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AM SH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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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ャムシェイド. 일본의 락 밴드이다. 활동시에는 아뮤즈 소속이었고, 재결성 후 독자적인 사무소로 독립했다.
1991년 3월에 "여자애들 사이에서 잘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히데키를 주축으로 히데키의 친구인 낫칭을 끌어들여 본 밴드의 전신이 되는 밴드인 POWER를 결성한다. 같은 해에 핫 웨이브 컨테스트에 참가하여 우승을 거머쥐게 되며, 덧붙여서 준우승을 한 밴드는 FIFTY50/FIFTY50라는 밴드였는데, 당시에 카즈마가 활동 중이던 밴드였다. POWER의 다른 멤버들이 탈퇴를 하는 덕분에 옛날부터 친구였던 다이타를 끌어들여보려고 했지만 음악성이 맞질 않는다는 이유로 바로 탈퇴했다. 그 후 지인이었던 아타루를 영입해 "아타루"라는 밴드를 결성.
1992년에는 FIFTY50/FIFTY50가 해체되고 LOVE JETS의 보컬을 하고있던 카즈마를 히데키가 "나 금방 관둘거니까"라고 말하며 멤버로 맞아들인다. 결국 히데키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트윈 보컬 체제를 성립하게 된다. 그 후 드러머인 에이를 영입.
1993년에는 파칭코(...)로 벌어들인 백만엔에 가까운 돈을 써서 4곡이 수록된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고 이와 동시에 밴드명을 SIAM SHADE로 개명. 같은해 7월에는 "역시 기타에는 다이타가 아니면 안돼"라는 이유로 당시 행방을 알 수 없었던 히데키의 어릴적 친구 다이타를 찾아내서 밴드에 가입하게 했다. 당시에는 비주얼 계 밴드에서 활동중이던 다이타는 굉장히 기다란 가발을 쓰고 라이브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94년 5월에는 준지가 가세. 같은 해 12월에는 첫 앨범인 SIAM SHADE가 오리콘 차트 첫 등장만에 2위에 오르게 되는 기염을 토했다.
1995년에는 원맨 라이브를 치름과 동시에 첫 싱글인 RAIN으로 메이저 데뷔. 그 후 1997년에는 6번째 싱글인 3분의 1의 순수한 감정(1/3の純情な感情)이 바람의 검심 엔딩 테마로 쓰여지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밀리언까지는 못 갔지만 7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럭저럭 히트. 이 곡은 후에 많은 밴드가 커버를 했다. 일본에서도 스쿨밴드 레벨에서는 최종보스격으로 취급되는 곡 중 하나.
그러나 그 이후 원 히트 원더로 남았다. 일본 웹에도 왜 SIAM SHADE가 안 팔렸는지 묻는 게시물이나 왜 SIAM SHADE가 망했는지에 대해 논하는 스레드가 있을 정도. 음반사가 빵빵하다보니 타이업도 많이 걸어줬는데 인기가 안 붙었고, 결국 2002년 V8 Final공연을 무도관에서 마치고 해체하였다.
2002년을 마지막으로 해체한 뒤에는 멤버 각자가 솔로활동이나 다른 밴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히데키[1] 는 DETROX라는 밴드 보컬로, 준지는 BULL ZEICHEN 88의 드러머 및 각트의 세션, 다이타의 경우는 솔로앨범 및 다른 아티스트들의 세션을 뛰다가 BINECKS의 기타리스트로, 낫칭의 경우에는 SEX MACHINEGUNS의 보컬인 ANCHANG과 THE YELLOW MONKEY의 ANIIE와 함께 BIG BITES를 결성했고, 카즈마의 경우는 츠치야 안나의 세션 및 Fifty50/50Fifty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중이다. 2007년에는 매니저 추모를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재결성을 한 적도 있으며, 2011년 7월에는 부흥지원을 위한 라이브를 개최할 것이라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하였다.
2000년 부산 록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광안리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멤버들이 장난기많고 가벼운 성격이기도 했고 스탭도 일어가 능숙치 않아 '공연 시작 전까지 좀 시간이나 때우다 오라'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정말로 공연시각 20분 전까지 전 멤버가 뿔뿔이 흩어져 스탭들이 찾느라 광안리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2011년 10월 21일에 지진부흥 자선 라이브 "SIAM SHADE SPIRITS ~ RETURN THE FAVOR ~ 2011.10.21 SAITAMA SUPER ARENA" 를 기점으로 새로운 싱글도 발표하고 2013년 10월 경에도 라이브 투어를 했다. 그러나 현재 확실히 재결합을 한 상황은 아닌 듯.
2007년에 사망한 SIAM SHADE의 치프 매니져 나카무라 신이치의 7주기 기념 콘서트 HEART OF ROCK SEVEN 투어를 실시.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와 Zepp Diver City에서 실시한 라이브를 DVD로 발매.
2015년 10월,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를 시작으로 데뷔 20주년 투어를 실시. 팬들을 위한 리더 NATCHIN의 요청으로 다시 모였다고 함.
2016년 2월부터 3월까지 Zepp 콘서트장 투어를 실시.
그리고 다가올 10월... 무도관을 포함한 세 곳에서 SIAM SHADE의 마지막 투어를 돌 예정.
본명은 이마무라 에이키. 1972년생으로 키가 184에 몸무게가 60이라는 경이적인 멸치몸매를 자랑한다(...). 원래는 지금의 목소리 톤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목 수술을 두번정도 받은 끝에 날카롭고 하이톤인 현재의 목소리가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린데다 터프하고 시원시원한 인상이나, 정작 성격은 굉장히 예민하고 감수성이 강하며,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팬들에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데, 배송료 문제로 팬과 다퉜다가 몇주간 삐져서 두문불출한 적도 있다. 기타리스트인 다이타하고는 어릴적부터 친구지만 지금은 약간 서먹한 사이. 초기의 명의는 'CHACK'였으나 밴드시절엔 'HIDEKI'로 활동했고, 솔로시엔 'HIDEKI'에서 변경한 '미라이' 명의로 활동했다.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커리어가 약간 깎이는 편인데, 학창시절부터 학교짱급 싸움실력에 야쿠자 아들내미를 비오는 날 먼지나게 팼다가 합의금도 뜯긴 일화도 전해지는데다 상기의 다이타와는 드잡이질해가며 싸운 적이 많고 ACID 이후 솔로 시절엔 같이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카즈와 싸워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힌 적도 있다. 여리고 마음이 약하지만 조금 욱하는 기질이 있는 듯. 97년경엔 스튜디오에서 다이타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대판 싸우고 밴드 더 못해먹겠다며 때려치우고 며칠 정도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팬들에게 발견되어 속히 스튜디오로 복귀하고 화해했던 흑역사도 존재할 정도지만, 그런 면모를 제한다면 뮤지션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친분관계도 괜찮다.
본명은 엔도 카즈마. 세컨드 기타와 세컨드 보컬 및 코러스를 같이 맡고 있으며 가끔 랩도 담당하는 멀티플레이어로 깁슨 레스폴을 자주 이용하는 기타리스트. 보컬도 괜찮게 잘 소화해내는 편이라 비비안 수와 함께 유닛을 결성해 기동전사 건담 SEED의 곡인 Moment를 부른 적이 있다. 그 외에도 세션 및 이런저런 활동을 병행했으며 기타프릭스의 수록곡인 아사키의 곡 You can't do it if you try 에도 참여. 아사키가 카즈마를 매우 존경한다고 한다.
본명은 이토 다이타. 리드 기타를 맡고 있으며 기타 실력으로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테크니션 중 하나지만 연주에 자기 나름의 맛이 약간 없다는 평도 간혹 듣는다. 어릴적에 잠시 브라질에 거주했던 적도 있으며 브라질에서 귀국한 뒤 히데키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만 히데키보다 먼저 데뷔하여 비주얼 밴드에서 기타를 치다 우연히 TV를 본 히데키에게 발견(...)되어 샴셰이드에 픽업되었다. 일본에서 열린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존 페트루치의 공연인 G3에도 일본측 대표로 초청된 적도 있으며 본인은 존 페트루치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듯. TV 무대에서 존 페트루치에게 사인을 받은 기타를 자주 가지고 출연했고 1대1 대담도 한 적 있다. ESP, 쉑터, PRS등 여러 모델의 기타를 사용하지만 거의 메인은 탐앤더슨의 드롭탑 클래식이나 자기가 만든 브랜드인 G-Life의 커스텀 모델을 사용.
여담인데 상당한 지한파로 서문탁의 일본 솔로앨범 프로듀스나 화산고의 OST를 맡기도 했고 잘 찾아보면 2002년 서울의 호프집에서 한일월드컵을 구경하다 4강 진출에 감격한 31세 이토 다이타 씨의 뉴스 인터뷰도 찾아볼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니메이션 광빠로 바람의 검심 엔딩곡 이후 이와오 준코와의 대담에서 덕임을 인증해버렸다. 팬도 많은지 성우인 시이나 헤키루는 무명시절부터 Siam shade의 팬이었는데 다이타에게 앨범의 기타 세션 및 작곡으로 참가해달라고 간청해 참여를 시켰으나 다이타의 곡에 자기 보컬이 전혀 따라가지 못해 좌절했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토 노이지의 이토 역시 이토 다이타의 이토를 따온 것.
커리어적으로는 지금은 은퇴한 일본의 유명 록 보컬리스트 히무로 쿄스케의 메인 기타리스트로서 세션을 오랫동안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0년대 초에 그의 서포트 멤버로서 처음 참여하여 2016년 히무로가 마지막 돔 투어를 기점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의 투어[3] 를 제외하면 그의 공연에 메인 기타로서 꾸준히 참여하였다. 히무로는 다이타를 단순한 서포트 멤버가 아닌, 자신의 페르소나급으로 대했으며 종종 자신의 공연에서 다이타만을 위한 독무대를 마련해 주어 다이타가 Singular point나 Emphatic line, Free 등 다이타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서포트 멤버들을 소개할 때도 늘 다이타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그를 가장 마지막에 소개했다. 그러한 입지 탓인 건지 공연을 보면 자신보다 훨씬 오랫동안 히무로의 세션을 해 왔던 베이시스트 '니시야마 후미아키'[4] 나 세컨드 기타 '혼다 타케시'[5] 가 열심히 코러스를 넣을 때도 다이타는 홀로 시크하게 기타만 칠 때가 많았다.
본명은 나카가와 타이. 베이스를 담당하며 피킹 위주의 안정적인 주법을 구사하는 베이시스트로 LUNA SEA의 J에게 사사하고 영향도 많이 받아 핑거링보다는 다운피킹 위주의 주법을 자주 구상하지만 J와는 달리 슬랩이나 풀링 등의 테크닉도 썩 괜찮아 Outsider나 Why not? 같은 곡에서는 피크를 버리고 슬랩 위주의 매우 화려한 플레이도 종종 보여준다. 실질적인 SIAM SHADE의 리더로 왜 리더가 되었느냐면 인디즈 시절 자기 집에서 살던 사람이 나틴 뿐이어서 어딘가에서 밴드 규모로 연락이 오면 나틴 혼자만 연락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대학에 진학하려 했으나 '대학교 가서 밴드하면서 힘들 바엔 밴드해서 성공한 다음 대학 가면 되잖아?'라는 히데키의 말발(?)에 휘말려 SIAM SHADE에 합류. 주로 뮤직맨의 스팅레이 모델이나 스펙터의 베이스를 사용. 밴드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품절남으로 여배우와 결혼했다.[6] 해체 이후엔 솔로 활동 위주로 활동하다 섹스 머신건즈의 멤버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슬프게도 노래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 해체 후, 'NATCHIN'으로 개명. 이유는 일본어 발음으로 낫친을 NATIN으로 썼으나, 외국인에게는 네이틴이라고 발음할 수 밖에 없다고 하여 개명. 솔로앨범 'FAITH', 'STAND'를 발매했으나 큰 인기는 얻지 못함. 그 후, 섹스머신건즈의 ANCHANG, The Yellow Monkey의 Annie와 함께 'BIG BITES'를 결성. 현재 활동중지 상태. 아이카와 나나세, SIAM SHADE의 보컬 HIDEKI 등의 라이브 세션맨으로도 활동 중. 2013년부터는쿠로유메의 히토키와 함께 비주얼계 밴드 CASCADE의 스페셜 멤버로 번갈아가면서 현재까지 서포트중이다. 2014년, everset의 보컬인 히무라 츠요시(Geno), a DROP OF JOKER의 여성 기타리스트 mi-ya (미야코:러브바이츠) 드러머 act. 와 함께 '21g'를 결성. 21grams 라고 읽는다. 현재 정규앨범 1장, 싱글앨범 3장을 발매. SIAM SHADE 시절엔 ESP의 본인 시그내쳐, 스펙터 베이스를 주로 사용. 현재는 G&L 엔도서로 공식 활동시(PV, 사진촬영 등) G&L 베이스로 연주를 하지만, 언제나 메인악기는 흰색 스펙터 베이스. 2019년 1월, 멤버들의 불화로 돌연 해산을 선언. 2019년 3월 8일 원맨 라이브를 끝으로 21g 해산. 정규앨범 2장, 싱글앨범 3장, 디지털 싱글 3장, 라이브DVD 2장 발매.
본명은 사쿠마 준지. SIAM SHADE의 드러머로 역시 LUNA SEA의 신야에게 사사했으며 한때 루나씨의 로드매니저도 맡아 LUNA SEA 초기 앨범의 스탭롤에 이름이 실려있기도 하다. 또한 마이크 포트노이의 상당한 팬. 그 광활한 드럼세트와 곡에서 흐르는 변박플레이는 포트노이의 영향. 신야와는 달리 파워보다는 탄탄하고 그루브가 살아있는 연주가 특징이며, 니시카와 타카노리와 GACKT라는 스타일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뮤지션들의 세션을 모두 맡았을 정도로 곡에 대한 이해력이 높다. 샴쉐이드 활동 당시 멤버들에게 자기가 쓴 곡을 다른 멤버가 쓴 곡보다 못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밴드의 막내이고 합류순서도 가장 마지막이며 막내로 귀여움을 받음과 동시에 밴드활동 내내 히데키와 다이타 두 괴수(?)의 싸움을 말리느라 가장 고생한 멤버 중 하나. 여타 멤버들보다 좀더 어려 보이고 선도 얇은 편이라 인기도 꽤 있지만 실상은 상당히 허당에 근접한 편이다(...). 베이시스트 Ikuo와 BULL ZEICHEN 88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니시카와 타카노리, 각트, Acid Black Cherry, Sound Horizon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션을 맡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아사키의 신곡 앨범에서도 드럼 세션을 맡은 바 있다.(...) YAMAHA나 PEARL의 드럼 세트를 사용함.
여담으로, SMAP 출신의 나카이 마사히로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다만 준지는 중퇴, 나카이는 전학을 가서 졸업은 하지 못했다는게 함정.. 2012년 SMAP×SMAP에 준지가 BLACK PIRATES의 드러머로 출연하며 기무라 타쿠야와 만나게 된다.
심한 오토바이 전복사고를 당한 적이 있으나, 2주 뒤 공연에 건강한 상태로 돌아와 멤버들을 놀래킨 적이 있다.
춤을 잘춘다. 그것도 매우(...). 이벤트성으로 각트의 GHOST를 연습해서 콘서트 때 각트와 각트의 팬들에게 선보인 적이 있는데, 각트 본인은 물론 팬들까지 쓸데없이 고퀄리티스러워 놀라다가 코믹스러운 표정(...) 때문에 빵 터졌었다.
넘버링이 안 붙은 'SIAM SHADE'는 인디즈 시절 발매한 앨범이다.
1. 개요
シャムシェイド. 일본의 락 밴드이다. 활동시에는 아뮤즈 소속이었고, 재결성 후 독자적인 사무소로 독립했다.
2. 역사
2.1. 결성
1991년 3월에 "여자애들 사이에서 잘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히데키를 주축으로 히데키의 친구인 낫칭을 끌어들여 본 밴드의 전신이 되는 밴드인 POWER를 결성한다. 같은 해에 핫 웨이브 컨테스트에 참가하여 우승을 거머쥐게 되며, 덧붙여서 준우승을 한 밴드는 FIFTY50/FIFTY50라는 밴드였는데, 당시에 카즈마가 활동 중이던 밴드였다. POWER의 다른 멤버들이 탈퇴를 하는 덕분에 옛날부터 친구였던 다이타를 끌어들여보려고 했지만 음악성이 맞질 않는다는 이유로 바로 탈퇴했다. 그 후 지인이었던 아타루를 영입해 "아타루"라는 밴드를 결성.
1992년에는 FIFTY50/FIFTY50가 해체되고 LOVE JETS의 보컬을 하고있던 카즈마를 히데키가 "나 금방 관둘거니까"라고 말하며 멤버로 맞아들인다. 결국 히데키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트윈 보컬 체제를 성립하게 된다. 그 후 드러머인 에이를 영입.
1993년에는 파칭코(...)로 벌어들인 백만엔에 가까운 돈을 써서 4곡이 수록된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고 이와 동시에 밴드명을 SIAM SHADE로 개명. 같은해 7월에는 "역시 기타에는 다이타가 아니면 안돼"라는 이유로 당시 행방을 알 수 없었던 히데키의 어릴적 친구 다이타를 찾아내서 밴드에 가입하게 했다. 당시에는 비주얼 계 밴드에서 활동중이던 다이타는 굉장히 기다란 가발을 쓰고 라이브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94년 5월에는 준지가 가세. 같은 해 12월에는 첫 앨범인 SIAM SHADE가 오리콘 차트 첫 등장만에 2위에 오르게 되는 기염을 토했다.
2.2. 데뷔
1995년에는 원맨 라이브를 치름과 동시에 첫 싱글인 RAIN으로 메이저 데뷔. 그 후 1997년에는 6번째 싱글인 3분의 1의 순수한 감정(1/3の純情な感情)이 바람의 검심 엔딩 테마로 쓰여지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밀리언까지는 못 갔지만 7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럭저럭 히트. 이 곡은 후에 많은 밴드가 커버를 했다. 일본에서도 스쿨밴드 레벨에서는 최종보스격으로 취급되는 곡 중 하나.
그러나 그 이후 원 히트 원더로 남았다. 일본 웹에도 왜 SIAM SHADE가 안 팔렸는지 묻는 게시물이나 왜 SIAM SHADE가 망했는지에 대해 논하는 스레드가 있을 정도. 음반사가 빵빵하다보니 타이업도 많이 걸어줬는데 인기가 안 붙었고, 결국 2002년 V8 Final공연을 무도관에서 마치고 해체하였다.
2.3. 해체 후
2002년을 마지막으로 해체한 뒤에는 멤버 각자가 솔로활동이나 다른 밴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히데키[1] 는 DETROX라는 밴드 보컬로, 준지는 BULL ZEICHEN 88의 드러머 및 각트의 세션, 다이타의 경우는 솔로앨범 및 다른 아티스트들의 세션을 뛰다가 BINECKS의 기타리스트로, 낫칭의 경우에는 SEX MACHINEGUNS의 보컬인 ANCHANG과 THE YELLOW MONKEY의 ANIIE와 함께 BIG BITES를 결성했고, 카즈마의 경우는 츠치야 안나의 세션 및 Fifty50/50Fifty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중이다. 2007년에는 매니저 추모를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재결성을 한 적도 있으며, 2011년 7월에는 부흥지원을 위한 라이브를 개최할 것이라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하였다.
2000년 부산 록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광안리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멤버들이 장난기많고 가벼운 성격이기도 했고 스탭도 일어가 능숙치 않아 '공연 시작 전까지 좀 시간이나 때우다 오라'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정말로 공연시각 20분 전까지 전 멤버가 뿔뿔이 흩어져 스탭들이 찾느라 광안리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2011년 10월 21일에 지진부흥 자선 라이브 "SIAM SHADE SPIRITS ~ RETURN THE FAVOR ~ 2011.10.21 SAITAMA SUPER ARENA" 를 기점으로 새로운 싱글도 발표하고 2013년 10월 경에도 라이브 투어를 했다. 그러나 현재 확실히 재결합을 한 상황은 아닌 듯.
2007년에 사망한 SIAM SHADE의 치프 매니져 나카무라 신이치의 7주기 기념 콘서트 HEART OF ROCK SEVEN 투어를 실시.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와 Zepp Diver City에서 실시한 라이브를 DVD로 발매.
2015년 10월,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를 시작으로 데뷔 20주년 투어를 실시. 팬들을 위한 리더 NATCHIN의 요청으로 다시 모였다고 함.
2016년 2월부터 3월까지 Zepp 콘서트장 투어를 실시.
그리고 다가올 10월... 무도관을 포함한 세 곳에서 SIAM SHADE의 마지막 투어를 돌 예정.
3. 이야깃거리
- 밴드명의 유래는 "밀접한 그림자"라는 뜻의 영어단어에서 유래되었다. 밴드의 리더는 낫칭이며 그 이유는 인디 시절 외에 멤버들이 돈에 허덕일 때에는 전화가 끊겼었던 덕분에 유일하게 자기 집에서 살고있던 낫칭이 연락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활동 초기에는 "락음악계의 드리프터즈"를 표방하며 짤막한 콩트영화 등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초창기 클립 모음인 V1을 보면 야쿠자 컨셉도 나온다(...).
- 멤버들 전원이 LUNA SEA를 엄청 존경하고 있던 덕분에 LUNA SEA의 동생뻘 밴드가 되기도 했다. 이 사실은 양 밴드의 팬덤 대부분이 인정. 특히 히데키는 LUNA SEA의 보컬인 카와무라 류이치를 존경하고 있다. 또한 준지는 LUNA SEA의 드러머인 신야를 존경하는 마음에 드럼을 시작했다고 하며 일시적으로 LUNA SEA의 로디를 한 적도 있어 거의 사제지간에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LUNA SEA의 2집 앨범에는 로디로서 준지의 이름이 부클렛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나틴 역시 피킹 위주의 플레이 등 여러가지 면에서 J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멤버 전원이 격투기를 좋아하며 더우기 멤버 각자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따로 있었던 덕분에 라이브 등지에서의 MC 등에서 스포츠 근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보컬인 히데키는 유명한 이종격투기 선수인 요시다 히데히코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
- 동 시대 일본 밴드들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탄탄한 연주력의 멤버들이 뭉쳤기에 많은 기대를 받았었고 특히 기타리스트인 다이타는 현재진행형으로 물건너에서도 알아주는 테크니션 중 하나. 밴드의 곡 중엔 기타 인스트루멘탈 곡들도 서너곡씩 있는데 모두 다이타가 작곡했으며 드림 시어터의 존 페트루치의 플레이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전개를 보여준다.
- 정작 한국에서의 인기는 SIAM SHADE VI 앨범에 실린 연주곡 Triptych가 제일 인기 많은게 현실이다(...). 기타리스트라면 한번씩은 도전해보는 곡으로 기본적인 테크닉부터 스윕, 태핑 등 여러가지 테크닉이 한번씩 등장해서 전개되는 초중반부터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깔끔한 곡.
- 부산 록 페스티벌 공연 후 인스트루멘탈 및 영어버전의 곡들을 모은 앨범을 우리나라에 발매한 적이 있다. 음반사 관계자 말로는 본전치기보다는 좀 더 팔렸다고 한다.
- 이상하리만큼 MBC GAME에서 BGM으로 많이 쓰였다. Get A Life, Shake me down, Dreams, Black, Fly High, 夢の中へ, グレイシャルLOVE 등등이 사용되었고 오프닝,경기 시작전 등 안 쓰인 곳이 없을 정도. 사실 이것은 MBC GAME의 메인 PD였던 장재혁 PD의 주도로 선곡이 이루어진 것인데 E-Sports계에서 장재혁 PD는 Siam Shade 팬으로 유명하다.
- 2014년 3월 다이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한국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해석하자면 미국의 글랜데일을 다녀왔다며 저 사진을 올렸다. 반일 프로파간다에도 정도가 있다며, 당장 철거해야한다고, 지금 당장 고노 요헤이에게도 책임을 철저히 추구해야한다고 써놨다.[2]이러한 제보도 있다. 상당한 지한파로 알려진 다이타지만 세월이 상당히 흐른 후 도쿄도지사 선거기간에 트위터에 수꼴 of 수꼴로 알려진 다모가미 도시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트윗이 올라오는 등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성향이 바뀐 듯 보인다. 밴드 멤버들 전체의 성향이 다 그런 건 아니긴 하지만, 국내에 앨범도 출시되었고 국내 락페 내한까지 와서 지상파 중계에도 출연한 드문 일본밴드인 SIAM SHADE의 음악적 키를 잡고 있는 다이타의 이런 행위로 인하여 국내 팬덤에서는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는 추세.
4. 멤버
4.1. 해체 전 멤버구성
4.1.1. 히데키(栄喜) - 보컬
본명은 이마무라 에이키. 1972년생으로 키가 184에 몸무게가 60이라는 경이적인 멸치몸매를 자랑한다(...). 원래는 지금의 목소리 톤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목 수술을 두번정도 받은 끝에 날카롭고 하이톤인 현재의 목소리가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린데다 터프하고 시원시원한 인상이나, 정작 성격은 굉장히 예민하고 감수성이 강하며,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팬들에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데, 배송료 문제로 팬과 다퉜다가 몇주간 삐져서 두문불출한 적도 있다. 기타리스트인 다이타하고는 어릴적부터 친구지만 지금은 약간 서먹한 사이. 초기의 명의는 'CHACK'였으나 밴드시절엔 'HIDEKI'로 활동했고, 솔로시엔 'HIDEKI'에서 변경한 '미라이' 명의로 활동했다.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커리어가 약간 깎이는 편인데, 학창시절부터 학교짱급 싸움실력에 야쿠자 아들내미를 비오는 날 먼지나게 팼다가 합의금도 뜯긴 일화도 전해지는데다 상기의 다이타와는 드잡이질해가며 싸운 적이 많고 ACID 이후 솔로 시절엔 같이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카즈와 싸워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힌 적도 있다. 여리고 마음이 약하지만 조금 욱하는 기질이 있는 듯. 97년경엔 스튜디오에서 다이타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대판 싸우고 밴드 더 못해먹겠다며 때려치우고 며칠 정도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팬들에게 발견되어 속히 스튜디오로 복귀하고 화해했던 흑역사도 존재할 정도지만, 그런 면모를 제한다면 뮤지션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친분관계도 괜찮다.
4.1.2. KAZUMA(카즈마) - 보컬 및 기타
본명은 엔도 카즈마. 세컨드 기타와 세컨드 보컬 및 코러스를 같이 맡고 있으며 가끔 랩도 담당하는 멀티플레이어로 깁슨 레스폴을 자주 이용하는 기타리스트. 보컬도 괜찮게 잘 소화해내는 편이라 비비안 수와 함께 유닛을 결성해 기동전사 건담 SEED의 곡인 Moment를 부른 적이 있다. 그 외에도 세션 및 이런저런 활동을 병행했으며 기타프릭스의 수록곡인 아사키의 곡 You can't do it if you try 에도 참여. 아사키가 카즈마를 매우 존경한다고 한다.
4.1.3. DAITA(다이타) - 기타
본명은 이토 다이타. 리드 기타를 맡고 있으며 기타 실력으로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테크니션 중 하나지만 연주에 자기 나름의 맛이 약간 없다는 평도 간혹 듣는다. 어릴적에 잠시 브라질에 거주했던 적도 있으며 브라질에서 귀국한 뒤 히데키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만 히데키보다 먼저 데뷔하여 비주얼 밴드에서 기타를 치다 우연히 TV를 본 히데키에게 발견(...)되어 샴셰이드에 픽업되었다. 일본에서 열린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존 페트루치의 공연인 G3에도 일본측 대표로 초청된 적도 있으며 본인은 존 페트루치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듯. TV 무대에서 존 페트루치에게 사인을 받은 기타를 자주 가지고 출연했고 1대1 대담도 한 적 있다. ESP, 쉑터, PRS등 여러 모델의 기타를 사용하지만 거의 메인은 탐앤더슨의 드롭탑 클래식이나 자기가 만든 브랜드인 G-Life의 커스텀 모델을 사용.
여담인데 상당한 지한파로 서문탁의 일본 솔로앨범 프로듀스나 화산고의 OST를 맡기도 했고 잘 찾아보면 2002년 서울의 호프집에서 한일월드컵을 구경하다 4강 진출에 감격한 31세 이토 다이타 씨의 뉴스 인터뷰도 찾아볼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니메이션 광빠로 바람의 검심 엔딩곡 이후 이와오 준코와의 대담에서 덕임을 인증해버렸다. 팬도 많은지 성우인 시이나 헤키루는 무명시절부터 Siam shade의 팬이었는데 다이타에게 앨범의 기타 세션 및 작곡으로 참가해달라고 간청해 참여를 시켰으나 다이타의 곡에 자기 보컬이 전혀 따라가지 못해 좌절했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토 노이지의 이토 역시 이토 다이타의 이토를 따온 것.
커리어적으로는 지금은 은퇴한 일본의 유명 록 보컬리스트 히무로 쿄스케의 메인 기타리스트로서 세션을 오랫동안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0년대 초에 그의 서포트 멤버로서 처음 참여하여 2016년 히무로가 마지막 돔 투어를 기점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의 투어[3] 를 제외하면 그의 공연에 메인 기타로서 꾸준히 참여하였다. 히무로는 다이타를 단순한 서포트 멤버가 아닌, 자신의 페르소나급으로 대했으며 종종 자신의 공연에서 다이타만을 위한 독무대를 마련해 주어 다이타가 Singular point나 Emphatic line, Free 등 다이타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서포트 멤버들을 소개할 때도 늘 다이타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그를 가장 마지막에 소개했다. 그러한 입지 탓인 건지 공연을 보면 자신보다 훨씬 오랫동안 히무로의 세션을 해 왔던 베이시스트 '니시야마 후미아키'[4] 나 세컨드 기타 '혼다 타케시'[5] 가 열심히 코러스를 넣을 때도 다이타는 홀로 시크하게 기타만 칠 때가 많았다.
4.1.4. NATIN(낫친,나틴) - 베이스
본명은 나카가와 타이. 베이스를 담당하며 피킹 위주의 안정적인 주법을 구사하는 베이시스트로 LUNA SEA의 J에게 사사하고 영향도 많이 받아 핑거링보다는 다운피킹 위주의 주법을 자주 구상하지만 J와는 달리 슬랩이나 풀링 등의 테크닉도 썩 괜찮아 Outsider나 Why not? 같은 곡에서는 피크를 버리고 슬랩 위주의 매우 화려한 플레이도 종종 보여준다. 실질적인 SIAM SHADE의 리더로 왜 리더가 되었느냐면 인디즈 시절 자기 집에서 살던 사람이 나틴 뿐이어서 어딘가에서 밴드 규모로 연락이 오면 나틴 혼자만 연락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대학에 진학하려 했으나 '대학교 가서 밴드하면서 힘들 바엔 밴드해서 성공한 다음 대학 가면 되잖아?'라는 히데키의 말발(?)에 휘말려 SIAM SHADE에 합류. 주로 뮤직맨의 스팅레이 모델이나 스펙터의 베이스를 사용. 밴드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품절남으로 여배우와 결혼했다.[6] 해체 이후엔 솔로 활동 위주로 활동하다 섹스 머신건즈의 멤버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슬프게도 노래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 해체 후, 'NATCHIN'으로 개명. 이유는 일본어 발음으로 낫친을 NATIN으로 썼으나, 외국인에게는 네이틴이라고 발음할 수 밖에 없다고 하여 개명. 솔로앨범 'FAITH', 'STAND'를 발매했으나 큰 인기는 얻지 못함. 그 후, 섹스머신건즈의 ANCHANG, The Yellow Monkey의 Annie와 함께 'BIG BITES'를 결성. 현재 활동중지 상태. 아이카와 나나세, SIAM SHADE의 보컬 HIDEKI 등의 라이브 세션맨으로도 활동 중. 2013년부터는쿠로유메의 히토키와 함께 비주얼계 밴드 CASCADE의 스페셜 멤버로 번갈아가면서 현재까지 서포트중이다. 2014년, everset의 보컬인 히무라 츠요시(Geno), a DROP OF JOKER의 여성 기타리스트 mi-ya (미야코:러브바이츠) 드러머 act. 와 함께 '21g'를 결성. 21grams 라고 읽는다. 현재 정규앨범 1장, 싱글앨범 3장을 발매. SIAM SHADE 시절엔 ESP의 본인 시그내쳐, 스펙터 베이스를 주로 사용. 현재는 G&L 엔도서로 공식 활동시(PV, 사진촬영 등) G&L 베이스로 연주를 하지만, 언제나 메인악기는 흰색 스펙터 베이스. 2019년 1월, 멤버들의 불화로 돌연 해산을 선언. 2019년 3월 8일 원맨 라이브를 끝으로 21g 해산. 정규앨범 2장, 싱글앨범 3장, 디지털 싱글 3장, 라이브DVD 2장 발매.
4.1.5. 준지(淳士) - 드럼
본명은 사쿠마 준지. SIAM SHADE의 드러머로 역시 LUNA SEA의 신야에게 사사했으며 한때 루나씨의 로드매니저도 맡아 LUNA SEA 초기 앨범의 스탭롤에 이름이 실려있기도 하다. 또한 마이크 포트노이의 상당한 팬. 그 광활한 드럼세트와 곡에서 흐르는 변박플레이는 포트노이의 영향. 신야와는 달리 파워보다는 탄탄하고 그루브가 살아있는 연주가 특징이며, 니시카와 타카노리와 GACKT라는 스타일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뮤지션들의 세션을 모두 맡았을 정도로 곡에 대한 이해력이 높다. 샴쉐이드 활동 당시 멤버들에게 자기가 쓴 곡을 다른 멤버가 쓴 곡보다 못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밴드의 막내이고 합류순서도 가장 마지막이며 막내로 귀여움을 받음과 동시에 밴드활동 내내 히데키와 다이타 두 괴수(?)의 싸움을 말리느라 가장 고생한 멤버 중 하나. 여타 멤버들보다 좀더 어려 보이고 선도 얇은 편이라 인기도 꽤 있지만 실상은 상당히 허당에 근접한 편이다(...). 베이시스트 Ikuo와 BULL ZEICHEN 88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니시카와 타카노리, 각트, Acid Black Cherry, Sound Horizon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션을 맡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아사키의 신곡 앨범에서도 드럼 세션을 맡은 바 있다.(...) YAMAHA나 PEARL의 드럼 세트를 사용함.
여담으로, SMAP 출신의 나카이 마사히로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다만 준지는 중퇴, 나카이는 전학을 가서 졸업은 하지 못했다는게 함정.. 2012년 SMAP×SMAP에 준지가 BLACK PIRATES의 드러머로 출연하며 기무라 타쿠야와 만나게 된다.
심한 오토바이 전복사고를 당한 적이 있으나, 2주 뒤 공연에 건강한 상태로 돌아와 멤버들을 놀래킨 적이 있다.
춤을 잘춘다. 그것도 매우(...). 이벤트성으로 각트의 GHOST를 연습해서 콘서트 때 각트와 각트의 팬들에게 선보인 적이 있는데, 각트 본인은 물론 팬들까지 쓸데없이 고퀄리티스러워 놀라다가 코믹스러운 표정(...) 때문에 빵 터졌었다.
5. 구 멤버
- ATARU - 기타
- A(EI) - 드럼. 본래는 기타를 치던 멤버로, SIAM SHADE 탈퇴 후에는 AI(아이)라는 예명으로 Kalen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이후 PIERROT을 거쳐 LM.C로 활동중. 훗날 All I Need의 기타리스트로 발탁되고, Muff의 리더로 활동하는 타구치 마사유키와 함께 Kalen의 멤버들 중에서는 알려진 편.
- OZZ... - 드럼
6. 디스코그래피
6.1. 싱글
6.2. 정규앨범
넘버링이 안 붙은 'SIAM SHADE'는 인디즈 시절 발매한 앨범이다.
6.3. 베스트앨범
6.4. 헌정앨범
[1] 그전에 인디즈에서 ACID라는 밴드를 결성했으나 팀원들의 배신때문에 솔로앨범 실패 및 일시적 은퇴 후 재복귀 등등 이런저런 고충이 많았다.[2] 고노 담화(河野 談話) : 1993년 8월 당시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소 설치 및 위안부 강제징집을 인정하고 사죄한 담화.[3] 2014년 개최되었던 히무로의 솔로 25주년 기념 투어로 해당 투어에서는 현재 B'z의 서포트 멤버로서 참여 중인 YT가 다이타 대신 메인 기타를 맡았다.[4] 보위나 벅틱같은 군마 현 출신의 밴드 ROGUE의 베이시스트로서 90년대 초부터 쭉 변동없이 히무로의 베이스 세션을 맡아왔다. 히무로가 은퇴할 시점에서는 서포트 멤버 중 가장 원로급이었다.[5] 일본의 유명밴드 PERSONZ의 기타리스트. 여담으로, 페르손즈의 보컬인 JILL은 호테이 토모야스의 친구이며 호테이의 공연에 코러스로서 종종 참여하였다. 혼다와는 정 반대.[6] 2013년 9월 2일부로 이혼했다고 한다. 자세한 기사는 이쪽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