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인치 네일스
1. 개요
나인 인치 네일스는 1988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트렌트 레즈너에 의해 결성된 인더스트리얼 록밴드이다.
2. 상세
1970년대 중반, 전통적인 대중 음악의 패턴을 타파하고자 기계들의 각종 소음들을 전자 사운드에 결합시켜 생소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등이 창시한 인더스트리얼은 사운드의 거부감때문에 대중화가 되진 못하였다. 80년대 후반, 트렌트 레즈너는 여기에 '''신스팝의 대중성'''을 가미시켜 언더그라운드에서만 취급받던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려 대중화에 성공시킨 뮤지션이다. 각종 전자 악기들로 여러 음악 장르의 접목을 시도하며, 공연을 위해 NIN과는 다른 전신인 라이브 밴드를 소집한다.
또한, NIN은 공연 도중 악기를 부수는 등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자주 펼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1994년 우드스탁 때의 퍼포먼스가 있다.
[image]
이때의 공연은 진흙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사실은 공연장에 가는 도중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드스탁의 공연은 투어 비용을 건질 만한 많은 돈을 제의받아 응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우드스탁의 상업적인 면모가 싫기도 했던 NIN은 오물을 뒤집어쓴 모습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아 공연했다고 한다.[4]
이 장면을 촬영한 사진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진흙탕 근처에 화장실이 있었다고 한다(...)링크 다행히도 멤버들 중에 감염병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고
당시 오물투성이 의상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다(...) 링크
여기서 볼 수 있다.
초기 언더그라운드의 팬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은 NIN은 1990년대 몇 차례에 걸쳐 음반을 내면서 영향력 있는 뮤지션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라디오에서도 많은 곡들이 인기를 끌었다. NIN의 음반들 중 2장은 그래미를 수상했으며, 총합 2,0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웠고 그중 미국에선 약 1,050만 장이 팔렸다. 2004년, 롤링 스톤이 발표한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 중 94위에 올랐다. 그러나 팬들의 환호와는 반대로, NIN은 레코딩 산업 측의 여러 기업과는 많은 불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자체 레코드 레이블을 설립해 활동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기본 포맷은 밴드 체제이지만, 사실상 보컬리스트인 트렌트 레즈너의 원맨 밴드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대부분이 서포트 or 세션 멤버이다. 작곡, 레코딩, 믹싱 대부분을 본인의 힘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큰 특징. 드럼을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을 레즈너가 맡고 있으며, 앨범을 낸 후 공연 활동을 할 때 마다 세션 멤버를 모집하여 쓴다. 좀 과장하자면 한마디로 '''트렌트 레즈너 = NIИ.'''[5]
2016년, 프로듀서 애티커스 로스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정식 멤버로 영입되었다.
3. 멤버
3.1. 트렌트 레즈너
3.2. 애티커스 로스
4. 역사
나인 인치 네일스는 첫번째 앨범인 《Pretty Hate Machine》으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였으며, 인더스트리얼의 대부[6] 라는 별명을 얻고 미국 록계의 주목을 받는다. 다만, 초창기 시절이이서 그런지 인더스트리얼이라기보다는 디페시 모드 풍의 신스팝에 가깝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음악지들은 이 음반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 주목이라는게 '''상업적 주목'''이었다는것. 음반사 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은 레즈너를 노예처럼 부려먹었고, 건스 앤 로지스의 오프닝 액트에 집어넣는[7]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환장한 레즈너는 소송을 제기하고, 길고 지겨운 싸움끝에 인터스코프 사가 그를 업어간다. 이때 나온 명작이 Broken 앨범인데, 이 앨범의 NIN 이니셜이 소문자로 되어있는 것은 레코드 이적이 끝나기 전인 애매한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 또한 이 음반부터 그는 헤비메탈을 대폭 수용했으며, 굉장히 폭력적이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Broken 앨범은 뮤직비디오가 잔인하다고 악명이 높으나, '''더 브로큰 무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어쨌든 이적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이후 정신을 가다듬고 발매한 두번째 앨범인 NIN 최고의 걸작 《The Downward Spiral》을 발매한 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의 록의 구세주"라는 호평들을 받으며 인기를 얻는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 까지 올라갔는데, 본인은 이 앨범이 그렇게까지 팔리고 흥할줄 몰랐다고 한다. 참고로 1위는 사운드가든의 Superunknown. 매스컴과 언론에서의 띄워주기가 상당하기도 했으나 그만큼의 인기도 대단했던 것도 사실은 사실.
전작 Broken의 분위기가 일종의 예고편이었다면, 이 음반에서는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구성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을 한데 뭉쳐서 굉장히 꽉 짜인 훌륭한 컨셉트 음반을 만들어냈다.
《Broken》에서의 분노, 《The Downward Spiral》에서의 절망은 5년후 발매된 앨범 《The Fragile》에서 끔찍한 우울함과 적막함으로 승화되었다. 앨범 작업 당시 그는 굉장한 중압감과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한다.
또한 그전까지의 작업 방식은 '''트렌트 레즈너가 작곡을 한 후에, 게스트 뮤지션들이 연주를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 당시 그는 마릴린 맨슨이 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처음으로 밴드 멤버들과의 공동작곡을 고려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앨범 작업 중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한번에 20가지 정도를 생각해내는데, 다른 멤버들이 그것을 모두 파악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좀 견디기 힘들다."'''라는 언급을 하면서 다시금, 예전의 작곡방식으로 돌아갔다.
《The Fragile》앨범은 더블 CD라는 방대한 길이와, '''본인이 회상하기에도 이런걸 만든게 믿기지 않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발매 첫 주만에 228,000장을 팔아치웠다. 음반의 평은 CD1쪽의 평가가 좋은 평이고 CD2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는 평이 많다. 다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앨범의 특성상 이 앨범은 빌보드 1위를 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10위 밖으로 밀려나갔다.
한편, 그의 정신적 불안은 영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 명반으로 손꼽히는 《The Downward Spiral》 발표 후, 어린 시절 그를 길러 주신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졌고 알코올 중독과 약물 남용으로 고통을 받았다.
흔히, 이 앨범이 마약에 중독된 레즈너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라 알려져 있으나, 사실 앨범 작업 당시만 해도 레즈너에게 마약 중독은 픽션 속 이야기였는데, 앨범 발표 후 투어를 다니면서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 술과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수많은 관중 앞에서 자신만만한 록스타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투어가 끝난 후 플로리다 모처의 재활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The Fragile》 앨범 작업에 매진하지만, 앨범 작업을 끝낸 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링크
결국, 2000년 《The Fragile》 앨범 투어 당시, 영국에서 헤로인을 코카인으로 착각하고 흡입했다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한다.[8]
다만,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다시 코카인을 빨기 시작했다고(...) [9]
이듬해인 2001년이 되어서야 재활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재활원에 들어간 계기는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자신의 베프가 마약 거래를 하는 갱단의 무차별 총기 난사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자신이 마약에 지불한 돈이 범죄 조직을 먹여 살려 주변 사람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이후 장기간의 치료와 안정을 거치고 《The Fragile》 발매 이후 6년 만에 깔끔한 느낌의 《With Teeth》로 돌아온다.
이 앨범은 레즈너가 컨디션을 되찾았다는데 그 의미가 있는 앨범이며 상업적으로도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 데에 성공한다. (이는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 중 《The Fragile》과 함께 유이한 성적이다.) 레즈너에 따르면 《With Teeth》 앨범은 전작들을 만들어온 어둡고 자학적인 감정에 의존하지 않은 채 하나의 앨범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든 앨범이라고 한다. 평론가들의 평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었지만, 기존 팬들 사이에서는 앨범의 사운드가 비교적 대중적이고 밝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갈렸다. 애티커스 로스가 합류하게 된 앨범이기도 하며, NIN의 음악적 방향이 조금 바뀌기 시작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With Teeth》를 발매한지 2년 후인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컨셉 앨범 《Year Zero》를 발매한다. 이는 앨범 발매 기간이 꽤 길었던 NIИ에게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앨범의 평가는 꽤 호평이었고, 메타크리틱 평균 점수 76%를 얻었다.
컨셉 앨범 《Year Zero》의 이야기는 2020년의 미국이 배경이다. 2020년은 미국 정부가 미국을 다시 태어난 해로 정의하고 ''Year 0''이라고 선언한 해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미국은 무수히 많은 테러를 당해 왔고, 그에 맞서 미국 정부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이행한다. 국가 기업인 ''Cedocore''를 조직하여, 국민들이 사용하는 물에 파레핀이라는 약물을 탄다. 이 약물에 노출된 미국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무관심하고 근심 없게 바뀌게 된다. 이 통제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지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Art Is Resistance라고 알려져있다. 이 조직의 과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저항하기 위해 미래의 웹사이트를 2007년으로 시간여행시켜 전송하여 2007년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과거를 바꿔 어두운 미래의 싹부터 없애려고 하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ARPG가 앨범 발매 전에 발매되었고 이 게임의 일부로서 사용된, 아직 발매되지 않은 Year Zero의 노래가 담긴 USB가 NIИ의 콘서트 화장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2008년 3월 6집 앨범 <Ghosts I-IV>를 발표하는데, 이는 4개의 앨범으로 구성된 하나의 앰비언트 장르의 앨범이다. NIN이 보컬을 배제한 음악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전체적인 앨범에 보컬이 없는 것은 이 앨범이 처음이다. 당시에 실험적인 판매 방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4개의 앨범 중 첫 앨범은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으며, 그 다음 앨범들을 듣기 위해선 추가 금액을 내야 하는 방식으로 공개되었다. 레즈너의 사인이 포함된 LP판과 굿즈들 또한 한정판으로 판매했고, 이러한 온라인 판매 방식은 당시로써 실험적인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제성과 상업적인 성공을 함께 거두었다. 당시에 신박한 팬서비스 정도로 여겨졌던 이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향후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는 초석이 된다. 실제로 이 앨범의 몇 곡은 '소셜 네트워크'의 OST에 살짝 수정되어 재활용된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릴 나스 엑스가 34번째 트랙을 샘플링해 'Old Town Road'를 만드는데, 이게 초대박이 나는 바람에 앨범 발매 후 11년만에 상업적인 성공을 얼떨결에 다시 한번 거둔다.
2008년 7집 앨범 <The Slip>을 발표한다. 정통 락 사운드로 이루어진 앨범이며, 실험적이었던 전작 <Ghosts>와는 달리 NIN 앨범 중 비교적 듣기 쉬운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다양한 공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2009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음악적 매너리즘을 느끼며 잠정적으로 휴식기를 가지기로 한다. 이 시기 그는 아내와 함께 How To Destroy Angels[10] 를 결성해 활동했다.
2007년 9월 11일 올림픽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고 2009 ETP FEST를 통해 두번째로 내한했다. 당시 3 헤드라이너 중 한명으로 나머지 2명은 림프 비즈킷과 서태지. SBS 방송에도 2곡이 방송되었다.
2010년 10월 1일 (미국개봉일, 국내에서는 11월 개봉)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음악감독을 영국의 뮤지션인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맡았다. 2011년 골든글로브상 과 아카데미상 에서 'Best Original Score' 부문을 수상했다.
2013년 2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서 활동재개를 선언했다. 이후 Hesitation Marks를 완성하여 발매하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호평이 대다수이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2012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너무 강력했는지 별다른 호응은 없었다.
2015년 12월 19일 트렌트 레즈너가 twitter를 통해 2016년에 컴백을 한다고 확정지었다.
2016년 7월 1일, 트위터를 통해 밝혔던 [ New NIN coming in 2016. Other stuff, too. ]의 Other stuff 중 하나는 Nasa와 Apple Music이 협업한 Visions of Harmony 프로젝트 영상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음악만 듣고 싶다면 여기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016년 9월 10일,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한 기후 변화 다큐멘터리 Before The Flood의 사운드트랙 작업에 관해 알렸다. 포스트 록밴드 모과이와 작곡가 구스타프 산타올랄라도 참여했다.
2016년 10월 2일, 영화 패트리어트 데이의 감독 피터 버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공식 언급했다. 전 사운드트랙을 이 곳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016년 10월 7일, 9월에 알렸던 Before The Flood 사운드트랙을 공개했다. 하지만 THIS IS NOT NEW NINE INCH NAILS라고 못을 박았다...
감상은 이 곳에서
2018년 6월 1일에 공개된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1차 라인업에 등장했다! 2018년 8월 11일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공연하였다.
2018년 7월 9번째 정규 앨범 'Bad Witch'가 발매됐다. 8집 'Hesitation Marks'보다 좋은 평을 얻었으며 피치포크에서는 8점을 줬다. 많은 팬들은 2년 연속으로 낸 EP 'Not the Actual Events', 'Add Violence'와 함께 이 삼부작을 NIN 커리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고 평하는 중이다.
HBO에서 제작되는 왓치맨 TV 시리즈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다.
2020년 3월 26일, 08년 발표했던 Ghosts I-IV의 후속앨범 Ghosts V-VI 앨범을 무료 공개했다. 트렌트 레즈너는 NIN 공식홈피 메인에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국제적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표하는 글과 함께 새 앨범 공개 소식을 알렸다. 공식다운로드 NIN 공식 유튜브에서도 풀버젼으로 듣기 가능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번역 출처
그리고 2020년 3월 31일에 근황 영상이 공개되었다. 왓치맨 시리즈 음악에 관한 인터뷰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터뷰는 화상으로 진행되었는데, 트렌트 레즈너가 모처럼 머리가 길어진 모습으로 등장하자, 팬들은 With Teeth 시절 가르마 머리가 돌아왔다고 반가워했다.
2020년 5월 19일에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올해 가을에 예정되어 있던 투어 머천다이즈들을 미리 만들어놨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투어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붕 뜨게 된 머천다이즈들을 판매하기로 했는데 수익금은 원래 투어 예정지였던 지역의 푸드뱅크에 기부한다고 한다. 링크 그동안은 음악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며 2021년 투어에서 건강하게 만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5. 이름의 유래
밴드 이름인 Nine Inch Nails는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기보다는, 축약하기 쉬워서 이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폐간된 월간 핫뮤직 1998년 3월호에 따르면, 밴드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50개 정도의 이름을 정해두고 각각 종이에 써서 집 여기저기에 붙여두었는데, 2주가 지나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이름이어서 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박힐 때 쓰인 9인치의 대못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고, 프레디 크루거의 9인치 손톱을 나타낸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영어로 축약된 NIN은 현대 히브리어로 야훼의 4자음 문자[11] 와 유사하다.
두꺼운 테두리 안의 NIИ으로 표현되는 Nine Inch Nails의 로고는 레즈너와 게리 탈파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첫번째 로고는 NIИ의 첫번째 싱글인 ''Down In It''에서 선보였으며, 이것은 토킹 헤즈의 앨범인 Remain in Light에서의 타이버 칼먼의 타이포그래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6. 디스코그래피
대부분의 음반에는 '''''Halo''''' 라는 명칭과 고유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배포된 프로모션 음반의 경우 '''''Seed''''' 라는 명칭과 고유 번호가 부여된다.
'''Nine Inch Nails의 디스코그라피 요약'''
<< ''Halo 1 - Halo 32'' >>
<< ''Seed 01- Seed 08'' >>
7. 수상 경력
나인 인치 네일스의 명의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2번의 수상경력이 있다.[21]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트렌트 레즈너 본인이 영화 음악으로 또 한 번 그래미에서 수상을 했다.
2019년에 컨트리 뮤직 시상식에서 수상을 했다. 링크
그해의 공전의 히트곡인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 도입부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인 '34 Ghosts IV'가 샘플링되어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해당 곡의 장르가 컨트리 뮤직으로 분류되다 보니 Country Music Association Award(컨트리 음악 협회상)의 올해의 음악 이벤트상 부문을 수상했다. 이로써 노래를 부른 릴 나스 엑스와 피처링을 한 빌리 레이 사이러스는 물론 작업물에 참여한 나인 인치 네일스도 동시에 수상을 하게 되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트렌트 레즈너는 자기 사진에 포토샵으로 카우보이 모자를 합성해 올렸다고 한다. 현 멤버인 애티커스 로스도 컨트리 뮤지션스러운 모습으로 합성을 당했다. 링크
여담으로, 나인 인치 네일스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영화 음악을 담당해, 2011년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소셜 네트워크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상에서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 수상을 하였다.
그리고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에 수록된 음악으로 2012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영화 음악 부문인 Best Score Soundtrack for Visual Media에서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수상한다.
다만 이 당시에 애티커스 로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으므로 나인 인치 네일스의 명의로 수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스가 정식 멤버가 된 이후에도 영화 음악 활동 시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라는 명의를 쓰지 않고 본명을 쓰고 있다.
2020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트렌트 레즈너가 5번째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고 한다. 링크
8. 게임 음악
본인이 게임 마니아라서 게임 음악계에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 이드 소프트웨어의 FPS 게임 퀘이크 1의 음악과 사운드를 맡았다. 1994년 무렵 이드 소프트웨어 게임의 열렬한 팬이었던[22][23] 트렌트 레즈너는 댈러스에서 열린 콘서트에 이드 소프트웨어의 개발진을 초대하였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가 개발 중이던 퀘이크의 사운드 제작을 맡게 된다.
트렌트 레즈너는 팝 멜로디를 귀에 쏘아붙이는 기존의 게임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퀘이크 사운드트랙은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써 멜로디를 담은 음악이라기보다는 게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소음으로 만들어졌다. 존 카펜터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사악하고, 음침하며, 공포스러우면서 우울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트렌트 레즈너가 퀘이크 1에 참여한 영향으로 네일건 탄약상자에는 NIN 로고가 박혀있다. 그리고 얼티밋 둠의 E4M1에는 바닥에 NIN이라 새겨진 함정이 있다.
트렌트 레즈너는 퀘이크 2의 사운드 제작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나, 게임의 제작진이 그가 원치 않는 록 사운드를 요구했기 때문에 창작견해차로 고사했다. 대신 존 카맥으로부터 둠 3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수 년간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불분명한 이유[24] 로 인해 그의 작업물이 폐기되었다. 유출된 E3 2002 알파 버전의 사운드가 바로 레즈너의 작품으로, 완성본에 쓰인 사운드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론.
트렌트 레즈너가 퀘이크 1에 참여한 영향으로 네일건 탄약상자에는 NIN 로고가 박혀있다. 그리고 얼티밋 둠의 E4M1에는 바닥에 NIN이라 새겨진 함정이 있다.
트렌트 레즈너는 퀘이크 2의 사운드 제작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나, 게임의 제작진이 그가 원치 않는 록 사운드를 요구했기 때문에 창작견해차로 고사했다. 대신 존 카맥으로부터 둠 3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수 년간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불분명한 이유[24] 로 인해 그의 작업물이 폐기되었다. 유출된 E3 2002 알파 버전의 사운드가 바로 레즈너의 작품으로, 완성본에 쓰인 사운드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론.
- 2012년에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의 메인 테마를 맡기도 하였다. 레즈너 자신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자신이 테마를 맡은 것에 대해 기쁜 반응을 보였고, 게임의 발매를 앞둔 현재 메인 테마의 샘플만 공개됐음에도 레즈너의 인더스트리얼 록 성향과 근미래전을 다룬 게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9. 여담
- 각 앨범 간의 발매 기간이 꽤 긴 아티스트 중 하나다. 1년 간격으로 낸 것도 있으나 거의 4년 간격으로 앨범을 발매하는 수준. 물론 그 사이사이 라이브 앨범과 리믹스 앨범을 발매하여 본인의 실험적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다만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2010년대 들어서는 왕성하게 영화 음악,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 국내의 짝퉁 티셔츠 중에서는 NIN로고를 살짝 변용한 NINI(...)라는 길바닥 브랜드도 있다. 일본 유명 브랜드 넘버나인의 카피 제품이다.
- 이해하기 어렵게도, 뉴에이지풍 크로스오버 음악가 양방언이 NIN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질감까지 느낀다나. 국내에서는 김사랑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 전 레이블과 갈등이 있어 레이블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자신이 파일 공유 사이트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했다. 그래서 계약은 끝냈지만 레즈너는 이후 자신의 사이트에 앨범을 업로드하고 공짜로 받든 돈내고 받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16억원($1.6 Million)의 매출을 올렸다
- 2009년 ETP FEST 2009 당시 헤드라이너 후보 중 한명이 서로 앙숙으로 유명한 림프 비즈킷이었고, 누가 헤드라이너를 할 지 다툰 결과 락페 주최자인 서태지와 함께 각자 헤드라이너가 되는것으로 합의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실상은 달랐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섭외한 공연 기획사 엑세스 측이 들려준 뒷이야기가 있다. 링크
- 여담으로, 둘이 헤드라이너 자리를 두고 다퉜다는 루머가 당시 록 팬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기 때문에[26] , 이런 병맛스러운 가상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링크 [27]
또한 당시 ETP 현장에 배부된 안내문에는 NIN과 림프비즈킷이 헤드라이너 자리를 두고 다퉜다고 해서 우리도 자리 싸움을 하면 안 된다는 주최측의 드립이 쓰여 있기도 했는데, 한글 버전에만 있는 내용이며, 옆에 병기된 영문 버전에는 자리 싸움을 하지 말고 질서를 지키자는 평범한 내용만 기재되어 있었다(...)
- 한편, 당시,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에 관한 유명한 짤방이 돌기도 했다. 프레드 더스트는 트렌트를 존경하여 공개적으로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트렌트는 그딴새끼 모른다고 깠다는 것이다. 이에 빡친 프레드는 "Hot Dog" 의 가사에 "A nine inch nail that gets knock the fuck out" 이라는 내용을 집어넣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소 다르다고 한다.
- 해외의 나인 인치 네일스 팬들이 만든 NIN Wiki에 따르면, "Hot Dog" 가사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 "Closer" 가사를 인용할 때 원작자인 트렌트 레즈너에게 허락을 구했고, 트렌트 레즈너는 허락하여 라이너 노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저작권 정보를 확인해 보면 작사가에 트렌트 레즈너도 포함되어 있다. 링크
- 그딴 새끼 모른다 짤방의 경우 출처는 아마도 2000년에 나온 영국 음악지 Kerrang! 인터뷰로 추정된다. 링크
해당 인터뷰의 내용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뮤비 에 관한 것인데, 이 뮤비의 내용이 프레드 더스트를 풍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기자가 그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대해 레즈너는 "Fred Durst might be a cool guy, I don't know him. But his 'art' - in the word's loosest sense - sucks."라고 답변하는데, 그가 멋진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작품은 형편없다고 까는 내용이다. 다소 과장되게 알려진 점은 있으나 프레드 더스트의 자뻑을 비판하는 시각임을 알 수 있다. [28]
- 참고로
뮤비의 내용은 셀프디스적인 성격이 있다고 한다. 링크 뮤비에서 레즈너가 가스를 흡입하는 장면이 있는데,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유명인이 되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 가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고.
- 인더스트리얼 밴드 Filter의 리더 리처드 패트릭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투어 세션 멤버 출신이다. 현재까지도 멤버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 애플이 서비스하는 유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애플 뮤직 제작에 참여했으며 관련 영상에 나레이션을 맡았다. 애플 뮤직 홍보 유튜브 영상
- 2015년, 2016년 2년 연속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나 실패했다. 그 후로는 한동안 후보 지명이 안 되었다. 참고로 트렌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비판적인 입장이며 2018년에는 "난 신경 안쓴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드디어 헌액되었다. 헌액 소감을 라디오 채널 트위터 계정에 올렸는데, 자신의 팬과 선배 뮤지션인 디페시 모드에게 축하를 전하는 내용이다. 참고로 디페시 모드도 여러 해 동안 물을 먹다가 같은 해에 헌액되었다.
- 2018년 Bad Witch LP가 공개되었는데 앨범의 길이가 총 30분 초반대로 일반적인 EP 길이랑 비슷해서 논란이 많았다.[29] NIN 팬 커뮤니티인 Echoing The Sound에서 한 팬이 이에 대해 이제 더이상 영감이 떨어진게 아니냐라는 식의 댓글을 달자 트렌트 레즈너 본인[30] 이 '내 X이나 빨아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아서 논란아닌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팬들은 '이래야 우리 트렌트 레즈너 답지'라면서 즐기는(?) 분위기. 레딧 링크
- 20세기 미국 최악의 살인마인 찰스 맨슨과 아주 약간의 접점이 있다. 찰스 맨슨이 일으킨 살인 사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이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인 샤론 데이트를 비롯한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저택은 이후 레즈너가 빌려서 스튜디오로 사용했다. 하지만 터가 영 좋지 않긴 했는지 분위기가 매우 흉흉했고, 결국 레즈너는 1993년 12월에 그곳을 떠났으며 이듬해 1994년에 철거되었다.
다만 처음부터 살인 사건 현장임을 알았던 것은 아니고 이상하게 끌려서 그 장소를 선택했다가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역사적 현장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머물렀다 후회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웹진 Vulture 인터뷰에 따르면, 스튜디오로 쓸 장소를 알아보러 다닐 때 아무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링크
비록 흉악 범죄가 벌어진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유명인이 살았던 곳이라 주변 풍경은 근사했다고 한다. 가성비가 뛰어난 장소인 줄 알고 계약했다 뒤탈이 난 것.
그런데 나중에 옮긴 스튜디오는 하필이면 10년 전에 장례식장으로 쓰였던 건물이고, 이 때도 모르고 그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비록 흉악 범죄가 벌어진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유명인이 살았던 곳이라 주변 풍경은 근사했다고 한다. 가성비가 뛰어난 장소인 줄 알고 계약했다 뒤탈이 난 것.
그런데 나중에 옮긴 스튜디오는 하필이면 10년 전에 장례식장으로 쓰였던 건물이고, 이 때도 모르고 그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 아이작의 번제 리버스에서 아이템 이름으로 패러디된 적이 있다.
- 영화 캡틴 마블에서 캐럴 댄버스가 지구에 내려와 한 가게의 마네킹이 입고 있던 옷을 훔쳐 입는데, 티셔츠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마침 캡틴 마블 개봉을 기념해 마블과의 공식 콜라보레이션 티셔츠를 팔고 있는 중이다.
- 트렌트 레즈너는 젊은 시절, 미남으로도 유명했다.
- 2019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를 휩쓴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을 샘플링해 만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Old Town Road 문서를 참조할 것.
- 2017년 인터뷰에서 초딩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당시 발표된 EP 음반인
를 와이프가 큰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들려주니, 이 아이들은 수록곡 중 'Less Than'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훈훈한 광경이긴 한데, 한편으론 "이 노래에 'fuck'이란 단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식겁했었다고.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아이들이 너무 일찍 알게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애티커스 로스 (좌) & 트렌트 레즈너 (우)[3] With Teeth 앨범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하다가 2016년 Not the Actual Events을 기점으로 정식 멤버가 되었다.[4] 우드스탁은 펩시의 스폰을 받았는데, 모든 대중문화가 그렇듯, 대중들의 접근을 위한 선택이지만, 기업에 종속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당시 NIN 멤버들이 느꼈던 양가감정은 그런 딜레마 때문이었을 것이다.[5] 실제로 투어 멤버나 스튜디오 멤버의 교체설이 나오면서 팬덤이 흉흉할 때면 누군가가 다시금 일깨워주는 말이 NIИ = Trent Reznor다.[6] 레즈너는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아니 애초에 본인 음악을 인더스트리얼이란 틀에 가두는걸 싫어한다고. 헌데 후발 인더스트리얼 밴드들이 영향받은 밴드를 언급할때 심심하면 나오는게 이(들)이다.[7] 당시 일부 록팬들에겐 이펙트 떡칠 음악은 '''이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무대에 온갖 투척물이 날아들고, '''NIN 티셔츠를 입은 사람 한명이 어디 구석에서 뛰어다니다가 휩쓸려 사라졌다고.'''(...)[8] 좀 더 자세한 기사를 보면 차이나 화이트 헤로인을 흡입했다고 나오는데, 위키피디아에서 China white로 검색을 해 보면 진통제 펜타닐의 파생 유사품인 알파메탈펜타닐로 리다이렉트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펜타닐을 비롯해, 거기서 파생된 약물들이나, 펜타닐이 섞인 헤로인 등을 통틀어서 China White라고 부른다고 한다. 링크 참고로 펜타닐의 치사량은 코카인 1회 사용량의 불과 500분의 1밖에 안 된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인 셈.[9] 2012년 영국 음악잡지 Q 매거진 인터뷰에서 당시 일을 털어놨다.[10] 영국의 인더스트리얼 듀오 코일(밴드)의 곡에서 따왔다.[11]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을 나타내는 4자, 즉 YHWH, YHVH 등[12] 일반적으로는 EP로 분류되지만, 히든 트랙을 합치면 LP 수준의 길이를 만족하므로 정규 2집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13] 원곡은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어 있다.[14] 지금은 유물이 된 비디오테이프로 만들어진 라이브 앨범이다. 뮤직비디오도 수록되어있다.[15] AATCHB 디럭스 버전의 보너스 CD. 개별 CD로도 발매되었다. 뉴에지 풍의 피아노 연주곡과 어쿠스틱 버전 트랙이 수록되었다.[16] 인터스코프를 떠나고 발표한 첫 독립 발매 앨범이다.[17] The Fragile에 수록된 곡의 인스트루멘탈 버전 트랙과 미발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18] EP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러닝 타임이 30분을 살짝 넘기면서 LP가 되었다. 물론 가격은 EP 가격에 팔고 있다. 포맷이 바뀐데 대해 트렌트 레즈너는 "원래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 Bad Witch EP 3부작을 합쳐 한 장의 LP로 취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음반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요즘 EP를 덜 중요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풍조가 짙어졌고,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Bad Witch를 EP가 아닌 Studio Album으로 발표하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Bad Witch는 NIN의 스튜디오 앨범 중 러닝 타임이 가장 짧은 LP가 되었다. 사실 스튜디오 앨범(LP)과 EP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러닝 타임이 애매할 경우 아티스트가 LP라고 부르고 싶으면 LP, EP라고 부르고 싶으면 EP가 된다. 다만 Grammy에서는 30분을 기준으로 이 시간보다 러닝 타임이 짧으면 EP, 길면 LP로 취급하고 있다.[19] 2008년 발표한 앰비언트 성향의 Ghosts I-IV의 후속작. 2020년 3월 26일에 전곡을 무료로 발표했다. 코로나 19 시국을 함께 이겨내기 위한 독려의 취지로 무료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20] Ghosts V와 함께 2020년 3월 26일 전곡을 무료로 발표했다.[21] Wish - 메탈 최우수작 (1992년), Happiness in Slavery - 메탈 최우수작 (1995년), 두 노래 모두 Broken#s-2 수록곡이다.[22] 트렌트 레즈너는 인생의 가장 즐거웠던 경험 중 하나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저금통에서 동전을 슬쩍해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플레이했던 걸 꼽았다. 이후로도 게임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왔으나 완전히 빠져든 계기는 울펜슈타인 3D였다고. 음악을 하기 위해 매킨토시를 사용하던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 PC는 멸시와 기피의 대상이었으나 울펜슈타인을 보곤 바로 꽂혀 당시 최고 성능의 PC를 구입하였다고 한다.[23] 둠과 퀘이크의 개발비화를 담은 '마스터 오브 둠'에 따르면 트렌트 레즈너는 콘서트를 끝낸 후 술과 마약, 여자를 마다하고 바로 투어 버스로 달려가 둠을 플레이했다고 한다.[24] 레즈너는 With Teeth 완성 전까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 좋지 않은 상태였다. 중독증 치료를 위해/완벽한 작업을 할 자신감이 없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25] 약 23cm[26] 당시 국내 록팬들의 반응을 보면 아재들의 귀여운 다툼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27] 나인 인치 네일스 공연 도중 프레드 더스트가 난입하고, 이를 말리려 서태지가 등판하고, 이 틈을 타 킨도 덩달아 난입하고 한술 더 떠 라인업에도 없었던 세계 각국 록밴드들이 갑자기 입국하여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아수라장 콜라보가 펼쳐지고, 그 와중에 주최자인 서태지가 봉변을 당하는데, 갑툭튀한 콘의 조나단 데이비스가 서태지를 구해 주었다는 내용이다(...)[28] 그런데 중요한 점은 저 당시 프레드 더스트가 인터스코프 부사장이었다. 즉 트렌트 레즈너는 자기 소속사 임원을 까는 패기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고, 이후 인터뷰에서도 아티스트들이 회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29] 빌보드 닷컴에 나와있는 EP의 정의는 대개 30분대 앨범을 말한다고 한다. Broken EP의 길이도 히든 트랙을 포함해서 31분이었다.[30] 정확히는 공식 계정이 아니라 teitan이라는 계정으로 댓글을 달았지만 예전에 음원을 이 아이디로 공개한 적이 있던지라 다들 누군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