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
'''Mlily 夢百合世紀之戰古李十番棋'''[1]
1. 소개
몽백합배의 스폰서로 잘 알려진 헝캉가구회사(江蘇恒康家居科技股份有限公司)가 2014년에 주최한, 2000년대 한국과 중국 바둑계를 대표하는 라이벌 이세돌과 구리의 바둑 이벤트전. 6월과 12월을 제외한 2014년의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중국 전역 및 한국 신안군에서 한 국씩 치르며, 승자는 500만 위안[2] 의 거액을 얻지만 패자는 여비조로 20만 위안(한국 돈 3500만)이 지급된다. 5:5로 끝날 경우에는 상금을 이등분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주최측에서는 두 대국자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추가 3번기를 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이 그러면 그게 무슨 10번기냐며 반대해 그냥 10번기로 확정이 되었다.
진행 방식이 약간 특이한데, 제한시간 3시간 55분, 1분 초읽기 5회로 제한시간이 매우 긴 편이다. 이세돌이 이 안을 제시하였으나, 본인이 제시하고도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구리는 속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리가 안을 받아들이자 이세돌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대신 장고바둑이라면 흔히 있는 점심시간 및 봉수가 없으며, 선수가 자유롭게 옆방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는 방식이다. 흑, 백의 선정도 1국에서만 돌을 가리고, 이후 흑백을 번갈아 잡는 방식이다. 공제는 7집 반.
2. 10번기의 시작
원래 바둑의 10번기는 현재 프로바둑의 세계대회 체계가 잡히기 이전 오청원시대에 있었던 '''바둑 국수들의 캐삭빵'''이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그만큼 상대를 이기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자존심 대결로 10번기가 엄청나게 체력을 잡아먹는지라, 바둑 기사들은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1955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열리지 않은 과거의 바둑.
그러나 59년이 지난 2014년 이세돌과 구리가 모두 수락하여 무려 59년만에 10번기가 이루어진다. 이세돌과 구리는 각각 한국의 바둑과 중국의 바둑을 대표하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기 때문. 둘은 심지어 나이마저도 동갑이다.
10번기 얘기는 2009년쯤 부터 나왔었으나, 양측 모두 전성기때 캐삭 당할순 없어 부담이 컸었고, 후원사가 나타나지 않았던 관계로 흐지부지 되는 듯 했으나... 2013년 후원사가 나타나면서 10번기가 성사된다.
이 둘이 2012년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즈에서 맞붙은 것이 10번기의 계기가 된다. 둘은 조별예선전에서 처음 대국을 갖는데, 첫 대국은 4패빅으로 인해 무승부가 된다.[3] 이에 재대국을 한 끝에, 구리가 승리하여 먼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이세돌은 남은 경기를 승리해서 조별예선을 통과하고, 둘은 각자 토너먼트를 뚫고 올라간 끝에 3전 2선승제의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다. 첫 판은 구리가 초반에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반 집 차이로 이세돌이 대국을 이긴다. 두 번째 대국에서는 구리가 압승을 거둔다. 마지막 대국에서는 초중반까지는 구리가 유리하였으나, 통한의 실수로 인해 반집패를 당한다. 이로 인해 이세돌이 우승을 하게 된다.
이에 중국의 헝캉가구회사(江蘇恒康家居科技股份有限公司)에서 '비록 이세돌이 우승하였으나, 최고를 가리기 위해서는 10판은 붙어봐야 실력의 우위를 따질 수 있다'고 하여 10번기를 제안한다. 둘이 10번기를 수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둘 사이에 자존심 경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비판
3.1. 영 좋지 못한 중계
바둑계에선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임에도 이에 걸맞는 중계가 되지 않고 있다.
영상중계가 되지 않고 인터넷으로 양 선수의 착점만 올라오는 방식이라 많은 팬과 해설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특히 양 선수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문제가 되었는데, 초읽기에 몰린 기사와 시간이 많이 남은 기사의 생각 및 운영 방식에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누가 초읽기에 몰렸는지,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국내외의 해설자들이 '지금쯤 양 선수 모두 초읽기에 몰렸을 것이다' 투의 해설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 바둑계에 중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4월에 유일하게 한국 신안군에서 열린 4국에서는 TV중계가 되어 일시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바로 다음 대국에서 다시 발생했다.
4. 일정 및 현재까지의 결과
4.1. 1국
2014년 1월 26일 중국 베이징의 캉위엔루이팅호텔에서 열렸다. 돌을 가린 결과 이세돌이 흑을 잡게 되어, 홀수번째 대국은 이세돌의 흑번, 짝수번째는 백번을 잡게 되었다.
초반에는 구리가 약간 좋아도 양쪽 모두 할 만한 흐름이었지만, 중반 전투 중에 나온 백 60이 구리의 잘못된 응수타진. 이세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받던 입장에서 돌변하여 하변 대마를 공격하며 유리한 상황으로 이끈다. 이 백대마는 계속 고통받으며 도처에서 백이 손해를 보는 원인이 되지만(대표적으로 흑 117, 119로 백이 먼저 둔 좌상귀가 흑에게 들어가버린 것이 있다) 두 집 내고 살기는 한다. 251수 끝 흑 불계승. 초반 이후 구리에게 기회가 거의 없던, 이세돌의 완승국이라는 평가다.
4.2. 2국
2014년 2월 23일 중국 핑후의 성레이커호텔에서 열렸다. 핑후는 과거 300년전 10번기가 처음 있었던 장소라고 한다.
좌하귀 흑진에 이세돌의 백이 수를 내러 들어가면서 이르게 중요한 장면이 연출된다. 타개를 잘하는 이세돌답게 수를 내고 살지만, 그 과정에서 좌변 백의 약점이 부각되었다. 구리는 길게 끌지 않고 흑 65로 끊어가지만, 이세돌은 좌변 역시 무난히 살려버리고 중앙 백 역시 별로 공격받을 돌이 아닌지라 백이 유리한 장면이 된다. 그러나 이세돌은 쉽게 가지 않고 중앙에서 패싸움을 실행하는데, 이게 잘못되어 유리했던 상황이 흑이 약간 유리한 미세한 끝내기 형세로 돌변하였다. 다행히도 구리가 최정상급 기사 답지 않게 끝내기 과정에서 실수하여 287수를 마지막으로 이세돌의 1집 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4.3. 3국
3월 30일에 중국 청두의 죽엽청논도관에서 열렸다. 10번기는 구리가 2:0으로 뒤처지던 상황이지만, 이 대국 이전에 초상부동산배와 춘란배에서 구리가 잇따라 이세돌을 꺾으며 구리의 기세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초반 우하귀 접전 결과 이세돌의 흑이 구리의 백을 크게 잡았지만, 구리도 잡힌 백에 패맛이 있는데다 나름대로의 대가를 얻어내 불리해도 할 만한 모습. 그러나 선수를 뽑은 백이 상변에 세력을 쌓고 불완전하던 형태의 좌변 흑에 백 86으로 뛰어들면서 판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좌변 접전의 결과 백이 좌하귀를 크게 손에 넣고, 굉장히 두터워졌지만 흑은 그 대가로 하변 약간 뚫은 것밖에 없어 완전히 역전된 상태가 된다. 꼬투리를 잘 잡는 이세돌답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역전의 기회를 노렸고 구리도 백 178의 실수로 좌변 대마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흘려보내지만, 이 이득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는 없었고 구리의 불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222수 끝.
4.4. 4국
원래는 한국의 서울특별시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듯 하지만, 4월 27일에 이세돌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근처의 신안군 중도에 위치한 엘도라도리조트 대연회실에서 열렸다.[4] 이세돌은 전야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고향에 온 만큼 좋은 내용의 바둑을 두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초반부터 백 10의 신수가 나오면서 27까지 전투가 벌어졌다. 구리의 흑이 우변에 집을 굳히고 백의 근거를 박탈하면서 유리한 것 같지만 실상은 흑의 돌이 많은 곳에서의 전투였고 백이 선수를 잡았으니 쌍방 비슷한 형세이다. 이후 진행된 상변 전투에서 이세돌이 백돌을 깔끔히 수습하고 포위망도 뚫어버리며, 백의 좌변은 그대로 크게 집으로 굳어져 백의 좋은 흐름이 이어진다. 그러나 형세를 낙관한 이세돌이 소극적인 행마를 펼치는 사이 두터워진 흑이 우하귀와 상변 백을 괴롭히고 중앙에 큰 집을 지을 뻔하면서 다시 역전. 이대로 가면 진다고 본 이세돌은 백 146으로 비틀어보지만 구리가 정확하게 대응하고 흑 173으로 백 석 점을 잡아 버리면서 더 이상 기회가 없어졌다. 179수 끝, 흑 불계승. 계속 뒀으면 흑이 2집 반 이겼을 것이라고 한다.
4.5. 5국
'''10번기 승부를 거의 결정지은 한 판'''
이 바둑 이전에 이세돌 九단은 구리 九단에게 4연패 중이었다. 만약 이 대국을 구리九단이 이긴다면 이세돌 9단 상대로 5연승을 거두게 되는 상황이었다.
5국은 5월 25일에 중국 원난성 샹그리라에서 열렸다. 이세돌이 구리에게 4연패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또 이 대국에서 이기는 사람이 다시 앞서나가는 2:2의 동점 상황인만큼 중요한 대국이었다. 고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라 고산병이 우려되었지만, 다행히 건강한 성인 남성인 두 대국자는 무사히 대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세돌에 의하면 평상시 담배 10대랑 고산지대 담배 1대랑 비슷하다고...
이번엔 이세돌의 흑 차례. 초반에 약간 불리하게 출발한 이세돌은 좌하귀 백진을 깨러 들어가서 성공적인 바꿔치기를 만들고, 초반의 불리를 따라잡는다. 이 싸움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백은 선수를 잡고 끝내기를 주도하며, 이대로 무난히 진행되고 중앙이 두터운 백이 중앙에서 몇 집을 만들지의 싸움으로 보였지만, 갑자기 두 선수가 116, 117을 잇따라 놓으며 해설자들이 '바둑 다시 시작했다'라고까지 칭한 혼전이 시작된다. 좌하귀에서 생긴 3단패는 흑이 다 따내며 좌변의 나쁜 맛도 없어지고 수십 집의 이득을 거두지만, 흑의 상변이 크게 깨진 상태. 하지만 구리의 난조를 틈타 하중앙 백을 크게 잡고 상변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며 223수만에 이세돌의 흑 불계승으로 끝났다.
4.6. 6국
4.7. 7국
8월 31일에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라싸에서 열렸다. 5월 5국을 치루었던 샹그리라보다 해발고도가 1000m가 더 높은 고산지대에서 열렸다.
바둑 초반부터 우하변에서 난전이 벌어졌으나, 결과적으로 흑이 실리로 이득을 보았다. 구리는 백 66으로 반격을 시작하여 실리적으로 조금씩 따라잡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구리가 앞서가기 시작하고, 이세돌은 장고에 빠진다. 이에 이세돌은 흑 89, 95로 중앙에서 노골적으로 집짓기를 하면서 대응한다. 하지만 여전히 구리의 우세가 계속되자, 이세돌이 흑 131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백의 두 대마가 분리되면서 힘싸움에서 이세돌이 우위를 가져간다. 이로 인해 우변에 있던 백의 대마가 모두 전멸한다. 이 승리로 이세돌은 구리와의 상대전적에서 22승 1무 21패로 처음으로 앞서나간다.
4.8. 8국
9월 28일 중국의 충칭에서 열렸다. 4국이 있었던 신안이 이세돌의 고향이라면, 충칭은 구리의 고향이다.
중반 흑(구리)의 영역으로 보였던 하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우하귀의 흑 세점 을 백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하며 승기를 잡았다. 10번기 최후의 저항으로 우하귀에서 재 전투가 벌어졌고, 여기에서 우하귀의 흑 대마를 잡고 승리를 확정짓다시피 했다. 이세돌은 후반 끝내기에서 다소 주춤하며 추격을 허용했지만, 역전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344수 백 2집 반 승리. 이로써 대결은 최종 스코어 6승 2패로 이세돌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5. 10번기 이후
이세돌曰 "이제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향후 두 대국자가 어떤 성적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10번기의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10번기의 패자인 구리가 2015년 춘란배에서 우승하면서 승자인 이세돌보다 먼저 세계대회 타이틀을 획득했다.
[1] 중국어 표기는 구리가 앞에 오며, 출처마다 표기가 약간씩 다르다.[2] 한국 돈으로 대략 8~9억. 상금 규모가 세계 최대인 응씨배나 일본 메이저 타이틀(둘다 4억 정도 된다.)보다 대략 2배정도 큰 상금이다.[3] 참고로 세계대회에서 4패빅은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세돌은 2014년 장웨이장과의 대국에서 또 한번 4패빅을 한다.[4] 이 대회와 큰 상관은 없지만 신안군은 바둑리그의 원년 2009년부터 신안천일염 팀을 운영하는 등 바둑계에 많은 후원을 하고 있다.