평가되었으나 전술한 소속사의 문제로 아쉽게 사라졌다는 평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팬클럽의 결속력이 낮았다보니 현재[8] 는 '그런 밴드가 있었지' 정도로 전락한 상태.안습. 다만 아키토의 SNS 계정을 중심으로 현재는 팬들이 다시 결집되 생일축하 메세지 러쉬를 이어나가는 등, 다시 높은 결집성을 보여주고 있다.
2.1. 음악성
마르(마사유키)의 개성넘치는 기타 연주, 타마키의 연륜있는 드럼, 하야시의 부드러운 베이스에 보컬인 아키토의 목소리가 모두 인상적이다. 아키토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처음에는 답답한 느낌을 안길수도 있으나, 몇번 듣다보면 호소력 짙은 감성에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또 Galla와 달리 All I Need는 보컬인 아키토가 All I Need의 거의 모든 활동을 직접 프로듀싱 했다보니 그의 역량이 부각되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 역시 시작은 Galla와 같이 인디로 시작하다 보니 상당히 밝은 사운드의 인디 록을 전문적으로 하였으며, 1집앨범 Beauty Maniac으로 오버그라운드 시장에서 그들만의 인디 록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으로 'ガラス細工'와 타이틀곡 'Beauty Maniac' 같은 공격적인 넘버가 대표적. 그러나 Beauty Maniac 앨범에서는 인디 락 사운드 이외에도 'So Blue'와 'Travel In Space'로 선보인 애수 락, 'absorbed'의 브리티시 락 사운드 등으로 다양한 장르 스펙트럼을 선보여 그들의 다채로운 음악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Polydor Japan에서 메이져 데뷔를 한 이후에는 레코드의 영향 때문인지[9] 브리티시 사운드로서의 성향이 더욱 짙어지고, 밴드의 거의 모든 프로듀싱을 맡던 아키토의 역량또한 발전하면서 정통 브리티시 락, 락발라드 풍의 사운드로 밴드의 음악적 성향을 재편하게 된다. 물론 '7장의 지도'라던가, 정규앨범 내의 수록곡 몇곡 등 기존의 인디 락 사운드를 선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브리티시 락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계로 밴드는 다시 발돋움한다. Galla가 싱글 '페로미스트'를 기점으로 미국에서 유행하던 뉴 메탈과 얼터너리브 락을 접목해 일본에서 시도하다 실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3. 멤버
[image]
'''아키토 (Akito)'''
- 본명 하시즈메 아키토(橋都 章人), 1월 10일 생으로 시즈오카 현 출신의 All I Need의 보컬 겸 서브 기타리스트이다. All I Need 가입 전 이미 결혼해서 현재는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으며, 아들은 지금 대학교에 다니면서 과거의 아버지같이 스쿨밴드 활동을 하고있다.
'''마르 (Mar)'''
- 본명 타구치 마사유키(田口 将之), 7월 3일 생으로 이바라키 현 출신의 All I Need의 메인 기타리스트이다. 1994년 Kalen이라는 비주얼계 밴드의 기타니스트로 활동했다. 당시 멤버로는 SIAM SHADE의 초대 드러머인 AI(現 Aiji Of LM.C)가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었다. 이후 1995년 ALL I NEED에 합류. All I Need 해체 이후 Muff를 결성해 현재는 일본 인디, 재즈 사운드 계에선 나름 유명한 인사로 발돋움했다. 여담으로, All I Need 멤버들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개인항목이 생성되었다.
'''하야시 (Hayashi)'''
- 본명 하야시 "Spike(스파이크)" 타카유키(林 "SPIKE" 貴之), 2월 9일 생으로 카나가와 현 출신의 All I Need의 베이시스트이다. '햐야시'라는 성씨 때문에 재일 한국인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는데, 비주얼계에서 은퇴한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여담으로 Spoonhead 해체 이후 Spoonhead의 멤버 아베카와가 Muff에 가입할 수 있도록 마사유키와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타마키 (Tamaki)'''
Ameblo 블로그
- 본명 타마키 테츠야(玉置 哲也), 9월 27일 생으로 와카야마 현 출신의 All I Need의 드러머이다. 2008년 Monkey★Spunk 해체 후에는 이런저런 밴드를 돌면서 세션으로도 활동하는 듯. 블로그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근황은 자주 올리는 편은 아니다.
4. 앨범 일람
4.1. 정규앨범
4.2. 싱글앨범
- Running Over Me? (1998 5/20,Polydor Japan)
차트진입 실패
- 傷跡(키즈아토) (1998 9/21,Polydor Japan)
차트진입 실패
- 七枚の地図(7장의 지도) (1999 3/3,Polydor Japan)
차트진입 실패
- She's So Lovely (1999 7/1,Polydor Japan)
차트진입 실패
특이사항: 서프사이드 하이스쿨 애니메이션 오프닝
- 愛情のスピード(애정의 속도) (1999 11/1,Polydor Japan)
차트진입 실패
- You... (2000 3/23,Polydor Japan)
차트진입 실패
[1] 정규2집 Sigh의 수록곡 Kiss Me는 이 시절 발매한 곡을 셀프 리메이크한 곡이다. Virgin이 All I Need의 전신임을 보여주는 대목.[2] 이들은 서로의 밴드가 해체된 이후에도 직ㆍ간접적으로 교류하며 친분을 쌓게된다.[3] 1년 전 발매되었던 정규 데뷔앨범 Beauty Maniac의 발매일이기도 하다.[4] 유래는 All I Need의 정규 1집 앨범.[5] 여담으로, 커버의 웃는 아기가 확실히 외도의 외도 베이비(...)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2ch에서 들려왔다.[6] 다만 2005년까지는 사이트 유지를 해 오면서 멤버들 간에 어느정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는 추정된다.[7] 다만 오하시는 2005년부로 은퇴해 악기가게와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다.[8] Galla의 경우는 밴드 해체와 동시에 팬클럽 'Makihegesan(마키히게산)'이 해체되었어도, 골수팬들이 몇몇 존재하여 이들이 재결성을 하는데 도움을 줄 정도로 멤버들과 교류가 상당했다. 심지어 기타를 맡던 유지 다나카가 Mixi에서 활동하던 팬들에게 인터넷이었지만 인사까지 남겼을 정도.[9] Polydor 레코드는 유니버셜 뮤직 산하의 영국 내 레이블로, 훗날 Klaxon, MGMT등의 메이저 아티스트들이 소속한다. 지금은 유니버셜 뮤직의 일본 사업부 정리로 없어졌지만 1990년대에는 일본에서도 서브 레이블로 진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Polydor Japan의 주력 아티스트들 중 ALL I Need가 하나였던 것.[10] 다만 수록곡의 숫자가 정규앨범치고 너무 적어, 현대의 기준으로는 EP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