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X

 

1. 개요
2. 사업 배경
3. 완료 사업
4. 계획 사업
4.1. KDX-3 Batch-2
5. 둘러보기
6. 관련 문서


1. 개요


KDX(Korean Destroyer eXperimental) 사업은 1980년대 부터 시작된 한국 해군의 전력 증강 사업으로 KDX-1을 시작으로 현재 KDX-3까지 완료되었다.[1] 80년대 개념연구를 시작하고 실제 사업은 90년대 초부터 시작했으며 2010년대 초에 사업이 마무리 되었다. 3차에 걸친 KDX사업으로 총 12척의 방공구축함을 도입할 수 있었으며 특히 3차 사업에서는 이지스함이라는 최고 수준의 방공함을 획득할 수 있었다.
현재는 사업이 마무리 된 후 차기 구축함 사업인 KDDX가 도입될 예정으로 있으나 KDX-3 이후 십여년간의 공백이 존재하기에 KDX와는 별도의 사업으로 일반적으로 취급한다. 암튼,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 해군은 기존의 전근대적인 무기체계를 지닌 낙후된 해군에서 벗어나 추후 주변 강대국에 어느 정도 맞설수 있는 현대화를 급속도로 이룰수 있었다.

2. 사업 배경


분단 상황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한 육군이 비대한 한국의 현실에서 90년대까지 한국 해군의 상황은 눈물겨울 정도로 낙후된 상황이였다. 주력함의 경우 미국에서 공여받은 기어링급, 플레처급, 알렌 M. 섬너급이 무려 50년 넘게 간신히 운용될 정도였다. 이 함정들은 1940년대 2차세계대전 시기에 대량으로 건조 된 함이기에 노후화가 심각했다. 또하나의 문제는 미국이 공여한 함정이 아닌 추후 개발한 호위함의 경우에도 개함 방공 능력이 전무한 고속정, 초계함, 호위함이 다수였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형 호위함이던 울산급과 포항급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간첩선 잡는데만 유용한 대잠헬기 조차 장비 할 수 없는 절름발이 수상함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북한이 가장 큰 위협이고 주변국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에 연안방어 위주의 호위함인 울산급의 개발은 어쩔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대로된 방공 구축함의 개발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중국과 일본 등의 주변국과 절대 맞설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축적된 경제력에 알맞는 군의 현대화가 시작되었다. 특히, 해군의 경우 개함 및 함대 방공이 절대적인 필요성을 가진 현대전에도 맞지 않는다 생각하여 울산급을 통해 습득한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KDX사업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80년대 시작한 사업은 90년대 초부터 건조가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90년대 후반 일어난 IMF 사태 때 잠시 흔들렸었다. 그러나, 해군의 전력 증강계획은 밀리기는 했지만 결국 3차에 걸쳐서 계획대로 이뤄졌다.
참고로 이 당시 한국군의 현대화는 육군에선 K-1,구룡등의 국산 신무기를 개발해 도입했고, 공군에선 KFP 사업을 통해 F-16을 도입해 전력화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군의 현대화는 굉장히 빨리 이뤄진 편이였다.

3. 완료 사업



3.1. KDX-1


2000년 3척으로 사업 완료. 취역 이후 명칭이 KD-1 혹은 DDH로 정리되었다.


3.2. KDX-2


2008년 6척으로 사업 완료. 취역 이후 명칭이 KD-2 혹은 DDH-2로 정리되었다.


3.3. KDX-3


2012년 3척으로 사업 완료. 취역 이후 명칭이 KD-3로 정리되었다.


4. 계획 사업



4.1. KDX-3 Batch-2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을 추가 도입하는 사업으로 광개토-Ⅲ Batch-Ⅱ로도 불린다. 2020년대 후반 3척을 전력화하면서 완료될 예정으로 있다.


4.2. KDDX


만재 8,000톤급(예상) 방공구축함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2020년대 후반 총 6척을 도입할 계획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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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국방부나 ADD에서는 광개토-Ⅰ, Ⅱ, Ⅲ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지스함 추가 도입사업은 광개토-Ⅲ Batch-Ⅱ 사업으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