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proph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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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즈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1997년 보컬 이안 왓킨스와 기타리스트 마이크 루이스에 의해 결성되었다.[1] 결성 당시의 밴드명은 Lozt Prophetz. 그 뒤 기타리스트 리 게이즈와 드러머 마이크 치플린이 합류하게 되었다.
거기에 데모 테이프나 EP를 담당하고 있던 스튜어트 리차드슨이 베이시스트로, 턴 테이블리스트로 DJ 스텝잭이 합류하며 밴드는 6인체제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DJ 스텝잭이 탈퇴. 후임으로 제이미 올리버[2] 가 밴드에 가입하게 된다.
2000년에 데뷔 앨범인 The Fake Sound Of Progress를 유럽에 발매. 2001년도에는 미국에도 출시하였다. 하지만 밴드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건 2집 Start Something때부터인데, 싱글로 발매된 Burn Burn과 Last Train Home은 영국와 아메리카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본 앨범인 Start Something은 영국 차트에서 4위를 기록했다.그리고 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록곡 「To Hell We Ride」는,니드포스피드 언더그라운드의 BGM으로 사용되어 상당한 인기를 이끌었다. 덤으로 타이틀곡인 「Burn burn」도 FIFA 2004에 수록되었다.
2005년에 치플린이 음악적 견해의 차이로 밴드를 탈퇴하지만 3집 수록작업에 계속 착수하였다.
2006년에 발표한 3집, Liberation Transmission부터는 음악의 스타일이 살짝 팝적이고 말랑말랑해져서 팬들 사이에서도 조금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무난하다는 평이다.
그러나 2010년에 발표된 4집 The Betrayed는 기존의 음악과 너무 달라져버린 나머지 덧붙여 몇몇 곡들은 솔직히 좀 많이 대충 만든것 같긴 하다..별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발표한 5집 Weapons부터는 상당히 안정적인 퀄리티의 완성도를 보여 전작의 실패를 만회했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런데''' 2012년, 이완 왓킨스가 1살 여아 성폭행 미수를 비롯한 6건의 성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팬들은 온통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해외의 반응으로 볼 때 1살 여아 성폭행은 확정적인 듯 하다. '''보석까지 기각된 걸 보면''' 거의 반론의 가능성이 없다. 이안 왓킨스는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1살도 안 된 남아의 성폭행 혐의를 포함한 무려 23건의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고 20대에 이 성폭행를 도운 두 여자들도 같이 기소되었다.
2013년 3월 11일까지 재구류되었다. 본 재판은 6월 15일부터라고 알려졌지만 8월 12일로 다시 연기되었다. 팬들의 속은 그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다. 이안 왓킨스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감옥에서 11/25일부터 시작되는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심리 상담사의 판단에 따라 자살 감시를 받고있다. 결국 더 이상 이안 왓킨스와 음악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밴드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남기며 해체를 발표했다.
1집에서 뉴메탈풍의 색다른 시도를 하며 이름을 알렸고 그후로 2012년에 5집을 발표할때까지 앨범을 만들때마다 이모코어, 메탈, 팝적인 요소등을 결합하여 매번 색다른 시도를 하며 Burn Burn , Rooftops 등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고 여기에 이안 왓킨스의 재치있으면서도 세상에 찌든 세태를 비난하는듯한 가사는 또다른 인기요소였다. 보컬의 라이브 실력은 부족했지만 2012년 투어에서 보여준 어쿠스틱 공연에서는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완의 인격적 결함으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중대 범죄 사태로 밴드는 끝을 맺었다. 2013년 12월 20일 이안 왓킨스는 징역 29년과 보호관찰 6년을 선고받았으며 최소 19년 4개월은 채워야 가석방 신청이 가능해진다. 2019년 8월 옥중에서 몰래 휴대전화를 소지했다가 발각돼 형량이 10개월 추가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2014년 4월 이안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전부와 Thursday 출신의 새 보컬 제프 리클리가 합쳐 No Devotion이란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도 밴드를 강제로 접어야 했던 것이 아쉬웠던 듯. 싱글로 발표했던 Stay가 영국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찍었다.
연주시에는 주로 리드 기타를 담당하며, 많은 이펙터를 이용하여 다양한 소리를 내뿜는 나름 테크니션이다. 그러나 이쪽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리 고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듯 하다.
오랫동안 이완 왓킨스와 많은 곡들을 작곡해왔고, 호흡이 참 잘맞는다고 이야기 해 왔으나, 이완 왓킨스가 이제 음악활동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좋은 파트너를 보낸것에 매우 씁쓸함을 표현했다.[3]
Fender Telecaster를 복부 위로 높게 매고, 다리를 쩍 벌리고 연주하는 모습은 그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버렸다.
라이브 할때 다른 멤버에 비해 액션이 많은 편이며, 고정팬이 꽤나 있다.
멀티플레이어 로써 건반, 턴테이블, 샘플러를 다루며, 라이브시에는 백킹 보컬을 하여, 풍부함을 더해준다. 초기에는 그들의 음악 장르상 스크리밍이 꽤나 많이 들어가는데, 라이브 시에는 그의 스크리밍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라이브 실력이 꽤나 괜찮은 편인데, 어떤날은 메인보컬 보다도 더 잘 부를때가 종종있다.
멤버 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 유일한 80년대 생인데 가장 늙어 보인다.
원래 헤비메탈 밴드 출신이었으며, 상기에 언급된 No Devotion의 드러머로 활동하였으나 2016년에 탈퇴한다.
하지만 매번 새앨범을 낼 때 마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이 매번 바뀌었는데도 거기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보여준 걸 보면, 보컬로써의 기량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본인의 잘못'''으로 본인의 인생을 말아먹고 일시적으로 밴드를 날려버렸다. 성범죄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35년을 받은 사람인데 인기가 없었다면 인간말종타이틀이 붙어도 모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1. 소개
영국 웨일즈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2. 역사
1997년 보컬 이안 왓킨스와 기타리스트 마이크 루이스에 의해 결성되었다.[1] 결성 당시의 밴드명은 Lozt Prophetz. 그 뒤 기타리스트 리 게이즈와 드러머 마이크 치플린이 합류하게 되었다.
거기에 데모 테이프나 EP를 담당하고 있던 스튜어트 리차드슨이 베이시스트로, 턴 테이블리스트로 DJ 스텝잭이 합류하며 밴드는 6인체제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DJ 스텝잭이 탈퇴. 후임으로 제이미 올리버[2] 가 밴드에 가입하게 된다.
2000년에 데뷔 앨범인 The Fake Sound Of Progress를 유럽에 발매. 2001년도에는 미국에도 출시하였다. 하지만 밴드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건 2집 Start Something때부터인데, 싱글로 발매된 Burn Burn과 Last Train Home은 영국와 아메리카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본 앨범인 Start Something은 영국 차트에서 4위를 기록했다.그리고 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록곡 「To Hell We Ride」는,니드포스피드 언더그라운드의 BGM으로 사용되어 상당한 인기를 이끌었다. 덤으로 타이틀곡인 「Burn burn」도 FIFA 2004에 수록되었다.
2005년에 치플린이 음악적 견해의 차이로 밴드를 탈퇴하지만 3집 수록작업에 계속 착수하였다.
2006년에 발표한 3집, Liberation Transmission부터는 음악의 스타일이 살짝 팝적이고 말랑말랑해져서 팬들 사이에서도 조금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무난하다는 평이다.
그러나 2010년에 발표된 4집 The Betrayed는 기존의 음악과 너무 달라져버린 나머지 덧붙여 몇몇 곡들은 솔직히 좀 많이 대충 만든것 같긴 하다..별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발표한 5집 Weapons부터는 상당히 안정적인 퀄리티의 완성도를 보여 전작의 실패를 만회했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런데''' 2012년, 이완 왓킨스가 1살 여아 성폭행 미수를 비롯한 6건의 성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팬들은 온통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해외의 반응으로 볼 때 1살 여아 성폭행은 확정적인 듯 하다. '''보석까지 기각된 걸 보면''' 거의 반론의 가능성이 없다. 이안 왓킨스는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1살도 안 된 남아의 성폭행 혐의를 포함한 무려 23건의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고 20대에 이 성폭행를 도운 두 여자들도 같이 기소되었다.
2013년 3월 11일까지 재구류되었다. 본 재판은 6월 15일부터라고 알려졌지만 8월 12일로 다시 연기되었다. 팬들의 속은 그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다. 이안 왓킨스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감옥에서 11/25일부터 시작되는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심리 상담사의 판단에 따라 자살 감시를 받고있다. 결국 더 이상 이안 왓킨스와 음악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밴드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남기며 해체를 발표했다.
1집에서 뉴메탈풍의 색다른 시도를 하며 이름을 알렸고 그후로 2012년에 5집을 발표할때까지 앨범을 만들때마다 이모코어, 메탈, 팝적인 요소등을 결합하여 매번 색다른 시도를 하며 Burn Burn , Rooftops 등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고 여기에 이안 왓킨스의 재치있으면서도 세상에 찌든 세태를 비난하는듯한 가사는 또다른 인기요소였다. 보컬의 라이브 실력은 부족했지만 2012년 투어에서 보여준 어쿠스틱 공연에서는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완의 인격적 결함으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중대 범죄 사태로 밴드는 끝을 맺었다. 2013년 12월 20일 이안 왓킨스는 징역 29년과 보호관찰 6년을 선고받았으며 최소 19년 4개월은 채워야 가석방 신청이 가능해진다. 2019년 8월 옥중에서 몰래 휴대전화를 소지했다가 발각돼 형량이 10개월 추가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2014년 4월 이안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전부와 Thursday 출신의 새 보컬 제프 리클리가 합쳐 No Devotion이란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도 밴드를 강제로 접어야 했던 것이 아쉬웠던 듯. 싱글로 발표했던 Stay가 영국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찍었다.
3. 멤버
3.1. 현재 멤버
- 리 게이즈(Lee Gaze, 1975년 5월 21일생) - 기타리스트
연주시에는 주로 리드 기타를 담당하며, 많은 이펙터를 이용하여 다양한 소리를 내뿜는 나름 테크니션이다. 그러나 이쪽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리 고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듯 하다.
오랫동안 이완 왓킨스와 많은 곡들을 작곡해왔고, 호흡이 참 잘맞는다고 이야기 해 왔으나, 이완 왓킨스가 이제 음악활동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좋은 파트너를 보낸것에 매우 씁쓸함을 표현했다.[3]
Fender Telecaster를 복부 위로 높게 매고, 다리를 쩍 벌리고 연주하는 모습은 그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버렸다.
- 마이크 루이스(Mike Lewis, 1977년 8월 17일생) -기타리스트
라이브 할때 다른 멤버에 비해 액션이 많은 편이며, 고정팬이 꽤나 있다.
- 스튜어트 리차드슨(Stuart Richardson, 1973년 8월 15일생) - 베이시스트
- 제이미 올리버(Jaime Oliver, 1975년 7월 16일생) - 키보디스트 / 턴테이블 / 스크림
멀티플레이어 로써 건반, 턴테이블, 샘플러를 다루며, 라이브시에는 백킹 보컬을 하여, 풍부함을 더해준다. 초기에는 그들의 음악 장르상 스크리밍이 꽤나 많이 들어가는데, 라이브 시에는 그의 스크리밍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라이브 실력이 꽤나 괜찮은 편인데, 어떤날은 메인보컬 보다도 더 잘 부를때가 종종있다.
- 루크 존슨(Luke Johnson, 1981년 3월 11일생) - 드러머
멤버 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 유일한 80년대 생인데 가장 늙어 보인다.
원래 헤비메탈 밴드 출신이었으며, 상기에 언급된 No Devotion의 드러머로 활동하였으나 2016년에 탈퇴한다.
3.2. 구 멤버
- 이안 왓킨스(Ian Watkins, 1977년 7월 30일생) - 보컬
하지만 매번 새앨범을 낼 때 마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이 매번 바뀌었는데도 거기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보여준 걸 보면, 보컬로써의 기량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본인의 잘못'''으로 본인의 인생을 말아먹고 일시적으로 밴드를 날려버렸다. 성범죄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35년을 받은 사람인데 인기가 없었다면 인간말종타이틀이 붙어도 모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 DJ 스텝잭(DJ Stepzak, 1999-2000) - 턴테이블 및 샘플링
- 마이크 치플린(Mike Chiplin, 1997-2005) - 드러머
- 아일란 루빈(Ilan Rubin, 2006-2009) - 드러머
4. 디스코그래피
[1] 당시에는 원래 두명이서 이끌던 밴드였던 퍼블릭 디스터밴스의 사이드 프로젝트로서 시작되었다.[2]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유명 요리사가 아니다![3] 인터뷰에서는 이완 왓킨스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냥 아쉽다.' 정도로만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